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일상의 평온함을 바라며.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기 때문에 주방에서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기보다 마트에서 도시락을 사 와서 먹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한국식 된장찌개가 정말 먹고 싶었다.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면 저녁 6시 10분 경이된다.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집으로 가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샤워하고 잠깐 정리한 뒤에 잠자리에 든다. 그런 생활이 매일같이 반복되다가, 문득 내가 집에서 밥을 해 먹은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된장찌개를 끓여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날은 퇴근 후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고 마트에 들러 ‘두부’, ‘시금치’, ‘버섯’, ‘파’ 등을 사서 집에 왔다. 한국식 된장이 없어서 일본 된장에 마침 일본에서 판매하는 한국 쌈장이 있어 둘을 섞어 된장을 마련하고 재료들을 손질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다시다가 있어서 다시다를 조금 넣고, 소금을 조금 넣고, 어떻게든 한국식 된장찌개와 비슷한 맛이 날 수 있도록 노력해 봤다. 보글보글 끓어가는 된장찌개와 인스턴트 현미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일본에서 판매하는 김치와 몇 가지 반찬을 식탁에 차려놓고 컵에 물을 한 잔 따라 저녁 밥상을 차렸다.
밥 한 술을 떠 입에 넣고 된장찌개를 한 술 떠 입에 넣었다. 한국에서 먹던 맛과 얼추 비슷했다. 쌈장을 넣어서 그런가 그럴듯했다.
그래, 이 맛이야.
그렇게 밥을 먹다가 갑자기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된장찌개뿐만 아니라, 김치찌개도 먹고 싶어 졌고, 호박잎을 삶아 막된장을 얹어 밥하고 싸 먹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맡던 공기가 그리워졌다. 미세먼지로 마스크를 쓰던 날이 많았지만, 청명한 날에 한국에서 맡던 공기 말이다. 한국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들 말이다. 그 냄새들이 싫었던 때도 있었는데, 된장찌개 한술에 온몸에 가득 차오르는 그리움에 나는 씹고 있던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가슴 언저리에 살짝 손을 얹었다.
힘들었구나… 힘들었어. 힘이 들었어.
기어코 눈두덩에 뜨거운 기운이 몰리기 시작해서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천장을 보니 코끝이 찡하도록 추웠던 한국의 겨울이 스쳐 지나갔다. 작년 겨울, 일본에 있는 학교로 부임하기 전에 집을 정리하며 집안에 있던 살림살이를 하나둘 처분할 때다. 날이 갈수록 휑해지는 집안에 보일러를 틀어도 냉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때 거실 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본 적이 있다. 소파를 처분하고 TV도 처분해서 그야말로 거실이 텅 비어 보여 나는 그즈음 거실에 잘 머물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그날은 베란다 창으로 햇살이 하도 따뜻하게 밀려들어와서 점심을 먹고 잠시 거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때 천장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몸 건강, 마음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소중히 보내자. 4월 1일 부임 날짜에 맞춰 무사히 일본에 입국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자.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항상 생각하고 아무리 바빠도 조금씩이라도 쓰고 고치며 깨어있자. 부임하는 학교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아낌없이 사랑하자. 예술가 겸 교육자로서 건강 관리와 컨디션 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늘 조심하고 먹고 마시는 것에 주의하며 운동하자. 문학하는 자의 소임과 국민 교육의 수임자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슴 깊이 새기며, 더불어 민간 외교관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국가와 학교 발전, 그리고 제자들의 성장과 나 자신의 연수와 연찬을 통한 전문성 신장에 온 마음을 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자.
한국 집 거실 천장을 보며 두서없이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일본 집 식탁에서 바라본 천장은 그때 한국에서 본 천장과 다를 바 없는데, 한국에서 다짐했던 맹세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 나는 자신할 수 없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직장 내 환경이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성장하는 아이들이다. 그렇다고 멈출 것인가, 아니, 그럴 수 없다.
내가 걸어가고 싶은 인생이 있고,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직장의 다양한 일들이 있고,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가슴 가득 행복하기 때문이다.
다 함께 고생하고 있다. 나도 고생하고, 멀고 가까운 곳에서 등하교하는 아이들도 고생하고 있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동료들도 고생하고 있다. 각자의 교육 방식은 다르나 결국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이라는 점은 같다고 믿는다.
한국이 그리워질 때는,
한국에서 먹던 음식을 하나둘씩 만들어 먹어볼 생각이다. 방학 때가 되면 김치를 만들어 볼까. 된장찌개를 바닥까지 긁어먹고 밥 한 공기를 깨끗하게 비우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김치를 만들어보자. 그렇게 적응해 가보자. 그렇게 살아보자.
이곳, 일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