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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Feb 13. 2020

1. 어쩌다 결혼

결혼 필요 없다 외치고 결혼하다.

나는 결혼은 인생에서 덜어내도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결혼을 덜어낸 자리에 더 채울 것이 많다고 생각했고, 실제고 그런 삶을 즐기고 있기도 했다.

결혼을 덜어내니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첫 번째는 돈을 모을 필요가 없었다.

눈물겹게 결혼자금을 모으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굳이 결혼할 사람도 없는데 미래의 남편을 위해서 돈을 모아야 하는지 늘 의문이었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이 있고, 퇴직연금에 연말정산을 위해 들어놓은 연금저축 정도면 노후는 걱정이 없었다. 일하는 동안은 돈을 벌어서 쓰면 되고, 돈을 벌 수 없는 나이가 되면 연금을 받으면서 충분히 나의 삶을 보낼 수 있었다. 저축에서 자유로워지니 돈이 많았다.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고, 여행 가고 싶은 것 다 가고,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것을 사주기도 하고, 기분 좋게 돈 쓰는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돈을 쓰는데 가책이 없었다. 돈은 또 벌면 되는 거고, 굳이 미래의 불안감을 저축통장으로 채우지 않아도 됐다. 충분히 즐거웠고, 재미있는 인생이었다.


두 번째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살이 찌면 어떻고, 남들 시선은 상관도 없었다. 불특정 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나를 꾸미기보다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낼 수 있었다. 구애활동이 없는 삶이었다. 결혼을 덜어내고 연애마저 덜어내 버렸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 연애도 쉽지 않았다. 혼자서 살아내야 할 시간이 훨씬 많으므로, 그 자체를 즐겼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여행 가고, 혼자 패밀리 레스토랑도 가고 괜찮냐고 묻는 주변의 질문에 "안 해봤으면 말을 말아, 얼마나 행복한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행복했다.


세 번째는 내 인생의 열쇠를 내가 온전히 가질 수 있었다.

나의 선택을 늘 존중해주었던 부모님이기에 결혼에 대한 것도 온전히 나에게 있었다. 물론 잔소리로부터까지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지만, 큰 강요는 없었다. 진로와 진학 그리고 직업, 그리고 결혼까지도, 내 선택에 나 말고 다른 중요한 것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 진로와 진학을 고민할 때 내 친구가 "나는 지금 남자 친구가 교대나 사대를 가기 원해서 그쪽으로 가려고 해."라고 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 남자 친구가 그렇게 하란다고 너는 그렇게 해? 그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라고 말했던 친구는 지금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 내 모든 인생에서의 선택은 온전히 '나의 행복'이 우선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때도 그랬고, 대학교 진학, 취업까지도 나는 내가 정한 나만의 기준과 가치로 선택했고,  그 우선순위가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내 인생은 내 것이었으니까.


나는 30대에 접어들었을 때 어느 때 보다 행복했다.


남들은 30살이 되는 해에 우울감이 느껴진다고 했지만, 나는 30살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직장생활도 안정되었고, 거기에 따른 재원도 충분했고, 인생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시기였다. 그 해 쓴 일기를 보면 정말 난리도 아니다. 갑자기 기타를 배우고 싶다며 기타를 사기도 하고, 갑자기 제주도에 이민을 간다며 구체적인 퇴사 계획과 제주 생활의 계획을 써놓기도 하고, 갑자기 자격증을 딴다며 수백만 원의 돈을 들여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쉬지 않고 매일 놀러 다니고, 해외며 국내며 주말이 멀다 하고 놀러 다니느라 바빴다. 내가 봐도 너무했나 싶기도 하다.


결론을 말하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나는 결혼하고 더 행복해졌다. 나는 나의 삶에 집중할 줄 알고, 타인의 삶 또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부족한 점을 채우려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 내가 더 행복하려고 한 선택이기 때문에 그 선택에 후회 없이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혼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길 바라고 있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스스로 이루려고 노력하고, 내가 이룬 것을 함께 나눌 때 더 행복한 마음이 든다.


물론 결혼을 하고 내 시간이 줄어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밥상을 차리느라 분주하고, 책을 읽을 시간도 부족하고, 혼자 공부하고, 운동하고 하는 시간들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같이 먹는 밥상에 행복하고, 혼자 책 읽는 시간보다 함께 영화 보는 시간이 즐겁고, 같이 가볍게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도 또 행복하다. 취미가 바뀐 것뿐이다.


어차피 행복은 내 안에 있고, 그걸 어떻게 키우는지는 나한테 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좋은 사람을 만났고, 내 행복을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배우자를 만났다.


'내가 행복해지게 내 행복을 키워줘.'라고 내 행복을 위탁했다면,
그 사람이 주는 사랑에 행복해하고, 그 사람이 주지 않는 사랑에 말라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내 행복은 내 안에 있고, 그걸 키우고 말리는 것도 내 몫이니까.
나는 더 내 행복을 잘 키울 수 있다.
내 행복을 가장 잘 아는 것도 나고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것도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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