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님이와 손거울 -김원석/아동문학가
1> 시골집
“흑, 흑, 어머니!”
울음에 젖은 큰아버지 목소리가 할머니 방에서 튀어나왔다. 다님이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려다 큰아버지 울음 섞인 목소리에 멈칫했다.
“어머니, 왜 이러세요?”
애절한 큰아버지 목소리가 다님이 앞으로 다가왔다.
“왜들 그러는 거야? 벽에 틈이 있어 바르잖아? 벽이 갈라진 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잖니?”
할머니는 큰아버지에게 아기 달래듯 다정하게 말했다. 큰아버지는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멀쩡했던 어머니가?
큰아버지는 벽에 붙은 국건더기 우거지 들고 말했다.
“이걸로요?”
“그럼, 이걸 벽에 바르면 올겨울에는 황소바람도 끄떡없을 거다. 두고 봐라.”
할머니는 큰일을 해냈다고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어머니, 제발.”
큰아버지는 가슴이 콱 막혀 답답했다. 할머니는 주위에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그릇에 밥과 반찬을 넣어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또 밥알을 손으로 으깨어 벽에 신문지를 대고 발랐다. 밥풀은 벽에 붙고 국건더기와 신문지 조각은 미끄러져 흘러내려 방바닥이 난장판이다.
“어머니, 흐흐흑…….”
큰엄마는 울음을 참으며 쏟아진 음식을 치우고, 큰아버지는 앞이 캄캄해 멍하니 서 있다. 그렇게도 깔끔하던 어머니가 밥상을 어지럽히니, 예전 같으면 생각하지 못 할 일이었다. 큰아버지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할머니를 붙들고 안타까움에 울음을 토해냈다.
“큰애야,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도대체 왜 우는 거니?”
거꾸로 할머니가 큰아버지가 이상하다며, 큰아버지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다. 진짜 세상이 거꾸로 된 모양이다.
“어머니, 정말 모르세요?”
“아범아, 내가 뭘 안다는 거니?”
할머니의 엉뚱한 말에 큰아버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했다.
“밥은 먹었니? 난 배가 고프니 밥 좀 줘라. 어멈이 어제부터 밥을 달라고 해도 한 숟갈도 안 줘.”
할머니는 큰아버지를 붙들고 또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니, 이 밥상은 뭐예요? 이거 어머니 잡순 밥상 아니에요”
“이거? 봐라, 밥은 없고 반찬뿐이잖아?”
밥은 안 주고 반찬만 주었다는 할머니 말에 큰엄마는 가슴이 아팠다.
“요즘 어머니는 무엇이든 잡수시려 해요. 금방 밥상 차려드렸는데 또 달라하시고, 과자도 잡숫고 싶다고 해서 드리고요.”
큰엄마는 방 구석구석과 장롱에 찔러 넣은 과자, 과일, 빵을 끄집어내 보였다.
“아니, 너 뭐 하는 거냐?
큰엄마가 과자를 찾아놓자 할머니는 큰 소리로 큰엄마를 나무랐다.
그간 할머니가 숨겨 놓은 먹을 것이 제법 수북하게 쌓였다.
“어머니, 이건 뭐예요?”
보다 못한 큰아버지가 차려놓은 밥상과 과자와 빵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니 이 밥상은 뭐예요?”
“밥상이지 뭐냐? 왜 밥상이 여기 있고 과자는 어디서 난 거지?”
할머니는 조금 전 일도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할머니.”
다님이는 할머니 방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머뭇거리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은 생각했던 대로 반찬이 널려 있어 엉망이었다. 큰아버지와 큰엄마는 울먹이며 방을 치웠다. 할머니는 다님이를 보자,
“불쌍한 우리 똥강아지.”
할머니는 반쯤 일어나 다님이를 덥석 안았다.
“할머니, 먹는 음식 갖고 장난치면 못 쓴다고 했잖아.”
“이거 장난 한 것 아냐.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벽에 바른 거야.”
“할머니!”
다님이가 할머니를 암팡스럽게 부르자 할머니는 찔끔해 아무 말 못했다.
할머니는 다님이가 마음에 걸렸는지 밥상 밑에 떨어진 배추김치 조각을 주었다.
“할머니, 우리 손 씻자.”
다님이는 할머니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다님이 말에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잡고 벌떡 일어섰다. 할머니는 다님이를 보더니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어머닌, 다님이가 좋기는 좋으신가 보다. 내가 씻겨 드린다고 할 땐 그렇게 싫다고 빼시더니.”
큰엄마는 삐진 척했다.
“어엄아, 내가 언제?”
할머니는 큰엄마를 흘겨보며 말하다가 다님이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지 씩 웃었다.
“할머니. 시계 던지고, 달력을 찢으면 어떻게 해?”
다님이가 할머니를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바보 같은 달력은 우리 똥강아지가 오는 날을 캄캄 이잖아.”
“애꿎은 시계는 왜 내동댕이쳤어?”
“우리 똥강아지 할미한테 올 때는 빨리 빨리 가야지. 천천히 가잖아.”
할머니는 말을 해놓고 우스운지 시은방귀피식 방귀 뀌듯 피식 웃었다.
“다님이가 할머니하고 약속한 거 보다 일찍 왔잖아.”
“아냐, 그래도 저 시계는 얼마나 늦게 가는데?”
“그래서 시계를 팽개치고 벽에 음식을 바른 거야?”
“…….”
서울서 가까운 수도권이라는 소도시에서 할머니와 다님이 그리고 다님이 아버지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할머니는 무릎관절염이 심해, 날이 굿은 날은 잘 걷지 못했다. 큰아버지가 할머니를 조르고 졸라 큰아버지가 사는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갔다. 할머니가 치료하러 서울로 가자 다님이는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다님이에게 엄마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모습을 담은 빛바랜 사진뿐이다. 이 사진이 다님이에게 엄마의 전부이다. 엄마 사진을 보면 엄마 생각에 질질 짠다고 할머니는 엄마 사진을 모두 감췄다.
다님이는 처음부터 아버지와 할머니랑 함께 살았을까?
다님이가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엄마는 아버지 병 고칠 돈을 벌러 나갔다고도 하고, 할머니와 마음이 안 맞아 집을 나갔다고도 한다. 확실한 건 엄마가 살아있고, 안개 속에서 잘 안 보이는 이야기지만, 아버지와 가끔 연락이 오고 간다는 것이다.
다님이는 아버지에게 엄마 이야기를 물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할머니에게 물으면,
“불쌍한 내 새끼. 엄마가 보고 싶니?.”
“푸우 투우”
한숨을 쉬고, 꾹꾹 찍어눌러 숨어있던 눈물이 그렁그렁 샘솟았다.
친척들이 모여도 다님이 엄마에 대해 누구 한 사람 입도 뻥끗 안 했다. 다님이는 어설프게 그려지는 엄마 얼굴을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 모른다. 엄마가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못 했다. 다님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이면 할머니 눈에 눈물이 맺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님이는 엄마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님이가 제일 믿고 의지하는 할머니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혈압이 높은 데다가 당이 심한 아버지와 무릎관절염을 앓는 할머니. 그래도 다님이는 할머니, 아버지와 즐겁게 살았다. 마치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당뇨와 혈압에 좋다는 약초를 기르고 가꾸는데 재미를 붙여 열심히 돌보았다. 할머니는 무릎이 쑤셔 잠 못 자는 밤이 있지만, 다님이와 함께 살며 이렇게 행복한 때가 없었다고 좋아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은빛 시냇물.
얼음장 밑에 봄을 불러내 오고,
은빛 물고기 건지고,
겨울이면 마을 아이들 썰매장.
붕어, 피라미, 송사리, 끄리, 모래무지,
달리기 시합하는 시냇물.
마을 뒤, 황토에 뿌리 내린 밤나무 숲.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
바람이 밤 나뭇가지에 기대면,
“후둑, 후두둑.”
어둠을 깨는 밤 떨어지는 소리.
“아 아아.”
너무 너무 좋아서.
다님이도 모르게
이불 속에서 두 발이 쭉 펴진다.
알람이 깨우지 않아도,
할머니가 깨우지 않아도.
벼슬 붉은 수탉이 목을 쭉 빼고,
“꼬끼요, 꼬끼요.”
몇 번 목을 빼고 울어대면
아침 고요를 깨고 하루가 열린다.
정말이지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시골 풍경이다.
이른 아침이 되면 다님이도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때가 5시 30분경이다. 할머니 식구들이 하루를 문 여는 시간이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썰고, 끓이고, 지지고, 볶고, 아버지는 간밤에 닭들이 잘 있나 닭장을 살피고, 집도 잘 잤나 둘러보고 나서, 마당을 쓴다. 다님이는 눈을 비비며 먼저 닭장으로 뛰어가고.
“닭아, 잘 잤니? 달걀 두 개. 수고했다. 아이 따뜻해.”
암탉이 낳은 달걀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며,
“할머니, 달걀 두 개. 아직 따뜻해요.”
다님이는 달걀을 볼에 대고 행복에 젖어 소리친다.
“도도와 레레가 낳은 걸 거야.”
“어디, 어디. 와아 크다.”
아버지가 다님이 말에 장단을 맞춘다.
아버지는 벌써 둥지 안 알을 봐두고, 다님이에게 기쁨을 넘겨주려 놔둔 달걀이다. 닭장에 닭이 6마리인데 암탉 다섯 마리는 도도, 레레, 미미, 화화, 솔솔이다. 수컷 한 마리 이름은 시시다. 이름에 아무 뜻 없다. 잊어먹지 않게 음계를 따라 다님이가 붙여준 이름이다.
아버지는 아침을 먹으면 혈압과 당뇨병에 좋다고 심은 두충나무와 산뽕나무, 또 더덕밭으로 간다. 할머니는 집안일을 마치면 텃밭을 매고, 다님이는 학교에 가고.
서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골 아닌 시골 할머니 댁. 냇물이 맑고 논밭이 많은 아직도 시골티가 덕지덕지 붙은 수도권 마을이다.
다님이는 하루 가운데 어두움이 살며시 감싸 안는 밤을 아주 좋아한다.
두 팔과 두 발을 벌리고 큰 대 자로 누우면
창밖에 감나무 가지 위로 뜨는 달이 반갑고,
뒤창으로 쏟아지는 별들이 다님이를 반겨서 좋고,
“부븡 부브븡…….”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엄마 목소리 같아서 좋고,
할머니 품에 안길 수 있어 좋다.
할머니 살갗은 쭈글쭈글한데 살결은 비눗물보다 매끈하다.
“아이구, 내 새끼.”
어디서 힘이 나는지 할머니가 다님이를 꼭 끌어안으면,
“아 아아…….”
이 보다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자장자장
우리 새끼 잘도 잔다.
꼬꼬 닭아 우지 마라.
멍멍 개야 짖지 마라.
우리 새끼 잘도 잔다.”
할머니가 자장가를 다 부르기도 전에 다님이는 “쌔액 쌕” 잠나라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잠나라에서 꿈나라 차로 갈아타고.
“아버지, 돌 틈에 큰 게 있어요.”
다님이는 잠꼬대한다.
“아이구, 내 새끼. 고기 많이 잡거라.”
할머니는 잠자는 다님이 볼에 뽀뽀한다.
“내일은 냇가로 고기 잡으러 가야겠군.”
여름철에 물놀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물고기 잡는 게 아닐까? 다님이는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도 잘 끓이고 어죽도 잘 쑨다. 먹기도 잘하고.
2> 할머니 두 얼굴
요즘 부쩍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 잘 걷지 못하고, 밤만 되면 무릎이 쑤셔서 밤잠을 못 잔다. 큰아버지가 병원에 모시고 가려 해도,
“이런 거, 가지고 병원에 가면 의사가 욕해.”
하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고집쟁이이다. 병원에 안 간다고 고집부리다, 더 심해져 밤잠도 못 자고 앓아 누었다. 보다 못한 큰아버지가 서울서 내려와 반은 강제로 할머니를 모시고 큰집으로 갔다.
할머니가 없는 집은 텅 빈 것 같아 다님이는 허전했다. 방문이 열리면 꼭 할머니가 오는 것 같았다. 다님이는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그리웠다.
할머니는 집도, 마당도 툭 터져 넓은 곳에 살았다. 그러나 큰아버지 집 아파트는 새장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다. 할머니는 큰집에서의 하루가 한 달 아니 1년 같았다. 다님이가 있는 시골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할머니는 다님이에게 시시때때로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다님아, 시골집에 가고 싶다. 네가 좀 도와 줘. 여기는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나는 싫어.”
