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wonstalk권스톡 Jan 05. 2024

Talk_'24_4. 비상하는 아이들  

둥지를 떠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캐나다 추억여행

큰아이는 97년생 딸, 3살 터울의 밀레니엄세대 아들, 두 아이의 아빠다. 대학졸업을 앞둔 딸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졸업과 함께 캐나다에 가서 공부를 좀 더 해 보겠다는 것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주변에서 유학을 떠난 동료를 두 번 봤다. 그들의 준비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유학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 않은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쑥 던져진 딸의 제안이 당황스러웠다. 잠시 생각을 해보니,  아빠로서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과, 내가 가지고 있는 영어 콤플렉스에 대한 일종의 보상 심리가 작동해서 기꺼이 유학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2021년 10월에 처음 이야기를 하고 단 2개월 만인 2022년 1월 초 딸아이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캐나다로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그해 가을, 군복무를 마친 아들과 함께 캐나다에 있는 딸을 방문했다.


참 오랜만에 가족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 어린 시절 여행에는 좀 분명한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고, 집이라는 테두리 밖에도 넓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큰아이가 고등학생 때인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가족도 함께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때 문득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같이 하는 여행을 많이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천으로 살다 보면 항상 남들보다 시간에 쫓기며 살게 된다. 최소 1주일에 하루는 교회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주 5일 근무가 거의 일반화된 분위기이지만,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만 해도 토요일까지 근무가 일반적이었다. 일요일을 빼고 나면 가족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아이들이 다 커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함께하기 위한 가족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유명하다는 퀘벡의 단풍도 구경하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도 먹어 본다. 한편으로는 '우리 형편에 이런 사치'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가족의 추억을 위해 충분히 가치 있는 소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활 현장으로 돌아가서는  더 열심히 살자고 서로 격려한다. 한국을 떠나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유학 준비를 하는 딸과 누나를 따라 어학연수를 시작한 아들이 함께 거쳐하는 아담한 숙소에서, 굳이 딸아이의 작은방에 두 장의 매트리스를  붙여 놓고, 4명의 가족이 비좁은 공간을 나누어 잠을 잔다. 나의 코골이 소리를 피하지 않고 함께 잠을 청해주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감사하다. 

어리게만 여겨지던 두 아이의 훌쩍 커버린 속내를 엿보는 시간이 소중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또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는 딸의 고민,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있는 아들의 고민, 세상에 좀 더 많은 일(선한 영향을 주고, 힘이 되어 주는 일)을 하고 싶은 아내의 고민,  은퇴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나.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외딴 타국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딸아이의 고민을 들으며 가슴 찡한 애잔함이 밀려온다. 나의 청춘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경로 재설정을 해야 하는 이 시대 청춘의 고민이 짠하게 다가온다.  한 가족이지만, 각자  다른 현실 앞에 서 있다. 


이국땅 캐나다에서, 나는 더 이상 아이들의 보호자가 아니었다.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집에 출입하기 위한 로비에서도 딸아이는 나의 보호자였다. 마치 아이들 어린 시절, 슈퍼 심부름을 하는 아이들 뒤에 뒷짐을 지고, 지켜보는 보호자의 마음으로, 딸아이는 나의 어설픈 영어와 토론토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어리숙한 행동을 가이드하는 보호자가 돼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보호자의 입장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격체로서 저마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우리 앞길에 어떤 날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단 한순간도 내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게 세상이다. 계획한 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만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 태도가 바르게 잡혀 가는지 모니터링해 주고, 흔들릴 때 옆에서 지지자가 되어 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호텔 방안, 아내와 아이들이 곤히 자고 있는 시간에 아이들의 곤한 잠을 깨울까 불도 켜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글을 썼다. 그때의  소중한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