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딩 산업에 대한 이해
그래도 주식은 단디 해라
직장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이었다. 마산에 계신 할머니께서는 증권가에서 일하는 손자가 못내 불안하셨는지 두 손으로 나의 손을 꼭 잡으시고선 신신당부를 하셨다.
"옆집 있는 김씨 할배는 거 살던 집을 다 날려뿌가지고 울상이라 카더라. 최가네 사촌 갸는 등록금을 아예 날려가 공사판에 있고.. 주식은 도박이라 생각하고 하여간 단디* 조심 조심해서 해야된데이."
(단디 : 신경 써서, 단단히의 경상도 사투리)
나는 장장 30분간 안심을 시켜 드리고 나서야 겨우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주식을 한다, 증권 트레이더다 라고 하면 주로 모니터나 폰을 하루 종일 보며 자신이 가진 정보나 직감을 이용한 베팅을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런 베팅이 성공하면 외제차와 양주와 함께 화려한 삶을 사는 것이고 실패하면 주로 '한강 간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물론 일확천금을 노리고 많은 돈을 올인하는 사례가 많은 한국 주식 시장의 특성이 이런 이미지를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류의 트레이딩은 실제로 이루어지는 규모에 비하면 좁은 부분에 불과하다. 실제 기관 트레이더들의 모습은 회사나 상품에 베팅을 하는 도박사의 모습보다는 여러 가지 나라를 돌며 물건을 파는 무역 상인에 가까운 모습을 한다.
어렸을 때 상도라는 소설과 드라마를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임상옥이란 상인이 조선의 홍삼을 중국에 비싸게 팔기 위하여 손에 땀을 쥐는 딜을 성사시키는 에피소드를 볼 때 굉장한 희열이 있었다.
이처럼 상인은 어떤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Trade)를 통해서 수익을 얻는 사람을 말한다. 실제로 수많은 무역 회사, 즉 트레이딩 컴퍼니들이 수출입으로 수익을 얻고 있다. 이런 무역이나 유통의 기본은 적은 값에 사서 마진을 붙인 뒤에 좀 더 비싼 값에 파는 것이다. 분명히 같은 물건인데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걸까? 그것은 유통을 통해서 어떠한 불균형을 해소시키기 때문에 그에 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파는 폰케이스를 수입하여서 파는 업자는 미국에는 없는 중국의 싼 인건비와 대량생산 시스템을 사서 미국의 고객에게 유통하며 마진을 챙긴다. 이러한 시장 불균형이 크면 클수록 큰 마진을 챙길 수 있다. 놀이동산이나 바닷가에서 음료수를 더 비싸게 파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음료수를 원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불균형을 이용하여 더 큰 마진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 있는 소주가 한국의 소주보다 운송비를 제하고도 월등히 비싼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이런 상인들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오렌지를 사기 위해 플로리다나 제주도를 가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스웨터를 사고 싶다면 비싼 인건비의 미제 스웨터를 사던지 직접 비교적 저렴한 중국까지 날아가서 사와야 할 것이다. 관광지에서 음료수를 먹고 싶어도 파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음료수 제조 업체가 직접 모든 관광지를 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적인 불균형 이외에도 시간적인 불균형도 있다. 매일 우유를 마시고 싶어도 항상 우유를 판매하는 상인이 없다면 대량으로 미리 사둬야 하고, 많은 우유는 상해서 버려야 할 것이다.
꾸준한 유통을 기반으로 하는 상인도 있지만 이벤트를 중심으로 하는 상인도 있다. 졸업식날 꽃다발을 파는 상인이라던가 축제날에 솜사탕과 야광봉을 파는 상인들이 그러한 류이다. 비가 오는 날에 역전에서 높은 가격으로 우산을 파는 상인들은 단기적인 수요 상승을 예측하고서 가격 불균형이 심화되는 걸 이용하는 상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인들도 없다면 정말로 우산이 필요한 사람은 살 수가 없다.
상인이 무작정 많은 마진을 받고 쉽게 돈을 벌 수는 없다. 마진이 커서 수익이 많이 난다면 다른 상인들도 뛰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재고가 남게 되면 고스란히 손해로 돌아온다. 경쟁을 하기 시작하면 점점 마진을 줄이게 되고 결국 비용을 제하고 유의미한 정도의 수익을 내는 선에서 마진을 낼 수밖에 없게 된다. 거래량이 많은 물품은 마진을 적게 하는 대신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을 사용할 수도 있다. 재고가 있어도 꾸준히 판매 가능한 저 위험 상품은 마진을 적게 하겠지만, 금방 상하거나 유행이 금방 지나갈 수 있는 물품들은 마진을 높게 받을 것이고 재고가 지나치게 많으면 파격적인 할인 전략을 사용해서 재고를 청산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트레이드는 거래, 교역 혹은 무역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큰 의미에서 무언가를 사서 수익을 내려고 하면 보통 전부 트레이딩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어떤 자산의 가치가 오를 거라 예측을 하고서 거래를 하는 것은 투자에 가깝다. 어떤 회사의 가치가 오를 거 같아서 주식을 산다던가, 어떤 지역이 유망해질 것으로 보고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 모두 투자의 일종이다.
