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척을 진 디자이너 지망생의 영화 리뷰
형체가 잘 보이지 않는 묵직하고 복잡한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그 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하기가 참 어려웠다. 영화를 두 번 봤다. 그제서야 점점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듯 했다. 파편화된 조각들이 보이긴 하는데, 그 생각들이 잘 연결되지는 않는다. 죽음이라는 것. 누구나 맞이해야만 하는 것이지만, 당장 내 눈앞에 다가왔음을 상상하면 두려움과 낯섦이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것이니까, 누구나 다 비슷한 생각들을 하지 않을까.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는 것이라면, 지금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인가?’ 영화의 초-중반부까지 들었던 가장 굵직한 물음이다. 지난 1학기 중간고사 기간 무렵에, 숙모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그 때, 살면서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했다. 영안실에서 관을 직접 들어 추모 공원으로 옮기고,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가 가루가 되어 근처 산에 묻혀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눈으로 보았다. 죽음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한창 영화 준비를 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시나리오에서 ‘아버지의 죽음’ 이라는 소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쓴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쓴 시나리오가 너무 미워졌다. 모든게 끝나면 재로 남을 것, 애쓰면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아둥바둥하는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고 있는 내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다. 하고 싶지 않은 것 다 덮어두고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대로 가는 것이 정답일까.
영화의 후반부가 지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에는 허무함이 가득찼던 초반부의 내 감정상태와는 다르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에너지가 끓어올랐다. 변곡점이 무엇이었을까. 암과 싸울 것인지, 남은 생의 삶의 질을 생각할 것인지의 갈래 길 앞에 놓여진 박수명씨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아가는 것은 곧 현재에 충실한다는 말로도 치환될 수 있다. 나에게 내일이 없다면, 과연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찾게 될 것이다. 그렇게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진심으로 매 순간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학기와 이번 학기 수업에서 공히 한 번씩 언급 되었던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어떻게 컨트롤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강약조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 수학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다. 두려움, 슬픔, 공포의 감정이 서로 섞여 회오리 치고 있을 때, 수학 선생님의 모습은 픽 웃으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필연적으로 감독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속에서, 감독이 관찰하고 있는 죽음이라는 대상을 어느정도 객관화해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것이 종교와 맞닿아있는 것 아닐까.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고 버거워하기 때문에,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내려 놓도록 하기 위해 종교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다큐멘터리 워크샵 작업 때문에, 종교에 대한 고민이 많다. 이번 주말에는 교회에 한 번 다녀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