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는 타이틀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독서를 즐긴 적이 없다. 웹툰을 제외한다면. 서점은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도 책보단 문구류를 구경하는 게 늘 더 즐거웠다.
읽는 것보단 쓰는 게 좋았고, 듣는 것보단 말하는 것이 좋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들어주는 것이 내 몇 안 되는 장점이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함이 즐거울 때는 늘 내가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잘 들어주고 있었다. 어쩌면 더 이상 독서를 즐기지 않았던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들어줄 친구를 별로 갖고 있지 않았기에, 나는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애써 믿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함이다. 적어도 종이와 펜, 페이지와 자판은 나를 판단하지는 않으니까. 죽을 듯 우울한 이야기, 죽일 듯 악랄한 말을 해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공개된 곳에 글을 쓸 때는 당연히 검열을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메모장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이 거친 언어가 수놓아져 있다. 결론적으로, 나의 글은 보는 이를 배려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의 말도 그랬을지 모른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듣는 것보단 말하는 것이 좋고 읽는 것보단 쓰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깨달은 최근에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말을 들어준 사람들에겐 나도 들어주고 싶고, 나와 아무런 개인적 관계가 없는 작가들의 글도 궁금해진다. 책과 담쌓고 지낸 지 거의 20년이 가까워오는 지금 나는 다시 책을 읽고 있다.
소설이나 시보다는 산문집 위주로 읽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이석원 씨의 [보통의 존재]는 그 길이가 400페이지에 육박함에도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어느 문장도 좋지 않은 것이 없었고, 마음에 깊게 박히는 구절을 사진으로 항상 볼 수 있게 남기려고 하다 모든 페이지를 다 찍게 될 것 같아 10장 남짓을 찍고 멈췄다.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음악 너머에 있는 음악가의 개인사까지는 단 한 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다.
아, 나는 그래도 듣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꼭 말하는 것과 듣는 것 둘 중 하나를 골라서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멀리하며 살았던 지난날들이 후회가 들 정도로 독서는 즐거웠다. 계속해서 책을 꾸준히 읽어왔더라면 내 삶도 조금은 덜 고통스러웠을까? 나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더 지혜롭고 통찰력 있는 사람이 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지나간 것을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고, 다가올 것을 두려워하며 움츠러드는 것은 나를 망칠 뿐이다. 그 두 가지는 과거를 곱씹으며 교훈을 새기는 것과 미래를 위해 건설적인 준비를 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슬픔에 빠져 있는 것은 아주 잠시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