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원석 Dec 24. 2023

할미꽃 장례식(동화)

-김원석/아동문학가

아기 바람은 바쁩니다.

흰 눈 속에 배시시 얼굴 내밀어 ‘눈새기꽃’이란 별명을 가진 복수초. 복수초가 여태껏 잠자고 있어서입니다. 어서 일어나야 다른 친구들이 몸을 털고 겨울잠에서 일어날 텐데…. 

아기 바람은 서둘러 햇볕이 잘 드는 양지녘 제비꽃에게 뛰어갔습니다. 

“어라?”

이맘때면 겨울잠에서 깨어 수다를 떨고 있어야 할 제비꽃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비꽃아.”

아기 바람 소리를 듣고, 진달래가 잠을 털어내며 말했습니다.

“아직 자나 봐.”

“다시 올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해.”

아기 바람은 급한 마음으로 산기슭 할미꽃에게 달려갔습니다. 할미꽃은 제 자리에 없고, 힘 잃은 누런 겨울빛이 몸을 떨고 있습니다. 

‘아직 안 일어나셨나?’

낯선 바람이 할미꽃 자리에서 빈 그네를 탔습니다. 아기 바람은 할미꽃이 어려워 깨울 수 없었습니다. 아기 바람은 아랫동네로 달려갔습니다. 목련과 산수유한테 가는 길입니다. 

“얘들아, 너희들도 자니?”

“뭔 소리야?”

백목련이 고개를 뺏습니다.

“복수초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제비꽃은 자는 것 같고, 할미꽃은 기침을 안 하셨어. 봄을 어떻게 맞지.”

“걱정마. 내 알아서 할게.”

그때였습니다. 아침 햇살이 할딱이며 급하게 왔습니다. 

“할미꽃이 지금 막 숨을 거두셨어.”

“뭐!?”

목련과 산수유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이러다가 우리는 물론이고 봄이 우리를 피해 가는 것 아냐? 아기 바람은 산수유와 목련과 함께 서둘러 할미꽃에게 갔습니다. 콜록이는 개미, 목이 아프다는 딱정벌레, 안대를 한 땅강아지가 와 있었습니다. 할미꽃 집 앞에 영정이 걸리고, 흐느끼는 소리가 낫습니다. 

영정 속에서 다소곳이 웃는 할미꽃을 보자, 눈물이 방울방울 몰래 흘러내렸습니다. 늘 나보다 너를 생각하는 마음에 늘 고개를 숙인 할미꽃. 누구보다 늘 앞서 봄을 맞아오던 할미꽃. 

“어떻게 갑자기?”

아기 바람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습니다.

“갑자기라뇨? 아프다는 말은 안 했지만, 벌써부터 온몸이 저리고 따가워 힘들어했어요.”

다복 솔이 귀띔했습니다.

할미꽃은 양지에서 편히 잘 있는 것 같았지만, 마음고생이 참 많았습니다. 겨울이면 개구리나 뱀처럼 겨울잠만 자는 게 아닙니다. 꽃도 지고, 나뭇잎도 떨어졌으니, 다 보내 놓고 할 일이 뭐 있겠냐고 할 것입니다. 기껏해야 찬바람에 내맡긴 몸뚱이, 조금만 참으면 따뜻한 봄을 맞아오면 끝인데…….

아기 바람도 잘 알 듯, 할미꽃은 해야 할 일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참 많습니다. 그 무엇보다 봄 맞을 몸치장입니다. 할미꽃 얼굴은 검은빛과 붉은빛이 잘 어우러진 빛입니다. 예쁜 보라빛 얼굴로 일찌감치 겨울잠에서 일어나 등 밝히고 봄을 맞았습니다. 

할미꽃이 봄을 잡아 주지 않으면 손으로 뜬 물이 손가락 사이로 물 새 듯, 봄은 모두 새 나갑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복수초, 제비꽃, 목련을 잠 깨워 봄맞이 잔치도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할미꽃 빛깔이 힘 잃은 색깔로 피는 것입니다. 잘 알 듯 할미꽃 빛깔은 색깔 조화가 조금만 빗나가도 꽝입니다. 봄맞이꽃 가운데 제일 어른인 할미꽃. 봄을 맞을 기운이 없어 지쳐 쓰러진 것입니다. 

뿌리를 내린 발이 저리고, 목마르고, 매워 눈을 제대로 못 뜨고, 빗물에 집이 잠겨, 맘 편히 살 수가 없습니다.

“할미꽃을 사랑하셔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할미꽃은 우리 곁에서 발걸음을 달리했지만, 아주 떠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봄을 지켜내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말대로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것을 뼈아프게 느낄 겁니다.”

작가의 이전글 치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