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할 수 있다면 뭐든 의심해라

절대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신비아파트와 망우리 공동묘지의 교훈


요즘 네가 푹 빠져 있는 만화 《신비아파트》를 곁에서 같이 볼 때가 있다. 아빠가 이 글을 다 쓰고 네가 성장해 이 글을 읽을 때쯤에도 그 만화가 방영되고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하지만 지금의 너는 여전히 어두운 구석에서 귀신이 튀어나올까 봐 겁을 내고 밤이면 아빠 팔을 꼭 잡고 잠들곤 하지. 그런 너의 눈빛을 생각 할 때면 아빠는 혼자 있다가도 웃음이 난단다.


사실 아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매일 망우리 공동묘지 고개를 넘나들며 자랐잖니.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저녁, 무덤 사이로 노을이 피어오르는 길을 홀로 걸어 내려올 때도 아빠는 귀신을 무서워해 본 적이 거의 없단다. 아마 너무 익숙해서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아빠가 고백하건대 세상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실체 없는 귀신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란다.


세상의 모든 찬란한 문명과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어낸 영장류가 사람이듯이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와 수많은 비극적인 사건을 만드는 주체 또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귀신은 정해진 괴담 속에서만 움직이지만 사람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단다. 그중에서도 아빠가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의 무지함이란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아빠 시대에 가장 유명한 연예인을 꼽으라면 유재석이나 이효리 같은 분들을 떠올리겠지만 아빠는 단언코 코미디언 이경규라는 분을 그 반열에 올리고 싶다. 그분이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던진 한마디는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지.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모두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웃어넘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의문의 1승을 계속 올리는 저 문장은 일종의 명언이자 속담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확고한 신념을 가진다는 것은 인생의 방향타를 쥐는 멋진 일이지. 하지만 그 신념이 올바른 지식과 비판적 사고, 그리고 타인에 대한 감수성 없이 형성된다면 그것은 방향을 잃고 폭주하는 전차와 같단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린 사람, 오직 자신의 목소리만 정답이라고 믿는 사람이 권력을 쥐거나 마이크를 잡았을 때 사회는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왔단다.


과거 매스미디어라 불리던 공중파 방송국들은 그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기에 최소한의 자정과 감사를 위한 장치들을 만들어두었어. 물론 그럼에도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사실 확인’이라는 절차는 거쳤지. 하지만 네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 누구나 방송국이 될 수 있는 1인 미디어의 시대는 어떤 장치도 없이 사람들을 극과 극으로 밀어붙이고 있단다.


자극적인 말로 대중을 선동하는 이른바 ‘빅마우스’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을 진리인 양 설파하는 현대판 교주들이 나타났지. 사람들을 속이는 사법적 사기부터 영혼을 갉아먹는 사이비 종교까지, 그 수법은 점차 지능적이고 치밀하게 변해가고 있어. 그래서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갈 너에게 아빠가 꼭 주고 말하고 싶은 덕목은 바로 ‘의심’이란다. 무작정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야. 저 말이 정말 맞는 것인지, 저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지, 그리고 저 말을 하는 사람이 얻는 이득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단다.


보이스피싱의 식은땀과 디지털 세상의 ‘공짜 점심’


의심하지 않았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할 가장 즉각적인 피해는 사기와 같은 범죄란다. 아빠도 한 번은 정말 크게 당할 뻔한 적이 있었어. 지금 생각해도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구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 상대는 아주 위엄 있는 목소리로 자신을 서울중앙지검의 검사라고 소개했지. 아빠의 통장이 대규모 금융 범죄에 연루되었고 지금 즉시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협박이었어. 지금이야 수법이 워낙 알려졌으니 '네~' 하고 끊지만 당시만해도 이렇게까지 사회문제가 아니었던 시대였고 '당하는 사람이 바보' 라는 인식을 가졌을 때였단다.


그 치밀한 시나리오와 고압적인 분위기에 아빠는 순간적으로 판단력을 잃고 말았단다. 진짜 검찰청인 줄 알고 가슴이 두근거려 회의 준비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이었지. 다행히 천만다행으로, 아주 급한 회의 시작 전이라 전화를 강제로 끊어야만 했지. 회의가 끝나자마자 정신을 차리고 검찰청에 전화를 해보고 나서야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걸 알았단다. 만약 아빠가 그때 조금만 더 한가했더라면, 의심보다 공포가 앞섰더라면 정말 큰 피해를 입었을 거야.