반면에 트레이딩은 좁은 의미에서 다양한 요인으로 인한 가격 불균형을 이용하여 수익을 내는 거래를 주로 말한다. 정보의 불균형을 이용할 수도 있고, 거래소 간의 차이, 기대감의 차이, 필요성과 시급한 정도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금융에서 유동성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유동성의 정의 자체는 자산을 얼마나 쉽게 현금화를 할 수 있느냐를 말한다. 만약 금 1 돈을 팔려고 하면 쉽게 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금 1 돈을 사려고 해도 쉽게 파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반면에 10억 가치를 하는 어떤 화가의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해보자. 이 그림을 팔려고 하여도 사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이것이 10억 가치를 가지더라도 파는 사람을 찾기 위해 9억, 8억에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이 그림을 사고 싶더라도 파는 사람을 쉽게 찾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10억의 가치를 지니는 그림이라도 사기 위해서 20억을 줘야 할 수도 있다.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이 경우 금은 유동성이 높다고 하고, 그림은 유동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유동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거래도 쉽게 되고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의 차이, 즉 스프레드가 작다. 하지만 유동성이 낮으면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의 차이도 커지고 거래량 자체도 적어서 시간도 오래 걸리게 된다. 같은 물건이라도 다른 조건에 따라서 유동성이 차이가 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콜라 1개 팔려고 하면 쉽게 팔리겠지만, 콜라 100개짜리 박스를 판매하려고 하면 쉽게 팔리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100개짜리 콜라는 좀 더 싼 값에 팔 수밖에 없다. 유동성이 낮은 새벽에는 생필품을 파는 곳이 잘 없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조금 더 비싼 값을 주고 사게 된다.
대부분의 트레이딩은 이러한 유동성의 차이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유동성이 낮은 도매상에서 콜라를 박스로 구입하여서 유동성을 높여서 콜라를 낱개로 판매하는 전략이 될 수도 있고, 소주를 구하기 힘든 즉 소주의 유동성이 낮은 해외 시장에서 수입을 해서 수익을 얻는 전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편의점은 유동성이 낮은 새벽시간에도 영업을 하면서 마진을 좀 더 받게 된다. 비록 마진을 지불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늘어난 유동성 덕분에 직접 운송을 하거나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쉽게 소주나 콜라를 사 먹을 수 있게 된다.
은행이나 헤지펀드와 같은 많은 기관 트레이더들이 많이 구사하는 트레이딩 전략으로 '마켓 메이킹'이라는 것이 있다. 시장 조성자라는 뜻인 이 전략은 싼 가격에 사면서 동시에 비싼 가격에 팔아서 차액을 버는 트레이딩 방법이다. 이는 마치 중고차 딜러나 금은방 주인과 비슷하다. 중고차 딜러는 차를 팔려는 사람에게 그들이 만족할만한, 그렇지만 비교적 싼 가격을 제시해서 차를 매입하고 그 차를 필요한 사람에게 좀 더 비싼 값에 팔아서 수익을 얻는다. 금은방도 비슷한 원리로 금은 팔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서 금을 구입하고 이를 다시 좀 더 비싼 값에 판매하여서 수익을 얻는다.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마켓메이커는 공항 환전소를 생각하면 된다. 달러를 1100원에 사서 1160원에 팔면서 1달러당 60원의 차액을 버는 것이다.
만약 중고차 딜러라는 사람이 없다면 어떨까? 중고차를 팔려는 사람은 살려는 사람을 직접 찾아다녀야 할 것이다. 만약 당장 사야 하는 사람이 없고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면 가격을 낮춰서라도 팔게 될 것이다. 유동성이 낮아진 것이다. 과거에 마켓 메이커가 없을 때에는 주식을 사기가 쉽지 않았다. 애플 주식 20주를 사기 위해서는 파는 사람을 찾아다녀야 했고 그 파는 사람이 정확히 20주를 팔길 원해야 했다. 만약 판매자가 15주만 팔길 원한다면 5주를 파는 사람을 다시 찾아야 했다. 급하게 사려면 가격을 높여야 했고, 대부분 전문 중개인이 대행해서 매매를 해서 수수료가 비쌌다.
마켓 메이커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특정 주식을 사려고 하든 팔려고 하든 언제든지 원하는 양만큼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유동성의 증가는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의 차이를 줄여줘서 예전에 1달러씩 하던 스프레드가 최근에는 0.01 센트까지 줄어들었다.
