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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규 Jan 31. 2023

세 사람

(2)

목공소에 남은 두 사람에게는 금방 어려움이 닥쳤다. 막상 세 사람이 하던 일을 두 사람이 하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한 사람이 워낙 갑작스럽게 떠나다 보니 당장 들어오는 의뢰를 차치하고 이미 받아둔 의뢰의 기한을 맞추는 것만도 빠듯했다. 혼자서도 능히 할 수 있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두세 사람이 손을 맞대어야 할 작업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간신히 일의 기한을 맞춘다고 한들 가구의 품질이 안 좋다면 손님을 잃게 될 것이었다. 두 사람은 전보다 더 공을 들여야 했고 자연히 일의 속도가 나질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만도 못한 수입을 확인한 두 사람은 자못 후회가 되었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이 떠나가지 않도록 더 설득할걸,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따라갈걸, 이런 연유로 둘은 옥신각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곧 그것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음을 알고,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얼른 사람을 새로 고용할까도 하였으나, 그러면 금방 기존에 일하던 방식으로 돌아갈 테고 사람을 새로 가르치는 데도 시간은 드는 법이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충분한 임금을 지급할 여력도 없었다.

한편, 부자 손님을 따라 바다로 나온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처음 선장을 따라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날, 선장의 말대로 그물을 끌어 올리자 떼지어 올라오는 물고기를 보고 그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별안간 섬찟하며 놀랐다. 그는 저 선장의 말이 사실인지 미리 바다에 나와 한 번이라도 조사하거나 확인해봤어야 했다고, 그런 응당한 절차도 없이 선장의 풍모(風貌)만 보고 분별력을 잃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꾀인 것이, 선장의 말이 사실이었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자신이야말로 그물에 걸린 고기 신세가 될 뻔하였다고 스스로 꾸짖기도 하였다.  

   

세 사람의 인생길이 두 갈래로 나뉜 지 오 년 남짓 지난 어느 날, 바다로 떠났던 사람이 두 사람이 일하는 목공소에 찾아왔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 인사차 들른 것이었다. 그는 이전에 세 사람이 함께 일할 때 찾아온 부자 손님의 풍채를 하고 있었으나, 동시에 한껏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요즘은 바다에 왜들 나가는지 모르겠어. 잡히는 게 없어 나갔다 오는 게 오히려 손해거든.”

“하하, 자네 몇 년 새에 많이 바뀌었네그래. 우리랑 같이 일했던 사람 맞나 싶어.”

“맞아, 다시 돌아오라고도 못 하겠어.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받는 의뢰 수가 비슷하거든. 오해 말게. 자네가 돌아오면 우리야 환영이니까.”

“고맙지만 됐네. 난 이미 하려고 마음먹은 일이 있거든. 며칠 뒤에 여기를 떠날 거야. 오히려 자네들이 나를 따라나설 생각은 없는가?”

그는 이것저것 자신이 구상한 미래와 대략의 계획을 늘어놓았다. 그의 말대로만 된다면 당장 오늘부터 부자 행세를 하고 다녀도 될 것이었다. 그러나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게 사람이요, 또 지난 오 년 동안 목공소를 지킨 두 사람도 이제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본인들 가는 길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 자네들이 싫다는 걸 어쩌겠나? 그런데 내가 바다에서 일하는 동안 느낀 게 뭔 줄 아나? 인생을 산다는 건 시곗바늘을 맞추는 것과 같다는 거야. 세상이 열 시를 가리키고 있을 때 자네 시계가 열 시 오 분을 가리키고 있다면야 모르겠지만, 반대로 아홉 시 오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으면 분침을 고쳐서 시간을 맞출 게 아닌가? 나로 말하자면 오 년 전에 운 좋게 부자 선장님을 따라가서 시간을 열 시로 맞출 수 있었다 이거지. 그 덕에 돈도 많이 벌었고!”

“자네가 바다에 나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건 우리도 잘 알고 있네. 그렇지만 말이야, 그건 오히려 자네가 여유롭게 쉴 수 있을 이유가 되는 게 아닌가?”

“그야 당연히 시계라는 게 한 번 맞춰놓는다고 해도 점차 틀어지기 마련이거니와 세상의 시간이란 건 갈수록 더 빠르게만 흐르기 때문이지. 지금으로 치면, 내 시계는 열한 시 반 정도를 가리키고 있는데 세상은 벌써 열두 시 근처에 있는 셈이라 이걸세. 그리고 주위에 선장님 같은 분이 늘 있는 게 아니고서야 운에만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일하는 몇 년 동안 다음에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부단히 찾고 있었다고.”

“아니, 나는 세상의 시간을 쫓아다니는 자네의 시간에 대해 질문한 걸세. 우스갯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아. 그게 오히려 어설프게 따라가다 한 번도 제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것보다 나을지 누가 알겠는가? 더구나 우리는 하루살이도 아니잖나. 우리의 일생은 낮과 밤이 반복된다는 것과 계절이 반복된다는 걸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짧지 않네. 그 덕분에 올해 연약해도 내년에 강건해질 수 있고 오늘 실수해도 내일 고칠 수 있어. 자네 눈에 우리처럼 한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멈춰 있거나 뒤처진 것처럼 비칠 수도 있겠네만, 우리는 우리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 걸세. 자네가 영 틀렸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자네나 나나 자신이 정답인 양 말할 수는 없다는 거네.”     


오 년 만에 다시 만난 세 사람의 대화는 오 년 전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때와 같이 두 사람은 여전히 남고 한 사람은 먼 길을 떠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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