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마 Dec 04. 2019

독골 아주머니 이야기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


     

토요일, 전날 직장 행사로 인하여 종일 시내를 누빈 탓인지 무척 피곤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미뤄둔 집안일을 조금 한 뒤 책을 펴들었으나 채 한 쪽도 못 읽고 소르르 낮잠을 잤다. 남편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두세 시간이 지났다. 잠잔 것도 효과 없이 몸이 계속 욱신욱신 쑤셨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기분 전환 겸 남편과 드라이브 삼아 나선 곳은 시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이었다. 요양원은 시댁 동네 인근에 있다. 여기에서 열대여섯 분의 어르신이 생활하신다. 남편 어릴 적 친구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 이웃 분들이 함께 계셔서 어떤 땐 마을 경로당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시설에 들어서면서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어머니가 계시는 방으로 간다. 남편은 어머니 손발톱을 깎아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니가 그동안 활동한 학습지 파일을 구경하며 나는 감탄을 한다. 남편은 어머니 걷기 운동을 도와 드리고 간식을 가져간 날이면 시설 식구들과 나눠 먹는다. 식구들과 사진을 찍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원장님과 상담을 하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이번에는 다르게 흘러갔다. 어머니가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돋보기안경을 찾으러 남편이 시댁에 갔다. 그 틈에 나는 평소 말씀이 거의 없으신 어머니와 아픈 곳이며 식사량, 불편한 점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방을 쓰시는 옆 침대의 독골 어르신과 그 어르신의 지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흐뭇한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 아주머니와 얘기를 하게 되었다.

  

아흔이 훌쩍 넘으신 독골 어르신과는 같은 동네 이웃이었단다. 뽀글머리 스타일에 안경을 쓰신 그분은 말씀을 참 쾌활하게 하신다. 다른 어르신보다 허리도 짱짱하고 건강해 보인다. 연세를 물으니 역시 내 생각과 같이 요양원에서는 젊은 축에 끼는 여든 살이시다. 처녀 적 경상도 청도에서 남편을 만나 혼인하여 살았다. 이곳이 살기가 더 좋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이사를 왔다고 하신다. 노름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서 고생을 진탕하였단다.

     

  “힘드셨겠어요. 아이들 다섯 키우랴 농사일 하랴.”

  “긍게……. 바깥양반이 속 썩여서 더 심들었제. 어느 날 이 양반이 돈을 가지고 없어졌어. 고추 판 돈을 서랍에 넣어 두었는디 딸이랑 일하고 오니께 돈이 없는기라. 그서 또 노름하러 갔는갑다 허고 동네를 뒤졌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떤 집에서 노름을 하고 있잖어. 고추 판 돈은 벌씨 잃어버리고 말이여. 신발을 가지고 그 집 문지방을 탕탕 두들겼제. 그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집이 들썩들썩 하데. 내가 그렸어. 누구라도 이 양반에게 돈을 빌려주면 못 받을 줄 알더라고. 우리 집구석 돈은 내를 통해서 나간께. 뒷돈 대주면 못 받을 줄 알랑께. 그렸더니 아무도 빌려주지 않더라고. 그 다음부턴 노름을 끊었제.”


아주머니는 눈에 힘을 주며 그 일이 엊그제 일어난 일인 양 생생하게 하소연하듯 말하였다.  “잘 하셨어요. 그렇게라도 해서 아저씨가 그걸 끊어서 다행이네요.”

아주머니 심정이 이해가 가서 맞장구를 치며 편을 들어 주었다.

     

아주머니는 계속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딸 셋에 아들 둘을 낳았어. 다른 자식들은 다 똑똑헌디 큰 아는 낳아서 보니께 바보드라고. 근데다 남편이 골골하더만 일찍 저승으로 떠났제. 자식들 키우니라고 엄청 고생혔어.”

  “울 시아버님도 일찍 돌아가셨는데……. 울 어머니도 고생 참 많이 하셨어요.”

  “난 혼자 살아도 괜찮어. 큰 아랑 살다 자식들 김치 담가주고 일 좀 해주다 본께 일이 끊이질 않아서 쫌 편히 살라고 여그 들어왔어.”

  “큰아드님은 어디 계신가요.”

  “익산 쪽에 있는데 딸이 간식도 잘 넣고 그런댜. 내가 차가 없응께 못 가봐서 애가 타는구만. 두 달을 못 봤네. 아들이 한번 내려와야 내가 거기 가서, 니 엄니 잘 산다, 니도 잘 살제? 그런 말이라도 헐 틴디……. 둘째아들은 지금 성남에 사는디 여그서 중핵교 다니다 서울로 가서 남의 문방구에서 계속 일했어. 맨날 밤낮으로 책만 끼고 읽었는디. 사람들이 다 똑똑허다고 혔네. 자석을 서이나 낳아서 지금 뭣이냐 무슨 문방구라고 혔는디, 암튼 잘 살고 있어. 딸들도 잘 살고 있고. 지금도 꼭 자석들 생일날에 촛불 키고 정화수 떠놓고 빌고 있어. 자석들, 손주들 모두 건강허라고. 건강허면 살 수 있응께. 해를 봐도 빌고, 나무를 봐도 빌고, 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하늘 보고 빌기부터 허고 하루를 시작혀. 건강혀라, 아무 일 없이 건강혀라. 부모 마음이 그렇더만. 뭐를 봐도 빌게 되야.”

     

새로 오신 젊은 독골 아주머니의 책 한 권 쯤 되는 인생 얘기를 듣고 있는데 시골집에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어머니 안경 찾으러 가서 집안일까지 하고 오느라 1시간 가까이 시간이 지났다. 독골 어르신이 남편을 보고 “형님 막내아들이 효자여. 오면 손톱 발톱 깎아주고 사진 찍어주고 여기 갔다 저기 갔다 부지런도 허지.” 아까 한 말을 반복해서 노래하듯이 말씀하신다. 귀도 어두운 아흔이 넘으신 분이 한쪽 눈까지 감으며 말씀하시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반쯤 마시다 만 바나나 우유를 나에게 먹으라고 한다. 마치 새 우유라도 되는 듯이. “밥도 안 먹었쟈? 저 우유라도 마시그라. 서랍에서 과자도 꺼내 먹고.” 본인이 마시다 만 우유를 나에게 먹으라는 어머니가 이해가 안 되어 괜찮다는 말만 했다. 알 것 같다. 뭐라도 자식들 먹이려는 마음. 그래도 자꾸 권하시길래 농담 겸 웃음으로 대답한다. “어머니 저는 누가 마시다 만 우유는 안 마셔용~ ㅎ”

     

어르신들 언어가 이해가 되고 재미가 있다.  어느 유려한 강연보다 더 생생한 감동을 안겨준다. 어르신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살아온 인생이 절절하고 애달프고 또 간절하고 아름답다. 굽이굽이 모진 인생의 풍파를 헤쳐 오신 어르신들 남은 인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