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간 뉴욕에서 소개팅하는 법
2017년 크리스마스 시즌, 나는 뉴욕을 여행할 계획이었다.
뉴욕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를 뉴욕에서 보내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 이기도 했기에.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방문했던 뉴욕은 정말 큰 도시로 기억한다. 그 많은 인종들 사이에 주눅이 들었던 거 같기도 하다. 이미 호주에서 일 년을 보낸 터라 백인이 낯선 건 아니었는데 뉴욕은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도 샵에 들어갈 때마다 '헬로 스위티' '하와유 달링'이라고 인사해 주는 건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서 자연봉사활동을 마치고 그냥 돌아가기 아까워서 혼자 2주를 여행했고 워싱턴에서 토론토를 가는 그레이 하운드를 탄다고 그 새벽에 컴컴한 공터였던 버스 터미널은 잊을 수가 없다.
(겁대가리 없는 계집아이 같으니라고 ;;;)
여하튼 돈 없고 어린 여자애의 홀로 미국 여행은 뻔하다. 숙박비를 아끼려고 호스텔에서 자야 했고, 샌드위치를 주로 먹었으니 근사한 레스토랑도 한 번 못 갔다. 돈이 없기도 했지만 정보도 없었고 내가 세련되지도 못했던 듯.
다른 문화와 호기심은 가득했으나 적은 경험치만큼 욕망하는 것도 작았다고 본다.
생각해보니 그때 나 스마트폰도 없었다!! (본인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못 느꼈고, 25살이 넘어서야 사용했다) 아마 책자를 어디서 구해서 여행했나 보다. 지금은 구글 지도 없이 여행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지만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는 브로드웨이에서 100불짜리 뮤지컬을 공짜로 본 것인데,
브로드웨이에 가면 그 날 남은 티켓을 떨이로 파는 부스가 있다. 난 당연히 싸게 구매하려고 거기에 줄을 서있었고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우산이 없었다.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우선을 펼치며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렇게 대화를 하게 되었고,
자기는 뉴욕에서 일하는 아이리쉬이고, 엄마가 여행 왔는데 저녁에 볼 뮤지컬 티켓을 사러 왔다며.
그리고 대화를 하며 공연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다가 티켓부스에 도착을 했는데 그 남자는 너도 이거 볼 거지? 라며 세 장을 구매했다.
어! 나 현금 없어. 카드로 내 것 계산할게.
괜찮아. 스위티
그렇다면야 거절하지 않을게
티켓을 건네주고 30분 전에 극장에서 보자 했다.
각자 시간을 보내고 극장에서 난 그의 엄마와 그 남자와 셋이 뮤지컬을 봤다.
나란히 앉아서
공연이 끝나고 그는 엄마와 나를 펍에 데려갔고 나에게는 술을 한 잔 시켜주고 엄마는 담배를 폈다. 그의 친구들이 곧 들어왔고 나는 그들과 술을 마시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 엄마는 아들이 데려온 낯선 아시안 여자애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냥 길에서 만난 애랑 뮤지컬을 같이 본다니?
같이 있으면서도 나는 내내 생각했다.
이들은 무슨 생각인 것인가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았고 그게 끝이다.
그러고 나는 혼자 미국 여행을 마저 했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 남자는 불쌍한 아시아 여자에게 그냥 베풀고 싶었던 걸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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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기억을 떠올리며 2017년 뉴욕 여행을 계획하는데
네이버 카페에는 정말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필요하면 동행도 구할 수가 있다.
박물관을 같이 가거나 미슐랭 레스토랑에 같이 가는 거지.
그런데 뭔가 발동이 걸렸다. 흥미로운 게 생각난 것이다.
이왕이면 크리스마스고 뉴욕인데 남자 친구가 없으니 로맨틱한 추억을 만들려면 뭐가 있을까?
아!
소개팅남을 찾아야겠다
나는 네이버 카페에 '크리스마스이브에 저랑 소개팅하실래요'라고 글을 올렸다.
별 내용이 없었지만 제목 자체가 자극적이었는지 조회수가 엄청났고 댓글과 쪽지를 엄청 받았다.
뉴욕 리스트 중 미슐랭 3 스타 가는 것을 소개팅남이랑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생각지 않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되어서 상대방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재밌는 거 ㅎㅎㅎㅎ)
어떻게 고르냐고?
아이디를 베이스로 SNS 검색을 엄청 했지
SNS에는 정말이지 그 사람의 많은 것들이 담겨있는 게 확실했다
결국 두 명을 골랐는데
한 명은 고등학교 때 건너가서 지금은 게임회사의 회계를 담당하는 오빠였는데 사람 좋아하고 성격 좋은 게 SNS에서 보였다. 항상 사람들이랑 함께했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인 거 같아 선택했고
한 명은 박사 공부하는 오빠였는데 자기 사진보다는 멋진 풍경과 주변을 담았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두 명이나 만났냐고?
네
한 명은 같이 미슐랭 3 스타에서 파인 다이닝을 즐겼고
박사 오빠랑은 브런치를 즐겼다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다들 계획이 어떤지 너무 궁금하다
[앞에 게이 커플이 앉아 있었던 레스토랑, 테이블 구조가 나란히 앉아야 해서 당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