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물론 고독을 느끼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순간이다.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는데도 자각하기 전까지는 아프지 않듯이, 잠깐 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그런 잠깐의 순간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또 고독이 몰려오는데 어떻게 나는 외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또 외로움이 찾아오는데.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고독이 없는 긴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외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사람마다 달라서 모르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느껴본 적이 없어서 모르기도 하다. 긴 시간을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한 번도 이뤄본 적 없는 일이라서, 앞으로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가 늘 궁금했다. 다들 이 정도의 괴로움은 그냥 참고 사는데 나만 예민한 사람인 건가? 아니면 나만 문제투성이라서 이렇게 항상 외롭고 아픈 걸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썩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는 비극의 예시들에 비하면 말도 안되게 과분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게 맞지만 적어도, 평상시에 접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좋게만 보인다. 모두 열심히 살아 성취를 하고, 주변엔 마음 나눌 친구가 많고, 멋진 사람과 사랑도 하고.
주변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마음 편히 축하만 해주고 싶은데, 마음이 별로 넓지가 않다. 그 넓지 않은 마음은 자신을 숨기는 사람 역시 곱게 보지 않는다. 세상 풍파와 비극을 모두 자기 것인 양 부정적인 이야기만 쏟아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것도 저것도 다 싫은 나는 당최 무얼까?
싫다고 했던 그 모든 모습들은 전부 나였다. 자랑은 어떻게든 노출하려 했고, 그러면서 내가 힘들고 아프다는 사실도 제발 알아주길 바랐다. 그러면서도 있는 그대로는 절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자랑하고 싶지만 으스대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고 슬픔을 나누고는 싶으나 징징대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이 다 내 것이길 바랐나 보다. 모든 것을 가지려 하면 어떤 것도 얻지 못하는데 말이다.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외로움만은 결단코 내 것이라는 사실이다. 평생 나를 떠나지 않을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게 내 고독이다. 그럼 나는 이것을 계속 고통스러워해야만 할까? 남은 인생 수십 년을? 그렇게는 못하겠다.
도망가고 피하려 할수록 더 나를 괴롭혔다. 오히려 들여다보니 별것 아니었다.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친 게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아닌 모든 것들은 다 아무렇지도 않게 있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떠나가거나 혹은 당연하다는 듯 그대로 있었다. 내 노력의 영향은 그렇게나 작았구나. 어쩌면 나는 나를 부정하는 일을 계속해왔을지도 모른다. 나만으로 존재할 수 없어서 계속 다른 이를 찾았던 거지. 결국은 다 온전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도.
그래, 나는 혼자다. 완벽하게 홀로 서 있다. 사람들은 나를 지나쳐가는 존재일 뿐이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한 번 더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일밖에 없다.
이제 나의 고독이 나를 떠나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냥 나의 곁에서 조금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인가 만들어낼 수 있도록. 외롭기 때문에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외롭고, 또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