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척을 진 디자이너 지망생의 영화 이야기
재작년 군 복무 시절의 내 생각. 그 때도 여전히 영화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당시에 이렇게 글로 정리해둔 생각 덕분인지.
지금 어느정도 나는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6년 3월 13일 오전 9:16분. 원래 지금 이시간에 예정대로라면 나는 2주 뒤에 있을 OPIC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뜬금없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참으로 우연적거니와, 글을 쓰려는 시도 자체가 굉장히 오랜만이다. 어쨌든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학교 동기 누나의 블로그에 우연히 들어가게 됐다. ‘취미는 카톡 캡쳐’라는 게시판이 눈에 띄었다(그리고 가을방학의 노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그 곳에는 그 누나의 주변사람들과 카톡으로 나눈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영화 얘기, 사람 사는 얘기, 남자 얘기 등등. 시시콜콜한 것들 부터, 꽤나 무거운 이야기들까지 무게감의 정도가 다양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카톡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읽게 됐다. 별 것 아닌것 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천천히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굉장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됐는데, 대부분의 생각들은 ‘내가 영화과를 떠나지 않은 이유’로 귀결된다.
내면의 만족
1. 영화를 만들게되면 필연적으로 나에 대한 고민을 많이하게 된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백지를 눈 앞에 두고 있으면 자연스레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주변에 비교적 생각에 깊이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 환경에 놓이게 된다. 나는 그게 좋다. 왜냐면 내 스스로가 진중하고 고민이 많은 타입이기 때문이다.
2.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인이 만든 영화에는 본인 자신의 모습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직접 영화를 만들고 그것들을 자의로든, 타의로든 여러 곳에 오픈하는 과정에서 나의 민낯을 사람들에게 까발리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것은 무언가를 만드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 꽤나 중요한 덕목이자 배짱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배짱을 키울 수 있다.
3. 학과 공부를 하다보면 어떤 특정한 정답이 없을 때가 많다. 다양한 이유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respect 해주는 느낌이다. 나 다운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존중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
기능적 측면
1.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을 얻게된다. 이러한 경험은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조직 내에서 전방위적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굉장히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보통 머릿 속에 있는 생각을 현실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다 기능적인 관점에서 얘기하자면, 학과 공부를 통해 촬영 및 연출 능력을 배양할 수 있고, 영화에 각종 시각효과(모션그래픽 및 VFX)들을 곁들이면서 실제로 내가 관심있는 분야와의 접점도 찾을 수 있다.
2. 이야기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잘 짜는 능력은 내가 몸담고자 하는 creative marketing & design (내가 하고 싶은 분야를 정확하게 콕 집어 뭐라고 얘기하기 애매해서, 모 회사의 팀 이름을 그대로 갖고옴) 분야에서 꽤나 환영받는 역량일 것이다. 같은 컨텐츠라도 스토리로 감싼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3. 결과적으로 잘만 공부한다면, 영화전공을 통해 촬영/연출 및 스토리텔링 역량을 동시에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더 관심이 있고, 배우고싶은 시각디자인에 대한 부분은 외부 아카데미나 스터디를 통해 개인적으로 채워나가는 방향으로 진행중이며,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림은 학교에서 얻은 역량들과 학원/스터디를 통해 배운 것들이 조화롭게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흔히들 영화에는 갈등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영화과를 선택한 것이 나에게 끊임없는 갈등을 안겨주었다. 왜냐면 아직까지도 내가 영화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과에 몸담고 있지만 영화가 아직까지도 많이 낯설다. 단적으로 얘기해서, 살면서 본 영화의 편수도 많이 부족하고(아마 영화를 좋아하는 비전공자들보다 적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동기들에 비해 영화라는 분야 속에서의 내 생각의 깊이감이나 중심이 부실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시각디자인이나 모션그래픽쪽이 영화보다 좋은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분야에 빼어나게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더 한건 자꾸 이것도 하고싶고, 저것도 하고싶고 관심있는 분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에도 마음을 못두고 방황하는 이방인같은 심정이다. 불안하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으로 부터 약 2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내 속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언젠가는 해야할 일이었는데 어느정도 정리가 된 것 같아 후련하다. 학교로 돌아가기까지 약 1년정도 남았지만, 남은 시간동안 차근히 잘 준비해서 지난 4학기때보다는 좀 더 정체성이 뚜렷하고, 성장한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이어나가고 싶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