마켓 메이킹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중개 무역 전략이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하는지 하락하는지와는 큰 상관없이 수익을 얻는다. 대신 거래량이 많을수록 수익이 늘어나게 된다. 물론 무작정 거래량이 늘어나서 수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 사는 거래와 파는 거래가 균형 있게 성사되어야지 그 차액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매수 거래만 계속 성사되기만 하고 매도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재고가 점점 쌓여서 재고 리스크에 빠지게 된다. 재고가 쌓인 상태에서 갑자기 가격이 폭락하게 되면 그동안 열심히 벌은 차액들의 몇 배를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마켓 메이커의 가장 큰 도전은 이 재고를 최대한 적게 유지하면서 거래량을 늘리는 것이다.
이런 재고를 관리하는 방법 또한 일상생활에서의 무역 업자들과 비슷하다. 만약 지나치게 많이 사서 재고가 쌓이게 된다면 사는 가격을 낮춰서 싸게 매입을 하기 시작한다. 만약에 재고가 쌓였고 가격이 움직일 것 같은 위험을 우려한다면 파는 가격을 낮춰서 마진은 낮지만 더 잘 팔리도록 만들 수도 있다. 가격이 너무 심하게 움직이는 물건이나 거래량이 적어서 재고가 남을 위험이 있는 물건은 괜히 마진을 적게 남기다가 오히려 가격 변동 때문에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의 차이를 크게 해서 마진을 많이 남긴다. 그래야 가격이 많이 움직여도 큰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트레이더의 선택에 따라 재고를 일부러 쌓는 방향으로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고객이 급하진 않지만 금을 어느 정도 매입을 하고 싶어 하면 일부러 사는 가격을 약간 더 비싸게 책정해서 조금씩 재고가 쌓여가는 방향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트레이더가 큰 투자를 하고 싶진 않지만 금의 가격이 상승하는 방향일 거라고 예측을 한다면 재고를 쌓이는 방향으로 파는 가격을 높여서 잘 안 팔리도록 하면서 사는 거래만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유동성이 부족하던 과거에는 거래량도 적고 일일이 사람이 거래를 하여서 마진이 굉장히 컸다. 시장이 오르던 내리던 꾸준한 마진을 벌 수 있는 마켓 메이킹 전략은 굉장한 인기였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트레이더들이 마켓 메이킹에 참여하게 되면서 경쟁이 심화되었고, 거래가 자동화되고 심지어 1초에 수만 번씩 가격을 조정하는 초단타매매로 거래량이 늘면서 유동성이 대폭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 덕분에 마진은 점점 줄어들게 되고 스프레드는 낮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마켓 메이킹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점차 치열해지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더 좋은 가격'을 '더 빠르게' 제공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더 좋은 가격이, 같은 가격이면 먼저 주문을 낸 사람에게 주문이 체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유동성을 제공하는 마켓 메이킹과 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트레이더도 있는 반면, 유동성을 소모하는 소비자 역할을 하는 트레이더도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불법적이지 않은) 트레이더들은 다양한 원인에 의한 가격의 불균형을 찾아서 이를 포착하고 수익을 얻는 방식을 보인다. 재미있게도 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불균형을 찾아서 수익을 지속적으로 얻으면서 안정적인 시장 형성에 기여를 하게 된다. 만약에 주로 기업 가치에 투자를 하는 투자자만 시장에 존재한다면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 차이가 커질 뿐만 아니라 작은 뉴스나 잘못된 정보, 혹은 집단 움직임으로 가격이 심하게 요동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론 트레이더끼리 끊임없이 기회를 찾고 경쟁하면서 결국 엇나간 가격이나 시장 사이의 괴리도 금방 돌아오게 된다. 과거에는 이러한 괴리나 불균형이 자주 발생하였고 경쟁도 덜해서 쉽게 큰 마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자동화된 프로그램과 끊임없이 가격을 최적화시키는 시스템의 등장으로 아주 미세한 수익을 최대한 많이 얻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무역 시장의 FTA나 관세처럼 이러한 트레이딩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에 대한 논의가 나오면서도 섣불리 강한 규제를 했다가는 시장의 유동성이 오히려 떨어지고 가격이 요동치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트레이더의 모습은 한방거리를 찾아서 베팅을 하는 도박사보다는 끊임없이 장사를 할 만한 아이템을 찾는 무역상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같은 Trader가 아닐까? 예전에는 인도의 향신료와 후추를 영국에 가져오면 떼돈을 벌었고 최근까지만 해도 유럽 명품을 한국에 가져오기만 해도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과 인터넷, 직구 등이 생기면서 무역도 점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트레이딩도 마찬가지다. 세계 곳곳의 시장에서 쉽게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가격도 평준화가 되어가고 불균형은 줄어들고 있다. 물론 그래도 시장은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다. 새로운 불균형을 찾아서 해소시키며 수익을 얻는 것이 트레이더들의 숙제일 것이다.
할머니, 저는 괜찮습니다.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