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끝에서 만난 안정, 과거를 바라보며 현재를 선택하기까지
아들아, 아픈 이별과 방황의 터널을 지나온 뒤에도 아빠는 꽤 많은 연애를 거쳤단다.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렇게나 가꿀 줄 모르고 찌질했던 아빠가 훗날 이토록 다양한 인연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아빠 친구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가끔 아빠의 연애사를 듣게 된 친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하곤 했지. "네가 도대체 어떻게?"라며 비결을 묻는 친구도 있었단다.
하지만 아빠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 그리 복잡하고 거창한 기술을 요하는 일은 아니라는 점이야.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화려한 마술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정직한 이해와 상대를 향한 미세한 배려에서 시작되거든. 물론 사람을 만나는 데에 기술이라는 것이 필요하냐? 라고 묻는다면 어떤 명확한 해답을 주기 어렵지만 적어도 내가 친해지고 싶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붙잡는데는 반드시 어떤 나만의 액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게 이성이든, 동성이든 간에.
사실 아빠도 사람을 잘 알거나 사람들과 항상 깊은 인연을 맺는 건 아니란다. 나중에 말해주겠지만 원래 아빠는 수 많은 사람들을 알았지만 지금은 그 수 많은 인맥 중에 일부만 연락하고 있을 뿐이고 오히려 아빠보다 너 적은 사람을 알고 있었던 네 엄마는 지금도 많은 사람과 끈끈하게 이어져있지. 그래서 사람에 대해서는 네 엄마가 좀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적어도 아빠가 아는 것만큼은 알려주고 싶구나.
이성을 만날 때, 아니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메타인지(Meta-cognition)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능력이지. 나의 장점은 무엇인지, 단점은 또 무엇인지,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처음 보는 이의 눈에 어떤 이미지로 비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야. 이른바 ‘내 주제’를 파악하고 나면 불필요한 상황에 감정을 낭비하거나 헛된 기대를 하느라 에너지를 쓰는 일을 막을 수 있어. 내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 때, 고백의 성공 확률뿐만 아니라 관계의 건강함도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법이란다.
최근 아빠는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단다. 이건 사실 너에게서 정신적으로 독립하기 위함이기도 해. 네가 자라는 동안 아빠는 너무 너에게만 집중한 탓에 정작 ‘나’라는 사람의 형체를 잠시 잊어버린 것 같았거든. 다시 예전의 활기찼던 아빠로 돌아가려 노력하며 깨달은 사실은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점이야.
우리는 흔히들 자기를 잘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단다. 하지만 정작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라고 물으면, 대부분 남들과 비슷한 답을 내놓곤 해. 취미는 독서나 산책, 특기는 운동이나 외국어 같은 식으로 말이야. 그건 진짜 너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규정해놓은 카테고리 안에 너를 밀어 넣는 것에 불과해. 즉 알고는 있어도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이지.
그래서 나를 진짜 이해하려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단다. "나는 사색하는 시간을 좋아할까, 아니면 사람들과 어울려 에너지를 얻는 걸 좋아할까?" 혹은 "나는 무언가를 수집하는 행위에서 기쁨을 느낄까, 아니면 그것을 분해하고 원리를 파악하는 데서 희열을 느낄까?" 이런 질문들에 진실되게 답할 수 있어야 해. 내 MBTI는 뭐니까, 내 성향은 어떤 거니까 난 이것을 좋아할꺼야라는 생각은 절대 하면 안 된단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역설적으로 나 자신을 먼저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타인 앞에서 나를 속이지 않고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야. 나를 이해하는 사람만이 나에게 꼭 맞는 인연을 알아볼 수 있는 법이란다.
