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자격지심, 비교와 차별 속 투쟁기

20년을 괴롭혀온 마음의 상처. 아직도 아무는 중

20년을 괴롭혀온 마음의 상처, 여전히 아무는 중


이제 아빠의 '라떼' 시절은 끝내고 이제 진정으로 아빠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해볼까해. 가장 먼저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많은 고민을 했는데, 가장 아빠의 아픈 과거부터 말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살아오며 스스로 가장 아프게 갉아먹었던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로 ‘차별과 비교’라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었단다.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마치 지독한 트라우마처럼 아빠의 무의식을 괴롭히는 이 아픈 기억을, 너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글로써 적어 본다.


아빠는 어릴 때 네 작은 고모와 사이가 안 좋았단다. 보통 삼남매가 있으면 보통 둘째와 셋째가 사이가 안 좋은 건 흔한 클리셰지만 네 고모와 아빠는 유독 좀 심했다. 그냥 단순한 심술이 아니라 그땐 정말 싫어했던 것 같아. 왜냐하면 네 고모의 차별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한 살 위인 친척 형이 오면 네 작은 고모는 유독 그 형만 옆에 끼고 노골적으로 예뻐했단다. 아빠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 형만 따로 방으로 부르며 이야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곤 했지. 또 그 형에 한마디 한마디에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 그 어린 마음에도 ‘왜 나는 저 형만큼 사랑받지 못할까’ 하는 서운함이 앙금처럼 가라앉곤 했어.


또 네 고모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아빠와 그 친척 형을 차별하곤 했단다. 아빠는 비교적 가볍고 좀 까불거리는 성격이었다면 그 친척형은 좀 적당히 개그감이 있으면서 배려할 줄 아는 성격이었거든. 이유야 어찌되었건 당시에 아빠에게는 많은 상처가 되었단다. 물론 지금은 아빠에게도 선을 지키지 못했던 장난, 가끔 누나 물건을 훔치는 등의 행위들과 네 고모를 괴롭혔던 것들 같은 아빠의 문제도 있었다는 걸 알고 또 네 고모도 당시에 둘째로서의 위치와 사춘기의 감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그때의 감정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아빠에게는 많은 상처와 씁쓸함을 주었었단다.


하지만 이런 작은 고모의 차별은 사실 그냥 누구나 있는 가벼운 이야깃거리라면 진짜 지옥은 바로 비교였단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아빠는 명절이나 제사, 종친 회의가 있는 날이면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디든 따라가야 했지. 당시엔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이라 일가친척이 모이면 아이들이 정말 넘쳐났단다. 좁은 집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넘쳐났지. 아빠 위로만 여덟 명의 친척 형들이 있었고, 아래로도 동생들이 줄을 이었어. 그 중에서도 수많은 아이들 틈에서 아빠와 한 살 터울이었던 형, 그리고 남동생, 이 세 명의 남자아이는 어른들에게 일종의 ‘성과 발표’와 같았단다.


어른들은 우리를 한데 모아놓고 모든 것을 측정하고 순위를 매겼어. 누가 더 키가 큰지, 이번 시험 성적은 누가 더 잘 나왔는지, 심지어는 팔씨름을 시켜 누가 더 힘이 센지까지 따졌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건 그저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 사이의 가벼운 분위기 전환용 주제인 줄 알았어. 뭐 가장 쉽게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게 아이들 이야기고, 가장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게 저런 것들이니까.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자아가 형성되면서부터, 그 자리는 본격적인 자존심의 전쟁터로 변질되었단다.


완벽한 ‘엄친아’라는 연극의 종말


그렇게 명절이면 우리는 방 안에서 숨죽이고 있고, 거실에 모인 어른들이 우리를 소재 삼아 각자의 자식 자랑과 성과를 발표하듯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아빠는 느꼈어. 아, 명절은 나에게 축제가 아니라 ‘분기 실적 발표회’ 같은 거구나, 하고 말이야. 그렇게 바로 한 살 아래 남동생과의 비교가 시작되었단다. 가까이 살았던 그 동생은 할아버지가 아빠를 몰아세울 때 사용하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였단다.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그 동생은 그야말로 ‘신화’와 같았어. 학교 교장 선생님이 인정한 천재, 전국 최상위권 대학에 가볍게 안착할 성실함, 거기에 운동 신경까지 갖춘 완벽한 ‘엄친아’였지. 고등학교 때 전학을 가려 하자 학교에서 도시락 싸 들고 말릴 정도의 인재라는 소문이 집안에 파다했단다.


