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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욱 Aug 23. 2019

인터뷰로 나를 들여다보기-2

2시간 44분동안 신나게 떠든 날의 기록

권태욱의 삶


어린이 권태욱은 어떤 아이였어?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 부모님이 아낌없이 다해주려고 했었고, 똘똘했어.

 

아까도 잠깐 이야기가 나왔지만, 부모님이 잘 지원해주시려는 편인가 봐.

엄마가 어렸을 때 공부도 잘하고 싶었고, 대학도 가고 싶었고 그랬는데 그 시절에 아들들만 대학 보내고 그런 게 있었잖아. 엄마도 공부 잘하고 똘똘했는데, 그런 아쉬움이 크다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나한테 아낌없이 투자해주려고 하셔. 근데 엄마도 이제 몇 번 투자를 하니까 리턴이 오는 걸 알고 있는 거 같아. 그래서 해주시는 거 같아.

 

영화전공으로 대학을 진학했어. 전공을 선택한 배경이 궁금해.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영어를 정말 좋아해서 외고를 갔어. 취미로 방송반 활동을 했는데 그때부터 내 인생이 잘못되기 시작했어. 헛바람 들어가지고. 영상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재밌었냐면 찍는 것보다 촬영된 것을 컴퓨터에 얹어서 자막을 예쁘게 얹고 그런 게 재밌었던 거 같아. 돌이켜보면 이때가 디자인에 관심 갖는 간접적인 계기가 아닌가 싶어.

 

대학 들어와서 한 학년을 보내고 나니 어땠어?

1학년 때는 진짜 재밌었어. 신입생이 되어서 대학생이라는 게 너무 좋았어. 밤새도록 술 먹는게 일상이었어. 2학년부터 암흑이 드리워오기 시작했지. 내가 문학 쪽이랑 친하지 않은 거 같아. 영화전공에서 해야 하는 건 시나리오 쓰고 허구의 픽션을 만들고 그걸 잘해야 했는데 그 피지컬이 너무 딸리는 거야. 영화하는 사람이 본질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인데, 이것을 승부수를 던질 수 없겠다. 그러다 자리 잡은 게 모션 그래픽이야. 그때 배워놨던 것들이 지금 잘 쓰이는 거 같아.

 

영화학과에서 가장 크게 배웠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뭐야?

고생하면서 배운 것들? 이런 것들이 좀 떠오르네. 약간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많았어. 돈은 없는데 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 그런 상황들이 너무 괴로워서 이건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 남들에게 피해 주는 일이 너무 많아.
   

예를 들면?

촬영장 알바를 나가보면, 별로 행복하지가 않았어. 나랑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 이건 정말 순전히 나의 느낌인데, 권위적이고 딱딱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 군대 다시 온 것 같은 느낌. 포지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는 남자들이 많은 팀에서 일을 했었고 젠더 의식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상황들을 종종 겪었던 것 같아. 그래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고.

 

그럼 전공과 별개로 대학에서 크게 배웠다고 생각하는 점은 뭐야?

사람은 서울로 와야겠구나. 나같이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서울로 와야 해. 경험할 수 있는 폭의 넓이가 비교가 안돼. 당장 할 수 있는 문화생활 수준부터가 달라. 진부한 얘기지만 많이 해봐야 하구나.

 

왓챠 인턴을 마치고 유럽 한 달 살기를 했어. 어떻게 가게 된 거야?

한 달 살기를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었어. 인턴 하면서 매달 적금 50만 원씩 들었어. 시작할 때 아예 못을 박고 했었고, 포르투인 이유는 나는 관광지스러운 여행을 싫어한다는 걸 일본 여행 갔다가 느꼈어. 비행기 타고 왔는데 왜 홍대로 온 거 같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 골목골목 사람 없는데 로컬들만 살 거 같은 동네를 가고 싶었어. 관광지에서 무조건 벗어나자. 특별한 볼거리가 정해져 있는 데를 가면 그걸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같고. 포루투는 내가 좋아하는 합정동, 망원동 이런 느낌이 많이 있다고 하고. 서유럽보다 물가가 싼 편이어서 그런 것도 고려를 했지.

 

진짜 좋았겠다.

돌아와서 힘들 때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거 같아. 제일 많이 남은 거는 온전히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것. 돈 걱정도 없고 누가 뭐라고 시키는 것도 없고 내 맘대로 살았거든. 그러고 나니까 좀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거에 반응하고 내 취향을 뭔지 이런 것들을 좀 알게 되었어.

 

또 한 달 살기를 하고 싶은 곳이 있어?

포르투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그냥 다 좋았어. 당장 걸어서 나가면 큰 강가에 다리 있고 집 뒤로 강가 끼고 달릴 수 있는 러닝 트랙이 있고, 20분만 나가면 바다 있고. 물가 싸지. 날씨도 극단적이지 않지. 여기서 직장 구할까 이런 생각도 했어.

