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제자의 편지를 발견했다.

10. 일상의 평온함을 바라며.

by 권상혁

휴일이라 밀린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밥을 해 먹고 쓰레기를 모아 버리니, 하루가 다 지나갔다. 학교에 가서 할 일들은 하나도 하지 못했으나 ‘학교에 가서 하면 된다’는 배짱이 생긴 것을 보니, 일본에 있는 학교에 부임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나름 조금은 적응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청소를 하다가 한국에서 보낸 국제 우편 박스 안에 있는 책들을 꺼내 정리했다. 책들 사이에서 '툭' 하고, 정말 드라마에서 많이 본 그 장면처럼 편지 묶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자들이 보낸 편지들은 따로 마련한 상자에 잘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건 무슨 편지인가 싶어 살펴보니 편지라기보다는 엽서 정도 되는 크기의 카드였다.


이게 언제 적 제자들인가 싶어 한참 기억을 더듬었다. 2016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햇수로 10년 전에 만났던 제자들이었다. 이름을 보니 기억이 났다. 아, 조ㅇㅇ! 담임은 아니었지만, 자기소개서와 면접 지도로 자주 만났던 학생이었다. 수업 때도 정말 열심히 참여하고 질문도 많이 해서 오히려 내가 매 시간 긴장하며 수업을 준비해 들어갔던 기억이 났다.


시험 성적이 떨어졌다며 내 앞에서 눈가가 빨개져서 고개를 숙이던 모습도 기억이 났다. 열아홉 살,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아이가 떡 벌어진 어깨를 옹송그리고 있는 모습이 마음 아파 교무실 냉장고에 있던 음료수를 하나 꺼내주고, 같이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얼핏 났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나는 지난 세월만큼 나이가 들었고 그 사이 또 많은 제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제는 일본에서도 제자들을 만나고 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을 헤아리지 않고, 나 혼자 힘든 타령을 한 건 아닌지 잠시 나를 돌아봤다.


10년 전 제자의 편지를 읽고 정신이 번쩍 났다.


‘힘내라, 권 선생. 너를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너는 너 하나의 몸이 아니다. 그러니 정신 차리자. 열심히 하자. 아이들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자.’


어떤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만큼은 변치 않을 것이기에, 다시 한번 기운을 내보자고 다짐했다.


"고맙다, 10년 전의 제자야.

그때는 몰랐는데, 10년이 지난 후에야 네 마음이 담긴 편지가 선생님을 일으켜 세우는구나. 너 같은 아이들이 넘치는 곳이 학교이니, 선생님은 선생님의 자리에서 너와 같은 아이들을 만나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 선생이자 어른이 되도록 늘 노력하마.


너는 잘 지내고 있지? 10년 전에 열아홉 살이었으니, 이제 서른이 되었겠구나.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네가 너의 자리에서 눈이 부시게 살고 있을 거라 믿어본다. 사실 그때, 선생님도 너를 보며 힘을 내고, 지친 하루 그래도 기운을 내고 다음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단다. 네가 있어서, 너와 같은 학생들이 있어서 선생님도 견딜 수 있었어. 그러니 너 또한 선생님 인생의 보물이란다."


어디선가 열심히 살고 있을 제자에게 혼잣말로,

그때 전하지 못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제자의 현재와 미래를 축복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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