그 찬란한 존재에 밀려 아빠는 친척들이나 할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대부분을 ‘모자란 아이’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어. 아빠는 고등학교 때 공부보다 컴퓨터나 다른 세계에 관심이 많았고, 고집도 세서 어른들 말을 고분고분 듣는 편이 아니었거든. 반면 그 동생은 어른들이 원하는 직업과 학교를 목표로 삼으며 집안의 사랑과 기대를 독차지했지. 아빠는 완전히 ‘폐급’ 취급을 받았고, 누구 하나 아빠를 다독여주는 존재가 없었어.


그래서 아빠는 더 공부가 하기 싫었는지도 몰라. 아무리 노력해도 그 동생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거든. 공부도, 운동도, 음악도 그 동생에게는 상대가 안 될 것 같다는 패배감이 아빠를 지배했어. 어쩌면 아빠가 컴퓨터라는 전문적인 영역에 그토록 집착했던 건, 그곳만이 그 완벽한 동생으로부터 도망쳐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요새였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그 화려했던 연극은 수능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허망하게 막을 내렸단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 동생의 성적표는 어른들이 떠들던 천재성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어. 그냥 아빠와 비슷한 수준이었지.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아빠가 느낀 건 통쾌함이 아니었어. 거대한 허탈함이었단다.


내가 자격지심에 시달리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던 그 3년의 세월이, 사실은 어른들의 근거 없는 과장과 허영이 만들어낸 가짜였다는 사실이 너무나 허망했어. 한편으론 그 동생 또한 그 거짓된 기대 속에서 얼마나 숨이 막히는 연기를 해야 했을까 싶어 가여운 생각마저 들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어른들도, 그 상황도 모두 미워졌어. 그 이후로 아빠는 ‘비교’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게 되었단다.


능력과 부, 그리고 외모라는 자격지심의 굴레


20대에 들어서며 아빠는 더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어. 중고등학교 내내 아빠를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이 정도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 다신 비교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비극적이게도 그때부터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단다. 당시에 WEB 2.0 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수 많은 청년 창업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당시 IT 필드에서 창업한 동년배 중에는 이미 수많은 매체에 노출되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이 넘쳐났어.


대학에 와서 만난 진짜 ‘천재’들은 아빠를 다시 자격지심의 늪으로 밀어 넣었지. 현실은 만화와 달랐어. 노력하고 즐기면 천재를 이길 수 있다고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재능 있는 사람이 즐기면서 노력까지 하는 거였단다. 당시에는 IT 창업 버블을 끼고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같은 유명 대학을 나와 보장된 미래 대신 불확실한 스타트업을 택해 미래를 개척한다는 꼭지로 수 많은 창업가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어. 어떤 이들은 정말로 성공했고 또 어떤 이는 성공하지 못했어도 계속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빛나고 있었지.


그렇게 화려한 조명을 받은 대표들을 시작으로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도 조기 졸업, 20대 중반에 이미 박사 학위를 따서 교수를 준비하거나 그렇게 졸업해 굴지의 대기업에서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친구들, 혹은 유망한 스타트업의 C레벨이 되어 존재 만으로도 수십억의 투자를 끌어오거나 M&A를 성사시키는 이들을 보며 아빠는 늘 괴로웠어. 나는 왜 저들만큼 명석하지 못할까, 왜 나는 저런 인재들을 내 곁에 두지 못할까. 매일 하루하루가 자격지심과의 전쟁이었단다.


돈에 대한 자격지심도 마찬가지였어. 우리는 흔히 부자는 성격이 나쁠 거라는 편견을 갖지만, 아빠가 만난 진짜 부자들은 오히려 훨씬 여유롭고 베풀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모자람 없이 자란 풍요가 그들을 너그럽게 만든 거지. 반면 능력, 외모, 돈 모든 면에서 자격지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던 아빠는 늘 날카로웠고 오로지 자신만 살필 줄 아는 좁은 사람이었어. 큰 돈을 과감하게 투자해 더 큰 수익을 내는 사람들을 보며, 고작 몇 백만 원을 굴리며 조마조마해하는 내 모습이 참으로 초라해 보이더구나. 따라잡을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빼놓을 수 없구나. 아빠는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단다. 낮은 코와 튀어나온 눈이 늘 불만이었지. 특히 할아버지가 대머리이셨기에, 아빠는 30대 전까지 탈모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어. 머리카락 한 올이 빠질 때마다 아빠 마음속엔 1급 경보 사이렌이 울렸단다. 원형 탈모가 왔을 때는 정말 온갖 ‘생쇼’를 다 했어. 탈모 클리닉에 등록해 두피에 침을 맞고 약을 바르며 미친 듯이 매달렸지. 다행히 지금까지 머리숱은 잘 지키고 있지만, 그 공포가 아빠의 자존감을 얼마나 갉아먹었는지 너는 모를 거야.