 

잘 먹고, 잘 놀고. 잘 벌기. 여기서 잘 논다는 게 뭐야?

제일 바로 떠오르는 건 내 취향의 것들이 많이 주변에 쌓여있는 것. 좋아서 내 몸이 반응하는 것들.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도 있고, 작업을 하면서 느낄 수 있고.

 

책도 많이 읽고, 기록을 많이 하잖아. 좋은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노는 일이야?

노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한 번도 안 해본 생각인데. 그리고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 않아.

 

영화학과라서 한 번쯤 질문하고 싶었어. 무슨 영화 좋아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느 정도의 경향성은 있어. 플롯이 복잡하고 인물이 복잡하고 이런 거 말고 단순하게 딱 떨어지고 바로 이해되는 영화가 좋아. 예를 들면, 음악 영화 싱 스트리트, 비긴 어게인 이런 거. 영화 전공이 좋아하는 영화 물어보면 형이상학적이고, 한 번도 안 들어봤고 그런 영화들 말할 거 같은데 난 그런 거 잘 몰라. (웃음) 철학적이고 그런 영화 별로 안 좋아해.

 

좋아하는 공간에는 꾸준히 가는 것 같아. 어떤 공간을 좋아해?

천장이 높아야 하고, 볕이 잘 들어야 하고, 테이블 간격이 있어야 하고, 적당한 인구밀도여야 하고. (웃음) 내 주변에 그런데 잘 아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랑 어디 가지 얘기하면 나 너무 까다롭다고 그래. 그리고 운영하는 사람이 뭔가 약간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에 나오는 것처럼 이야기가 배어있으면 좋고. 이유 있는 무언가가 있고, 꾸준함이 배어있는 공간을 좋아하는 거 같아.

*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 임태수 ㅣ브랜드 기획자 임태수 씨가 제주의 좋은 브랜드 8가지와 그 공통점을 소개한 책

 

가방 속엔 항상 뭘 넣고 다녀.

보통은 맥북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고, 보성녹차, 필통, 몰스킨 노트, 책.

 

정보력이 좋잖아. 인플루언서들을 많이 팔로우하고 있더라고.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마케팅 시작하면서 그렇게 된 것도 있고, 모든지 흡수해야겠다는 생각? 그런 욕구가 있는 거 같아. 그중에서도 올라올 때마다 훅훅 박히는 채널은 생각노트. 이분은 올라오면 올라오는 족족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생각하는 거 같아.

 

롤모델이나 존경하는 분이 있어? 영향을 많이 받는 분.

디자인 쪽에서는 아까 말했던 배민 다니는 차태현 형. 지금 내가 디자인을 하기까지 많은 영향을 줬던 사람이야. 그리고 우리 아빠. 너무 식상한 얘기인데 일을 해보니까 몸으로 와 닿는 거야. 회사 한 번도 안 옮기고 같은 회사에서 정년 다 되어가지고 끝까지 살아남는 거 보면 존경할만하지. 도저히 못할 거 같은데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아빠 덕분에 등록금을 하나도 안 내고 대학을 다녔어. 졸업하면 빚이 없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인스타그램, 브런치, 메모장. 기록을 많이 하시는 편이잖아, Supertinysmall이라는 인스타 부계정도 있던데. 왜 그렇게 기록을 하는 거야?

안 써놓으면 날아가니까.

 

다시 쓴 거를 많이 봐?

브런치 같은 경우는 좀 보는 편이야. 내가 성취한 것들에서 자존감을 찾는 편인데, 그런 게 글에서 나오니까. 전엔 이랬고 지금은 이랬고, 나아가고 있는 걸 보는 게 나 스스로의 원천이 되는 거 같아.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능숙하다고 느꼈어. 인스타에 쓰는 글도 그렇고, 본인 노션 페이지를 만든다던가, 브런치를 쓴다던가. 팟캐스트도 녹음했던데.

남들 시선을 의식은 하는데 그냥 그렇게 뿌려도 부끄러움이 없게끔 만들자? 무슨 말인지 나도 잘 모르겠네. 나를 잘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중을 위한 연습의 과정이라고 생각해. 나를 포장을 해놔야 프리랜서로 일할 때 필요할 일이 있을거고. 퍼스널 브랜딩 하는 것에 대해서 피티 동아리 하면서 알았어. 그때부터 나를 잘 파는 거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어. 디자인 쪽에 그렇게 잘 파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그러는 것 같아. 이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

 

진짜 열심히 살잖아. 그 원동력이 어디서 나와?

내가 어딘가에서 쓸모가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걸 확인하는 것에서. 그래서 회사에서 제일 괴로웠던 순간이 언제냐면 내가 일을 못하는거 같을 때야. 내가 잘하고 있다는걸 상기시키고, 나는 잘할 수 있는 사람이고 괜찮은 사람이라는게 내 자존감을 받쳐주는 근원인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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