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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I Jan 15. 2020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다오!

타닥타닥

발품 파는 소리

사각사각

걸으면서 사과 씹는 소리

터덜터덜

힘겨워 걷는 운동화 소리

삐끗삐끗

무릎관절 아우성 소리

쓰윽쓰윽

캐 묶은 더존 연필 그리는 소리


어제 같았던 지난 한 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몸단장 옷 단장하고

지하철에 몸을 담근다.

졸음이 올 듯 말 듯 하지만 오늘 어디를 가야 하나

고심하며 사람들의 모습을 눈여겨본다.

저기 저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는 지금 시각

9시 23분에 어딜 가고 있을까?

"나는 지금 광명역에 간다."

이 쪽 끝에 앉은 낡은 가죽 가방을 든 중년의 아저씨는

지금 홍제역을 지나가는데 졸다가 눈을 뜨고 어리둥절

왜 할까?

"나는 지금 청계산역에 간다."

마지막 칸 노약자 석에 웅크린 어르신의 머리에 보풀이가 

날아와 같이 늙어가자 한다.

"나는 지금 양평역에 간다."

대지생김


그렇게 시간은 흐르더니 발길 따라갔던 곳에서 반가운 지인을

만났다. 언제나처럼 늘 반겨 주신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한 거 풀의 속내를 담고 있지만 이 사람은

속내를 겉 내처럼 보이며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너 거집 새로 짖나?"

구수한 사투리에 정겨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함 껏 긴장한 채로 

거리를 헤매며 지쳐가던 나의 귀에 짱짱하게 들려준다.

"와 집을 뿌사삔나?"

대답도 못하고 웃기만 하던 나에게 이 사람은 작은 메모를 내민다.

거긴 엔 이렇게 쓰여있다.

'다시 지어 부동산'  참 웃긴다.

아무도 관심 없던 내게 관심 가져 주는 이 사람 바로 지인이 된다.

허물어지고 비가 새고 벽이 갈라지고 천정에 얼룩이 생긴 25년 넘은

서울 집이 어찌나 힘들었던지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여 25년 넘게 한 직장에서 장기근속 근무를 하였지만

남은 것은 뼈마디의 통증과 멀어져 가는 시야로 다시는 되돌아

가고 싶지 않았다.

버려두듯 내치고 세상으로 나와 이렇게 장똘뱅이처럼 돌아다닌다.

왜?

새집을 지으려고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왜?

남은 생 내 일을 하면서 살려고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그랬더니

두껍이가 새집을 주려고 털 다 빠진 대머리를 쑥 내민다.

"새집 주면 뭘 줄랑가?"

그것은 생각도 못한 나의 낭패였다.

두껍이에게 줄 것을 생각 못하고 노래 부르며 세상천지를 돌아다녔다.

아무도 관심 없었던 내게 관심 가져 주는 이 두꺼비가 남편이다.

뼈대가생김

넓은 논에 올챙이가 왔다 갔다.

길은 바르고 곧다,

여기 이렇게 새집을 지으려고 두꺼비와 동행하였더니 개구리 새끼

올챙이들이 자기 집 잃을까 봐 꼬리를 할랑거리며 바쁘게 항의한다.

두꺼비보다 약한 개구리는 올챙이들을 데리고 이사 갈 곳을 찾으러 갈까?

아니면 여긴 내 집이야 대대손손 나의 자손들이 살 집이야 하며 있을까?

"좋은 말 할 때 가라이."

두꺼비의 격양된 말에 허겁지겁 보따리 싸들고 웅덩이를 타고 갯가를 넘어

풀숲이 우거진 들로 사라진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올챙이들을 데리고 간다.

새 하늘에 새 땅을 주신다는 그분의 능력이 두꺼비에게 있을까?

어떤 이는 손으로 땅을 파고

어떤 이는 숟가락으로 땅을 파고

어떤 이는 삽으로 땅을 파고

어떤 이는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더라

누가 옳은지 판단을 서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땅을 판다.

두꺼비가 준 땅은 그렇게 파헤쳐지고, 기둥 세워지고, 벽 붙여지고, 지붕 덥어지고......,

아무도 없다.

그렇게 홀로 서있다.

두꺼비가 준 새집의 앙상한 뼈가 내가 그렇게 아파하던 뼈마디의

보상이라도 된 것처럼

"저 뼈는 아프지 말아야 할 텐데"

그렇게 서있다.


지난해 양평을 왔다.

두꺼비가 준 새 집을 받아서 왔다.

삶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몸이 병들어서도 아니고 내가 헌 집 싫다고 하니

새 집을 이렇게 지어 주었다.

고마운 두꺼비다.

감사한 두꺼비다.

그 두꺼비 같은 사람이 지금 이렇게 내 옆에서 웃는다.

"새집 주면 뭘 줄까?"

그때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새집 주면 사랑을 주지."

그렇지만

지금

이때에 와서는 이렇게 말한다.

"두껍아 두껍아 새집 줄게 헌 집 다오."

왜?

벽이생김

개구리 새끼 올챙이가 살았던 그 새 집 터에는

사랑도 믿음도 소망도 다 사라지고

허물어지고 비가 새고 벽이 갈라지고 천정에 얼룩이 생긴 헌 집에서

풍겨 나는 인간의 냄새가 없었다.

결국은 두꺼비에게 줄 모든 것이 사라져서

내 옆은 두꺼비 남편만 남았다.

너 만!


지난 밤 꿈에는

지하철역에서 내려보니

광명역 표지판이 보인다.

어깨에 맨 배낭에서 연신 핸드폰의 요란한

진동이 느껴진다.

저기 한 울타리 지나서 파란 모자를 눌러쓴 지인이 보인다.

거무스름한 얼굴빛에 한 손에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열어 노안의 눈으로 지긋이 내려다 본다

그리고,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당신 그는 나를 헌 집도 아닌

새집도 아닌 움직이지 않는 부동산인 자신의 언덕에 살게 하는 남편이다.

인생의 종착역에서 다시 한번 불러본다.

"두껍아 두껍아 새 집 다오 헌 집 줄게"

"두껍아 두껍아 헌 집 돌려다오 새 집은 숲으로 간 올챙이들 줄 께"

그리고.

잠을 깨니 그 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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