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은 어떤 곳인가?
돈 진짜 많이 벌겠네? 한턱 쏴!
술 많이 먹겠네, 속 버리겠다.
저런, 집에도 잘 못 가겠네.
월가에서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참 다양하다. 사실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분야이기 때문에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부분 부분을 표현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금융권 퀀트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고 나서도 사실상 골드만삭스, 투자은행, 월가, 헤지펀드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은행이라 하면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신한은행이 전부였다.
지금은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투자은행에 대해 소개하는 글도 인터넷에 여럿 있고 파이낸스 커리어 바이블과 같이 각 분야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한 책도 등장했다. 울프 오브 월스트릿, 빅쇼트, 마진콜 등등 많은 영화에서 다루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정확히 뭘 하는지 알기 어렵다. 물론 경영을 공부하였거나 현업에 있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워낙 광대한 분야라 현업에 있는 사람도 월가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결국 나는 선배나 동료나 기사 등을 통해서 분야별로 하나하나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흔히 말하는 금융권 산업은 크게 상업은행, 투자은행,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 자산운용사, 보험사, 부동산, 컨설팅, 회계 등이 있다. 이 중 퀀트가 주로 활동하는 은행과 펀드를 위주로 소개하겠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상업은행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간단한 비즈니스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대출을 해주고 큰 이자를 받고, 돈이 남는 사람에게서 예금을 해주고 작은 이자를 준다.
상업은행은 한국에선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이 있고 미국에는 Bank of America, Wells Fargo, Chase, Capital One 등이 있다. 체크카드나 송금 등등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상업 은행은 궁극적 목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대출을 해서 차익을 남기는 것이다.
반면 투자은행은 훨씬 복잡하고 여러 가지 비즈니스를 한다. 투자은행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은 Bulge Bracket이라고 하는 9개의 은행인데, Goldman Sachs, Morgan Stanley, JP Morgan, Bank of America Merrill Lynch, UBS, Credit Suisse, Barclays, Deutsche Bank, Citi가 있다.
Bulge Bracket들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대표적으로 리만브라더스나 베어스턴스는 서브프라임 시절에 부도가 나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메릴린치도 이 당시에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인수당해서 현재 같은 모습이 되었다.
투자은행에서 수익을 내는 프론트 오피스는 크게 뱅킹(Investment Banking Division; IBD), 세일즈&트레이딩(Sales & Trading; S&T), 리서치(Research), 자산관리(Asset Management)로 나뉜다. 각각 하는 일이 아예 달라서 다른 회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Investment Banking Division(뱅킹)은 자금조달, 인수합병 자문, 기업공개 같은 일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어떻게 보면 변호사와 같은 일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고 싶어 한다고 하자. 그들은 금융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려면 얼마 정도가 필요할지, 어떤 딜을 해야 할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어떤 리스크가 있을지 쉽게 알기가 힘들다. 페이스북은 이를 위해서 투자은행에 있는 M&A부서에 의뢰를 할 것이다. 이때부터 IBD에 있는 사람들은 인수를 성사시키기 위해 밤을 새 가며 일을 하게 된다. 인스타그램의 재무제표를 보며 분석을 하고 인사, 회계, 법률 등 모든 부분을 보면서 얼마쯤에 인수를 할 수 있을지 측정한다. 비즈니스 미팅을 하거나 클라이언트 미팅을 하면서 정보를 얻으러 다녀야 할 때도 있다. 기한이 다가오면 원하는 결과를 위해서 주말과 새벽을 반납하고 일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스타그램 측에서도 최대한 좋은 대우와 비싼 값을 받고 매각을 하고 싶을 것이다. 인수 측의 제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매각 측에서도 투자은행을 고용해서 함께 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싸게 인수하고 싶은 회사와 비싸게 매각하고 싶은 회사의 전쟁이 시작된다.
서로의 약점을 찾아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한 후에 딜을 시작하게 된다. 협상 테이블 위에서 서로가 가진 정보를 이용해서 가격을 협상하게 된다. 성공적으로 원하는 가격에 딜을 성사시킨다면 거대한 인수 합병 딜의 성과보수를 받게 된다.
또 다른 업무로는 상장이 안 된 회사가 상장해서 자금조달을 하려고 할 때 얼마쯤에 공개를 할지 정하는 일도 한다. 회사가 상장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가치가 얼마나 될지 알기 쉽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방면으로 분석을 해서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는지 찾게 된다. 페이스북이 2012년에 기업공개를 할 때 모건스탠리를 통해서 상장하였는데, 이때 $38로 정했다가 공개 이후에 $20까지 수직으로 떨어져서 모건스탠리에 비난이 일기도 했다. (물론 현재 페이스북 주가는 상당하다.)
이처럼 IBD는 주로 '딜' 위주의 업무를 하기 때문에 업무량이 상당히 많다. IBD 신입 사원들은 주당 80-100시간 정도 일을 하게 되고 특히나 딜이 막바지에 이르면 매 주말도 반납해야 한다고 한다. 다양한 비즈니스와 정치, 수려한 입담, 학벌 등이 필요해서 투자은행의 꽃이라는 말도 한다. 대신 1분 1초를 다투는 것은 아니고 정해진 기간 내에 딜을 성사시켜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업무시간 내내 스트레스 받거나 힘든 건 아니라고 한다.
기본급도 높은 편이지만 무엇보다도 딜을 얼마나 성사시키냐에 따라서 보너스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100% 이상도 받는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일반적인 월가에 대한 고정관념인 긴 업무시간, 고 연봉, 화려한 입담 같은 것에 가장 맞는 부서일 것 같다.
