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아남기 어려운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

무너져가는 대한민국, 희망을 외치다.

by 권사부

대한민국은 자살률이 높은 국가다. OECD 국가 중에서도 부동의 1위이며, 청소년과 노인의 자살률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청소년 자살률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인데, 한국만 유독 상승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국가는 이 심각한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며 외면하고 있다. 자살 예방 상담을 홍보한다고, 관련 시스템을 잘 갖춘다고 해서 자살률이 줄어들까?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입시지옥 속에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것이 필수가 되고,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수많은 인원이 경쟁 속에서 압사 당하는 구조다. 모든 국민이 이 압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영유아기부터 어른들이 정해놓은 기준과 규칙에 맞지 않으면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그런 평가를 받은 부모는 겉으로는 항의하지만 결국에는 아이를 사회가 원하는 틀에 맞추려 한다.



2025년 1월 9일, 헬스조선, 이슬비 기자 기사


여기에 한국 사회의 두 번째 문제,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모두가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져야지만 안정된 삶을 보낼 수 있는 환경에서,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 맞춰 끊임없이 스스로를 조정하며 살아간다. 나도, 내 주변도, 내 아이도. 변화하려는 사람에게는 '변했다'며 손가락질을 하고, 실수한 사람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보다는 안전을, 도전보다는 순응을 택하게 된다.


예전에 아들이 4세(만 3세)일 때 판교의 한 영어 유치원을 잠시 다닌 적이 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 아들을 문제아 취급했다. 이유는 수업 시간에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장난을 치며, 집중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겨우 세 살짜리 아이가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들어야만 ‘정상’이라는 기준이 과연 맞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치동에서 왔다는 유명한 선생님이었는데, 덕분에 대치동 교육환경 자체에 색안경을 끼게 되었다. 영유아 때부터 색깔이 다른 아이들을 문제아로 규정하는 문화에서 자란다면, 왜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0대 청소년 자살률 / 자료: 통계청



대치동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교육'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사실 자체가 이미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한 지역, 한 시스템만이 성공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지는 사회는 얼마나 위험한가. 성공의 길이 다양해야 할 교육이 오히려 모두를 한 가지 틀에 맞추려 하고, 그 틀에 맞지 않으면 실패자로 낙인찍힌다. 어릴 때부터 주입된 '옳은 길'을 벗어나는 것이 곧 패배를 의미하는 사회에서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쉬운 탈출구일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한 가지 길을 강요한다. 학업, 직장, 결혼, 집 마련까지 정해진 궤도를 따라가야 하고, 벗어나는 순간 낙오자가 된다. 자아를 찾을 기회도,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도 없다. 다수가 가는 길을 따라가야만 인정받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버티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생을 포기하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개개인의 선택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본다.


2025년 2월 18일 뉴스1, 이설 기자 기사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단순한 상담 시스템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는 교육,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는 문화,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버티라’는 말은 공허할 뿐이다.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놓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 사회는 과연 정상인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