디지털 세상에서의 위험은 전화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니란다. 아빠 어릴 적엔 ‘와래즈(Warez)’라고 부르는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들이 성행했어. 유료 프로그램을 무료로 쓰고 싶은 욕심에 그런 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프로그램과 함께 지독한 바이러스나 ‘트로이 목마’ 같은 악성 코드가 네 컴퓨터에 몰래 자리를 잡게 된단다. 요즘은 네 데이터를 인질로 삼는 랜섬웨어까지 기승을 부리지. 인터넷 서핑 중에 뜨는 팝업창, 쿠폰을 준다는 감언이설,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혜택을 준다는 수많은 링크들까지... 명심하렴. 이 세상에 진짜 ‘공짜 점심’은 없단다. 무언가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면 사실은 네 개인정보나 네 소중한 시간이 그 대가로 지불되고 있는 거야. 공짜를 바라는 마음은 사기꾼이 네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가장 넓은 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종교의 권위와 자율적 사유: 맹목적인 믿음의 위험성


사람이 말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란다. "이거 맛있지?", "내 생각이 맞지?"라는 일상적인 대화조차 그 밑바닥에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욕구가 깔려 있지.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이런 설득의 과정이 비판과 검토를 거치며 작동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이 기능이 마비되는 곳이 있단다. 바로 ‘종교’의 영역이야.


아빠는 종교가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평온을 얻는 데 아주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가 경계하는 건 목사나 신부, 스님과 같은 종교적 권위자들의 말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란다. 사회에서는 그토록 날카롭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종교 시설에만 들어가면 왜 그렇게 무력하게 그들의 말에 순종하는지 아빠는 늘 의문이었어.


참된 종교인의 자세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이 정말 내 삶의 방향과 일치하는지, 경전에 담긴 본래의 뜻이 무엇인지 스스로 끊임없이 수행하고 성찰하는 과정에 있다고 믿는다. 목사의 해석이 네가 읽은 성경의 맥락과 같은가? 같다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틀리면 왜 틀린가? 끊임없이 곱씹고 질문해야 한단다. 그래야만 너를 유혹하는 이단 혹은 이단이 아니더라도 그릇된 가르침을 주는 이들로부터 네 영혼의 자율성을 지킬 수 있어.


아빠는 가끔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들은 그 안에서 나름의 소속감과 위안을 얻겠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와 재산, 심지어 삶 전체를 타인에게 헌납하고 말지. 종교를 믿되 맹목적으로 따라가지는 말렴. 차라리 기독교인 앞에서는 주기도문을, 가톨릭 신자 앞에서는 성호를 그리고 불교 신자 앞에서는 108배를 기꺼이 함께해 줄 수 있는 유연한 마음을 갖길 바란다. 특정한 교리에 매몰되어 다른 이를 배척하는 것은 신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라 인간의 오만을 키우는 일일 뿐이란다.


AI 시대의 필살기: '팩트'를 넘어 '맥락'을 파악해라


아마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지금보다 AI가 훨씬 더 정교하게 네 삶을 보조하고 있겠지. 아빠도 지금 AI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지만 늘 경계하는 것이 하나 있단다. AI가 내 ‘생각하는 근육’마저 퇴화시키지 않도록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하려 애쓰는 거야.


지금 대한민국은 2024년 말부터 2026년 현재까지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를 지나고 있단다. 이 시대가 나중에 역사의 평가를 어떻게 받을지는 시간이 더 흘러봐야 알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유튜브에서는 양쪽 진영의 빅마우스들이 자극적인 라이브 방송을 쏟아내고 있어. 아빠는 그 광경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단다. 그들은 청취자를 설득하고 자기 곁에 묶어두기 위해 오직 자극적인 이야기만 골라 하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지.


더 놀라운 건, 그런 일방적인 주장들을 아무런 검증 없이 믿고 추종하는 대중의 모습이야. 그들은 교묘하게 ‘맥락’을 뒤틀어 전달한단다. 명백한 거짓말을 하는 가짜 뉴스도 문제지만 더 무서운 건 사실 관계는 맞는데 그 과정과 배경을 쏙 빼버리고 전달하는 방식이야. "무엇이 맞다 틀리다"라는 흑백 논리만 강조하며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맥락’을 가려버리지.


