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도랑길
과거로 돌아가야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각자의 슬픔으로 물들게 한다.
유독 소란스럽게 울리는 풀벌레 소리, 어렴풋하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따뜻한 바람 속의 꿉꿉하고 비릿한 오존냄새.
1미터 남짓 폭을 가진 기다란 도랑을 오른편에 두고 흙이 얇게 깔려 신발과 땅을 부드럽게 이어주던 시골길을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흐린 정신 안에서 동시에 머물게 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과거의 취향이 가득 담겨 반드시 가지고 싶었던 신발이 품절된 것처럼, 가질 수 없는 그때의 물건과 사람이 떠오르고 현실을 살아가는 지금의 불평등한 상황과 여건, 이유 등은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상상하고 조작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300미터쯤 걸었을 때, 멀리서 손을 크게 흔들며 얼른 오라는 “나무”의 외침이 들렸다. 난 과거에 머무르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아 순간적인 빠른 걸음으로 나무에게 곧바로 응답하고서 얼마 안 가 걸음을 늦추었다.
나무는 익숙한 듯 약간의 기다림 후 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마치 적을 물리친 것 마냥 으쓱해하며 조금 전 과거에 떠올리던 그 과거로 순식간에 다시 돌아갔다.
그렇게 걷기를 20분, 따뜻한 온기와 고소하면서 묵직한 밥의 냄새 그리고 생선 비린내가 양쪽 코에 순서 없이 오갔고, 그 순간 나머지 한 발도 대문 안으로 들여놓았다.
과거의 밥상 따위는 기억하려는 노력 없이, 수저를 든 오른손은 밥상의 이곳저곳을 휘저었고, 그렇게 네 가족의 밥상은 실력 있는 지휘자처럼 조용히 그리고 화려하게 밤의 고요를 연주했다.
그 동네의 저녁은 밤마다 각자의 노래인 고요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리듬을 즐기기 바빴다. 모든 고요의 시작은 동일한 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한 곳도 같은 멜로디를 들려주지 않았다.
고요의 멜로디는 그날그날의 나무의 몫이었다.
시장에 들러 신선해 보이는 재료를 구하던 나무의 정성, 그간 갈고닦아온 나무의 요리 솜씨, 고요 속의 불협화음을 통해 알게 된 어느 가족 구성원의 못/안 먹는 음식에 대한 정보의 반영 등 간단해 보이는 악기(재료)들이었지만 가족을 향한 나무의 ‘사랑’이 한껏 담겨있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무의 정성과 사랑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마음조차 이해하지, 인지하지 못했고 익숙함과 당연함 속에 수많은 밥상의 기억을 도랑길에 미처 뿌려두지 못했다.
과거를 느끼던 나는 기억할 수 있는 최후의 미래로 돌아왔다. 도랑길을 걷고 있었고, 무릇 달라진 전봇대의 높이는 과거를 떠오르도록 돕는 존재였다.
300미터쯤 걸었을까, 나무는 여느 때처럼 문 앞에 나와 나에게 크게 손짓을 해주었고, 난 예상치 못한 반갑고도 그리운 마음에 멀리멀리 점점 빠르게 멀어져 가는 나무를 향해 뛰어갔고 계속해서 속도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땀이 나고, 시야가 흐려지고 비릿한 오존냄새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달렸지만, 흐린 정신은 미처 뿌려두지 못한 기억들을 반성하라는 듯 어느새 나무의 자취를 없앴고, 전봇대는 다시 낮아진 모습을 보여줬다.
돌아온 미래를 인식하게 하는 존재였다.
나무의 마음과 사랑을 아직도 완벽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며 과거의 기억이 소중한 것임을,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야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의 순간들을 과연 나는 지금 이해할 수 있을까?
만약 가족을 이루게 된다면, 나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무처럼 모든 걸 품어주고 이해해 주고 막아주는 존재가 과연 나는 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후회보단 추억할 수 있는 순간들을 그리고 그 감정들을 고마운 도랑길에 많이 뿌려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