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트온, 버디버디 메신저 속에 갇힌 3년
아들아, 아빠의 중학교 3년을 떠올려보면 온통 ‘짝사랑’이라는 단어로 점철되어 있단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합쳐도 그 흔한 여자친구 한 명 사귀어보지 못한 채 찌질의 역사만을 잔뜩 세겼단다. 하하 마흔이 넘어 그때를 돌이켜보니 이유는 참으로 명확했어. 당시의 아빠는 스스로를 가꿀 줄 모르는 아이였거든. 덥수룩한 머리에 늘어난 티셔츠, 유행과는 한참 거리가 먼 옷차림까지. 게다가 학원이나 동아리 같은 외부 활동도 전혀 하지 않았으니, 이성을 만나 교감을 나눌 ‘접점’ 자체가 아예 없었던 셈이야.
아빠가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건 단순히 “아빠는 연애를 못 해서 아쉬웠다”라는 한탄을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란다. 이성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청소년기를 보낼 때, 그것이 한 사람의 가치관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스스로를 어떤 방식으로 갉아먹는지 알려주고 싶어서야.
요즘 너를 보면 이성에 눈을 뜨는 게 조금 늦다는 생각을 하곤 해. 하지만 걱정 마렴. 아빠 역시 늦었던 아이였으니까. 초등학교 때는 이성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고, 중학교 때는 그저 ‘찌질이’ 그 자체였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누군가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감정을 겪게 되었어.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단다. 아빠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연애의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는지를 말이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 이 감정은 누가 가르쳐준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야.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고 무게도 다르겠지. 너도 조만간 네 삶으로 그 감정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아빠가 미리 일러주고 싶은 주의사항이 하나 있단다. 바로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좋아함’과 절대 착각하지 말라는 거야.
호기심은 그 사람의 성격일 수도 있고 때로는 낯선 이성의 몸에 대한 궁금증일 수도 있어. 하지만 호기심은 그저 ‘물음표’ 일뿐이야. 좋아함이라는 ‘느낌표’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단다. 아빠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고백했던 그 상대도 사실은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어. 내가 사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면서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주던 그 아이. 그 아이가 누리는 세계에 대한 동경과 궁금증을 아빠는 사랑이라고 굳게 믿어버렸던 거지.
아빠의 첫 고백은 지금 생각해도 참 처참하고 낯부끄러운 기억이란다. 중학교 졸업식 날에 할머니를 졸라 산 나름대로 멋진 옷(다신 상상도 하기 싫은 그 옷…)을 입고, 신문지로 투박하게 싼 꽃 한 송이를 들었어. 그 친구의 친구들이 수두룩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아빠는 나름대로 모든 용기를 끌어모아 고백을 전했단다. 아 정말 답답하구나.
주변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해졌고 그 친구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어. 결과적으로 그 친구는 “알겠다”라고 대답했지. 아마 거절하면 분위기가 너무 이상해질까 봐, 혹은 아빠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내린 일시적인 결정이었을 거야. 아빠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지만 그 기쁨은 반나절을 채 가지 못했어. 그날 저녁, 휴대전화 액정에 뜬 차가운 문자 한 통. “미안해, 없던 일로 하자.” 아빠는 그렇게 고백한 날 바로 차이고 말았단다.
그런데 이상한 건 차이고 나서도 슬프지가 않았어. 그저 ‘아~ 안 됐네’ 하는 정도의 공허함뿐이었지. 그때 알았단다. 아빠가 그 친구를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했던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모르는 세계를 가진 그 사람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고백이라는 성급한 행동으로 던져버렸다는 걸 말이야. 아빠에게도 흑역사지만, 아마 그 친구에게도 그날의 기억은 지우고 싶은 해프닝이었을 거야.
그 처참한 거절 이후 아빠에겐 이상한 오기가 생겼어. “나보다 부족해 보이는 친구들도 다 연애를 하는데 왜 나만 안 될까?” 하는 비뚤어진 억울함이었지. 그때부터 아빠는 이른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가 되어버렸어. 상대의 내면을 알기도 전에 겉모습만 보고 마음을 던지고 대면해서 진심을 전하기보다 메신저나 문자로 가벼운 고백을 남발했지. 진심이 빠진 고백들은 수많은 소중한 인연을 끊어버리는 칼날이 되었단다.
여기서 아빠가 말해주고 싶은 두 번째 함정은 ‘외로움’이란다. 네가 견디기 힘들 만큼 외로울 때 누군가 내민 호의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질 거야. 하지만 아들아, 그 호의에 대한 고마움과 그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은 반드시 구별해야 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홀로 버스를 타며 망우리 고개를 넘던 아빠의 지독한 외로움은 사춘기가 되자 이성에 대한 과한 갈망으로 변질되었어. 버스에서 가끔 마주치던 한 여자아이가 있었단다. 우연히 그 아이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길이 막혀 거북이걸음을 하던 버스 안에서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지.
그 친구 역시 아빠처럼 버스 안에서의 정적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우리는 꽤 가까워졌어. 아빠는 그 친구와 대화가 통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또다시 착각에 빠졌단다. ‘아, 이 친구가 내 외로움을 채워주는구나. 이게 사랑이구나.’ 하지만 정작 아빠는 그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가꾸거나 성장시키려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았어. 그저 내 외로움을 받아줄 ‘대화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었지.