다님이가 할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면, 시골에 가고 싶다는 말 만했다. 또 다님이 더러 빨리 큰아버지 집에 오라고 졸랐다. 할머니가 시골집으로 얼른 내려왔으면 하는 다님이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즈음 할머니가 없는 빈자리에 엄마가 서서히 자리 잡아 엄마 생각이 싹텄다.
엄마가 집을 떠난 6살 때부터 다님이는 큰아버지 집에서 큰아버지와 큰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다 시골집에서 휴양 중인 아버지가 다님이를 너무 보고 싶어 해, 시골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서울로 간 할머니가 무릎관절염 치료가 금방 끝나 얼른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관절염이 오래되어 반년 가까이 치료해도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서울 생활이 길어지자 답답하고 걱정스런 마음이 할머니를 못 살게 했다.
큰엄마는 다님이가 사는 시골집을 오가며 집안일을 돌봐 주었다. 할머니는 할머니 친구도 볼 수 없고, 할 일도 없어 그저 TV 보는 것뿐이다. 그런데 TV도 젊은애들이 보는 것이 거의 다고, 할머니가 볼 수 있는 프로는 거의 없었다. 할머니는 사방이 벽인 방에 갇혀 심심하고 갑갑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할머니는 시골집에 내려가겠다고 졸랐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할머니 말에 꿈쩍도 안 했다.
시골집에 가고 싶다고 졸라도 안 되자 할머니는 투정을 부렸다. 큰아버지는 할머니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투정을 들어 주지 않았다. 낯선 서울에 갇혀있는 할머니. 할머니는 돈이 있어도 혼자 외출할 수 없었다. 버스도, 전철도 혼자 탈 줄 몰랐다. 그러니 할머니는 뭍과 떨어진 무인도에 갇힌 거나 다름없었다.
심심하다 지친 할머니는 말도 안 하고 소리죽여 울기만 했다. 큰집에서는 이런 할머니가 집에 가지 못해 심통 부린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큰아버지는 무릎관절염을 완전하게 고치면 그때 가면 된다고 큰아버지 나름대로 마음을 먹었다.
--------------------스마트 폰 문자 처리----------------------------------
“도레미도 잘 있지?”
“응.”
“이제 모두들 알 낳지?”
“그럼, 이제는 솔솔도 알을 솔솔 낳는 걸요.”
다님이는 솔솔이가 낳은 알을 사진 찍어 보냈다.
“곧 만나러 간다고 그래라.”
----------------------------------------------------------------
할머니는 마을 냇가며, 울타리 대신 심은 꽃들이며, 나무들 소식을 다님이에게 묻고 또 물었다.
“감나무, 밤나무는 감과 밤이 열리고, 과꽃도 예쁘게 피었겠구나.”
할머니 집 주변 어느 곳이든 할머니 손길이 안 간 곳이 없다. 할머니가 시집와서 줄곧 이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풀꽃과 돌멩이 하나하나에 할머니 손때뿐만 아니라 너무 많이 보아 눈 때까지 숨어있다.
한때는 할머니 잦은 전화로 스마트 폰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스마트 폰을 뚝 끊었다. 다님이는 갑갑했지만, 할머니를 위해 참았다. 조금 더 조금 더, 치료받아야 한다는 의사 말에 할머니는 속는 것 같아 몹시 속이 상했다. 할머니는 다님이에게 쉴 새 없이 하던 전화도, 문자도 하기 싫어졌다.
시골에서는 해, 달, 별, 물, 흙, 또 닭, 발에 채이는 돌멩이까지 모든 것이 할머니 친구였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높이 솟은 아파트에 가려 해님도, 달님도 잘 만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별은 매연이 버티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또 번쩍이는 상가 불빛이 무서워 얼굴조차 내밀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할머니는 맘 놓고 바깥에 나가지 못한다. 아파트를 나서면 차들이 쌩쌩 다니는 넓은 길, 자동차들이 모두 할머니에게 달려들 것 같아 길을 건널 수 없다. 파란불이 길을 건너기 전에 빨간 불로 바뀐다.
밖에 나갔던 할머니가 집에 들어오려면 무어보다 먼저 아파트 문을 열어야 한다. 또 현관문도 열어야 한다. 아파트 문과 현관문을 열려면 숫자판을 눌러야 한다. 이것도 할머니에게는 큰 산이다. 깔딱고개를 오르고 올라야 할 큰 산이다.
가물가물하는 기억 속에 숫자를 떠올려 누른다. 그러나 숫자가 틀리거나 손가락이 무뎌 문을 잘못 열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아파트 문이나 현관문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면 식구가 와야 집에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큰엄마가 비밀번호를 종이에 적어준다. 그러나 할머니는 비밀번호 적은 종이쪽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먹기 일쑤이다. 서울하고도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 마음은 점점 콘크리트 회색빛으로 물들어갔다. 이런 할머니 속마음을 다님이 밖에 모른다.
할머니는 말이 없고부터 다님이는 큰집에 있다가 온다. 금요일 저녁이나 아니면 토요일에 큰집에 가서 하룻밤 또는 이틀 밤을 할머니와 함께 보내고 온다. 할머니는 다님이가 오는 날을 손꼽고 있다. 할머니는 날이 갈수록 외로움이 짙고 또 깊어가고 있다. 외로움이 짙어갈수록 쓸쓸한 할머니 마음을 갉아먹었다. 외로움이라는 병에 할머니 눈물 마를 날이 없다.
할머니에게서 한동안 전화도, 문자도 없던 어느 날이었다.
“때르릉 때르릉…….”
늦은 밤 전화는 무섭고 불안하다.
다님이는 섬뜩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다님아, 할머니 거기 안 가셨니?”
큰엄마는 몹시 급한 모양이다.
“네? 할머니가요?”
“그래. 너를 보내고 집에 왔는데 안 계시구나. 이런 일이 없었는데.”
큰엄마가 할머니 걱정을 남겨두고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 할머니가……?”
다님이는 가슴이 마구 뛰어 어떻게 할지 몰랐다. 앉아 있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밤이 깊어 큰집에 가 볼 수도 없고, 아버지는 세상 모르게 주무셨다. 다님이 혼자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서 마루로 왔다 갔다 하며 애꿎은 마음만 들볶았다. 너무 걱정되고 궁금해 큰집에 전화를 걸었다. 스마트 폰도, 전화도 계속 통화 중이다. 전화 연결이 안 되어 더 답답했다.
다음 날 아침 다님이는 일찍 학교에 가며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 학교에서 끝나는 대로 할머니한테 갈게요.”
다님이는 아버지에게 말한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학교가 아닌 큰집에 가려 했다. 아버지가 놀랄까 봐 하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무슨 일이 있니?”
“아뇨.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요.”
“원, 녀석도? 할머니가 그렇게 좋니?”
학교에는 전화로 선생님에게 사정을 말하고 곧바로 큰집에 갔다.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큰집은 할머니가 없어져 모두 정신이 없었다.
‘내가 할머니라면 어디로 갔을까?’
다님이는 할머니가 되어 할머니가 갈 만한 곳을 곰곰이 짚어 보았다. 제일 먼저 생각난 곳은 할머니와 자주 갔던 아파트 옆 공원이다. 다님이는 공원으로 달려갔다. 공원에는 패랭이, 오이풀, 비비추 등 잘 가꾼 야생화 꽃밭이 있다. 할머니는 집 생각이 나면 이곳에 와서 꽃과 놀다 간다고 했다.
다님이는 거의 뛰다시피 공원으로 갔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할머니는 공원 어디에도 없었다. 텅 빈 공원이 다님이에게 다가왔다.
야생화 꽃밭 옆에 할머니와 앉던 벤치에 웬 할아버지가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다님이는 할아버지 가까이 가서 여쭈었다.
“할아버지, 키가 좀 작고 오른쪽 다리를 저는 할머니 못 보셨나요?”
답답한 마음에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궁금해 묻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글쎄다. 여태껏 앉아 있었는데 그런 할머니는 못 봤다.”
“아, 네. 고맙습니다.”
발길을 돌려 놀이터에도 가 보았다. 조그만 공원인데 놀이터가 있고, 그 가장자리에 운동기구와 놀이기구가 있다. 할머니가 앉던 그네 자리도 텅 비어 있었다. 다님이는 그네에 앉았다. 발로 조금 굴러 보았다. 흔들흔들 그네 줄을 따라 몸이 흔들거렸다. 다님이 마음처럼.
“다님이는 할미가 그렇게 좋아?”
“그럼.”
“왜, 좋아?”
“우리 할머니니까.”
“다른 아이들은 할머니를 싫어한다는데?”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래. 그러니까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지.”
“아이구, 우리 똥강아지 어른이 하는 말을 다 하네.”
“그럼. 나 이제 어른이야.”
“진짜 너 혼자 생각해 낸 말이야.”
“아니, 선생님이 그러셨어.”
다님이는 공원에서 할머니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놀이터에는 청소를 깨끗하게 해 종이 한 장 없다. 할머니와 함께 앉아 있던 그네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소가 눈에 들어왔다.
“자아, 누가 더 무거울까?”
“그야 물론 밥 대장인 나지”
다님이가 시소에 갑자기 앉자 할머니 앉은 쪽이 털썩 올라갔다.
“호호호…….”
다님이는 좋아라, 함박웃음을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앉았던 시소에서 일어서는데,
“어머!”
시소 밑에 꼬깃꼬깃 접힌 종이가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종이쪽지를 주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종이를 펴보았다.
“아니!”
큰집 현관 비밀번호를 적은 할머니 글씨였다.
“할머니, 할머니!”
다님이는 손나팔을 만들어 할머니를 불렀다.
어제 큰집에 갔을 때, 할머니는 별로 말이 없었다. 게다가 추적추적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 슬픈 일만 생각났다.
다른 때 같으면 할머니는 다님이 가까이 앉아,
“다님아, 제발 나 좀 시골집에 데려가라. 난, 너랑 시골집에서 살고 싶어. 나, 무르팍 다 났단 말이야.”
하고 시골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줄줄이 꿰어 말했을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다님이에게 온갖 사탕발림 이야기를 하며, 시골집에 함께 가자고 알랑방귀도 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일요일 그러니까 어제 저녁은 다님이가 있는데도 할머니는 말없이 창밖에 비 떨어지는 것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넋 놓고 밖을 내다보는 할머니 모습이 다님이 가슴을 찡하게 했다. 할머니 마음을 실은 쓸쓸하고 외로운 비가 다님이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다님이가 말을 해도 할머니는 힘없이 고개로만 대답했다. 할머니 눈에 눈물이 살짝 비쳤다. 할머니는 허리춤에서 얼른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는 척하며 눈물을 닦았다. 다님이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가 보다. 어린 다님이 마음은 상처가 난 손가락이 소금물에 닿듯 쓰렸다.
“할머니, 집에 갈게.”
“응.”
할머니 대답에는 다님이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할머니, 나, 간다구.”
할머니 대답이 시원치 않아 다님이는 다시 간다고 말했다.
“알았어.”
“할머니 오늘 이상하다. 간다고 해도 잡지 않네.”
“내가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거잖아?”
할머니는 시큰둥하게 안 하던 말로 대답했다.
할머니는 요즘 들어 아주 많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밥을 잡수시고도 또 잡수시고, 구석에서 자주 울고, 먹을 것을 방구석 구석구석에 감춰 둔다고 했다. 또 다님이를 예전보다 더 많이 찾는다고 했다.
다님이는 큰집을 나와 집으로 갔다. 늘 그렇듯 큰엄마가 전철역까지 데려다주었다. 큰엄마는 다님이가 어렸을 때부터 다님이를 보살펴 주어 다님이에게는 엄마 같았다. 다님이가 사는 곳은 전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세 정류장이다.
내리던 비가 멎고 하늘에 흰 구름이 앞서 거니 뒤서거니 두둥실 떠갔다.
“다님아.”
다님이 손을 꼭 잡고 큰엄마가 불렀다.
“힘들어도 다음 주엔 토요일 말고 금요일에 왔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네가 가고부터, 네가 오는 날을 손가락이 닳도록 꼽는단다. 그리고 말이다…….”
큰엄마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 멈칫했다.
“큰엄마 뭐요?”
“……(엄마 소식은 없니?)”
큰엄마는 이 말을 묻고 싶었는데 입 안에서 스르르 녹아 없어졌을 것이다.
“빵!”
자동차 클락션 소리에 큰엄마와 다님이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할머니 생각을 하느라 신호등을 보지 못한 것이다.
“금요일 수업 끝나는 대로 갈게요.”
“어린 네가 고생이 많구나. 다음에 밑반찬 좀 해 줄게.”
