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선
■ 허세, 배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에는 두 개의 마음이 있다. 하나는 상대방에게 과시하고자 하는 과시의 마음과 다른 하나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배려의 마음이다. 이 두 개의 마음은 상대의 눈으로 나를 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과시욕은 끊임없이 나를 과장하게 한다. 내 소득 수준에 비해서 과분한 차를 사고, 옷으로 치장하고, 각종 명품 액세서리를 몸에 지니면서 나를 드러내기에 몰두한다. 그리고, 과시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한없이 불행해지고 스스로를 비참하게 생각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마음과 동일한 눈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면서 외모나 보이는 행색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게 된다.
배려심은 좋은 인성이기는 하지만 이런 마음이 너무 크게 작용하면 주저함이 많아지고, 결국은 결정 장애를 겪게 된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 누군가를 도와야 할 골든타임에 주저하다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변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주변의 반응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소문이라는 것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 가면서 조금씩 과장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인간 본성의 무의식에는 과시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는 것이다.
정글의 원초적 경쟁 사회에서는 남들보다 강해 보이고, 동족들보다 눈에 띄는 외모를 갖추는 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더 큰 뿔과 더 크고 화려한 깃털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문명을 가진 인간사회에도 이런 본능적인 생존전략은 유효하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 자신의 능력을 상회하는 과장을 추구하게 되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마치 그런 것을 소유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게 된다.
“왕년에 금송아지 한 마리 키우지 않은 집인 어디 있어”라는 비아냥 속에는 허세를 부리는 상대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나의 주변을 스쳐 지나간다. 어떤 경우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스침이 있음에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단 한 번 마주친 상황에서도 뇌리에 깊이 박혀 오래오래 그 장면이 기억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결국 남은 남일뿐이야. 가족, 이웃, 동료와 달리 나를 스쳐 지나가는 많은 3자와의 관계는 스쳐 지나는 바람과 같다.
한껏 차려입고 멋진 모습으로 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할 때 주변에서 보내는 부러움의 감탄사는 나를 신나게 한다. 하지만 그 스쳐 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나는 얼마나 오래 남아 있을까? 그들은 그저 그 한순간의 번쩍이는 감성을 느꼈을 뿐이다. 오히려 그 감탄사는 내 마음속에 더 오래 맴돌고 있는 것이다.
배려심의 경우도 같은 원리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 대한 실제적인 도움은 별개의 문제로 생각해야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남을 배려하기 위해 소모한 나의 정신적 에너지 손실에 비해서 얻게 되는 유익은 그다지 크지 않다. 예를 들면 멀리서 뛰어오는 사람을 보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을까? 아니면 빨리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닫힌 버튼을 누를까? 순간의 갈등을 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해 보자.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는데 동승한 사람이 짜증을 내고, 멀리서 뛰어오던 사람은 엘리베이터가 번잡한 것을 보고는 타지 않고 그냥 올라가기를 기다리다면 약간의 배신감이 든다.
남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는 당신을 위한 나의 제안
“남들은 당신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가볍게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 이 사실을 명심하자.
단지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남의 눈에 좋아 보이기 위해 자신을 치장하고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소모할 에너지가 있다면 자신과 가족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을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쓰자, 그러면 자신과 주변의 삶이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