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작은 기도
굵어진 빗줄기 사이로 베란다의 낡은 새시가 힘없이 흔들린다.
익숙한 풍경인데도, 비가 오는 날엔 이 집의 모든 것이 조금 더 낡아 보인다. 마치 집도 지친 기색으로 비에 젖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며칠째 집 안 어딘가에서 울어대던 매미 한 마리가 어느 날은 베란다에서, 또 다른 날은 현관 앞에서 소란을 피우더니 오늘은 비에 흠뻑 젖은 채 기절한 듯 축 늘어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땡그란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다.
일기예보라도 들은 걸까.
맴맴 울기로 한 숙제가 밀려 조금만 더 머물다 떠나려다 그만 비를 맞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쌓인 정이라곤 없지만, 젖은 몸을 조심스레 옮겨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나니 문득 이 집의 또 다른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이 집을 계약하고 ‘내 집 마련’이라며 설렘을 안고 이사 오던 날이 떠오른다. 35년 된 복도식 아파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곳은 겉으로 보기엔 너덜너덜하고 낡았지만, 그땐 그 모든 것이 새로웠고 감격스러웠다. 벗겨지고 갈라진 외벽 앞에 서면 절로 한숨이 새어나오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이 집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요즘엔 오래된 집을 사서 자신만의 색으로 리모델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신축은 워낙 비싸기도 하고, 오히려 직접 고치고 손 보는 재미에 구축의 매력에 빠지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낡았기에 가능한 구조, 손때 묻힐 수 있는 여지, 그리고 그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간의 감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계획적인 선택과는 조금 달랐다. 잘 살고 있던 월세집에서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집주인의 딸 덕분에 갑작스레 짐을 싸야 했고, 겨우 손에 쥔 돈과 대출을 끼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선택 끝에 이 집을 덜컥 사버렸다.
그렇게 원망 반, 애정 반의 보금자리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지나온 35년보다 앞으로의 30년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이 낡은 공간에 조금씩 책임과 무게를 덧입히며 살아간다.
한 해를 이 집에서 보내며 알게 되었다. 이곳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따뜻하다.
건물이 높지 않아 햇살이 잘 들고,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곳곳에 있어 산비둘기들이 자주 날아든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무슨 회의라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순식간에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그 날렵한 움직임은 어느 임원 회의보다 더 긴장감이 넘치고, 동시에 더 질서 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보이지 않는 그 날쌘돌이들이 괜스레 걱정된다. 젖은 나뭇가지 아래 어디쯤 날개를 접고 숨어 있을지, 혹은 그 작은 몸으로 빗속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는 동안, 모두가 굳건히 버텨주기를.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비에 온몸이 흠뻑 젖을 때가 있다.
며칠, 몇 달, 어쩌면 몇 년을 꿋꿋이 버티다가도 그 하루, 그 순간의 소나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날이 있다. 비 오는 날이면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작은 물방울에 날개가 젖은 존재는 없는지.
그저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누군가가 아무 말 없이 작은 관심과 따뜻한 위로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닌지.
이 비가 그치면, 다시 맴맴 울어줄 매미를 위해.
그리고 조금 더 용기를 낼 나 자신을 위해.
이 낡고도 소중한 보금자리를 위해, 나는 오늘도 조용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