다님이는 큰엄마의 “그리고 말이다”가 머릿속에서 가슴으로 옮겨가 집으로 가는 다님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3> 사라진 할머니
공원 시소 밑에서 꼬깃꼬깃 접은 할머니가 쓴 큰엄마 집 비밀번호.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워 들고 다님이는 기뻤다. 공원 놀이터에서 할머니를 부르며 찾았다. 할머니가 공원에 꼭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를 부르면 곧 대답할 줄로 알았는데 대답이 없다.
‘혹시……?’
다님이는 나쁜 생각이 고개를 들어 그 생각을 쫓아버렸다.
‘비는 잘 피하셨겠지?’
간밤에 가랑비가 조금 내렸는데 걱정이 되었다. 비를 피하는 생각에 꼬리를 물고 번쩍 번개처럼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큰 바위 큰아버지 집 뒤에 풀꽃이 피고 지는 둘레길. 그 길 언덕에 평상처럼 넓고 큰 바위가 있다. 할머니는 이 바위에 오르면 앞이 탁 트여 마음이 시원하다고 했다. 또 전철역에서 다님이 오는 게 보일 것 같아 좋다고 했다.
“다님아, 저 전철에 너하고 나하고 둘이 타고 시골집에 가는 거다.”
전철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할머니는 전철에 탄 것 마냥 손을 흔들며 겅중겅중 뛰며 좋아했던 곳이다.
다님이는 걸음을 재촉해 둘레길로 갔다. 할머니와 앉았던 바위가 보였다. 다님이는 뛰다시피 한걸음에 달려갔다.
“어어?”
바위 위에 할머니는 없었다. 둥그런 바위만 둘레길을 지켰다. 평상처럼 넓은 바위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위만 보이자 다님이는 맥이 풀렸다. 할머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헉헉대며 단숨에 올라왔는데 말이다.
둘레길을 내려가려다 혹시나 하고, 큰 바위 둘레를 돌며 틈을 살폈다.
‘어머!’
바위 밑 옆모서리에 움푹 파인 곳에 옷자락 끝이 보였다.
“할머니!”
다님이는 큰 소리로 불렀다. 분명 할머니였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다. 다님이는 바위 밑 틈으로 고개를 들여 밀고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폐인 곳에 할머니가 웅크리고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다님이는 할머니를 흔들며 불렀다.
다님이 가슴은 쿵쿵 마구 뛰었다.
할머니는 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하고, 숨을 안 쉬는 것 같기도 했다.
‘돌아가셨나?’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다님이는 울먹이며 할머니를 불렀다. 다님이 손끝에서 할머니 얕은 숨을 쉬는 게 옮겨왔다.
다님이는 할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는 숨을 몰아쉬더니 감았던 눈을 살포시 떴다.
“누구요?”
“할머니 나, 다님이야.”
“다님이?”
“그래.”
“우리 똥강아지구나.”
“응. 할머니. 살았구나.”
다님이는 너무 좋아 왈칵 울음이 솟았다.
“내가 왜 죽어? 똥강아지가 여기 있는데.”
다님이는 너무 좋아 ‘할머니 만세’를 불렀다.
“할머니 왜 여기까지 왔어?”
“우리 똥강아지가 오나 안 오나 보려고 왔지.”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비틀거렸다. 다님이는 산책하는 사람에게 손전화를 빌려 큰집에 연락했다.
할머니를 찾아 큰집으로 모시고 온 날, 다님이 아버지를 빼고 큰집에 작은아버지와 숙모, 고모, 집안 어른들은 다 모였다. 할머니에 대한 걱정 모임이 가족회의로 발전했다.
“어머니가 좀 이상해지셔서 너희들을 부른 거다.”
큰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상하다뇨? 무릎이 더 심해졌나요?”
고모가 큰 소리로 물었다. 고모는 어머니(할머니)가 관절 때문에 고생해도 바쁜 핑계로 와 보지도 않으면서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나서기 좋아하는 할머니 외동딸이다.
“작은 소리로 말해라. 옆방에 계신 어머니가 듣겠다.”
큰아버지가 고모에게 주의 주었다.
큰엄마와 큰아버지는 할머니를 모시면서 그간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치매가 맞아요.”
큰엄마의 이야기를 듣더니 고모가 말했다.
“그럴 리가?”
큰아버지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고모에게 들으니 다시금 깜짝 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 추석 때 잃어버리지도 않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온 집안이 난리 난 적이 있었잖아요.”
고모가 추석 때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집 나간 일도 그렇고, 바람 못 들어오게 벽에 바람구멍을 막는다고 국그릇을 엎어 난장판을 만들었다면요?”
작은아버지가 큰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다.
“집안 비밀번호도 자꾸 잊으신다면요? 만약에…. 아직 모르지만 만약에 어머니가 치매라면…?”
큰아버지는 어머니가 치매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두 말 할 것 없이 요양병원으로 모셔야죠.”
작은아버지는 큰아버지의 말을 끊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요양병원?”
큰아버지는 동생의 말에 서글픔이 앞섰다.
‘낳아 준 엄마를…….’
큰아버지는 동생의 말이 못마땅했다.
“세 아들 눈이 시퍼렇게 살았는데 요양병원이라뇨?”
고모는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큰아버지는 고모 말에 꺼져가는 불씨가 살아났다. 고모는 남에게 흉이고, 어떻고 간에 요양병원에 모시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닌가? 요양병원에 모시면 안 된다는 뜻을 실린 고모 말에 작은아버지가 말했다.
“요즘, 요양병원도 시설이 좋대.”
“자식들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요양병원이라뇨?”
고모가 토라지며 성을 냈다.
큰아버지는 고모 말에 속이 시원했다. 고모는 할머니 자식들이 있는데 집에서 모셔야 한다고 했다. 작은아버지는 가족 전체를 위해서 요양병원에서 모셔야 한다고 했다. 고모와 작은아버지의 말싸움은 그칠 줄 몰랐다. 큰아버지는 둘 싸움에 한마디 했다.
“동생, 내 말 좀 들어봐. 요양병원은 옛날 말로 고려장이야. 의사가 치료는 하지만 돌아가시기만 기다리는 것이니 고려장과 다를 게 뭐 있어?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라도 어머니 내가 모실 거야.”
큰아버지는 폭탄 같은 말을 했다.
“큰오빠 말이 맞아.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모신다는 것은 말도 안 돼. 고모는 할머니를 모셔야 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으면서 말로만 떠들었다. 고모가 큰아버지 편을 들어 말하자 작은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어머니를 누가 보살피고, 누가 어머니 곁에 있느냐 말이다. 너도 명절 때만 겨우 고개를 내밀잖아.”
“그래도 안 돼요. 우리 엄만데, 어떻게 요양병원에 모셔요?”
고모는 훌쩍이며 말했다.
“다른 소리 말고, 네가 지금부터 엄마를 사흘만 모셔 봐라. 그다음에 얘기하자.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큰형수가 얼마나 고생이 많은 줄 알겠니?”
동생 말에 큰아버지는 큰엄마 생각을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발작을 일으키면 큰아버지도 힘 드는데, 하루 종일 할머니 곁에서 치다꺼리하는 큰엄마가 몹시 안 돼 보일 때도 있었다. 큰엄마 생각을 하며 큰아버지는 잠자코 있었다.
“형님, 아무 말 마시고 요양병원으로 모셔요. 병원으로 모시면 할머니 또래 친구들도 사귀고 더 좋을 거예요.”
작은아버지는 요양병원에 모셔야 한다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큰엄마와 작은엄마, 또 고모부는 어느 쪽 이야기에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를 집에 모시면 식구 모두 어렵게 될 테고, 그렇다고 병원에 보내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바로 이 같은 일이 “한 치 걸러 두 치”라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정말이지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했다.
“형님, 집에서 모시면 형님은 물론 형수님 모두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돼요. 오늘 어머니 하루 집 나가셨다고 온 집안이 난리 났잖아요. 집에서 모시면 이런 난리를 수없이 겪어야 할 텐데. 그 감당을 어떻게 하려구요? 형님 친구분도 치매 앓는 아버님을 모셔 잘 알잖아요.”
작은아버지는 예를 들어가며 물러서지 않았다.
집에서 모시자 요양병원에서 모시자 두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고모와 큰아버지는 집에서 모시자고 하고, 작은아버지 혼자 요양병원에서 모시자고 했다. 그러나 큰아버지 빼놓고 마음은 모두 요양병원에서 모셨으면 하는 것 같았다.
“얼마 안 있으면 무릎관절 치료가 끝나니까 시골집으로 가면 괜찮을 거야.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보고 결정하면 어떨까?”
가족회의에서 다혈질인 작은아버지가 열을 띠자 큰아버지가 말을 바꿔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다혈질은 감정의 변화가 빨라 흥분하기 쉽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다.
작은아버지는 아직도 “씩 씨익”거리며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역시 나를 생각해 주는 건 딸과 큰애(큰아버지)구나. 그런데 딸은 제 남편이 있어서….’
할머니는 밖에서 아들과 딸 또 며느리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들었다.
‘내가 어서 없어져야 한다. 내가 너무 오래 사는 것 아냐?’
할머니는 천근이나 되는 마음을 안고 식구들이 모여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식구들은 의논하다가 할머니 등장에 깜짝 놀랐다.
둘레길 평상바위에서 내려온 할머니는 할머니 방에서 한숨 자고 두런거리는 소리를 따라왔던 것이다.
“너희 말 잘 들었다. 나를 끔찍이 아끼는 너희가 있어 든든하구나. 내 생각도 큰애보다 작은애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집안 풍파가 없을 거다.”
할머니는 식구들이 가족회의 하는 것을 모두 들었던 것이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그게 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하늘에서 정해준 순서가 아니니?”
큰아버지가 고개를 숙여 할머니에게 잘못을 빌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고모 또 숙모는 어쩔 줄 몰랐다.
“요즘 요양병원도 시설이 좋다더라. 빨리 알아보고 나를 어서 그리로 보내거라.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서두르거라. 돈이 들어서 그렇지 나도 그게 좋다. 그곳에는 친구들도 많을 테고.”
할머니 마음은 서운했지만, 서운한 마음을 깊이 꽁꽁 감추고 말했다.
“어머니.”
“엄마.”
큰아버지와 고모가 울음을 터뜨렸다. 뒤를 이어 작은아버지도 숙모님도 모두 울어 울음바다가 되었다.
“왜 우는 거냐?”
할머니가 평소 때와 달리 요양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해 식구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어쩌다 말끝에 요양병원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을 가둬놓고 밥도 제대로 안 주는 곳이라고, 나쁘게 말하던 할머니였다. 할머니 생각을 슬쩍 이웃 할머니 말을 빌려 말하는 일도 없지 않아 있다.
“왜들 울고 그러냐? 나보고 빨리 죽으라고, 내 앞에서 찔찔 짜는 게냐?”
“어머니, 그게 아니에요.”
“내일 요양병원에 가 보자.”
할머니는 큰 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까지 치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걱정하던 가족은 제정신으로 말하는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이 찝찝했다.
‘할머니 요양병원 말고 시골집에 가자.’
다님이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 눈과 마주쳤다.
“다님아, 우리 밖에 나가자. 큰애야. 병원에서 무릎도 거의 다 나았다고 했지?”
“네.”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잡아끌었다.
“할머니, 기운 없잖아.”
“어머니 그 몸으로 어디 가시게요?”
“내 몸이 어때서? 봐라. 잘 걸을 수 있잖니?”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보이기까지 했다. 진짜 할머니를 누가 치매 환자라고 할까? 할머니는 밖에 나가자고 보챘다.
“다님이랑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고 싶구나.”
큰아버지가 눈짓을 하자, 다님이는 할머니와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우리 꽃동네에 가자.”
“우리 꽃동네?”
“그래.”
다님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공원에 있는 야생화가 핀 꽃밭으로 갔다. 갖가지 꽃이 어우러진 꽃밭을 할머니 꽃동네라고 했다. 다님이는 아침에 할머니를 찾으러 올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달랐다.
“다님아.”
대답 대신 다님이는 할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이상하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꽃동네에 분꽃, 과꽃이 없잖아. 맨드라미도 없고.”
할머니 집 꽃밭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패랭이꽃도 있고, 오이풀꽃, 비비추도 있으니까.”
할머니는 꽃동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일어설 줄을 몰랐다. 꽃동네 건너편 연못에 물오리가 새끼들을 이끌고 물살을 가르며 나들이 간다. 다님이는 물끄러미 물오리를 바라보았다. 제 어미라고 졸졸 따라다니는 새끼오리들이 귀여웠다.
“엄마 생각나니?”
