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새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아침마다 마스크 수를 체크하는 것. 남아 있는 마스크의 수가 앞으로의 출근일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생활의 가장 큰 변화가 마스크인 셈이다. 누군가는 그동안 혹시 몰라서 조금씩 사다 놨다는데, 나는 그런 괜한 불안심리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귀차니즘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안일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가 결국 나만 불안해지는 상황이 됐다. 미리 사다 놓지 않은 걸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의 준비는 필요했다는 자책이 들긴 한다. 그동안 별 것 아닌 마스크가 이제는 생활 가능 유무의 필수조건이 됐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출근은 물론, 외출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마스크는 특정인들의 상징이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 또는 정반대의 범죄자. 그러니까 특별한 사회적인 이유가 없다면 딱히 끼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굳이 좀 더 생각하자면 마스크는 패션의 한 부분 정도로는 봐주었다고 할까. 캐주얼한 차림에 야구모자와 마스크를 쓴 연예인, 생각만 해도 멋져 보였고, 그런 분위기를 타고 2014년부터 중국과 홍콩에서는 마스크 패션쇼가 열리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우리나라에서도 '패션 마스크'를 검색하면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마스크들을 볼 수 있을 만큼 10대들 사이에서는 이미 필수 패션 아이템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필수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마스크는 공공예절이 됐다.
질병 전염의 최전선에서 예방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도 아닌 마스크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인지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가 됐다는데, 그 기저에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일본인 특유의 문화도 깔려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마스크는 내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것은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착용해야 하는 에티켓 용품이라는 뜻이며, 동시에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제는 특별한 신분상 위치상의 사회적인 이유가 아니라, 공공질서와 건강의 측면에서 마스크는 필수품이 됐으며,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보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더욱 눈길을 끄는 세상이 됐다.
코로나 19의 최대 감염지이자 위급상황인 대구에 최대한으로 마스크를 공급한다고 하는데, 수요와 공급의 현격한 격차로 인해 그 마스크의 실체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마스크를 어떻게 구하나, 어디서 구하나 해결되지 않는 고민만 늘어가는 요즘이다. 그런 찰나, 오늘 아침이었다.
마스크라는 말에 당장 귀가 번쩍 떠졌다. 그러다가, '고작 2장?'이라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또 '그래도 2장이 어디야. 이틀을 벌었는데!'라는 생각으로 홱 바뀌었다. 2장이면 이틀, 48시간이다. 점퍼 하나 걸쳐 입고 슬리퍼를 끌고 마스크를 끼고,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이어갈 수 있는 이틀 치의 일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