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자반 철학

사회생활은 콩자반처럼, 맛나백반집에 콩자반은 맛있었지

by 메종무던


딱딱함을 기본으로
적당히 무르고
짜지 않되 짭짤할 것.
나 혼자만으로는 어딘가 허전하니
진미들과 함께일 것.
검은색만 끝까지 지켜내되,
깨 한 줌 정도의 용기는 품고 있을 것.
위에서 꽂히는 젓가락의 공격은

꿋꿋하게 버텨내고
아래에서 들려오는 숟가락 공습쯤은

가볍게 밀어낼 것.


일을 쉬고 나서야 비로소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만 살았던 걸까.

화려하다고 믿었던 나의 자취 경력도, 어쩐지 오래전부터 금이 가 있었던 것 같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서부터 서서히, 조용히.

쌓여 있는 설거지, 텅 빈 냉장고. 그걸 마주하고서야 알았다.

내 몸도, 마음도, 생각보다 훨씬 더 망가져 있었다는 것을.


아무리 바빠도 냉장고엔 꼭 있어야만 했던 나만의 전투식량 3종 세트가 있다.

진미채볶음, 콩나물무침, 그리고 콩자반.

세 가지를 차곡차곡 채워두면, 왠지 삶이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본은 지키고 있다는 작은 위안.

토요일 오전근무를 마치고 나면 꼭 과일가게에 들러 토마토 한 봉지라도 사들고 돌아오던 나였는데, 언제부턴가 그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피곤해서였을까. 아니면 마음이 지쳐서였을까. 무너짐은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작고 정형화된 습관들이 하나둘 흐릿해질 때. 출근을 위한 세수조차, 먹은 그릇을 헹구는 일조차 이젠 아무 의미 없어 보일 때. 그 작은 균열이,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침식해 들어왔다.

‘왜 먹어야 하지?’ ‘왜 씻어야 하지?’ 사소한 질문은 곧 ‘왜 살아야 하지?’라는 문장에 닿는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무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몸은 고장나고 워커홀릭이었던 내가 휴직을 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시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면사무소. 간혹 자정이 되기 전 겨우 퇴근하던 날들이 있었다.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마저 지쳐 보이던 공간. 쌓인 민원 처리하며 하루 두 끼를 대충 때우던 날들.

등 떠밀리듯 시골길을 달릴 때면, 만고의 진리처럼 믿어왔던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는 말조차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 밤이, 너무 길었다.


일에서 잠시 떨어져 나온 지 어느덧 한 달.

어느 날 문득, 나는 냉장고를 채우고 다시 반찬을 만들기로 했다. 같이 밥 먹던 동료들이 그리운 것도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그리웠던 건 자주 가던 백반집의 콩자반이었다.

장날, 시장 한켠에서 서리태 한 봉지를 샀다. 물에 불려 두고, 한참 고민 끝에 “먹고 죽지는 않겠지” 싶은 유통기한 지난 간장을 꺼내 들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콩자반을 만들었다.


예전엔 그렇게 까맣고 윤기 나는 콩이 그냥 밥 반찬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콩 하나하나가 왜 그렇게 기특해 보이던지. 물에 불렸다 삶았다 조렸다—간단한과정 같지만 그걸 위해 마음을 먹고 움직이고 손을 씻고 냄비를 꺼내야 하는 일련의 흐름이, 이상하게 뭉클했다.

내 마음이 그만큼 약해진 걸까. 아니면, 그만큼 다시 살아보려는 걸까.

애석하게도 오늘 만든 콩자반은 간장을 너무 부은 탓에 맛이 사회생활처럼 짜디짰다. 내 의도보다 짜고, 내 마음보다 진했던 그 맛. 그래도 먹었다. 그냥, 먹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뭐, 다음엔 물을 조금 더 붓거나 그냥 시판용 간장 좀 사두면 되겠지.


어쩌면 인생도 그럴지 모른다. 너무 짜지 않게, 너무 타지 않게—물 조금, 쉼 조금.

이 까만 콩자반처럼 짜고, 모진 물에 적당히 스며들어 단단하게 세상을 버텨내는 법, 누군가 그런 레시피를 내게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지금 조금씩 만들어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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