할머니가 다정하게 물었다.
“아니.”
다님이는 생각이 나지만 아니라고 했다.
“괜찮아. 할미가 밉지?”
“안 미워.”
다님이 말에 할머니는 잠자코 연못에 오리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시골집에 가고 싶지?”
“다리가 나아야지.”
“거의 나아가잖아.”
“요양병원 가기 싫고 시골집에 간다고 해.”
할머니는 힘없이 말했다.
“넌, 몰라서 그래.”
“내가 뭘 몰라. 나랑 시골집에 가면 되는 거지.”
‘요양병원에 가면 식구들 머리에서 내가 지워지는데, 시골집에 가면 지워지지 않지.’
할머니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쉽게 말하면 할머니는 어느 누구에게도 할머니 때문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이제 집에 가자.”
다님이는 할머니와 큰집으로 갔다. 할머니는 이제 무릎관절염보다 치매 때문에 자식들이 걱정하는 것이 더 걱정이다. 치매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를 동네에 사는 할머니 친구를 통해 익히 잘 알았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이 좋아서 좋다고 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에 피해 줄까 봐 요양병원이 좋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식구들은 요양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할머니 정신이 말짱할 때 요양병원에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큰아버지는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수의 의견에 따라 그리고 큰엄마가 고생할 것 같아 모시는 걸로 결정했다. 한 어머니에 한 핏줄을 태어난 자식들도 하는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시작은 어머니를 위한 마음인데 그 방법은 아주 딴판이었다.
요양병원은 큰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노인 척추와 관절질환을 겸하는 병원이었다. 다님이가 사는 시골집과 큰집 중간쯤에 있었다. 큰집보다 가까워 좋았다.
“병원에 가는 거야?”
요양병원 가는 날. 1차로 진료받으러 가지만, 입원에 대비해 할머니 짐 보따리를 갖고 갔다. 할머니는 혹시나 시골집에 가는 게 아닌가 하고 마음이 들떠 있었다.
‘어른들은 할머니를 몰라도 너무 몰라. 치매가 기억을 잊어버린 병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것이 병이라면 다님이가 딱이 아닌가. 다님가 할머니랑 함께하면 치매라는 병이 금방 나을 텐데.’
다님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어른들이 못마땅했다. 다님이는 할머니를 치매를 낫게 할 자신이 있다. 할머니는 다님이와 있으면 잊어버린 생각을 되찾아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다님이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큰엄마, 작은엄마, 고모가 할머니를 모시고 요양병원에 갔다. 물론 다님이도 갔다. 아마도 다님이 아버지를 빼놓고 온 가족이 한데 모인 것이 오늘이 두 번째가 아닌가 한다.
“여기 병원이도 아니냐? 무릎은 다 낫다고 했는데.”
할머니는 요양병원은 병원과 좀 다른 곳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요양병원에 가신다고 그랬잖아요.”
“참, 그렇지. 그런데 여기가 요양병원이니?”
“네.”
큰아버지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진료실로 갔다. 진료실에는 덩치가 크고 검은 뿔테 안경을 낀 믿음직스러운 의사가 할머니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의사 선생님은 작은아버지처럼 앞머리가 벗겨지고 자상하게 생긴 분이다.
“윤병문이라고 합니다.”
할머니를 진찰하는 윤 박사는 요양병원 원장이었다. 윤 박사는 할머니와 같은 환자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진료한 명의라고 했다. 명의는 아름 난 유명한 의사이다. 윤 박사는 그간 할머니의 상태를 큰아버지, 고모, 다님이, 또 할머니에게 자세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메모했다. 특히 할머니와 다님이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러 시간 동안 가족과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윤 박사가 말했다.
“어떤 쇼크 때문에 치매가 갑자기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될 때 빨리 잘 오셨습니다. 어르신은 감정의 변화가 심해 아주 빠르게 나빠진 것입니다. 어머니는 요즘 흔히 말하는 ‘예쁜 치매’입니다.”
“예쁜 치매라뇨?”
큰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환자가 우악스럽게 나대지 않고,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환자를 말한답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병원보다는 어르신은 댁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눈에 또 손에 익어 좋고, 어르신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손녀가 있어 좋고요, 여기서 간단한 약물치료를 받고 편히 계시면 더는 심해지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무릎 통증은 먼저 병원에서 진료기록서에 따라 진료받으면 되고, 치매와 함께 상태를 보고 곧 퇴원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발작이나 이상한 행동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병원에서 최대한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완쾌될 수 있을까요?”
성질 급한 작은아버지가 물었다.
“완쾌요? 이 상태에서 더 심해지지 않으면 완쾌지요. 이대로 간다면 시골집에서 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다님이 좀 불러 주세요.”
다님이는 원장실에 들어갔다.
“박사님 안녕하세요.”
“다님이라고 했지? 똑똑하게 생겼구나.”
“할머니에게 네 말 잘 들었다. 할머니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라며? 이제부터는 네가 할머니 약이 되어야 한다.”
다님이는 깜짝 놀라 물었다.
“제가 약이라고요?”
“그래. 이제부터 네가 할머니 약이다. 할머니 말 잘 듣고 할머니랑 재미있게 잘 놀면 그게 할머니 약이다.”
“놀아요, 제가요?”
할머니 이상한 병은 약도 별 약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노는 것도 약이 된다니? 신나게 노는 공부는 없나?
“할머니랑 잘 놀면 그게 약이지. 이 세상 어른들 병은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설켜 그 가닥을 찾지 못해 생기는 게 대부분이지.”
“그럼 할머니 병이 저 땜에 생긴 거예요?”
“너는 어린이잖니? 어린이는 잘 모르겠지만 어른은 어른 마음과 마음이 부딪쳐 병이 되곤 하지. 할머니는 너보다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있지 않니?”
다님이는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귀담아들었다. 알 것도 같은데 꼭 집어 알지는 못했다.
“할머니의 좋은 약은 말이다. 네가 할머니랑 즐겁게 지내는 거다. 그게 할머니 병을 고치는 아주 좋은 약이야.”
병실로 내려온 할머니는 환자가 누운 침대를 보자, 코를 막으며 다님이 옷자락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러자 큰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안심시켜 주었다.
“어머니, 여기 계시면 곧 나아서 시골집에 가실 거예요.”
“다님아, 큰애비 말이 정말이니? 요즘 다님이 빼놓고, 내게 모두 거짓말만 하는 것 같다. 관절염도 금방 난다고 하더니… 이 모양이고, 다님아 진짜니?”
할머니는 다님이에게 물었다.
“할머니, 큰아빠 말이 정말이야. 여기서 입원하면 할머니 병이 나아 시골집에 가서 살 수 있어. 아까 원장님도 그랬잖아.”
“시골집에? 몇 밤 자면 가게 되는데?”
할머니는 열 손가락을 부채처럼 쫙 펴고 다님이에게 물었다.
‘할머니…….’
다님이랑 시골집에 가고 싶어 하는 할머니를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빨리 말해 줘. 몇 밤 자면 집에 가는 거야?”
할머니 말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모두 나한테 거짓말한 거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할머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다님이가 할머니 말에 대답했다.
“할머니 거짓말 아냐?”
“그럼 왜 말을 못 해.”
“집에 가는 건 할머니한테 달린 거니까, 우리가 대답 못하는 거야.”
“나한테 달렸다고?”
“할머니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요양보호사님 말을 잘 들어야 해. 그래야 집에 빨리 갈 수 있어.”
다님이 말에 할머니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젠 병원에 가두는 모양이구나.’
할머니는 빨리 집에 갈 수 있다는 다님이 말을 믿으면서도 왠지 그렇지 않은 생각이 꿈틀 고개를 내밀었다. 마을 노인정에서 요양병원은 밥도 안 주고, 약만 먹여 잠만 재우고, 가족 면회도 시켜주지 않고, 친구도 못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생생히 머리에 남아있다.
‘아니야, 난 그래도 다님이 말을 들어야 해. 아까 원장한테도 직접 말을 들었잖아. 그런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 병원 냄새는 어떻게 하지?’
다님이 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한 달 넘게 입원했었다. 그때 할머니는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소독 냄새가 싫어 혼이 났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 병원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꾹 참기로 했다. 하루빨리 다님이와 시골집 가서 살기 위해.
누구나 그렇겠지만 할머니에게 다님이는 세상에 모든 걸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손녀이다. 아버지 직업이 목수여서 일을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녀 한 달에 한 두어 번 정도 집에 왔다. 엄마도 집안 형편으로 일해야 했다.
할머니는 집에 갈 욕심으로 참고 또 참아가며 요양병원 생활을 잘 따라 했다. 병실도 깨끗하게 하고, 몸이 성치 못한 환자들을 부축하기도 하고, 휠체어도 밀어주고 화장실도 가게 했다. 그러나 밤이면 할머니는,
“다님아.”
낮 동안은 순하디순한 할머니이다. 그러나 해가 지면 할머니 답지않게 큰 소리로 다님이를 부르며 문 쪽으로 달려가곤 했다.
“할머니 또 왜 이러세요? 여기 다님이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다님이가 분명 병실 안으로 들어왔는데. 누가 우리 다님이 감췄어. 빨리 찾아 내.”
할머니는 소리소리 질러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이런 할머니를 요양보호사들이 가까스로 말렸다. 난동 피운 할머니를 요양보호사가 달려들어 침대에 누였다. 언제 또 설쳐댈 줄 몰라 경비원이 할머니 양팔과 다리를 묶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이 급히 왔다.
“할머니, 다님이가 얌전하게 있으라고 했잖아요.”
“우리 다님이 언제 온 데?”
할머니는 젊은 의사 선생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님이 말에 벌떡 일어나려 했다.
“다님이가 이번에는 토요일에 온다고 했어요.”
“토요일? 몇 밤 자면 오는 거야?”
“네 밤 주무시면 와요.”
젊은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 손을 꼽아 주었다.
할머니는 그저 다님이가 보고 싶었다. 앉아도, 서도, 누워도, 잠을 자도, 오직 다님이 생각뿐이다.
할머니는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를 귀찮게 하더니 잠이 들었다.
“다님아, 다님아.”
할머니는 다님이 꿈을 꾸나 보다.
할머니는 생활환경이 바뀌어 그런지 병세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다님이를 계속 부르며 찾았다. 할머니가 다님이를 찾는 모습은 눈 뜨고 볼 수가 없이 애절했다.
4> 요양병원
“나 좀 풀어 줘. 사람을 왜 묶었어?”
“할머니, 어제 저녁 생각 안 나세요?”
“내가 뭘 어쨌다고?”
“아니에요.”
간호사는 어제 사건을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혈압 등 간단한 검사를 하고 할머니를 풀어 주었다. 원장 선생님이 할머니에게 나쁜 얘기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문득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할머니를 원장실로 데려갔다.
원장이 할머니를 살펴보다가 어제 일을 물었다.
“할머니, 어제는 왜 야단을 치셨어요?”
“난 모르는 일인데.”
“진짜 모르세요?”
“시골집에 자꾸 가고 싶잖아.”
병원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할머니 말을 들어 주고 할머니 편을 들어주자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어리광 투로 발작 아닌 발작을 할 때도 더러 있었다. 할머니는 원장님을 만나면 모범환자가 된다. 이런 할머니를 보고 요양보호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할머니 멀쩡한 데, 누가 치매 환자라고 하겠어?”
“저 할머니가 치매 환자라고요?”
세탁물을 가져가는 보호사가 물었다.
“그렇다우. 낮에는 조용한데, 날만 어두워지면 자기 손녀 데려오라고 어떻게 떼를 쓰는지 정신이 없어요.”
401호 요양보호사가 대답했다.
“치매 환자가 그 정도면 양반이죠.”
“몰라서 그러세요. 양반이긴, 움직이는 폭탄이에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408호 요양보호사가 끼어들었다.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할머니 좀 잡아 주세요.”
401호 요양보호사도, 408호 요양보호사도 할머니를 쫓아갔다. 할머니는 눈 깜짝할 사이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할머니는 1층에서 경비원에게 잡혔다.
“날 왜 잡아?”
408호 요양보호사가 할머니를 붙잡자 소리쳤다. 뒤따라 401호 요양보호사가 달려왔다.
“고맙습니다. 오늘 또 고생할 뻔했습니다.”
“네가 뭔데? 내가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훼방 놓는 거야?”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에게 거칠게 해댔다.
408호 요양보호사와 401호 요양보호사는 할머니를 이끌고 병실로 갔다.
408호 요양보호사는 할머니를 피하고 싶고 가슴이 뛰었다.
“할머니, 이제부터는 안 풀어 줄 거야. 나랑 약속 안 지켰잖아.”
