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순간, 누군가 같은 아픔을 갖고 있다면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입소하던 날, 장모님은 뇌종양 판정을 받으셨다. 우리 가족에게는 새 생명을 맞이한 기쁨과 동시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내는 무너졌다. 그녀의 볼에선 눈물이 흘렀다. 가장 필요한 존재가 가장 아플 때, 그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현실이었다. 내가 다 키워주겠다며, 아기만 낳으라던 우리 장모님은 그날, 아기 옆에도, 아내 옆에도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와닿는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손잡아 주는 거 말곤, 잔심부름하는 거 말곤,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말보다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신하영 작가의 『버텨온 시간은 전부 내 힘이었다』에 있는 이 문장이 떠올랐다.
“동질감이 가장 큰 위로라는 걸 잘 알기에,
이렇게 제 이야기를 하는 걸지도 모르죠.”
맞다. 같거나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의 말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깊게 스며든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요즘 시간을 쪼개어 장모님과 같은 질병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는다. 뇌종양 수술 후 회복 중인 보호자의 기록, 치료 후기를 꼼꼼히 살핀다. 어느새 아내는 그 어려운 의학 용어를 술술 읊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같은 병으로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의 가족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 짧은 만남이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서, 마음마저 나누는 시간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아기 때문에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가 그 만남 이후 조금 더 담담해졌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그 진심은 동질감에서 비롯되었고, 그 동질감은 말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내뿐만 아니라 장인어른의 마음에도 동질감이란 위로가 찾아왔다.
책에서 작가는 왜 자신의 개인적인 아픔을 이야기하는 걸까. 그 글은 위로를 주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받기 위한 것일까. 아마도 둘 다가 아닐까.
동질감은 마음이다. 위로는 말보다 마음으로 온다. 동질감이 담긴 글은 건너편 누군가에게도 다정한 손을 내밀 수 있다. 그 손이 누군가를 버티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 모두 언젠가는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