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모락모락 식욕을 자극하는 붉은 색깔. 거기다 쫄깃쫄깃 기다란 면발의 식감에 달짝지근 고소한 팥의 맛. 여기까지 들으면 모두들 무슨 음식인지 감이 올 것이다. 갓 만든 배추겉절이를 척 걸쳐먹거나 동치미의 무와 같이 먹으면 더 좋다. 바로 팥칼국수다.
누구나 저마다 힘들 때 떠올리는 음식이 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날씨가 우중충한 날. 마음이 허전해오거나 기분이 꿀꿀할 때 난 팥칼국수를 찾는다. 또 몸이 좋지 않을 때도 찾아간다.
몇 년전 나는 피로에 쌓여 방광염을 앓았다. 치료를 하고 약을 먹으면 좀 좋아지다가 또 안 좋아지고 하길 여러 차례. 몸은 축 쳐지고 일은 해야겠는데 의욕도 몸도 뒷받침을 해주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퇴근길에 팥칼국수 집에 갔다. 혼자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약간 뻘쭘했던 기억이 있다. 처음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은 둘, 셋씩 마주앉아 얘기를 하며 음식을 먹거나 기다리는 중이다. 거기에 아는 부부도 만났다.
혼자 앉아 팥칼국수를 기다려 남기지 않고 바닥까지 맛나게 먹었다. 면이 입에 들어갈 때 느낌. 그리고 팥물의 달짝지근하면서 꼬소로운 맛. 왠지 기분이 좋아지면서 몸도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그 뒤로 나는 다시 리듬을 찾아 컨디션을 회복했다.
혼밥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팥칼국수로 인해서다. 식구들은 다른 걸 먹고 싶어하는데 나 혼자만 팥칼국수를 원했다. 처음에는 여러 메뉴가 있는 집으로 갔으나 팥칼국수를 잘 하는 집은 대부분 면요리만을 하는 집이 많다. 어떤 땐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시간을 정하여 만나기도 하였다. 맛있는 팥칼국수를 눈치보지 않고 혼자 먹을 수 있게 된 것, 팥칼국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을 터였다. 지금도 팥칼국수 집이 보이면 순간 갈등을 한다. 들어갈까 말까.
요즘은 팥칼국수(가게에서 주문받을 때는 ‘팥칼’)보다 팥죽을 찾기도 한다. 건강에 밀가루보다 찹쌀이 나을 것 같아서다. 예전에 어머니가 “속이 쓰려서 난 팥죽을 먹어야겠다.”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팥칼이 더 맛있다. 흐물흐물한 새알심보다 쫄깃한 면발의 후루룩 들어갈 때의 느낌이 단연 앞선다. 오늘도 난 심한 몸살로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결국 팥칼국수집에 갔다. 갈등 끝에 팥죽을 시켜놓고는 반을 남기고 팥칼을 시킬 걸 후회했다.
갈등 끝에 팥죽을 시켜놓고는 결국 반을 남겼다.
혼자 팥칼집에 다니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이 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분이 나와 거의 같은 시각에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러 나왔나보다. 내가 지나가니 차에서 어떤 책자를 가지고 나온다. ‘고통이 없어질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이런 제목이다. 그 여자분은 나에게 와서 “고통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거 하나 읽어보세요.” 하며 생각한 듯 주려 한다. 탁 보니 종교 관련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돌아선다.
팥칼국수집에 가면 또 어머니가 떠오른다. 동짓날이면 항상 팥죽을 끓이셨던 어머니. 냉장고가 없던 시절. 밖에 놓아두었던 팥죽을 알싸한 하얀 무 동치미와 겨울저녁에 먹었던 기억이 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동치미를 후루룩 마시며 양푼에 있는 차가운 팥죽을 한 숟가락씩 먹다보면 금세 바닥을 드러내곤 한다. 후루룩 와작 씹어대던 그때는 듣기 싫었을 것 같은 게걸스럽게 먹는 식구들의 팥죽먹는 소리가 지금은 그리워진다. 지금 보니 내가 팥칼국수를 찾는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어머니와 어릴 적 식구들에게 위로 받는 느낌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나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팥칼국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친정식구들이 떠오르고 이 따뜻한 음식이 몸에 들어가는 순간 몸이 치료되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