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는 듯 계절은 스쳐가고
이맘때면 라디오에서 배리 매닐로우의 When October Goes가 잦다.
낙엽이 반쯤 떨어진 거리, 유리창 너머로 스치는 빛 속에서 그 노래가 들릴 때면 계절이 한층 더 깊어지는 듯하다. 가사를 전부 알지 못하던 시절에도, ‘October’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단어의 어감만으로도 쓸쓸함이 묻어났다. 계절이 스러지고 시간이 뒤로 미끄러지는 정서가 그 안에 있었다.
열두 번은 채울 수 있었던 물병에 두 모금만 남았을 때의 기분. 이 시기의 시간은 꼭 그와 같다. 얼마 남지 않은 해를 붙잡고 싶지만 손끝에서 자꾸 미끄러진다. 미련과 조급함이 섞인 그 공기가, 10월의 공기와 닮았다.
서점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종이 냄새 속에 내년의 그림자가 먼저 기다리고 있다. 스릴러 소설을 찾던 발걸음이 어느새 다이어리 코너 앞에 멈춘다. ‘벌써 내년이라니.’라는 말은 한숨처럼 흘러나오지만, 손끝은 이미 표지를 매만지고 있다. 가죽 표지의 묵직한 질감, 종이의 단정한 결, 넘길 때마다 들리는 사각거림. 만년형, 날짜형, 스프링 방식—새로운 시간을 기록하는 도구들 앞에서 누구나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다이어리의 빈 페이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의 색을 닮았다. 흰빛이지만 따뜻하고, 비어 있지만 가능성으로 차 있다. 시작보다 정리의 계절에 더 마음이 기우는 이유는, 채우기보다 덜어내는 일이 점점 더 고요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월은 늘 경계 위에 서 있다. 끝과 시작의 틈, 지나간 계절과 다가올 시간의 사이. 연초의 소란한 결심 대신, 이 시기에는 부드럽게 내려앉는 다짐이 어울린다. 성취를 향한 서두름이 아니라, 감정을 잃지 않겠다는 약속. 버킷리스트를 줄여가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쌓아가는 사람이 되겠다는 조용한 다짐.
가을의 빛은 점점 길게 눕는다. 오후의 온도는 낮아지고, 공기 중엔 말 못한 문장들이 떠돈다. 라디오에서 When October Goes가 다시 흐른다. 매닐로우의 낮은 목소리가 낙엽처럼 바닥에 내려앉는다. 노래는 계절의 끝을 애도하지 않는다. 다만 ‘지나감을’ 받아들이는 품위를 가르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감정은 남는다.
남은 감정이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계절을 예비한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겠지만, 노래는 남아 한동안 마음의 온도를 붙잡는다.
라디오의 선율이 잦아들면, 방 안엔 조용한 숨소리만 남는다.
그 고요 속에서 한 해가 천천히 식는다.
그리고 그 식어가는 온기 위로, 또 한 번의 10월이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