결국 아빠는 또 한 번 무리한 고백을 던졌고 그 친구와의 인연도 거기서 마침표를 찍고 말았어. 집 근처에 살던 친구라 가끔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느껴지던 그 숨 막히는 어색함은 오롯이 아빠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지. 외로움을 달래준 손길에 감사하되, 그것을 성급하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씌우지 마렴. 그것 또한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아빠가 생각하는 진정한 ‘좋아함’이란 그 사람을 위해 나 자신을 기꺼이 변화시키고 싶어지는 상태란다. 내가 그 사람의 세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의 모난 구석을 깎아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에너지가 생길 때 그때 비로소 사랑의 문이 열리는 법이야.
당연히 이것만이 좋아함을 정의하는 문장은 아니란다. 좋아함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그중에 저것도 있다는 것이지.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인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 나오는 잭 니콜슨이 말하는 것처럼 결국 그 사람으로 인해 나 스스로가 변화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이 사랑의 한 종류임은 많은 사람이 동의할 거란다.
하지만 당시의 아빠는 그런 노력을 하기보다 내 마음의 결핍을 채워줄 ‘대상’을 찾아 찔러보고 아니면 포기하는 악순환만 반복했어. 게다가 당시 탐닉했던 수많은 만화와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아빠의 머릿속을 헛된 망상으로 가득 채웠단다. ‘운명적인 인연이 나타나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게 해결될 거야’라는 착각,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불타는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환상이 아빠의 현실 감각을 마비시켰지.
특히 중학교 때 처음 접했던 성인물(포르노그라피)은 아빠의 이성관을 완전히 왜곡시켜 버렸어. 차라리 요즘의 ‘숏츠’처럼 아무 맥락 없이 야한 장면만 보여줬다면 그저 찰나의 성욕으로 끝났을지도 몰라. 하지만 당시 아빠가 봤던 성인물들엔 말도 안 되는 ‘스토리’가 있었단다. 그 어설픈 이야기들이 어린 아빠에겐 ‘실제 현실에서도 저럴 수 있다’라는 무서운 오해를 심어주었어. 그것은 아빠가 이성을 한 명의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 욕망의 도구로 치부하게 만든 비겁한 방어 회로였던 셈이야. 아빠는 네가 이런 왜곡된 정보에 휩쓸리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건강하고 따뜻한 연애를 직접 경험해 보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아들아, 네가 미래의 소중한 인연을 만나기 전에 꼭 명심했으면 하는 것들이 있단다.
첫 번째는 스스로를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렴. 지금 네가 외모적으로 아무리 훌륭하게 자라고 있더라도, 자신을 꾸미는 행위는 단순히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쇼가 아니란다. 그것은 “나는 나 자신을 존중하고 아끼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자기 고백이야. 깨끗하게 씻고, 네게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것. 네가 너를 귀하게 여길 때, 비로소 너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진귀한 인연도 너에게 다가오는 법이란다. 만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덥수룩한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 ‘결정적인 인연’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이야.
두 번째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말을 들어주렴. 네 말만 하지 말고 네가 알고 있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면 안 된단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어떤 상황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네가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맞춰보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그것이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세계를 잠시나마 체험해 볼 수 있고 오랫동안 함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해 줄 거야. 물론 이해하되 무리하게 너 자신을 바꿀 필요는 없단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연극은 반드시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니까.
마지막은 아빠의 약속이란다. 아빠가 조만간 너에게 직접 ‘진짜 성교육’을 해줄 거야. 너도 언젠가 반드시 친구나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그라피를 접하게 될 거라는 걸 아빠는 안다. 하지만 기억하렴. 화면 속에서 보여주는 그 자극적인 영상들과 과장된 반응들은 결코 현실이 아니야. 그것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마케팅으로 만들어진 ‘과학 판타지’에 불과하단다.
성(性)과 스킨십은 상대와 나누는 가장 깊은 수준의 대화이자 존중의 표현이야. 매체에서 보여주는 그 이상한 리액션들을 현실의 정답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스킨십의 과학과 감정의 본질에 대해 아빠가 하나하나 짚어줄게. 그건 이 세상을 먼저 살아본 선배이자, 너를 가장 아끼는 아빠로서 당연히 해야 할 몫이니까. 그 점은 온전히 아빠에게 맡겨주렴.
아들아, 사랑은 결코 단순히 말초적인 에로티시즘이나 한 편의 영웅담이 아니란다. 진정한 사랑은 나라는 한 사람과 너라는 한 사람이 만나 서로를 거울삼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함께 성장해 가는 고결하고도 치열한 과정이야.
아빠처럼 외로움에 쫓겨 사랑을 가벼운 도피처로 생각하지 말거라. 누군가의 손을 잡기 전에 먼저 네 손을 스스로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사람이 되렴. 너 자신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가꾼 뒤에 다가오는 인연에게 최선을 다하는, 그런 멋진 남자가 되길 바란다. 아빠는 네가 맞이할 그 빛나는 계절을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