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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규 Dec 10. 2024

양치기 소년 II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양치기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소년은 뒤늦게 울면서 호소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의 눈물도 거짓일 거라며, 더는 그가 무어라 외치는지조차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울상이 된 소년은 하는 수 없이 목장으로 돌아가 혼자 양을 몇 마리라도 늑대로부터 지켜 보려고 했다.

목장에서 실컷 양들을 물어 가던 늑대는 목장으로 혼자 돌아오는 양치기 소년을 보고 의기양양해했다. 그 우두머리 늑대는 곧 초원에 있던 다른 늑대들을 목장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늑대들은 외쳤다. “양치기 소년이 나타났다! 우리가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양들을 잡아먹는 것인데, 그걸 방해하다니! 참을 수 없어! 양이 아니라 양치기를 물어 뜯어야 해! 양치기 소년을 잡아라!”


양치기는 양들을 넘어 이제는 자신을 향해 잡아먹을 기세로 달려드는 늑대들을 보고 죽을 힘을 다해 마을로 도망쳤다. 울타리를 넘다가 넘어져 한쪽 다리를 다쳤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살기 위해 달음박질쳤다. 늑대들도 울타리를 뛰어넘어 소년을 쫓아 마을까지 쳐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상처투성이가 된 소년의 모습을 보았고, 이제는 자신들을 향해서까지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세우고 있는 늑대들을 보았다. 눈 앞의 광경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늑대들로부터 지켜주는 한편 늑대들을 목장으로, 또 목장 밖 초원으로까지 몰아냈다.


며칠 뒤, 소년은 다시 양들이 있는 목장으로 나갔다.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 한쪽 다리를 심히 절고 있는 그의 귀에 대고 누군가 갑자기 말했다. “지난 번에는 양들을 잡아가지 못하게 막는 네게 너무 화가 나서 경고하려던 것뿐이었어. 경고라고, 경고. 그게 뭔지 너도 알잖아?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마을에 쳐들어가는 일도 없을 거야.” 그건 우두머리 늑대였다. 초원에서 금세 목장으로 다시 넘어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하는 늑대의 말에 분개한 소년은 힘껏 소리쳤다. “늑대가 나타났다!” 불과 며칠 전에 있던 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을 어귀를 지키던 사람들에게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고, 곧 마을 사람들이 목장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도, 목장 안에서 대치하고 있는 소년과 늑대도 알고 있었다. 늑대를 아주 물리치려면 양치기인 소년이 직접 늑대를 잡아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소년은 자신이 양을 치고 늑대로부터 양을 지킬 수 있다는 걸, 그 자격을 보여야 하는 것이었다. 아아, 아까까지만 해도 절었을 뿐이던 다리가 이제는 아예 움직이질 않는다. 늑대로부터 도망칠 때도, 목장으로 다시 돌아올 때도 어떻게든 발을 내디뎠던 다리가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소년은 아직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을 울타리 밖에서 지켜보고 있다. 요지부동하는 소년의 다리를 보며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끝내는 늑대를 몰아낼 수 있을 거라고 소년을 응원하는 마을 사람들도. 숨어서 언제든 도망할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소년이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거라고 비웃으며 다시 목장을 넘보고 있는 늑대들도.



장차 이 마을의 미래란 어떻게 될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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