할머니는 401호 요양보호사 말에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401호 요양보호사가 다시 다짐했다.
할머니는 눈을 껌벅이며 잠자코 있었다. 401호 요양보호사가 다님이를 꺼내며 들먹였다.
“할머니, 한 번만 더 말 안 들으면 다님이 한테 이를 거야.”
다님이 말을 꺼내자 할머니는 입을 열었다.
“부탁이야. 제발 다님이 한테 말하지 마.”
제 정신이 돌아왔는지, 할머니는 다님이란 말에 눈빛이 흐리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좀 괜찮아졌어요? 아까 너무 고생하시는 걸 보고 퇴근해서…….”
할머니를 1충에서 잡아 온 408호 요양보호사가 401호에게 말했다.
“가끔 소란을 떠내요. 여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408호 요양보호사가 401호 요양보호사에게 인사를 했다.
“408호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낯이 익지 않다 했는데 새로 오셨군요.”
“네.”
“어제는 정말 고마웠어요.”
401호 요양보호사가 408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저도 저런 어머니가 계셔서요.”
“저런, 저런.”
“안 보이던 환자 같은데 입원한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죠?”
“네.”
“손녀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할머니 손에서 자랐대나 봐요.”
“그렇구나.”
“손녀를 어떻게나 좋아하는지. 손녀가 오면 정신이 말짱해지는 것 같은데…….”
“그럼, 여기보다 집에서 손녀랑 같이 있게 해주지, 왜 입원시켰죠?”
“잘은 모르지만 무릎 관절 치료도 더 받으며, 더 살펴보는 모양이에요.”
408호 요양보호사는 401호 요양보호사가 하는 말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들었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첫 번째 면회 갔다. 할머니는 반가워 가만히 있지 못했다.
“다님아.”
할머니는 다님이를 보자마자 병실이 답답한지 밖에 나가자고 다님이 손을 잡아끌었다.
“할머니, 말을 잘 안 들었어?”
침대맡에 밧줄이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할머니는 다님이가 묻는 말에 아무 말도 못했다.
“할머니, 요양보호사 아주머니 말을 잘 들어야 해. 그래야 할머니 집에 간다고 했잖아.”
“깜깜하면 우리 똥강아지가 보고 싶단 말이야.”
할머니는 응석을 부렸다.
“그래도 집에 가고 싶으면 참아야지.”
“불쌍한 내 새끼 보고 싶은데.”
“할머닌, 내가 왜 불쌍해?”
401호 요양보호사는 할머니와 다님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서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할머니와 손녀의 애틋한 마음이 요양보호사 마음에도 찐하게 전해져서 일까?
“저어……. 할머니 모시고 나갔다 와도 되죠?”
다님이는 요양보호사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401호 박수영 할머니 환자, 큰 문제가 안 되면 손녀딸의 말을 들어줘요.>
병원장의 특별 지시가 있었다.
요양보호사는 할머니 떼를 써서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원장님 지시가 마음에 걸려 허락했다.
“좋아. 내가 다님이 말을 믿어 보지.”
401호 요양보호사는 무거운 마음으로 승낙했다.
“할머니, 나가자.”
“정말?”
“할머니, 요양보호사 말을 잘 들어야 해.”
“알았어.”
다님이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현관문을 나섰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요즘엔 내 안에 내가 한 세 명쯤 되는 것 같다.”
“할머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많다는 얘기야.”
할머니는 그냥 해 본 말이 아니다. 정말 할머니 안에 할머니가 여럿 있다. 어떤 때는 다님이 엄마, 또 돌아가신 할아버지, 또 다님이, 할머니 자신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여러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할머니는 분명 하나인데,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바깥으로 나온 다님이는 할머니와 같이 요양병원 연못가 벤치에 앉았다.
“할머니, 뭐 물어도 토라지지 않을 거야?”
다님이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 말이 튀어나왔다.
“어멈 얘기구나.”
할머니는 다님이 생각하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어떻게 잘 알지?”
“지금은 내가 다님이, 너거든.”
“할머니가 나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어. 또 네가 여기서 나한테 물어볼 게 그것밖에 더 있니?”
다님이는 할 말을 잃었다.
“할미 정신이 흐려지기 전에 어서 물어. 다님아, 내가 왜 너를 좋아하는 줄 아니?”
“할머니 똥강아지니까.”
“그것도 그거지만 너는 엄마를 쏙 빼어 닮았어.”
할머니는 엄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냈다. 할머니가 엄마 이야기를 꺼내다니, 다님이도 마음 놓고 엄마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정말 엄마를 닮았단 말이야?”
“그럼.”
요즘 들어 할머니는 엄마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나이 들면 마음이 바뀐다는데 할머니 마음이 변하나? 엄마 말만 꺼내면 싫은 기색을 보였던 할머니가 엄마 얘기를 자주 꺼내고 눈물을 보이니 말이다. 다님이는 할머니의 눈물 때문에 엄마 말을 되도록 꺼내지 않았다. 할머니가 편찮으셔 가족들이 할머니께로 모이는데 아버지도, 엄마도, 함께 했으면 했다.
다님이는 할머니와 요양병원에서 있다가 집으로 가던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다님이는 할머니가 병세가 좋아져 곧 퇴원할 수 있다는 희망의 발걸음으로 집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삐리릭, 삐리릭.”
스마트폰이 다님이를 불렀다. 번호 뜬 것을 보니 큰엄마였다.
“덜컹.”
스마트폰 큰엄마 벨 소리에 다님이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다님이는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받았다.
“다님아, 집에 다 갔니?”
“아뇨.”
“글쎄 네가 집에 가고 나서, 할머니가 없어지셨단다.”
“네에?”
다님이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혹시 할머니 네가 모시고 간 건 아니지?”
“아니에요.”
다님이는 전철에서 내려 되짚어 요양병원으로 갔다. 전철이 이렇게 느리게 가는지 미처 몰랐다. 오늘따라 전철이 역에서도 한참 정차하고 출발도 늦게 했다. 제시간에 제 속도로 가는데 다님이 생각에는 시간도, 전철 속도도 엄청 느렸다.
‘할머니, 제발……. 다님이랑 재미있게 살아야죠.’
요양병원에는 시골집에 있는 아버지를 빼놓고 모두 와 있었다. 다님이가 집에 가고 병실에서 보이지 않아 병원 안을 샅샅이 찾았는데 할머니가 없다는 것이다.
“손녀를 만나고 기분이 좋으셨는데.”
401호 요양보호사가 걱정했다.
“병원 안을 제가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다님이가 말했다.
“병원 건물 안에는 없을 거야.”
“그래도 제가 한 번 더 찾아볼게요.”
다님이는 큰엄마와 큰아버지랑 5층 꼭대기서부터 살피며 내려왔다.
“다님아, 병원 건물 안에는 안 계셔. 너랑 함께 있던 동산이나 연못 근처에 가서 찾아봐라.”
408호 요양보호사는 병원 건물 밖을 찾아보라 하고, 다님이 큰아버지와 큰엄마가 가까이 오자 자리를 피했다. 날이 어둑어둑 해서 다님이는 관리실에서 플래시를 얻어 바깥으로 나갔다.
연못가에도, 동산에도 할머니는 없었다.
‘나를 따라가려고 정문으로 간 게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다님이는 부리나케 정문 수위실로 달려갔다.
“아저씨, 정문으로 할머니 한 분 나가는 것 보셨나요?”
“내가 한 시간 전에 교대했는데 없었다.”
“환자 옷을 입은 할머니인데요”
“이 시간에 환자가 보호자 없이 밖에 나가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경비아저씨는 딱 잘라 말했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와 소녀가 수위실로 왔다. 아주머니는 소녀 손을 잡고 수위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환자를 면회 온 아주머니 같았다.
“다님아, 다님아!”
어둠 속에서 어떤 할머니가 다님이를 부르며, 슬리퍼를 끌고 수위실로 달려왔다.
“다님아, 다님아. 나야 나. 할미야.”
“엄마, 이 할머니 좀 봐.”
소녀는 뒤 따라 온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여기야, 할머니, 다님이 여기 있어.”
다님이는 할머니를 부르며 할머니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 똥강아지?”
소녀 쪽으로 가던 할머니는 귀에 익은 다님이 소리가 나는 대로 갔다.
“다님아, 날 두고 가지 마.”
할머니는 소녀가 다님인 줄로 알았다.
다님이가 집에 가느라 할머니와 헤어졌다. 심심한 할머니는 살며시 병실을 빠져나왔다. 할머니는 다님이와 앉아 있던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정말 다 나아 집에 갈 수 있을까?’
할머니는 다님이가 곁에 없어 쓸쓸했다. 여태껏 일을 미루어 보아 집에 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할머니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된 것이 새로 온 408호 요양보호사이다. 안경과 마스크를 썼지만 분명 다님이 엄마 같았다. 눈이 침침해 확실치는 않지만, 전체 모습이 틀림없었다. 할머니가 408호 아줌마와 가까이 하려면, 408호 요양보호소 아주머니는 피했다. 분명 며느리 같은데 왜 나를 피할까? 그때의 일 응어리가 아직 덜 풀렸나?
할머니는 다님이와 같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반짝, 반짝> 다님이를 찾는 불빛이 벤치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할머니는 벤치 밑으로 기어 들어가 바짝 엎드려 몸을 숨겼다. 불빛이 의자 밑에 웅크린 할머니를 스쳐 지나갔다.
불빛은 할머니와 헤어져 수위실이 있는 정문으로 갔다. 어둠 속 불빛이 다님이를 수위실로 안내했다. 할머니도 불빛을 따라 수위실로 갔다.
“저기 할머니예요.”
다님이는 할머니에게 뛰어갔다.
“어딜 가려고 나온 거야?”
“우리 똥강아지 찾으러.”
다님이가 할머니 곁에 있는 것밖에는 좋은 방법이 없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할머니를 잘 돌보라고만 했다.
“큰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제가 여기 있을래요. 원장님도 그게 좋다고 했잖아요.”
“어린 네가! 학교는 어떡하고?”
“안 그러면 할머니 또 없어진단 말이야.”
다님이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퇴원 때까지는 그게 좋겠다.”
고모가 얼른 말했다.
고모는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 병문안을 한 번도 오지 않고 말은 제일 많았다.
“얘는, 어머니 누워 계신데 신경 좀 써라.”
큰아버지가 고모를 나무랐다.
고모는 씨근덕대며 변명했다.
“큰오빠는? 고3 엄마라는 걸 모르시나?”
고모는 실쭉했다.
“어른들이 많은데 나 몰라라 하고, 어린 것이 간호하게 해?”
“큰아버지, 저 어린애 아녀요. 할머니는 저랑 있겠다고 하잖아요. 또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하고요.”
“그래 다님이는 어린애가 아니야. 내 맘을 잘 아는 사람은 다님이 밖에 없어. 너희보다 훨씬 어른이다.”
할머니가 한몫 끼었다.
“할머니는, 내가 할머니 약이잖아?”
다님이 말에 모두 웃었다.
“참, 그렇지?”
멋처럼 큰엄마가 편안하게 웃었다.
“다님이랑 있으면 할아범처럼 편안하다. 나 때문에 다님이가 고생하지만, 내가 빨리 나을 수 있다고 하잖아. 다님이 애미를 봐서라도.”
“어머니, 제수(다님이 엄마) 씨는 어머니 땜에 집을 나간 게 아니에요?”
‘할머니 때문에 엄마가?’
큰아버지 말에 엄마 이야기가 할머니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다님이는 어렴풋이 알았다.
“큰아버지, 제가 있어야 할머니가 또 소리치는 것도, 없어질 거예요. 또 빨리 퇴원하고요.”
“그래. 다님이가 없으면 난동을 부리고 소리 지를지도 몰라.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이야.”
할머니는 다님이를 보며 식구들에게 은근히 겁을 주었다.
6> 손거울
다님이가 할머니 머리맡에 있어 그런지 할머니는 가는 코를 골며 잘 잤다. 다님이도 할머니 침대에 엎드려 조는 것을 408호 요양보호사가 보조 침대에 눕혔다.
그때였다.
할머니가 번쩍 눈을 떴다.
“애미야!”
잠이 깬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를 애미라고 부르자, 408호 요양보호사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라며 꽁지가 빠지게 할머니 곁을 떠났다.
“다님아, 저 여자야!”
“할머니, 어떤 여자?”
다님이는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여기 있던 여자 말이야.”
“할머닌, 무슨 사람이 있었다고 그래. 할머니랑 나, 둘 뿐인데.”
단잠에서 깬 다님이는 할머니가 또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말하는 줄로 알았다.