아빠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 아빠의 취미 중에 하나는 서점에서 시간을 때우는 일이었어. 한 달에 한 번쯤은 광화문 교보문고나 강남 교보문고에 가서 하루종일 있기도 했지. 지금도 가끔 서점에서 너와 함께 시간을 때우곤 하잖니. 하지만 반전은 아빠가 책 읽는 행위 자체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는 거야. 아빠는 그저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공기를 사랑했고 신간들의 제목과 목차를 훑으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잡지 같은 탐색’을 좋아했지. 깊이 있는 독서가보다는 새로운 정보에 민감한 ‘트렌드 탐험가’였던 셈이야.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아빠는 깊은 사색을 즐기는 사람보다는 호기심 많고 새로운 화젯거리를 즐기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훨씬 도드라진다는 것을 알았고 어떤 모임이나 무리에 가면 비슷한 사람을 가장 먼저 찾고 친해질 수 있었단다. 아빠는 얕지만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대화 상대가 되어줄 수 있었거든. 너도 누구나 말하는 뻔한 취미 말고 너만이 가진 아주 세밀하고 독특한 ‘자기 이해’를 가졌으면 좋겠구나.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너만의 ‘엣지’란다. 엣지는 사전적으로는 모서리를 뜻하지만 관계에서는 ‘개성 있고 세련된 감각’ 혹은 ‘남보다 앞서가는 나만의 우위’를 의미해. 무색무취의 평범한 사람 무리 속에서 상대의 시선을 잡아끄는 날카로운 지점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
이 엣지는 거창한 게 아니란다. 아빠는 인테리어나 디자인 혹은 작은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았어. 만약 아빠가 만난 여성이 아주 독특한 소품을 가지고 있다면, 아빠는 그것을 알아보고 짧은 코멘트를 던질 수 있었지. "아, 그 브랜드 제품이네요? 디자인이 참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짧은 한마디로 상대는 아빠와 자신 사이에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느끼게 된단다. 옛날에 실제로 시계나 반지 디자인을 맞췄던 적도 있었고 한 번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거기에 나왔던 비슷한 느낌의 의상을 입고온 사람을 알아봐 친해졌던 적도 있었지.
꼭 물건이 아니어도 좋아. 특정 지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남들은 모르는 흥미로운 ‘썰’을 가지고 있는 것도 훌륭한 엣지가 돼. 아빠는 종로나 신촌, 홍대 골목골목의 옛 모습과 그곳에 얽힌 뒷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었어. 처음 만난 사람과 길을 걷다가 "여기가 예전에는 어떤 곳이었는지 알아?"라며 가벼운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색했던 공기는 금세 사라지고 풍성한 대화가 이어지곤 했지. 핵심은 상대의 관심을 끌고 어색함을 깰 수 있는 ‘나만의 한 끗’을 준비하는 것이란다. 이 분야의 끝판왕은 바로 간단한 손 마술이지만 그것까지는 뭐.. 개인의 선택인 것 같구나. 그건 아빠도 못해.
이런 엣지를 갖기 위해서는 사람이라는 존재와 그들의 심리에 대해 깊이 공부하는 태도가 필요해.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들 그 기저에 깔린 심리적 동기를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얻는 큰 자산이 된단다. 요즘은 ‘플러팅’이라 부르는 그 미묘한 신호들도 단순히 장난으로 치부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의도를 눈여겨보는 습관을 들여보렴.
간단한 행동심리학 팁 하나를 주자면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상대에게 본능적인 호감을 느낀단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다면 그 사람의 손동작이나 컵을 잡는 타이밍을 미세하게 따라 해 보렴. 이를 ‘미러링 효과’라고 하는데 이런 작은 감각들이 모여 너만의 매력적인 엣지를 만드는 법이란다. 다리를 꼬면? 너도 꼬고 물을 마시면? 너도 물을 마시는 등 이런 것들도 조금 소소하지만 의외로 강한 효과를 일으킬 때도 있단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대화’란다. 많은 사람이 이성 앞에서 대화할 때 겁을 먹고 경직되곤 해. 마치 면접장에 온 것처럼 질문을 기다리거나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를 쓰지. 하지만 네가 긴장하면 상대방은 그 긴장을 두 배로 느낀단다. 상대를 나를 평가하는 면접관으로 만들지 말고 그저 함께 시간을 즐기는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는 여유가 필요해.
아빠가 몇 명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건데 보통 사람들이 떠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나를 잘 어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한 마디라도 잘 하고 싶고 하나의 행동에도 눈에 담기고 싶은거지. 하지만 오히려 말을 많이 하고 행동을 많이 하는 건 자신의 격을 낮출 뿐이란다. 긴장될 때 말을 잘 해야 하는 건 면접 장소이지 사람과 만날 때는 아니란다. 아빠가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대화의 고수는 법륜 스님이나 플라톤 같은 분들이란다. 이분들의 특징은 말을 길게 하는 게 아니라, 짧고 적절한 ‘문답’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는 거야.