자격지심의 부작용: 질투와 허영의 연극


이처럼 아빠는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덩어리 같은 사람이었단다. 누군가를 만나면 본능적으로 그와 나를 비교했어. 나보다 잘나 보이면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으로 삼았고, 나보다 못나 보이면 은근히 우쭐해하며 나 자신을 위로했지. 그런 태도는 아빠의 삶에 수많은 걸림돌을 만들었어.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보지 않고 비교 대상으로만 대하니, 아빠의 말투와 표정엔 늘 시기심이 묻어 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아빠를 외면하기도 했단다. 동료가 성공하면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고 배 아파하는 못난 사람이었어.


또한, 자격지심은 아빠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어. 한 분야에서 월등한 천재를 만나면, 나 자신을 믿고 묵묵히 나아가는 대신 겁을 먹고 다른 분야로 도망치곤 했단다. “저 사람은 환경이 좋으니까 가능한 거야”, “원래 머리가 좋으니까 저렇게 하는 거지”라고 자기위로를 하며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리고 멈춰버렸지.


가장 부끄러운 건 과장과 허영이었단다. 부족한 나를 감추기 위해, 더 뛰어난 사람들에게 꿀리지 않으려고 나 자신을 화려하게 포장하고 연극을 할 때가 많았어. 마치 내가 엄청난 사람인 것처럼, 때로는 리플리 증후군 환자처럼 부끄러운 거짓말까지 보태며 버텼단다. 비교라는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비겁한 방식이었지. 아빠는 그렇게 오랫동안 진짜와 가짜를 오가며 살아왔단다.


지옥의 문을 닫는 법: 너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렴


아들아, 아빠는 네가 태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단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그 순간이 바로 지옥으로 들어가는 특급 익스프레스 출입구라는 것을 말이야. 너가 태어나고 아빠가 너를 보며 느끼는 그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아빠 또한 사실은 부모님들에게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어. 너를 진정으로 행복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빠부터 이 자격지심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는 걸 네가 가르쳐주었단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평온한 일인지 너 덕분에 알게 되었어. 그래서 너는 아빠에게 가장 소중한 스승이자 감사한 존재란다.


혹시라도 네가 나중에 누군가와의 비교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면, 아빠가 먼저 통과해 온 이 지옥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 말들을 꼭 기억해주렴. SNS를 멀리하거나 최소한으로만 하렴. 타인이 정성껏 편집해 올린 ‘하이라이트’와 너의 평범하고 ‘가공되지 않은 일상’을 비교하는 건 가장 어리석은 짓이란다. 너에게 유일하게 가치 있는 비교는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어제의 너와 오늘의 너’를 비교하는 것이어야 해.


그리고 네 주변에 비교하지 않는 담백한 사람들을 두렴. 아빠가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너와 더불어서 네 엄마같이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였어. 누군가의 연봉이나 아파트 평수가 아니라, 오늘 읽은 책 한 줄의 감동과 소소한 취미의 기쁨을 나누는 이들과 함께하렴. 환경이 바뀌면 너의 마음의 모양도 반드시 바뀌게 되어 있단다.


마지막으로 너만의 ‘절대 가치’를 키워야 한다. 세상의 꽃들은 서로의 아름다움을 시기하며 피지 않아. 장미는 장미의 계절에 피고, 들꽃은 들꽃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날 뿐이지. 너 또한 타인이 정해놓은 ‘성공’이라는 궤도에 너를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말고, 네가 무엇을 할 때 가장 가슴이 뛰는지 그 절대적인 기쁨을 찾아내길 바란다.


아들아, 아빠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 지독한 ‘비교’라는 습관을 너에게는 절대로 물려주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단다. 하지만 아빠도 완벽하지 못해서, 가끔은 나도 모르게 너를 누군가와 비교하는 눈빛을 보냈을지도 몰라. 그럴 때마다 아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깊이 반성하곤 한단다. 혹시라도 아빠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기억이 있다면 부디 용서해다오. 아빠는 네가 누군가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되기보다, 너 자신으로 온전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다. 너는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하고 완벽하단다.


부디 너만은 이러한 아픈 기억을 성인까지 가져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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