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과 지성의 크기를 바꿔주는 습관
18세기의 철학자이자 공리주의자인 제러미 벤담은 행복 계산법(Felicific Calculus)를 제안했다. 이 계산법에는 총 7가지의 주제가 정리되어 있는데, 그 순서는 이러하다.
쾌락과 고통의,
강도, 지속 기간, 확실성 또는 불확실성, 근접 또는 원격, 생산력, 순수성, 범위, 이렇게 제안하는데, 이 중 순수성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해보려 한다.
제러미 벤덤의 쾌락과 고통의 순수성이란, 감각은 반대 유형의 감각이 이어지는 경우에는 불순하고, 그렇지 않으면 순수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과음은 불순한 쾌락이며, 그 까닭은 숙취의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체육관에서의 운동은 신체 단련이라는 쾌락이 따르므로 불순한 고통이다. 그래서 당신은, 쾌락은 순수하고 고통은 불순하기를 바란다고 벤담은 말한다.
위 내용은 18세기에 벤담이 정리하고 제안한 글을 95% 이상 번역한 것이다. 최근 자기개발서 및 콘텐츠에서 위 내용과 매우 흡사한 내용을 자신이 만들어 낸 창의적 동기부여 문장으로 떠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벤담을 모를수도 있고, 공리주의가 무엇인지, 행복의 계산법이 무엇인지 대부분을 모를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시중에 떠도는 어떠한 언어, 문장, 단어, 뜻, 해석 등의 대부분은 어떠한 역사적 배경과 이론에서 발생했던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소비한다. 모든 글의 어원이나, 배경을 알 필요는 없지만,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와 아닌 자의 지성의 크기는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지금 온 세계가 이념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단순히 정치꾼들이 떠드는 것에 매료되어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은 채 선동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무심코 들은 것을 타인에게 자신의 주장인듯 전하는 습관, 타인의 말을 의심이나 고려없이 무조건 믿는 습관이 우리의 삶을 좀먹는다.
'안다'는 것은 보다 깊은 것을 보는 습관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듣고, 읽고, 쓸 줄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속서(俗書)가 아닌 양서(良書)를 읽으려 노력해야 한다.
나는 속서(또는 잡서)는 자기개발서와 같은 책이며, 양서는 고전책이라 생각한다. 어려운 글을 읽기 싫어 지성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오늘도 허우적 거리며 지성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