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남는다. 잘 튀겨진 닭다리처럼.
어릴 적 일기장은 마치 작은 무대 같았다.
나는 그 위에서 늘 착하고 부지런한 아이 역할을 맡아 하루를 연기했다.
‘학교에서 달리기에서 4등을 했다. 다음에는 더 잘하고 싶다.’
늘 비슷한 문장, 비슷한 감정, 비슷한 결말.
사실은 넘어져 무릎이 까졌고, 슬프게도 다음에는 5명 중에 5등을 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따위 그런 건 일기에 쓰지 않았다.
‘이런 건 쓰면 안 되는 것 같아서’가 이유였던 것 같다.
'오늘' 하루를 객관식으로 평가하는 선생님의 빨간펜 첨삭이 있으니, 늘 ‘괜찮은 나’를 연기했다.
그 무렵 쓴 일기에는 작은 거짓말들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지만 진심은 아닌 이야기’였다.
기분이 별로였던 날도 그냥 ‘즐거웠다’고 적고 어딘가 울적한 하루도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기분도 좋았다’고 마무리했다.
가끔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냥 빈칸이 싫어서, 억지로 뭔가 썼던 날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일기 쓰기는 진심을 담기보다 ‘좋아 보이려는’ 습관이 되어버렸고, 그 무렵부터는 점점 재미도 사라졌다. 마음이 멀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그 기록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쓰는 일을 멈췄고, 내 마음은 천천히 침묵을 배웠다.
다시 일기를 쓰게 된 건 아주 성인이 되고, 꽤 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부터였다. 지치고, 실망하고, 때때로 울고 나서야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일기장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조금 다른 얼굴로.
이젠 누가 보지 않아도 괜찮고,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아서 좋은 글.
보여주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기 위한 문장.
화려한 표현도, 교훈도 필요 없다.
그냥 진짜 하루가 거기 있었으면 좋겠다.
기분이 좋았다면 솔직히 좋았다 쓰고, 불쾌했다면 왜 그랬는지 가만히 써 내려가는 것.
혼잣말처럼, 조용히.
요즘 나의 일기는, 그런 식이다.
“너무 졸렸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결국 아무것도 못 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햇빛이 예뻤다. 그거 하나로 좀 살 것 같았다.”
“오늘은 말이 안 나왔다. 그냥 듣기만 했다.”
이런 문장들은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꽤 중요하다.
수요일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무엇을 참았고, 무엇에 미소 지었는지 기억해 주는 유일한 문장이니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억은 내 마음보다 더 무심해지고, 그저 ‘지나간 하루’가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 일기를 쓴다.
놓치지 않기 위해.
내가 내 하루를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어쩌면 진짜 중요한 건 성실하게 쓰는 일기가 아니라 진실하게 쓰는 일기인지도 모른다.
그날이 아무리 평범하고 심지어 지루했더라도 그 순간의 감정을 한 줄이라도 남기면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그날은 충분히 의미 있다.
잘 튀겨진 닭다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