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지켜요, 6글자가 주는 당당함
손해 보기 싫어서 규칙을 어겨본 적 있나?
사실 손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모두가 규칙을 어기는 상황에서, 나 혼자 소신을 지킨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소신이 오히려 손해로 돌아온다면, 나는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며칠 전, 스레드에서 한 영상을 봤다. 올림픽 경기 중 ‘경보’에 관한 영상이었다.
경보 규정 두 가지. 두 발 중 하나는 반드시 땅에 닿아 있어야 한다. 앞으로 뻗은 다리는 지면과 수직이 될 때까지 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선수가 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단다. 내가 본 영상에서는 올림픽 경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누가 봐도 거의 뛰고 있었다.
“규정을 지키는 사람은 세계에 단 한 명도 없다.”
나무위키에 나온 경보에 대한 설명이다. 허탈했다. 모두가 어기니 다같이 어긴다는 말, 그게 규범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럴 때, 유일하게 규칙을 지키는 선수를 본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까.
‘남들 다 어기는데 혼자 뭐하나?’하며 비아냥거릴까. 아니면 ‘당당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까.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 차량과 사람이 거의 없는 건널목이 있다. 신호는 빨간불이지만, 대부분의 차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친다. 하지만 나는 멈춘다. 차도, 사람도, 단속 카메라도 없는 그 길에서 말이다. ‘착한 척은, 그러면 누가 알아주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내가 알잖아.”
옛날 프로그램 양심 냉장고에서, 아무도 없는 교차로 앞에 혼자 멈춰 선 운전자가 있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단순히 말했다.
“저는 늘 지켜요.”
규칙을 지키는 이유에 특별한 명분은 없다. 그저 나의 기준이 그렇기 때문이고, 그 기준을 지키는 나 자신을 나는 믿기 때문이다.
소신 없이 얻은 이득은 금세 사라진다.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선택은 결국 후회를 남긴다. 모두가 어기기 때문에 나도 어긴다는 논리는, 내 삶을 내가 아닌 남에게 넘기는 일이다. 왜 빨간불에 멈추지 않는 그들에게 내 속도를 맞춰야 하나. 그럴 이유가 없다.
규칙을 지켜서 바보가 되는 세상이라면, 나는 그 바보 편에 서겠다. 손해가 있더라도, 그게 나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삶. 나는 그 길을 오늘도 걸어가고 싶다. 뒤돌아봐도 당당하고 후회 없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