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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현 Jul 21. 2021

인연이 기적이 될 수 있다면

김홍빈 대장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며...

방송국에 있으면 참 다양하고도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현생에서 스치는 인연은 전생에서 억만 겁의 만남이 쌓여야 가능하다는데, 전생에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던 건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나 싶을 만큼 일반시민부터 고위공직자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방송을 매개로 인연이 스쳐간다.


2014년, 내가 하던 프로그램에서는 전문 산악인들을 인터뷰하는 고정 코너를 진행했다. 일주일에 한 번,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을 전화연결로 인터뷰하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 코너를 기획하면서도 산악인에 대한 얼마간의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높고 가파른 험준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인 만큼 억세고 거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송 전 사전 인터뷰를 위해 전화할 때는 얼마간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데, 그것이 순전히 나만의 착각과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한 마디에 순식간에 오므렸던 발가락이 펴졌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도 순박했다.


그 간 사회생활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서는 알 수 없는 힘겨루기라든가 기선제압 식의 고압적인 태도가 느껴졌지만, 세상 가장 높은 산을 오른다는 산악인들에게서는 그 어떤 권위 의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평평해 순박할 따름이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주한 진솔함 뿐이었달까. 자연을 정복한 자가 아닌 자연의 품에 안겨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위엄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거대한 자연 속 앞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 자잘한 힘겨루기와 암투 따위 한낱 부질없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너그러움과 넉넉함.  


그런 가운데 만난 한 사람이 김홍빈 대장이다. 사전 인터뷰 전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본 김홍빈 대장은 턱을 다 덮는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 모양으로 그야말로 산사나이 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좀 더 긴장감을 가지고 통화를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긴장 역시 괜한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느껴지는 그의 모습은 사진에서 느껴지던 단단한 느낌과는 달리 아주 순박했는데, 쓰는 말씨 하나하나 조차도 어쩜 그렇게 순하고 부드러운지, 통화를 하면서도 내내 편안했다.


'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 산악인'이란 수식어를 달게 된 것도 등반 중 사고를 당해서였고, 열 손가락을 다 잃는 좌절의 경험을 안고서도 산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의 의지는 그가 얼마나 산을 사랑하는지를 말해주었다.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한 번의 통화와 한 번의 방송을 통해 나를 스쳐갔다. 그리고 7년, 그 인연이 뭐라고, 뉴스에서 김홍빈 대장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귀와 눈이 번쩍 뜨였다. 장애인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개를 완등 했다는 소식.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원정대 발대식 소식을 문자 메시지로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스친 인연이라지만, 그 한 번의 연결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피부로 전해지는 감응 자체가 달랐다. 괜히 기쁘고, 뭔지 모르게 뿌듯하며, 한 것 없이 보람찼다. 김홍빈 대장의 완등 소식에 뉴스를 보고 있던 나의 눈과 입은 반가움으로, 다른 이들은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분명히 평소와 다르게 활짝 벌어졌고, ‘그래, 그때 통화했었지, 우리 방송에 출연했었지, 너무 잘 됐다, 정말 대단하시다.’라고 혼자 속으로 되뇌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들려온 그의 낭보는 불과 하루 만에 믿을 수 없는 비보로 바뀌었다. 하산 도중 실종.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김대장의 구조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애가 탈 것이다. 나와 목소리를 주고받은 인연, 작은 끈 하나가 내 마음을 더 애타게 하는 중이다.


이래서 인연이 무서운 건가. 만약, 인연이 기적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 있다면 이번에 모두 쓰고 싶다. 그의 무사 귀환을 온 마음을 다해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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