다른 환자를 보살피던 401호 요양보호사가 급하게 오며,
“여기. 또 누가 있었다고 그러세요? 저는 저쪽 끝 환자를 보살폈는데요.”
“우리 요양보호사 말고.”
정신이 멀쩡한 할머니는 또 치매라서 그런 거라고 할까 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누구와 이야기하던 할머니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것이 속상해 말을 하다가 입을 닫을 때가 종종 있다. 오로지 할머니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다님이 뿐이었다. 그런데 다님이 까지도…….
얼마 지나서 408호 요양보호사가 401호실을 기웃거렸다.
“할머니, 잠들었어요. 408호는 할머니와 잘 아는 사이인가요?”
401호 요양보호사가 물었다. 요양병원에서는 병실 요양보호사 끼리는 서로 병실 호수로 부르기도 했다.
“아는 사이이긴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집에도 저런 어머니가 있어서요. 미안하지만 제가 401호에 드나드는 걸 모른 척해 주세요. 다님이는 괜찮지만, 할머니와 그 가족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해주세요.”
408호 요양보호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이상한 말을 했다.
“그럼요, 그럼요. 무슨 사정이 있나 본데, 그러지요.”
401호 요양보호사는 쿨하게 대답했다.
“저어… 다른 게 아니라 다님이 가족 중에 좀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408호는 401호 바로 건너편 방 옆 방이어 요양보호사들이 서로 왔다 갔다 했다.
다음 날 아침 다님이는 일찍 일어나 할머니 침상 주변을 정리했다. 할머니는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다.
“참, 별일이야? 손녀가 있으니까 투정도 안 부리고 잘 주무시네.”
401호 요양보호사가 신기하듯 말했다.
“그러잖아도 조용하다 했죠.”
408호 요양보호사가 끼어들었다.
“다님아, 이분께 감사드려라. 할머니와 같은 병을 앓는 어머니가 있다고 가끔 오셔서 돌봐 주신단다. 어젯밤 늦게 너를 보조 침대에 눕힌 것도 408호란다.”
“고맙습니다. 저는 할머니 손녀 다님이에요.”
다님이는 공손히 머리 숙여 인사했다.
“다님이?”
401호는 다님이를 불러놓고 다음 말을 얼른 꺼내지 못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이름 참 곱구나.”
401호가 말했다.
“달님이란 말이래요.”
‘다님이?’
401호는 속으로 다님이를 돼내어 보았다.
“엄마가 달을 많이 좋아하셨대요.”
다님이 말에 408호는 머리를 푹 숙였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큰아버지가 들어왔다.
“큰아버지.”
다님이는 큰아버지 품에 안겼다.
408호는 머리를 숙이고 급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아주 대단한 조카 손녀를 두셨네요.”
옆 환자 할머니가 말했다.
“네, 대단한 손녀지요. 이 애가 어른 두 몫을 하는 애랍니다.”
병실에 이야기하는 소리가 나자 할머니가 눈을 떴다.
할머니는 병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애미 어디 갔어?”
“어머니 또 왜 그러셔요? 누구 애미가 왔다구요?”
할머니가 갑자기 엄마를 찾는데 누구 엄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큰엄마도, 작은엄마도, 다님이 엄마도 모두 애미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할머니, 누구 엄마 찾는 거야?”
‘앗차! 이거 또 나를 치매로 보는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할머니는 잠자코 웃기만 했다.
“내가 누구야? 다님이 알지?”
할머니가 정신이 나간 줄 알고, 다님이가 할머니에게 장난삼아 물었다.
“어젯밤 이 할미랑 잤잖아.”
“이상하다. 말짱하신데.”
큰아버지와 가족들은 요즘 할머니가 뜬금없이 애미를 찾는 일이 있어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큰애(큰아버지)는 회사 가고, 다님이는 학교 가거라. 나 이제 여기 혼자 있어도 된다.”
식구들이 이상하다 싶어 가만히 있는데 다님이가 말을 했다.
“할머니는?”
“난, 여기 있지.”
“집에 안 가고?”
“몹쓸 병 빨리 고쳐야지.”
어제까지 집에 가겠다고 하던 할머니가 병원에 있겠다니 모두 놀랐다.
“다님이도요?”
고모가 물었다.
다임이란 말에 할머니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다님이는 학교 가야지.”
할머니는 슬쩍 다님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나도 얼른 나아 곧 집에 갈 텐데 뭘.”
“다님아, 어젯밤에 무슨 말 했니?”
큰아버지는 다님이가 할머니에게 단단히 부탁한 줄로 물었다.
“아무 일 없었는데요.”
“다님이는 멋처럼 보조 의자에서 곤히 잤는데요.”
401호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할머니가 큰아버지를 보며
“어제 다님이 엄마가 다녀갔어.”
할머니는 생뚱맞은 말을 했다. 생뚱은 앞뒤가 맞지 않고 매우 엉뚱함
“언니가?”
“제수씨가요?”
다님이와 큰아버지는 놀라서 동시에 물었다.
‘엄마가?’
다님이는 입속에서 말을 꺼내지 못하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내가 이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할머니는 자신 있게 말했다.
“어머니, 정말이에요?”
“내가 너희들한테 왜 괜한 이야기를 하겠니?”
할머니는 큰아버지 말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큰아버지는 기쁘면서도 온전한 정신으로 말하는가가 의심스러웠다.
다님이는 엄마라는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큰아버지는 스마트폰을 걸고, 뭐라고 하더니 병실 밖으로 나갔다. 원장을 만나러 갔던 것이다.
“원장님, 저희 어머님이 이상하네요.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요.”
원장은 입안 가득 웃음을 물고 말했다.
“환자 가운데는 과거의 일을 현재처럼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치매가 심한 게 아니라 갑자기 어떤 큰 충격을 받으셔 더 그렇습니다. 그 여파로 어제와 오늘이 뒤섞여 증상이 갑자기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충격을 없애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게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다님이가 할머니 곁에 있다고 하죠. 아주 좋은 치료입니다. 할머니가 다님이에게 무슨 말이든 많이 하게 하십시오. 다님이를 신뢰하고 좋은 관계를 갖게 하세요. 약물 투여를 조금 더하고, 빠른 시일 안에 다님이와 함께 살게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수씨 땜에 큰 충격을 받아서 그럴 거야.’
할머니는 무릎 관절 고친다고 큰아버지네 새장 같은 아파트에서 산 것이 치매에 원인인데 큰아버지는 다님이 엄마 때문에 그런 줄로 알았다. 물론 다님이 엄마에 대한 앙금도 없지는 않지만.
그날 할머니 말대로 401호 요양보호사에게 단단히 부탁하고 다님이만 남고 모두 집으로 갔다. 물론 이것은 의사 지시에 따른 것이다. 식구들이 있을 때는 웃고 떠들어 몰랐다. 특히나 그 웃음과 이야기가 할머니에 관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식구들이 모두 병실 문을 나서자, 할머니가 아닌 다님이도 병실이 텅 빈 것이 외로움이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우리가 모두 가면 할머니가 이런 마음으로 계시겠지.’
다님이는 병실을 둘러보았다. 할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넌, 안 가니?”
할머니는 다님이가 곁에 있어 좋으면서도 물었다.
“할머니 코오하면 가려구.”
“할미가 잠 안 자면 안 가는 거야?”
“그럼.”
“다님이는 아버지도 잘 보살펴 드려야지.”
할머니 얼굴에 엷은 미소가 흘렀다.
“아빠 이젠 많이 나았어. 요리를 얼마나 잘하는데.”
다님이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말을 골라 했다.
“밥 먹고 제가 마실 물도 떠다 먹을 줄 모르던 애가 부엌에서 반찬을 만들어? 고얀 놈 제어미는 부려 먹고 제 딸은 상전 노릇하게 하네.”
“아빠는 물도 안 떠먹었어?”
“그럼, 네 할비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고 못 드나들게 했지.”
“할머니, 내가 그렇게 좋아.”
“좋지.”
“왜 좋아?”
할머니는 생각하느라 눈을 꿈뻑이다 말했다.
“네가 하는 짓이, 꼭 네 아범 같은 게 많지.”
“그게 뭔데?”
“이를테면 추운 겨울날에도 찬물을 마시고, 옷소매를 올려 입어 할아버지한테 혼 많이 났지.”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어떻게 혼을 내?”
“말로만 혼냈지.”
“할머니 눈 감아 봐.”
“왜? 갑자기 눈을 감으라는 거야?”
“글쎄 감아 봐.”
“할머니한테 꼭 줄 게 있어.”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할머니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할머니 나를 주는 거야.”
“아니, 우리 다님이가 또 있어?”
“내가 나라고 하면, 다님이가 아닌가, 뭐?”
“맞아, 네가 다님이라면 다님이지 않고.”
다님이는 품속에서 무엇을 꺼냈다. 아기 손바닥만한 동그란 밤색 뿔테 거울이었다. 테가 반질반질하고 빛이 나, 오래된 거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할머니 눈 뜨고 다님이 받아.”
할머니는 눈을 번쩍 뜨고 거울을 보고 놀랐다.
“아니? 이거 어디서 났지?”
할머니 눈이 동그래졌다.
“어디서 나긴?”
할머니는 거울을 요리조리 뜯어 보다가 거울을 보고 찡그려도 보고, 하하하 웃어 보이기도 했다.
“그만 보고, 내 말 좀 들어 봐.”
“이거 어디서 났어?”
“왜?”
“글쎄.”
다님이는 거울에 자기 얼굴을 담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엄마 보고 싶으면 보라고 준 거야.”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거울을 빼앗아 들고 가슴에 꼭 안고 중얼거렸다.
“어멈아, 어멈아.”
“할머니, 왜 그래?”
“내가 왜?”
“할머니, 그 거울이 좋아?”
“그럼…….”
할머니는 무슨 말을 꺼내려다 꺼내지 않았다.
이 손거울은 할머니의 어머니가 준 것이었다. 이걸 할머니가 간직하다가 시집온 다님이 엄마에게 준 것이다. 다님이 엄마가 돈을 벌러 가겠다고 할 때 다님이 엄마가, 정표로 다님이 아버지에게 건네준 것이다.
“할머니, 나와 같은 이 거울 주려고.”
“아냐, 네가 갖고 있어.”
할머니는 거울이 갖고 싶은데 관심이 없는 척했다.
“할머니, 이 거울에 대해 아는 것 같은데, 아는 사람이 갖고 있어야지.”
“내가 알긴 뭘 안다고 그래.”
“하여튼 내게 중요한 나와 같은 것이거든. 엄마 생각나면 보라고 아빠가 준 거야.”
“아빠가?”
“내가 이걸 줄 테니 내가 없어도 절대로 투정 부리지 않기.”
“글쎄?”
할머니는 말꼬리를 흐렸다.
“거울아, 거울아. 우리 할머니 정신 줄을 놓지 않게 도와주라.”
할머니에게 거울을 주어 그런지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투정 부리는 일은 없었다. 소리치지도 않았다. 단지 말을 안 하고 소리 죽여 가끔 울기는 했다.
할머니는 다님이가 안쓰러워 잠든 척했다. 다님이는 할머니가 잠들자 얼굴에 뽀뽀를 하고 요양병원을 나왔다.
‘할머니가 찾는 엄마라고 하는 이는 누구일까? 엄마가 진짜 병원에 있단 말인가?’
할머니가 갑자기 엄마를 찾는 이상해진 할머니와 엄마에 대해 수수께끼를 갖고 전철을 탔다. 병실에 있지 말고, 학교에 가라고 떠미는 듯한 할머니 말이 좋으면서도 서운했다.
‘내가 할머니 곁에 없으면 안 된다고 하더니. 이제는 학교에 가라고 등을 떠밀어?’
어떤 때는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2박 3일, 요양병원의 배려로 할머니 침대 곁에 보조 의자를 놓고 쪽잠을 자며 할머니를 돌봤다. 아니, 요양병원 원장 말대로 할머니와 같이 재미있게 놀았다. 논다는 것이 할머니 이야기를 받아주는 것이 다다.
할머니 이야기란 할머니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이야기와 할아버지 이야기, 알지 못하는 생경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 주는 것이다.
치매 상태가 덜 하자 원장으로부터 퇴원을 약속받았다.
여느 병원도 그렇지만 요양병원도 아침나절에는 바쁘다.
주변 청소도 하고,
환자 점검도 하고,
의사들이 회진도 돌고,
아침도 먹고,
환자도 요양보호사도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할머니도 여기 생활에 길들어 잘 따라 했다. 모두 바쁘게 움직일 때 할머니는 병실 주변을 왔다 갔다 해도 요양보호사가 가만두었다. 밥 먹고 운동이 필요했으니까.
