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진이가 작년 유치원 행사 때 있었던 일을그렸다. 그림을 보며 효진이와 효진 엄마, 내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격학습이라지만 시골아이들의 학습결과물을 직접 보고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상황이 허락되면 부모와 아이, 교사가 함께 이야기를 하며 아이를 격려해 주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것은 아이의 자존감 향상과도 관련이 있다.
효진이네 집은 아이들 집 중에서 제일 먼 곳에 있었다. 교회를 지나고 구불구불 논과 밭을 지났다. 서너 채의 집이 있는 곳에서 친절한 동행자인 내비게이션이‘경로 안내를 마치겠습니다.’란 말을 했다. 집 앞쪽에는 산이 있고 옆에는 저수지 둑이 한일자로 높이 솟아 있었다. 저수지의 푸른 물은보이지 않았다.
“고양이 머리띠 했어요. 다른 아이들도 거의 다요.”
“이건 누구야?” 그림 속 머리띠를 한 여자아이의 옆 사람을 가리키며 내가 물었다.
“엄마~~” 좋아 죽겠다는 표정과 말투로 효진이가 엄마를 바라봤다. 8살 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귀엽고 애교스러운 소리로 효진이가 웃었다.
“효진이 엄마구나! 아! 눈도 반짝반짝 예쁘게 잘 그렸어요. 효진 어머니, 효진이가 그림을 잘 그리네요. 이렇게 사람 형태가 딱 나오기 쉽지 않은데요. 자세히 잘 그렸어요.”
효진이가 부끄러운 듯 “여기 이렇게 속눈썹도 그렸어요.” 했다.
“맞아요. 효진이가 속눈썹도 그렸어요.”
엄마가 효진이 말에 대답을 하듯이 맞장구치며 말했다.
“진짜? 와우! 효진이가 그림 표현을 세심하게 잘해요. 어머니.” 내가 큰소리로 효진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세심하게 속눈썹도 그렸어요.” 효진이가 내가 방금 말한 문장 중 ‘진짜’와‘세심하게’란 말을 따라 또박또박 말하였다. 효진이의 언어적 소양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림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다 보니 효진이의 생활과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효진이의 하루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늦잠을 자던 효진이가 원격수업을 시작한 뒤로 알람을 맞춰 일찍 일어났다. 방송을 시청하고 과제도 꼼꼼히 하여 결과물을 나에게 보내서 알려주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심심해'소리를 하루에도 여러 번 했다. 효진 엄마는이 말을 들을 때마다 긴급 돌봄을 신청하고 싶었다. 바이러스 19 감염에 대한 걱정이 되어 결국 포기했다.
“효진이가 많이 심심했구나. 효진아, 자연과 친구 하는 것이 어때? 선생님이 집 주변을 둘러보니까 나무와 꽃도 많고, 주변에 곤충도 많구나. 요즘 생명에 대해 배우고 있잖니. 너도 알겠지만 얘네들도 살아있는 생명체란다.” 무기력한 선생님은 어쩔수 없이 지난번 정민이에게 했던 똑같은 레퍼토리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무하고는 서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요.” 아이가 시무룩하게 말하였다.“효진아, 잘 봐. 집 주변에 저수지와 멋진 산이 우뚝 서 있잖아. 시내에 사는 아이들은 이런 곳을 정말 부러워해. 공기가 맑고 이런 곳에 동식물 친구들이 많으니까. 집 주변의 여러 동식물, 산과 친구 하면 어때?”효진이에게 자연과 얘기를 나눠볼 것을 거듭 종용했다.
“꽃들은 말을 하지만 입이 없어. 소리만 안 들릴 뿐이란다.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거야.”
“그런 말 안 믿어요. 소리가 들리지 않거든요.”
“효진아, 마음을 열어봐. 네가 말을 걸다 보면 언젠가 너도 소리를 들을 수가 있을 거야”
“안 믿어요. 헤헤” 효진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네'라고 말했던 정민이와 달리 효진이의 답변은 시니컬했다. 아직 자연의 맛을 못 느낀것 같았다. 친구가 더 좋을 시기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연의 혜택을 누리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으나 같이 몸으로 놀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었다.그러면서도 효진이가 자신이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느꼈으면 했다. 엄마 품과도 같은 대 자연과 친구가 되면 평생 의지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1학년 아이들과 더불어 생활하려면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그 수준의 학습 내용을 어렵게 느낀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체적 조작 경험을 마련해줘야 한다.
자연과 생태에 대한 공부가 아이들과 나, 모두에게 필요함을 느꼈다.교육청에서 내 고장 생태동아리 회원을 뽑는다던데 거기나 신청해볼까.거기 가면 생태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란 나의 부족한 점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좋다. 배움의 필요성을 느낄 상황이 끊임없이주어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행복한 일이다.어떤 땐 나의 욕심이 과해서 여러 가지 배움을 시작해 놓고 끝을 맺지 못하는 일이 있기도했다.시작한 배움이 정상까지 다다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경험헸다.
앞으로또이런 일이 반복될지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배움을 시작할 것이다.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또 어떠랴.'모든 배움은 배움끼리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나와 생활할 아이들의 필요한 것에 촉수를 뻗치며,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계속 배우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