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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Jul 10. 2019

 선생님, 컵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면먹다 일어난 이야기

  “선생님, 결과 나왔나요?”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며)뭐?”

  “아시면서.”

  “뭔 말이신지. 정말 모르겠는데요. ㅎ”

  나는 알면서 짐짓 모르는 말투로 능청스럽게 대꾸한다.

  “선생님, 어서 알려줘요. 어서요.~ 네?” 2교시 쉬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누구랄 것 없이 내 자리에 와서 의자를 삐~잉 둘러싸며 어서 컴퓨터를 열고 결과를 보자고 성화다.



  아이들이 전담교실에 간 동안 너무 바빴다. 여름방학 동안 수영체험을 해야 해서 미리 알아본 수영장의 실시 여부를 전화로 알아봐야 했고 교감선생님, 해당 강사들과 여름 방학 활동에 대해 얘기해야 했다. 로봇과학 품의도 해야 했고 창체 동아리와 방과 후 강사들 활동상황과 출석부도 빠진 곳이 없나 확인하고 기록이 안 되었거나 틀린 곳은 채워주었다. 서명을 하고 교무와 교감의 결재도 받다.


  진로행사에 대비해 영어체험실과 과학실에 가서 좌석 상황을 확인하고 어디에서 할지 결정도 해야 했다. 행정실, 교무실, 여러 각 실을 돌고 상의하는 2시간여 동안 벌써 다리에 힘이 풀리고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차피 오후에 했어야 할 일. '많이 해결하여서 뿌듯하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럴 여유도 없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가졌던 ‘가자마자 컴퓨터에 접속하여 발명대회 본선 결과를 확인하자’는 다짐은 잊어버렸다.


  아이들이 채근하는 것을 핑계로 업무시스템에 들어갔다. 기대한 대로 학생 발명품 대회 본선 결과 공문이 와 있었다. '벌써 떠 있구나.' 아이들도 나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엑셀 파일을 열어보았다.

  “두구두구두구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바로 은상입니다.” 무슨 노벨상 수상자 발표하듯 끝을 길게 뺀다.

  “와~~ 은상이다. 축하해~ 은호야”

  아이들은 자신의 일인 양 다 같이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고 은호를 안아주며 환호했다.

  “은호야 축하해.”“ 와~~ 친구가 상 받아서 자랑스러워요.”

  나도 은호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하였다.     


  갑자기 교실에서 라면 파티 열렸다.  축하행사였다. 본선에 보조자료로 출품했던 라면들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컵라면을 한 개씩 골랐다. 치즈, 라면, 스파게티, 짜장 등 다양했다.   

얘들아, 지금  수업시간이다.  창문을 닫아서  냄새나가지 않게 하고 조용히 먹자, 다른 반에서 얼마나 먹고 싶겠니, 또 이따 급식도 잘 먹어야 해요.   

   

  옆 반에 방해가 될세라 먼저 활짝 열어놓았던 문과 창문을 닫았다. 조용조용 자신이 고른 라면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을 받았다. 평소 쾌활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을 두고 이렇게 조용히 순서를 지키며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자니 웃음이 나온다. 역시 센스 있는 녀석들이야.하하하

발명을 하게 된 동기를  라면먹다  찾았는데 이렇게 다시 라면 파티를 하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3월 말에 학급에서 생일잔치를 했다. 팔씨름, 창 던지기 대회, 큰 눈 대회, 포환 던지기 대회, 큰 콧구멍 대회 등 기네스북 게임과 축구를 하였다. 아이들 모두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를 자르고 생일 맞은 친구에게 축하 메시지와 편지도 써 주었다.  각자가 원하는 컵라면을 미리 주문받아 준비한 컵라면을 먹었다.


