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밥상 위의 시간들

따뜻함이 깃든 순간들

by 메종무던

우리 자매의 기억 속에는 늘 작은 식탁이 놓여 있었다.

“금방 하면 돼. 조금만 기다려. 맛있게 해 줄게.”

배가 고프다던 언니에게 가장 자주 건넨 말이었다. 초·중·고를 함께 다녔고, 대학에 들어서며 둘이서 자취를 시작했다. 어느덧 15년. 가족이자 친구이자 동료였던 우리는 밥상 앞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리를 싫어하는 언니와 달리 나는 어릴 적부터 부엌을 기웃거리며 엄마의 국과 반찬을 지켜보았다. 남은 재료를 조합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내는 일은 단순한 수고가 아니라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배달음식이 주는 편리함은 잠깐이었지만, 직접 끓인 국에서 피어나는 김과 따끈한 밥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오래갔다. 그 온기가 우리가 사는 작은 자취방을 집답게 만들어 주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대학 시절, 우리는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가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밤늦게 돌아와 쓰러지듯 잠드는 날이 많았지만, 아침만큼은 꼭 함께 앉았다. 예산에 맞는 식재료로도 마음만은 넉넉한 밥상을 차릴 수 있었다. -뜨끈한 옥수수 수프 한 그릇과 노릇하게 구운 핫케이크 두 장씩-. 숟가락을 뜨면 옥수수 알갱이가 톡톡 터지며 고소함을 더했고, 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던 핫케이크의 노릇한 결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풀렸다. 시럽 대신 설탕을 솔솔 뿌리면 반짝이며 달콤한 향이 퍼졌다. 그 한 끼는 잠시나마 청춘의 피곤과 불안을 덮어 주는 위로였다.


언니의 스물한 번째 생일은 지금도 선명하다. 아르바이트비에서 모은 돈으로 제육볶음과 치즈케이크를 준비하고 싶었지만, 집주인이 올린 월세에 그 돈은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주머니에 남은 건 만 원 남짓. 그래도 빈손일 수는 없었다. 늘 사던 핫케이크 가루를 사 와 다섯 장을 정성껏 구웠다. 폭신한 케이크 사이에 작은 제과점에서 산 생크림을 얹자 세상에 하나뿐인 다섯 단 케이크가 완성됐다.

“우와, 무려 다섯 단 케이크네. 팔아도 되겠어!”

촛불이 꺼진 뒤에도 한참을 이야기 나누던 그 밤, 값비싼 케이크는 아니었지만 그 소박한 케이크는 지금도 둘만의 가장 달콤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언니는 가끔 “배달해 먹자”라고 말한다. 피곤한 하루 끝에 버튼 하나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집밥을 고집한다. 둘 뿐인 식탁이라도 그 위의 음식만큼은 따뜻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배고픈데 못 기다리겠어!”

언니가 투정을 부리면, 예전처럼 웃으며 대답한다.

“금방 해. 오 분이면 돼.”


냉동실에서 꺼낸 채소와 고기를 볶다 짜장가루를 풀면 보글보글 끓으며 진한 향이 집 안을 가득 채운다. 그릇 위에 계란프라이 하나 얹으면 금세 근사한 한 끼가 된다. 국자로 푹 떠 올렸을 때 피어오르는 짜장의 향은 늘 우리를 웃게 만든다.


주말이면 냉장고 속 자투리 반찬과 찬밥을 모아 볶음밥을 만든다. 달궈진 팬에 참기름을 두르면 고소한 향이 퍼지고, 송송 썬 김치가 더해지면 칼칼한 맛이 완성된다. 주걱이 팬을 긁을 때마다 울리는 지글지글 소리는 흥겨운 음악 같았다. 눌어붙은 밥알을 긁어먹는 재미까지 더해지면, 그 순간만큼은 값비싼 브런치도 부럽지 않았다.


돌아보면 우리의 밥상은 늘 소박했다. 하지만 그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것이 아니었다. 핫케이크의 달콤함엔 서로를 향한 응원이 있었고, 짜장의 진한 향엔 하루를 버틸 힘이 담겨 있었다. 볶음밥의 고소함엔 작은 위로가 숨어 있었다.


몇 해 전, 언니가 병으로 오랫동안 식탁에 앉지 못했을 때가 있었다. 항암 치료로 입맛을 잃고 체력이 무너져 갈 때, 다시 수저를 드는 순간을 나는 기다렸다. 미음을 한 숟갈 받아 삼키던 언니가 힘겹게 “맛있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울컥하며 알았다. 우리가 함께 먹는 밥이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서로를 붙드는 끈이라는 것을.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건 마음이 담긴 우리의 밥상.

그리고 그 밥상은 앞으로도 우리를 이어 줄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기적 같은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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