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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심이 많고 게으르다

글쓰기와 함께한 2016년 한 해를 보내며

by 권용진


참으로 다사다난하고 정신없었던 2016년이다. 사실 매년 시작은 분주했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벌이기는 하였지만 끝맺음을 내거나 꾸준히 한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욕심이 많고 게으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을 보면 괜스레 집에 있는 먼지 쌓인 전자 피아노를 꺼내서 쳐보려다가 다음날로 미룬다. 겨우겨우 며칠 만에 쳐보다가 금세 원하는 데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서 다시 침대 밑에 둔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근사한 사진을 찍은 친구들을 보면서 욕심내서 비싼 디지털카메라를 샀는데 원하는 데로 나오지 않아 짜증이 솟구친 적도 있다. 넓은 어깨를 가진 친구들을 보며 '이번엔 꼭 꾸준히 운동해야지...' 하는 마음은 얼마 가지 않는다. 회사에서 실적 평가를 보면 동료 중에 굉장한 실적을 내는 사람도 있다. 주말도 반납하거나 자진해서 야근을 하며 아침에 출근하면 어제와 같은 옷으로 맞이하는 동료들이 그러한 류였다. 나도 일을 멋지게 해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며칠 정도 억지로 남아 있어 보았지만, 퇴근시간만 되면 귀찮고 집에 가서 드라마나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였고 결국 포기했다. 학교 다닐 때는 관심 없는 교과서는 펼쳐도 한 시간도 못 가서 졸음이 쏟아지곤 하였다.


처음엔 너무 속상했다. 왜 나는 이렇게 게으를까. 왜 시작을 하면 끝을 못 볼까? 왜 괜히 욕심까지 많아서 배만 이렇게 아플까.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니 게으르고 욕심이 많은 건 나만이 아니었다. 헬스장을 끊은 지 2주 만에 먼지 쌓이는 체육복을 가지는 경험은 누구나 있었다. 소셜 미디어에서 다른 사람들의 멋진 사진, 성취들을 보면 다들 한번쯤 좋아요를 누르며 '나도 하고 싶다'하는 욕심을 낸 경험이 있었다. 결국 쉬는 시간까지도 올인해서 열심히 하는 '워커홀릭'들이 이상한 거라는 사람들의 말에 수긍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이상한 게 아니구나.




문제는 그래도 욕심은 줄지 않았다. 멋진 일을 해내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멋진 단편 영화를 볼 때도, 길거리에 또래의 버스킹을 보아도, 틈틈이 스타트업을 하는 친구를 볼 때도. 그래서 2016년 1월 1일에 뜨는 해를 보며 결심했다. 너무 이것저것 욕심내지 말고 좋아하는 것 딱 하나만 해보자.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음악을 글쓰기만큼 좋아하기 때문에 피아노나 묵혀두었던 색소폰을 꾸준히 해볼까 생각하였지만 글쓰기가 좀 더 시공간의 제약 없이 쉽게 할 거라 생각이 들었다. 3월 18일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초고를 보냈고, 3월 30일 첫 글을 올렸다.


조회수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지만 예쁜 공간에 내 글이 하나씩 쌓여가는 모습에 잠자는 시간도 줄이고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이나 영화 보는 시간도 줄이면서 글을 써 나갔다.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물어보거나 시키지 않아도 끊임없이 그저 재미로 글을 쓰게 되었다. 평생 처음으로 어딘가에 미쳐있듯이 한 것 같다. 게으른 내가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했던 '워커홀릭'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내가 부러워 하던 그런 모습은 억지로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진심으로 즐거운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란 걸.


그러다 보니 수많은 멋진 일을 하던 사람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결과물로만 부러워하고 욕심내지 않게 되었다. 어떤 멋진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것을 얼마나 사랑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세계 일주를 한 사람도, 거대한 무대에서 랩을 하는 친구도, 인터넷 방송으로 많은 시청자를 거느린 사람도, 집을 아름답게 인테리어 한 친구도 자신의 게으름을 이길 정도로 사랑하고 즐거워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신 내가 즐거워하는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이다. 회사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즐거워하는 업무 방식을 따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애초에 어떤 부분이 즐거워서 이 쪽 분야로 왔는지를 다시 생각하니까 귀찮고 짜증 났던 업무 시간이 행복해지고 오히려 시간 내어서 연구를 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게으르다. 주말을 대부분 낮잠으로 보내고 옷 사러 가는 것도 꺼내는 것도 귀찮아서 중요한 날 아니면 후드티와 탐스를 신고 회사를 간다. 요리하는 것도 귀찮아서 배달 음식으로 많은 끼니를 때운다. 예전 같으면 화려한 요리를 올린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질투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이 게으름을 이기지 못할 정도의 부분에서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다만 내가 무얼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2017년, 나는 뭘 좋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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