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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Sep 20. 2019

 길을 잃더라도 울지 말고 잘 다녀오세요

 영국여행 . 런던 도착하기 전에  닥친 두 가지 위기

  “길을 잃더라도 울지 말고 잘 다녀오세요.”

    

  영국 여행 경험이 있는 지영의 말을 듣고도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지영은 함께 책을 읽고 글 쓰는 모임의 리더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문제가 발생하면 물어서 해결하면 되지.’ 생각하며 막연히 낙관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여행 전날 밤, 그동안 담담하게 준비하던 마음 자세는 간 데 없었다. 그 즈음 텔레비전 여러 채널에서 외국 여행 중 발생하는 날치기나 테러 사건 따위를 다루는 방송이 눈에 들어왔다. 설렘이 있어야 할 마음 자리를 일순간 두려움이 차지하였다. 마치 시험 전날까지 의연한 척했으나 시험 당일 떠는 학생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유여행인데 빠트린 물건은 없나,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어쩌지, 하는 잡념들이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횟수가 많아졌다. 급기야 런던 뒷골목에서 영국 건달을 만나 겁에 질려 마주해야 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 때문에 잠을 설쳤다.   

 

  해외 패키지여행만을 다녀오길 여러 차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자유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순전히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영어를 잘하는 친한 동생(이하 ‘화연’)이 자유여행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이직하고 싶은 샐러리맨이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회사의 헤드헌터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 이것이 아닐까. 그만큼 해외 자유여행은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흔쾌히 가기로 했다. 여행 떠나기 4개월 전이었다. 화연은 내가 설렘으로만 무장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도시에 가면 너무 멀어서 못 올 수도 있어. 거기서 살아야 할 수도 있으니 런던에서 가까운 데를 가자.”  

  

  여행은 다시 돌아오기 위하여 떠난다고 하는 이야기를 어떤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영국은 잠시 다녀오려는 여행지이지 살 곳은 아니다. 내가 평생 살아야 할 곳은 대한민국이다.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기필코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타국에서 길을 헤매고 떠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떠올리고는 작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런던을 중심으로 여행 코스를 짰다. 그래 놓고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런던은 치안이 잘 되어 있고 영국의 수도 아닌가. 아침에 런던 시가지와 런던 인근 다른 도시를 여행하고 그날 안으로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하루하루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숙소를 한 도시로 정하면 여행 기간 동안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밀고 작은 보조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며 이동하지 않아도 되니까.   

  

  준비 과정부터 여행은 벌써 시작되는 것이라고 여행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준비할 것이 있으면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밤늦게까지 상의를 가장한 수다를 떨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통화의 시작은 영국의 여행지를 정하는 문제인데, 어느 순간 대화 주제가 샛길로 빠져 버린다. 많은 돈을 내고 극장에 가서 뮤지컬을 본 친구 S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것도 작품이냐며 한숨을 쉬고 하품을 하다가 20분도 못 되어 극장을 탈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늦은 밤, 길을 헤매고 있는 초췌한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킬킬거리고 웃는다.     


  우리는 가벼운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약간’이라고 썼지만 ‘심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화연은 영국의 두 번째 대표 도시인 요크를 꼭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는 런던을 중심으로 요크와 캠브리지, 옥스퍼드, 코츠월드, 브라이튼 등을 여행 계획에 넣었다.    


  항공권과 숙박할 곳을 미리 예약하였다. 다른 것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를 물어가며 해결하자 했다. 그리고 무조건 ‘여유 있게’ 다녀오자고 하였다. 여유 있는 자유여행, 생각만 해도 좋았다. 실은 내가 꿈꾸고 꿈꾸던 여행이다!    


  직장 일에 치여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나브로 출발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막상 출국 날짜가 임박하니 준비할 것이 많았다. 출발 1주일 전부터 거실에 캐리어를 내어 놓고 준비물이 생각날 때마다 수첩에 써 놓고 한 가지씩 채우기 시작했다.   