할머니는 아침을 먹고 복도에 나가 서성이다가 말리는 사람이 없어 걷다 보니 4층 끝에 있는 휴게실까지 갔다.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커피 마시는 아주머니 환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저 젊은 여인도 나랑 똑같은 병인가?’
할머니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이 요양병원이 치매 전문병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매 병동 말고도, 당뇨와 고혈압, 관절 환자도 있었다.
‘이 두 눈으로 분명 다님이 애미를 보았는데. 모두가 모르다니?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진짜 치매 걸린 것인가?’
할머니도 할머니 자신을 알 수가 없었다.
7> 그리운 엄마
다님이가 어렸을 때 다님이 아버지는 집 짓는 목수였다.
집을 지을 뿐만 아니라, 연립주택을 지어 팔기도 했다. 그런데 아파트 붐이 일어 아버지가 지은 집이 팔리지 않아 폭삭 망했다. 아버지는 물론 엄마도 뒷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님이 엄마도 아버지도 다님이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다님이 아버지가 옥살이를 해야 될 판이다. 그전에도 다님이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와 달리 집 짓는 일을 따라 옮겨 다녀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다가 힘든 일을 해서 그런지 아버지는 밥보다는 술과 더 가까웠다. 혈압은 높은데 병원은 물론, 약 한 톨 먹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아버지는 당뇨까지 있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뇌졸중이 온 것이다. 아버지가 자리에 눕자 엄마는 돈을 번다고 집을 비우고부터 아버지는 병이 더 심했다.
다님이네는 서울 큰아버지 집에서 큰집 식구와 살았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서울보다 공기가 좋은 할머니 댁에 내려가 살기로 했다. 할머니 댁은 경기도지만 서울 전철이 다녀 교통이 좋았다. 할머니는 부자는 아니지만 논과 밭이 많았다.
“어머니, 당분간 다님이 좀 봐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
“돈이 있어야 아범 병을 고치는데, 제가 나가서 돈을 벌어 아범 병을 빨리 고치게요.”
“그런 걱정은 말거라. 집 앞 텃밭만 팔리면 모두 해결된다.”
아버지는 아프고, 약값, 병원비, 생활비 엄두를 못 내어, 다님이네는 시골 할머니 댁으로 옮긴 것이다. 이사를 하고 다님이 엄마는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간 것이다. 물론 다님이 아버지와 의논을 했다.
돈을 벌어 오겠다고 쪽지를 써 놓고 새벽같이 없어진 것이다. 할머니는 엄마가 더 참지 않고 집을 나간 게 서운했다. 엄마가 나간 뒤, 몇 달 뒤부터 아버지에게 돈을 조금씩 보내왔다. 그러나 엄마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아버지는 혈압과 당뇨에 좋다는 나무를 심어 시골 생활에 취미를 붙여 휴양하며 살았다. 당 수치도 혈압도 많이 내렸다. 할머니와 아버지 또 다님이 세 식구는 재미있게 잘 살았다. 그런데 할머니 무릎관절염이 심해 큰집에서 치료받다가, 할머니는 치매를 앓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쉬엄쉬엄 약초를 키우고, 다님이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일손을 도우며 엄마가 보내 주는 돈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살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관절염 치료를 받으러 간 큰집은 할머니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큰집에서 큰엄마와 큰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잘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잘해 주어도 시골집 약수물을 바가지로 떠먹으면 막혔던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그런 맛이 단 하나도 없다.
다님이는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또 의사 말을 듣고 생각했다.
‘잘은 모르지만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할 병이 아니야. 시골집에서 나랑, 아버지랑 재미있게 살면 낫는 병이야. 원장 선생님도 그랬는데.’
다님이는 어떻게 하든 할머니를 시골집에 내려오게 하고 싶었다. 할머니도 그런 다님이 마음을 아는지 다님이 말을 잘 들어주었다. 다님이 말을 잘 듣게 된 까닭 가운데 하나는 408호 요양보호사가 아닌가 한다.
할머니는 예전과 달리 다님이 말을 더 잘 듣고, 다님이가 없을 때는 408호 요양보호사 말을 잘 들었다.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가 다님이 엄마 같다고 계속 말했다.
“애미(408호 요양보호사) 좀 불러다 줘.”
할머니는 401호 요양보호사에게 조용히 부탁했다. 401호는 408호 요양보호사를 애미라고 부르는 것은 치매 끼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애미야, 너 다님이 애미 맞지?’
“어르신, 어르신 무슨 말씀이에요?”
408호는 펄쩍 뛰며 아니라고 했다.
“애미야,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으니 용서하렴.”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에게 용서를 빌었다.
“아주머니, 제게 무슨 잘못을 하셨다고 이러셔요?”
“너, 다님이 애미 맞지? 귀신을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에게 말했다.
408호 요양보호사가 할머니 며느리라는 것을 401호 요양보호사도, 또 환자들도, 믿지 않았다.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할머니가 허튼소리 한다고 생각했다.
“408호, 저 할머니 말이 진짜야?”
하고 408호에게 물으면,
“아니에요?”
하고 딱 잘라 대답했다.
할머니는 408호 병실 근처에서 어정거리는 시간이 많아졌었다. 408호 요양보호사가 일 때문에 401호에 자주 못 오면 할머니가 408호 병실로 갔다. 408호 환자들은 중증 환자여서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였다.
다님이가 요양병원에 오는 시간이 되면 마당과 수위실이 환히 보이는 창가에서 수위실 쪽을 뚫어져라 보았다. 다님이는 그것을 알고 할머니가 안 보여도 요양병원 입구를 들어서며 손을 흔들었다.
“똥강아지 온다, 우리 다님이가 온다.”
다님이가 보이면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
젊은 의사는 병원장 지시에 따라 할머니가 다님이와 함께라면 요양병원 구내를 돌아다녀도 좋다고 허락했다. 할머니는 바깥바람 쐬는 것을 좋아했다. 병원 로비를 지나 경비원에게 허락을 맡고 산책길로 들어서면 할머니는 숨을 깊게 들여 마시고 내뱉었다.
“휴우우, 아 좋다!”
“할머니, 밖이 그렇게도 좋아?”
“네가 이 마음을 알겠니?”
<병원 문!>
“저 문은 사람을 들어오게 하고, 나가게 하는 문이 아니야. 저 문은 벽보다 더 높아 넘을 수 없는 벽이야.”
“그런 게 어딨어? 문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지.”
“네가 몰라서 그래. 우리 가운데 저 문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마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걸?”
할머니는 빨리 퇴원해 집에 가고 싶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다님이는 할머니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다가 맨드라미가 흐드러지게 핀 정원 벤치에 앉았다. 산책길 가장자리로 코스모스가 바람에 휘날렸다.
“너 다님이 맞지?”
다님이는 대답 대신 할머니 얼굴을 빤히 보았다.
“내가 다님이 아니면 누구야?”
할머니 눈 가장자리가 촉촉한 물기가 있어 아기 사슴 눈 같았다.
“제 엄마도 몰라보는 애가 정말 내 손녀 맞아?”
“할. 머. 니!”
다님이는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뜻으로 힘주어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한 번 만나 보라니까?”
408호 요양보호사를 만나 보라는 말이었다. 도대체 할머니는 왜 408호 요양보호사를 엄마리고 하는 걸까? 다님이는 마스크에 얼굴이 갇힌 408호 요양보호사를 그리며 한번 만나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님이는 토요일에 하룻밤, 또는 이틀 밤을 할머니와 잤다. 일요일에는 거의 하루 종일 할머니와 병실에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말하는 408호 요양보호사는 보지 못했다. 요양보호사들이 머릿수건을 하고 마스크를 써 서로 누가 누군지 잘 알 수가 없다. 또 같은 유니폼을 입어서 몇 번을 보아도, 얼굴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여섯 살 때 헤어져 지금 아홉 살.
엄마는 다님이를 알아보겠지만 다님이가 어린 시절의 엄마를 기억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맨얼굴도 아닌 마스크와 머릿수건을 쓰고 유니폼을 입었으니 어떻게 알아보겠는가.
‘할머니 말이 진짜일까?’
다님이는 408호 요양보호사를 만나 보기로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환자 면회 온 가족들로 조금은 느슨하고 병원 안이 시끌시끌했다. 다님이는 이 틈을 타서 408호 요양보호사를 지켜보리라 마음먹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오전에는 408호 요양보호사가 보였는데 점심시간 후에는 보이지 않았다.
“408호 요양보호사 어디 가셨나요?”
“왜, 할머니가 찾으시니?”
“아니에요. 할머닌 주무세요.”
“408호 오후 교대야.”
다님이는 잠자는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잡아끌며 안아주었다. 할머니는 자지 않았다.
“이제는 똥강아지 필요 없으니 집에 가. 할미 혼자 잘 있을 수 있어.”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할머니 왜 408호 요양보호사를 엄마라고 하는 거야?”
할머니는 다님이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도 엄마면 좋겠다.”
“아니 누가 엄마면 좋겠다는 거냐?”
큰아버지와 큰엄마가 병실로 들어오다 다님이 말을 듣고 큰엄마가 물었다.
“408호 요양보호사요.”
“어머니(할머니)가 너한테도 그러시니?”
큰아버지는 이상하다는 듯이 다님이에게 물었다.
“네, 어떤 때는 저 보다도 408호를 더 찾으셔요.”
“다님이는 이제 집에 가 봐라. 아버지도 보살펴 드려야지. 어린 녀석이…….”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말을 못 잇고 눈물을 글썽였다.
“어서 가 봐라. 여긴 큰아버지와 내가 있을 테니.”
다님이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할머니도 큰아버지도 집에 가라고 해서 혼자 우두커니 있을 아버지 생각에 병원을 나섰다.
‘할머니가 괜찮을까? 큰아빠와 큰엄마도 집에 곧 갈 텐데.’
8> 만남
환자를 면회 온 가족들이 하나, 둘 집에 가고 요양보호사들이 저녁 먹을 준비를 할 때였다.
“다님아, 애미야.”
할머니는 다님이와 408호 요양보호사를 큰 소리로 부르며 침대를 두드리고 난리를 폈다. 갑자기 뭐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저지해도 소용이 없자 요양병원에서는 곧바로 큰아버지와 다님이에게 연락했다. 병원에서 연락을 받은 다님이는 아버지 저녁을 차려 주고 쏜살같이 요양병원으로 갔다. 다님이가 병실에 들어서자 할머니는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다님아.”
“할머니가 나 보고 집에 가라고 했잖아.”
다님이는 할머니와 약속한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응. 그랬지.”
할머니는 누구를 찾는지 두리번거리다가 다님이 엄마를 찾았다.
“그런데 네 엄마는 어디 갔니?”
“할머니, 408호 요양보호사지 엄마 아냐.”
다님이가 말하자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기만 했다.
모두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 가만히 있었다. 모두 조용하게 있자 할머니가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제 엄마를 눈앞에 보고도 모르다니.”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는지 할머니 눈에 힘이 풀렸다. 분명 다님이 엄마가 있지만, 더 이상 우길 수가 없었다. 자꾸 우기면 치매가 더 심해진다고 병원에 더 붙들어 놓을지도 모른다는 나름대로 할머니 생각에서였다.
곧이어 큰아버지와 큰엄마도 왔다.
“넌 가서 쉬라니까 왜 왔니?”
다님이를 보고 큰아버지가 말했다.
“가만있어 봐.”
할머니가 큰아버지 말을 끊고 말했다.
“큰애미야, 408호 막내 애미 아니니?”
“그럴 리가요?”
“막내 애미도 할 수 있잖니?”
“시험 보고 된다는데 그럴 만한 시간이 있었을까요.”
“그건 그렇구나.”
“아닐 거예요.”
“큰엄마가 408호 요양보호사를 한번 만나 보세요. 할머니도 그냥 하는 말 같지는 않아요.”
할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마스크를 하고 머리에 수건을 써 이마를 가렸다고 해도 할머니가 아무렴 제 며느리를 몰라볼까? 그래서 자꾸 식구들에게 408호 요양보호사를 만나 보라고 했던 것이다. 할머니 성질대로 했으면 벌써 끝이 났을 텐데 치매 끼가 와서 우기는 거라고 할까봐 할머니는 나름대로 408호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것이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할머니는 할머니 자신을 몰랐다. 할머니는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 같은데 식구나 주위 사람들은 정신이 돌아왔다고 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니, 할머니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소리치고 나대는 것은 할머니 자신도 어느 정도 알았다.
