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 달째, 매일 같이 계란볶음밥과 파스타 만들기를 시도해보고 있다. 너무 재밌다. 볶음밥 한쪽에는 설탕을, 한쪽에는 파마산 치즈를, 또 한 켠에는 다시다를 뿌려서 A/B/C 테스트를 해보기도 한다.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서로 맛이 어떻게 다른지 미세하게 느껴보는 건 참 재밌는 놀이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다뤄내느냐에 따라 음식은 미세한 맛의 차이를 낸다. 그래서 요리가 타이포그래피와도 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된 글자꼴을 의도에 맞게 선택하고 배치하는 전문적인 양식 및 기법
(출처: 디자인학교 타이포그래피1 교재)
각각의 재료들에는 맛의 위계가 있다. 맛이 강한 재료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위계를 잘 세워서 재료를 멋지게 섞으면 음식에서 여러 가지 맛의 레이어가 생겨난다. 반대로 강한 향이 나는 재료를 잘못 쓰면, 애써 세워둔 맛의 레이어가 모두 무너져버리기도 한다. 적절한 서체를 선택하고, 내용 간의 위계를 잘 설정하는 것. 글자 사이 와 글줄 사이를 미세하게 조절하면서 읽기 편한 문단을 만들어나가는 타이포그래피 작업이랑 닮았잖아! (무릎을 탁 친다)
요즘 들어 요리가 내 취미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단 걸 느낀다. 프로덕트 디자인 한 길만 팔 거야!라는 생각으로 온몸을 던졌다가, 막상 업이 되면서 화면 만드는게 싫어지는 날이 온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그럴 때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는 건 꽤나 큰 위안이 될 것 같다. 그게 또 다시 나의 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당연히 미슐랭 스타급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나올법한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진 못할 거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다찌 테이블로 채워진 골목길 조그만 선술집 사장님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후자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행복하기 때문) 내 취향과 정체성을 오롯이 녹여내고, 하루에 내가 해낼 수 있는 만큼만, 정성스럽게 한 그릇 대접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물론 이것도 똑같이 매일의 삶이 되고 현실이 된다면 또 괴로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나가게 될까?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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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에요.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분야가 없어진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얼마나 허전할까요. 흥미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항상 찾으려고 노력하고 제 내면에 귀를 기울입니다.『JOBS - CHEF (잡스 - 셰프)』中
2020.02.07(금) 연희동 책바에서.
사장님이 내어주신 2인석에 앉아서 쓴 일기를 재구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