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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했던 나의 달리기로 돌아가기

내가 달렸던 진정한 이유

by 권사부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올버즈라는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고 예전에 집에 있던 아무 운동복이나 입고 나섰다. 달리기에 대해 특별한 지식도, 장비도 없었지만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맑은 공기와 가벼운 몸, 뛰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아마 그렇게 누적 500km를 뛰었을 것이다. 지금도 음악 없이 혼자 조용히 달리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지난 4년간 나의 달리기는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변했다. 어쩌면 "변질되었다"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를 시작한 첫 해는 오로지 달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 정리되는 것이 좋았고,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뿌듯함이 하루를 열었다. 그런 승리감으로 인해 사업도, 학업도, 가정도 모두 순조로웠다. 내 인생에 그저 달리기 하나를 더했을 뿐인데,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달리기를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더 빨라지고 싶었고, 더 오래 달리고 싶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잘 달리는 사람들을 찾아 구독하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노하우를 따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카본화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운동화와 호카, 온러닝, 브룩스, 살로몬 같은 브랜드가 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가민과 순토 같은 러닝 워치 브랜드도 알게 되었고,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선글라스까지 구매하게 되었다.

러닝 기법도 바꿨다. 주법을 미드풋으로 바꾸고, LSD(Long Slow Distance), 인터벌, 템포런 같은 전문적인 훈련 방법들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단순히 뛰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이 훈련이었다. 그 결과 페이스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7분/km로 시작했던 나의 속도는 어느새 5분, 4분, 그리고 인터벌 훈련 때는 3분대를 기록할 만큼 발전했다. '달리기는 마일리지 싸움'이라는 말에 집착하며 매일 10km, 20km씩 달렸다.

그러나 쉼 없는 달리기는 나에게 피로를 가져왔다. 술을 마신 다음 날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힘든 상황에서도 나는 달렸다. 단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다시 느려질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느새 달리기는 내게 행복의 원천이 아닌, 강박의 굴레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모습을 매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람들의 '좋아요'와 '대단하다'는 댓글에 기뻐하면서, 점점 더 인정욕구에 빠져들었다.

피로는 계속 쌓였고, 몸에는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피로감으로 인해 일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나의 삶을 이끌어주던 달리기가 오히려 삶을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아침에, 밤에 달린 기록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디지털 자아가 현존 자아를 잠식한 것이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시작은 단순했다. 그저 머릿속이 맑아지고, 달리고 나면 하루가 새롭게 시작되는 느낌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달리기는 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기록을 쫓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나를 잃어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내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를 잊어버린 순간부터였다. 치유와 회복, 그리고 나 자신과의 대화가 사라진 자리에는 강박, 경쟁, 인정 욕구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는 달리기가 내 삶에 더 이상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기록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뛰는 달리기, 달린 거리가 아니라 달리면서 느낀 감각을 기록하는 달리기,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내가 온전히 느끼는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나아가는 달리기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래서 나의 달리기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는다. 나의 달리기는 내면의 깊은 곳, 나만의 심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달리기가 내 심연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내면의 힘이 더욱 단단해졌다는 증거이다.

오늘 아침 나의 달리기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달리기를 하고 있다. 나는 이미 순수했던 나의 달리기와, 그리고 나 자신과 다시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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