  “컵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입 주변에 잔뜩 소스를 묻히며 컵라면을 먹고 있던 먹성 좋은 아이가 말했다. 한 아이가 “정말, 그럼 좋겠다. 근데 물이 쏟아지지 않을까.” “중국에서는 그런 라면이 벌써 있대요.” “저는 장난감이 붙어있으면 좋겠어요. 레고 같은 것이 있어서 컵라면을 먹고 친구랑 같이 할 수 있게요.” 볶음면 등을 후후 불어 먹으며 이야기 마당이 펼쳐졌다. 역시 맛있는 건 옳다.    


  아이들이 발명에 대해 관심을 보인 날은 마침 금요일이었다. 생활에서 불편한 것이 있나 생각해 보고 있으면 자유롭게 써 보라고 하며 주말 과제로 발명 계획서를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대신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만 써 오라고 하였다.  과제하기는 자유였다. 월요일이 되어 과제를 확인해 보니 아이들이 주말에도 바쁘고 글씨 쓰기에도 익숙지 않아 과제를 해 온 친구가 달랑 두 명 있었다.


   다행히 우리 반 아이들은 글의 표현력이 없으나 아이디어 내기와 토의하기는 좋아하였다. 시간이 날 때 하루에 한차례씩 20분 정도 발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열심히 토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낸 학생의 의견을 수첩에 적었다. 컴퓨터로 학생과 같이 특허청과 키프리스에서 학생들이 낸 아이디어를 찾아보았다. 아이디어 대부분이 이미 수록되어 있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실망스러워하는 아이들의 눈빛과 표정을. 그럴 때면 일부러 “와! 우리 반 아이디어가 아주 좋은데? 발명가들이 먼저 이것이 좋은 줄 어떻게 알고 벌써 올려놓았네. 너희들 정말 생각주머니가 크구나. 진짜 발명가 같아. 하하하” 하며 격려하였다. 그럴 때면 아이들도 다행히 아쉽고 슬픈 표정의 얼굴을 바로 풀어주었다.

    

  그 중에 검색사이트에 있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발명품 3가지를 정해서 예선에 내놓았다. 예선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바로 예선 결과가 나오고 한 아이가 본선에 나가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자기 일인 양 축하해 주었다.    


  본선에 나가는 아이는 남아서 발명 일지와 발명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방과 후에 그 아이가 남으면 다른 아이들이 “친구야 잘해. 파이팅!” 하는 소리가 본선에 나가는 아이의 긴 인내의 시간을 견디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서로 격려해 주고 의견을 나누며 피드백을 해 주는 과정이 좋았다. 친구의 잘됨을 내 일과 같이 여겨 기뻐해 주고 축하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멋졌다.  


<발명대회의 본선에 진출한 친구의  작품을 반 친구들이 직접 사용해보고  어떤 것이 사용하기 좋은지 피드백을 해 주고 있다.>


  전에 읽었던 <프라하의 소녀시대>에서 재능에 대한 사고방식에 대해 읽은 것이 생각났다.

 서구에선 재능이 자기 개인에 속하는 것이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개인의 재능을 모든 이의 재능이라고 느낀다는 것. 그래서 끌어내리기보다는 무조건 사랑하고 받쳐준다는 분위기란다. 그래서 대문호나 예술가들이 많이 나왔나 싶었다.

 

  이 내용을 읽고 매우 부러웠는데 본선에 진출한 친구를 반 아이들이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이끌어주는 것을 보고 뿌듯했다.  아이들에게 많이 배웠다. 행복했다. 게다가 이렇게 본선에서 은상까지 받으니 라면 파티는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서로 나눠먹으며 맛을 비교하고 친구 덕분에 먹는다며 친구에 대한 덕담도 잊지 않는다. 웃음이 가득하다.


  요즈음 우리반은 발명붐이 일었다. 공부하다 말고 한 아이가 "선생님 저 또하나 발명했어요. 연필이 어쩌구 저쩌구~" 그러자 다른 아이가 " 필통이 어쩌구 저쩌구~"  꼬마 발명가들과 지내는 하루가 매 순간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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