  

  해결해야 할 두 가지 과제가 생겼다. 첫 번째는 숙소였다. 예약한 곳에서 메일이 왔는데 다른 호텔에 예약한 것으로 온 것이다. 방 두 개를 예약했는데 하나는 아예 예약이 되지도 않았다. 자세한 것을 알아보려면 국제 전화를 하라고 하였다. 애를 태우며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카드 회사를 통해 예약한 날짜에 현지를 가서야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였다. 현지 사이트에 예약한 경우 간혹 생기는 문제라는 것을 여행을 다녀오고야 알았다.  

   

  두 번째는 유심 칩.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알아보니, 유심 칩을 구매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도착지 해당 공항에서 구매하면 된다는 것이다. 공항 유심 칩 판매 회사 직원이 끼워주고 개통하는 일까지 처리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칩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나는 공항에서 구입했으면 했는데 화연의 의견을 따라 인터넷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휴대폰을 편하게 개통한다는 것은 자유여행이라는 우리의 의도에 맞지 않다며 화연이 나를 설득했다. 막상 칩에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현지에서 구매할 수 있으니 한국에서 구매하여 가자는 것이었다. 이 일은 내가 맡기로 했다. 숙소와 항공권을 화연이 예약하였기에 이것만이라도 내가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여행 기간 필요한 용량을 가늠해 보고, 유심 칩을 사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검색해 보았다. 상품 정보를 꼼꼼히 읽어보고 가장 적합한 것으로 주문했다. 이틀 만에 도착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쓸 줄만 알았지 구조나 작동 시스템을 잘 모른다. 대리점에서 개통하고 나면 배터리가 나가기 전 충전하면서 쓸 줄만 안다. 그래서 휴대폰 가게를 방문해서 유심 칩의 용도를 정확히 알아보았고, 사용법과 교체하는 법을 배웠다.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하므로 넉넉한 크기의 SD카드도 샀다.   

 

  외국 여행 정보를 얻으려고 가입한 카페에서 영국 여행에 관한 게시 글을 보았다. 8월 중순경 영국 날씨에 대해 상반되는 내용의 글들을 볼 수 있었다. 너무 추워서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잤는데 그래도 추웠다는 여행자의 글도 있었고, 너무 더워서 반팔을 입고 여행했다는 사람의 글도 있었다. 여름 옷부터 초겨울 옷까지 챙겨야 할 것 같았다. 화연과 숱하게 전화로 상의하고 조율하였고, 종종거리며 여행 가방을 쌌다. 여행 가방 꾸리는 일부터 이리 종종거렸으니 기실 여유 있는 여행은 시작부터 아니게 되었다. 그래도 좋았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기대가 충만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일을 다 해결했으므로 그래도 가방을 꾸리는 이틀 동안은 그럭저럭 조급한 마음은 덜어낼 수 있었다. 그 이틀도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하며 결정을 못 내리는 동안 휘리릭 지나갔다.  

  

  비행기 출국 시각은 오후 1시 30분. 출국일 잠을 이루지 못하다 오전 4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7시 10분 버스를 타려면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전라북도 군산이다.        

                     


* 여행에 도움을 준 사람들


  동행자 화연(많은 만남과 전화 통화), 농협 직원(환전), 휴대폰 대리점 점장, 유심 칩 판매 사이트 직원(전화), 남편(운전과 용돈), 내 아들·딸과 지인들(격려), 무거운 캐리어를 내려주신 버스 기사


* 여행 준비물


  우산, 선글라스, 여행용 전기 쿠커, 멀티탭, 어댑터, 셀카봉, 보조 배터리 2개, 휴대용 자판, 비상 약품, 세면도구, 간절기에 입는 플라워 프린트 원피스 2개, 바지 3개(검은색, 흰색, 청색), 얇고 긴 셔츠 2개, 짧은 셔츠 1개, 경량 패딩 1개, 정장 재킷 2개(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 시), 점퍼 1개, 카디건 1개, 모자 1개, 컵라면 10개, 누룽지 꾸러미 1개, 매실 장아찌 조금, 김치 캔 4개, 화장 도구, 마스크 팩(피곤한 날 사용), (옷 한 벌 정도 넣을 수 있는)소형 가방, 크로스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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