Sales & Trading(트레이딩)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월가의 모습인 수많은 차트, 울리는 전화벨, 소리 지르고 절규하는 트레이더들과 같은 모습에 가장 흡사한 부서이다. 세일즈 사람들이 고객의 상황에 맞는 거래를 받아 오게 되면 트레이더들이 그것을 시시각각 변하는 주식 시장에서 거래를 시작한다. 순간의 실수로 큰 돈을 잃을 수도 있고 큰 돈을 벌 수도 있기 때문에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거나 눈을 떼기가 힘들고 밥도 주로 배달음식이나 간단한 패스트푸드를 데스크 앞에서 먹게 된다. 투자은행의 트레이딩 부서에서 일하던 시절에 다른 신입들은 맥도널드나 쉑쉑 버거를 잔뜩 사 와서 선배들에게 나눠주는 광경도 종종 보였다.
먼저 세일즈에서는 기업 고객에게 다양한 거래 요청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에서 미국 수출을 하고 남은 10억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거래를 하고 싶다던가 카카오 주식 1만 주를 사고 싶다 같은 식이다. 물론 이보다 더 복잡한 거래를 요청하거나 제안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김치 제조업체에서 3년 동안 배추가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배추 가격을 보장받는 거래를 요구할 수도 있다.
구글에서 이세돌 vs 알파고의 대결 상금을 10억으로 걸었다. 이 결과에 따라 10억을 지출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기업은 이런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일정 예산 안에서 이벤트 비용을 지출하고 싶기 때문에 은행에게 일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결과와 상관없이 같은 가격을 지불하는 파생상품을 요청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파생상품의 가격을 계산하는 건 S&T부서 소속의 '데스크 퀀트'가 주로 한다.
트레이더들은 이런 요청을 받아서 상품을 끊임없이 거래하기 시작한다. 순간순간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하고 다양한 뉴스와 실황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다. 하지만 의외로 주식시장 자체는 9:30 - 4:00로 그다지 길지 않고, 장이 닫힌 후에는 많은 일이 없는 편이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 자체는 길지 않고 야근도 거의 없는 편이다. 또한 개개인의 성과가 바로 수치화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에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실력이 있으면 큰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암산에 능한 이공계나 아시아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기도 하다.
Research(리서치) 부서는 시장 상황을 분석을 해서 대중이나 고객에게 제공하는 부서이다. TV나 신문에서 애널리스트라 불리며 여러 가지 투자 자문을 하는 사람들이 이 쪽에 속한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흐름을 분석해서 각종 기업이나 사업, 국가 등을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전통적으로 애널리스트들의 영향력은 막대해서, 애널리스트가 움직임을 예측하는 게 아니라 애널리스트 때문에 주가가 움직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 자동화된 분석과 애널리스트에 의존하지 않는 투자가 많아지면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출판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분석을 발표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업무강도는 세지만 직접적인 수익을 내기가 힘들어서 매력을 잃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분석이 시장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여전히 매력적인 건 같긴 하다.
마지막으로 Asset Management(자산관리) 부서가 있다. 자산관리는 Private 한 고객들이 돈을 맡겼을 때 이를 투자해서 수익을 내고 수수료를 받는 부서이다. 주로 '펀드'라는 형태로 투자자를 모집하게 되는데, 이 '펀드'는 고객의 입맛에 따라 여러 가지 상품을 조합해서 투자를 하고 그 수익을 돌려주는 형태이다. 어떤 사람은 스마트폰 제조 업체 위주로 투자하고 싶고, 어떤 사람은 60세에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용도로 투자하고 싶고, 어떤 사람은 적게 벌더라도 최대한 원금이 보장되고 싶어 한다면 그에 맞춰서 무엇에 투자할지 자문해주고 펀드를 설계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전에는 자산관리는 투자은행과 분리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대 Bulge Bracket들에서는 함께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자산관리는 고객과의 관계와 수익률이 중요해서 근무시간이나 수입도 천차만별이다.
사실 2013년 이전에는 투자은행에 또 하나의 부서인 Prop Trading (자기자본 거래) 부서가 있었다. 이는 고객 없이 투자은행에 있는 돈을 불리기 위해서 직접적인 투자를 하는 부서였다. 하지만 고객의 돈을 이용해서 과도하게 투자를 하기 시작하다 금융위기가 왔기 때문에 볼커 규제가 생기면서 투자은행에서는 고객의 요청 없이 자기자본만으로 투자하는 것은 불법이 되었다.
투자은행이 무슨 일을 하냐?라고 물으면 가장 간단한 답은 '기업을 위한 은행'이라고 보면 된다. 예전에 투자은행에서 일 한다고 하면 요즘 어떤 종목이 유망한지 투자처 좀 알려달라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또 신용카드가 어떤 게 좋은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위 글을 보면 알겠지만 자기자본 트레이딩 부서에 있던 나는 잘 모른다. 마치 산부인과 의사에게 코성형에 대해 묻는 것과 비슷하다. 투자은행 안에서만도 수많은 부서와 분야가 있고, 퀀트 또한 각 부서마다, 심지어 같은 부서 안에서도 다른 일을 한다. 같은 투자은행 안에서도 연봉이 10배이상 차이 날 수도 있고, 근무시간이 두배 넘게 차이날 수도 있다. 다음 글에서는 뉴스에서 정말 많이 나오지만 무엇을 하는지 알기 힘든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를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