상대방의 말끝을 적절히 따라 하며 공감을 표하고 궁금한 점을 질문으로 던져보렴. 상대방이 신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게 만드는 대화가 가장 성공적인 대화란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는 상대에게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 물론 가끔 네 이야기에 깊이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때는 네 마음의 빗장을 풀고 즐겁게 떠들어도 좋겠지.
아빠는 외모가 수려한 편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아주 예쁜 여성 앞에서는 아예 연애 욕심을 내려놓고 대화하곤 했어. "어차피 나 같은 사람 안 좋아하겠지"라는 자포자기가 아니라, 그냥 한 명의 재미있는 사람으로 대하자는 편안한 마음이었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부담 없는 태도에서 매력을 느껴 역으로 고백을 받아본 적도 있었단다. 결국 사람은 성별을 떠나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고 배려해주는 ‘센스 있는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 거야.
아들아, 아빠는 네가 연애를 떠나서 인간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센스’를 키우길 바란다. 센스란 대단한 재능이 아니야. 타인의 필요를 미리 읽어내는 마음이고 우리는 그것을 배려라고도 표현한단다. 누군가 못을 달라고 할 때 망치를 함께 챙겨다 주는 마음, 밝은 옷을 입은 사람과 식사할 때 말하지 않아도 앞치마를 먼저 챙겨주는 마음, 끈 풀기 힘든 신발을 신은 상대를 배려해 좌식 식당을 피하는 마음 같은 것들 말이야. 그래서 일본인들의 센스는 굉장히 뛰어난 편이라고 하지.
처음 만났을 때 상대의 신발을 먼저 확인하고 그날의 동선을 생각하는 사소한 배려는 네 사회생활 전체에 반드시 큰 도움을 줄 거야. 남자도 구두를 신고 오래 걸으면 피곤한 법인데, 하물며 굽 높은 신발을 신은 여성의 고단함은 오죽하겠니? 이런 사소한 지점에서 네 인격과 수준이 드러나는 법이란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란다. 연애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튼 높은 기준으로 잡는다 할지라도 아빠는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만남을 가졌어. 젊은 날엔 그것이 훈장 같기도 했고, 때로는 부끄러운 얼룩이 되기도 했지. 그것이 어떻든 간에 나이가 들어 깨달은 것은 연애 횟수나 경험의 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야. 어릴 때야 친구들끼리 술안주 삼아 자랑하듯 늘어놓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그저 어린 시절의 치기가 심했다는 증거일 뿐이란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많은 이성을 만나봐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고 말해. 하지만 아빠는 다르게 생각한다. 연애를 많이 해봤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 생활을 잘하거나 사람을 잘 보는 건 아니야. 아빠 친구들 중에는 평생 한두 명만 사귀고도 이혼 없이 행복하게 잘 사는 친구들이 정말 많고, 또 아빠보다 많은 여성을 만나며 정말 '카사노바' 같이 살아온 사람은 결국 제 버릇 남 못주고 바람을 피는 것도 보았어. 아빠 역시 수많은 인연을 거쳐왔지만, 여전히 ‘여성’이라는 존재를 다 안다고 말하지 못해. 사람은 누구나 사바사, 케바케 니까.
결국 우리 인생에서 진짜 자산이 되는 경험은 횟수가 아니라, 단 한 명을 만나더라도 얼마나 내 진심을 다해봤는가 하는 점이란다. 아빠는 수많은 가벼운 만남 끝에 허무함을 느꼈고 한동안 인연의 문을 닫고 살았어. 그러다 우연히 네 엄마를 만났지.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아를 가진 엄마의 모습에 아빠는 망설임 없이 평생을 약속했단다.
아빠는 엄마와 결혼한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곳에 눈길을 준 적이 없어. 그건 아빠가 연애 경험이 많아서가 아니야.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너도 연애의 횟수나 경험이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단 한 명을 만나더라도 네 온 마음을 다하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해보렴. 다른 친구들이 치기어린 마음에 자신의 연애 경험을 자랑스럽게 떠벌린다면 마치 어린 시절 이상한 포즈의 사진을 찍고 어른이 되어 이불킥하듯 결국 그 친구도 이불킥을 할 때가 올꺼라고 생각하렴. 너도 마찬가지고.
그것이 아빠가 수많은 고개를 넘고 수많은 인연의 숲을 지나온 끝에 얻은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결론이란다. 네가 누군가의 가슴에 따뜻한 온기로 기억되는 남자 그리고 스스로의 진심 앞에 당당한 남자로 성장하길 이 아빠는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