예를 들어 내가 ‘흡연권’을 주장하는 말을 한다고 치자, 이때 “흡연 연기로 인해 상호간 폭행 발생이 많아진다” 라는 예시를 들면 묘하게 맞는 것 같지만 이건 틀린 주장이야. 왜냐면 저건 ‘흡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매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지. 한 번 ‘흡연’의 자리에 ‘층간소음’을 넣어봤을 때 말의 맥락이 어색해지지 않는다면 이건 서로 맥락이 안 맞거나 의도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해.


애초에 ‘매너’나 ‘에티켓’ 문제로 분류되어야 할 사건을 가지고 ‘흡연권’을 논하려니까 뭔가 이야기가 계속 될 수록 그저 한 사건만 반복하며 말하게 되고 반복된 학습에 묘하게 맞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의심하는 버릇이 없다면 거기에 속아 나도 모르게 흡연을 비난하는 것을 볼 수 있단다. 그렇다면 ‘흡연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인용해야 할까. 이를 테면 “흡연자라는 것 때문에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았다” 이런 내용이라면 충분히 ‘흡연권’이라는 범주에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지. 이렇게 조금 머리 아프고 귀찮더라도 맥락을 교묘하게 비트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금 누군가와 토론을 하거나 의심할 때 맥락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단다.


아들아, 단순히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는 것은 이제 AI가 더 잘하는 세상이 될 거야. 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파악하고 그 이면의 복잡한 맥락을 읽어내는 것은 그래도 오랫동안 인간의 몫으로 남을 거란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면, 단편적인 팩트 체크를 넘어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힘을 길러야 해. 그것이 AI 시대에 네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거다.


행동하는 사람들을 향한 예우: 의경 시절의 깨달음


우리 사회에는 매주 주말이면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벌어진단다. 광화문이나 여의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누군가는 그들을 향해 "할 일 없는 극성분자들"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하지. "그 시간에 자기 일이나 열심히 하라"며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너만큼은 절대로 그런 시선으로 그들을 보지 않길 바란다.


사실 아빠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시위 현장에 직접 참여해 본 적이 없단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아빠가 의경으로 복무하며 시위를 막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야. 여담이지만 처음엔 그저 쉽다는 말에 지원했는데, 키가 크다는 이유로 기동대에 차출되어 아빠 인생에서 가장 고된 시간을 보냈지. 어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방패를 들고 대치하며 겪었던 그 피로감이 너무나 컸기에 제대 후에는 시위 현장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던 게 사실이야.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때의 아빠가 얼마나 짧은 생각을 했었는지 알게 되었어. 춥거나 더운 날 생업을 제쳐두고 길바닥에서 구호를 외치는 그들 덕분에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법들이 바뀌고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며, 세상이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걸 깨달았지.


네가 비록 그들과 사상이 달라 연대하지 못할지언정 우리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이들을 비하하거나 폄훼해서는 안 된단다. 그들의 희생이 네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잊지 말거라. 누군가의 절박한 목소리를 예우할 줄 아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첫 번째 조건이란다.


양비론을 경계하고 품이 넓은 사람이 되렴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건, 네 생각과 다른 입장에 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란다. 대화와 토론을 할 때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어설픈 양비론’이야. "양쪽 다 잘못했네"라며 비판만 늘어놓는 태도는 세련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태도일 뿐이란다. 그런 태도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방해가 되고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게 만들지.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순간 모든 협상과 대화는 깨진단다. 아빠가 연애를 이야기할 때 말했듯이 사람의 진심은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 다 드러나게 되어 있어. 네가 속으로 상대를 무시하고 있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 마음이 들통나고 상대의 마음을 영영 돌려세우게 될 거야.


항상 너만의 신념을 다듬고 방향성을 검증하며 확고한 의견을 세워가렴. 다만 그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을 들어줄 줄 아는 넓은 품도 함께 가졌으면 좋겠다. 한쪽에 매몰되어 다른 쪽을 배척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짓이란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세상을 넓게 보며, 나와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단단하고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아빠는 간절히 바란다. 그게 아빠가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장 큰 자산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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