다님이가 큰엄마에게 말했다. 요즘 들어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408호 요양보호사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 할머니가 왜 그러시는지 알아봐야겠다.”
큰아버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를 시시때때로 찾았다. 그러나 408호는 할머니와 마주치질 않았다.
그 다음 토요일 할머니와 산책했다.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는 손잡고 거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할머니 건강에도 좋아 병원에서 권장했다.
“다님이는 나 보다 아버지를 더 돌봐야 하는데.”
할머니는 굳게 잡은 다님이 손을 풀고 쭈글쭈글한 손으로 다님이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치매가 오고부터는 부쩍 아빠와 엄마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할머니 땜에 그렇잖아.”
다님이는 할머니에게 톡 쏘아 말했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구나. 이 할미가 밉지?”
할머니는 가벼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할머니가 밉긴 왜 미워?”
“엄마 내쫓았다고.”
“할머니가 내쫓은 게 아니라며?”
할머니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나오자 다님이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엄마가 있어 보고 싶어도 맘대로 보지 못하는 엄마. 할머니 마음은 다님이보다 더 섧게 울었다.
“우리 똥강아지 말이 맞아. 엄마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내쫓은 게 아냐. 아버지 병 고치려고 돈 벌려 나간 거야. 그러니 크게 보면 내가 내쫓은 거나 다름없지.”
“할머니 잘못 아냐. 할머니 말을 안 들은 엄마가 잘못이지.”
다님이는 할머니가 듣기 좋은 말을 했다.
“할머닌, 408호 요양보호사가 엄마 같아?”
“응. 408호는 네 엄마가 맞아.”
“정말?”
할머니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하도 아니라고 하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
다님이 어린 눈에도 할머니가 애처러워 보였다.
“할머니 정신 줄을 꼭 잡고 말해.”
“꼭 잡지 않구? 정신 줄을 잡는데, 힘을 주는 게 똥강아지와 408호야.”
“나랑, 408호?”
다님이는 408호 요양보호사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다님이는 어쩌면 408호가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엄마라고 하는 요양보호사로만 알았지 얼굴도, 목소리도 제대로 보고 듣지 못했다. 그렇게 많이 부딪쳤으면서도 말이다. 할머니가 정신 줄 이야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408호 요양보호사가 엄마라는 이야기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할머니 건강상태가 좋아져 퇴원을 얼마 앞둔 어느 날이다.
요양병원이 또 온통 뒤집혔다.
할머니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큰아버지 댁에는 물론 시골집에도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는데도 할머니는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요양병원 요양보호사와 의사, 경비원들이 샅샅이 찾았으나 할머니 흔적이 없었다.
408호 요양보호사를 찾았으나, 교대 근무로 퇴근했다. 408호 요양보호사가 혼자 퇴근해 주차장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는 경비원도 나타났다. 할머니가 없어진 것에 실마리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는 401호나 408호 요양보호사와 함께 병실 밖에서 운동할 때가 있다. 그때 주차장에 들려 408호 요양보호사는 흰색 경차 뒷문을 열어보고는 했다. 408호 요양보호사 차인가 보다. 차 뒷문이 고장인지 잠가도 열릴 때가 많았다.
“또 안 잠겼네.”
408호 요양보호사는 혼자 말을 하며 문을 열었다가, 힘을 주어 닫고는 했다. 할머니는 이런 광경을 가끔 보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할머니는 저녁을 먹고 비 오는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불현듯 시골집에 있는 둘째 아들(다님이 아버지) 생각이 났다.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몸은 많이 나았다는데.’
할머니 마음에 둘째 아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얼른 달려가 보고 싶은 불씨를 당겼다.
‘여태껏 애미가 되어같고 나만 생각했어. 애미가 되어 가지고 참. 이런 애미가 세상에 어디 있어?’
둘째 아들을 생각하자 할머니는 마음이 괜히 급해졌다. 둘째 아들이 있는 시골집으로 빨리 가고 싶었다. 할머니는 4층 끝 휴게실을 생각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건물 끝으로 가서 층계를 따라 내려갔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복도 벽에 빨간 글씨로 써 붙였다.
할머니는 빨간 글씨를 보고도 그대로 내려갔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이쪽은 지대가 조금 높아 지하실이 아니라 반지하 1층이었다. 식당 조리실이 있는지 고소한 음식 냄새가 솔솔 코끝을 간지럽혔다. 복도 끝 문이 있어 1층 문을 살며시 밀어 보았다. 문이 쓰윽 소리 없이 열렸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주차장이었다.
“앗!”
눈앞 주차장에 408호 요양보호사 자동차가 보였다.
‘저 차를 타면 집에 갈 수도 있을 지도 몰라.’
할머니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집 생각이 떠오르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할머니는 둘째 아들과 집 생각에 사로잡혀 밖으로 나갔다. 살금살금 408호 요양보호사 차가 있는 데로 갔다. 차 가까이 간 할머니는 요양보호사가 하듯 뒷문을 열어보았다. 문이 열렸다. 그때 문소리가 나고 어느 누가 자동차 쪽으로 왔다. 할머니는 순간적으로 후다닥 뒷자리에 타고 문을 닫았다. 차 뒷자리에는 올망졸망한 짐과 쇼팽 백이 많았다. 할머니는 몸을 엎드려 쇼핑백과 짐을 끌어 몸을 덮었다.
이 차를 타면 어쩌면 둘째가 있는 시골집에 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할머니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부릉, 부릉.”
자동차 앞문이 열리고 시동 거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 가슴은 더 세게 고동쳤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요양병원을 뒤로 물리치고 달렸다. 처음에는 길이 판판해 몰랐는데 얼마 쯤 가니 울퉁불퉁해 자동차가 덜컹덜컹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숙이고 있기가 힘들었다. 할머니는 고개가 아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휴우, 살았다.”
할머니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 내쉬며 말했다.
“끼익!”
그때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자동차가 쏠려 할머니 궁둥이가 들썩이며 소리쳤다.
“아이쿠나!”
“누, 누, 누구세요?”
408호 요양보호사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순간.
“어머니!.”
408호 요양보호사는 자동차 급브레이크를 밟고, 저도 모르게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애미야,”
할머니도 408호 요양보호사를 불렀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408호 목소리에는 어느새 눈물이 담겼다.
“용서는? 이젠 집에 같이 가자.”
할머니는 의자 사이로 몸을 빼 할머니를 끌어안았다.
“엉 어엉 엉…….”
할머니와 408호는 부둥켜안고 큰 소리로 울었다.
“애미야.”
“어머니!”
할머니와 다님이 엄마는 자동차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한참 울었다.
“애미야, 이거.”
할머니는 품속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이거 네가 갖고 있으라니까 왜 다님이를 주었니?”
“다님이가 어려서 아범을 준 거예요.”
“다님이가 날 주더라. 이걸 보며 정신줄 놓지 말고 꼭 갖고 있으라고.”
“어머니!”
“우리 이제 헤어지지 말고 우리 꼭 붙어살자.”
“어머니, 엉 어엉…….”
“네가 다달이 애비 약값 보내 주는 것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정말 고맙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큰 소동이 일어난 것도 모르고 부둥켜안고 기쁨의 울음을 울었다.
치매
다님이와 손거울
+임시 제목.
223--->253
1> 시골집
2> 할머니의 두 얼굴
3> 사라진 할머니
4> 요양병원
5> 도망
6> 손거울
7> 그리운 엄마
8> 만남
1> 시골집
“흑, 흑, 어머니!”
울음에 젖은 큰아버지 목소리가 할머니 방에서 튀어나왔다. 다님이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려다 큰아버지 울음 섞인 목소리에 멈칫했다.
“어머니, 왜 이러세요?”
애절한 큰아버지 목소리가 다님이 앞으로 다가왔다.
“왜들 그러는 거야? 벽에 틈이 있어 바르잖아? 벽이 갈라진 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잖니?”
할머니는 큰아버지에게 아기 달래듯 다정하게 말했다. 큰아버지는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멀쩡했던 어머니가?
큰아버지는 벽에 붙은 국건더기 우거지 들고 말했다.
“이걸로요?”
“그럼, 이걸 벽에 바르면 올겨울에는 황소바람도 끄떡없을 거다. 두고 봐라.”
할머니는 큰일을 해냈다고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어머니, 제발.”
큰아버지는 가슴이 콱 막혀 답답했다. 할머니는 주위에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그릇에 밥과 반찬을 넣어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또 밥알을 손으로 으깨어 벽에 신문지를 대고 발랐다. 밥풀은 벽에 붙고 국건더기와 신문지 조각은 미끄러져 흘러내려 방바닥이 난장판이다.
“어머니, 흐흐흑…….”
큰엄마는 울음을 참으며 쏟아진 음식을 치우고, 큰아버지는 앞이 캄캄해 멍하니 서 있다. 그렇게도 깔끔하던 어머니가 밥상을 어지럽히니, 예전 같으면 생각하지 못 할 일이었다. 큰아버지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할머니를 붙들고 안타까움에 울음을 토해냈다.
“큰애야,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도대체 왜 우는 거니?”
거꾸로 할머니가 큰아버지가 이상하다며, 큰아버지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다. 진짜 세상이 거꾸로 된 모양이다.
“어머니, 정말 모르세요?”
“아범아, 내가 뭘 안다는 거니?”
할머니의 엉뚱한 말에 큰아버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했다.
“밥은 먹었니? 난 배가 고프니 밥 좀 줘라. 어멈이 어제부터 밥을 달라고 해도 한 숟갈도 안 줘.”
할머니는 큰아버지를 붙들고 또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니, 이 밥상은 뭐예요? 이거 어머니 잡순 밥상 아니에요”
“이거? 봐라, 밥은 없고 반찬뿐이잖아?”
밥은 안 주고 반찬만 주었다는 할머니 말에 큰엄마는 가슴이 아팠다.
“요즘 어머니는 무엇이든 잡수시려 해요. 금방 밥상 차려드렸는데 또 달라하시고, 과자도 잡숫고 싶다고 해서 드리고요.”
큰엄마는 방 구석구석과 장롱에 찔러 넣은 과자, 과일, 빵을 끄집어내 보였다.
“아니, 너 뭐 하는 거냐?
큰엄마가 과자를 찾아놓자 할머니는 큰 소리로 큰엄마를 나무랐다.
그간 할머니가 숨겨 놓은 먹을 것이 제법 수북하게 쌓였다.
“어머니, 이건 뭐예요?”
보다 못한 큰아버지가 차려놓은 밥상과 과자와 빵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니 이 밥상은 뭐예요?”
“밥상이지 뭐냐? 왜 밥상이 여기 있고 과자는 어디서 난 거지?”
할머니는 조금 전 일도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할머니.”
다님이는 할머니 방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머뭇거리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은 생각했던 대로 반찬이 널려 있어 엉망이었다. 큰아버지와 큰엄마는 울먹이며 방을 치웠다. 할머니는 다님이를 보자,
“불쌍한 우리 똥강아지.”
할머니는 반쯤 일어나 다님이를 덥석 안았다.
“할머니, 먹는 음식 갖고 장난치면 못 쓴다고 했잖아.”
“이거 장난 한 것 아냐.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벽에 바른 거야.”
“할머니!”
다님이가 할머니를 암팡스럽게 부르자 할머니는 찔끔해 아무 말 못했다.
할머니는 다님이가 마음에 걸렸는지 밥상 밑에 떨어진 배추김치 조각을 주었다.
“할머니, 우리 손 씻자.”
다님이는 할머니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다님이 말에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잡고 벌떡 일어섰다. 할머니는 다님이를 보더니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어머닌, 다님이가 좋기는 좋으신가 보다. 내가 씻겨 드린다고 할 땐 그렇게 싫다고 빼시더니.”
큰엄마는 삐진 척했다.
“어엄아, 내가 언제?”
할머니는 큰엄마를 흘겨보며 말하다가 다님이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지 씩 웃었다.
“할머니. 시계 던지고, 달력을 찢으면 어떻게 해?”
다님이가 할머니를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바보 같은 달력은 우리 똥강아지가 오는 날을 캄캄 이잖아.”
“애꿎은 시계는 왜 내동댕이쳤어?”
“우리 똥강아지 할미한테 올 때는 빨리 빨리 가야지. 천천히 가잖아.”
할머니는 말을 해놓고 우스운지 시은방귀피식 방귀 뀌듯 피식 웃었다.
“다님이가 할머니하고 약속한 거 보다 일찍 왔잖아.”
“아냐, 그래도 저 시계는 얼마나 늦게 가는데?”
“그래서 시계를 팽개치고 벽에 음식을 바른 거야?”
“…….”
서울서 가까운 수도권이라는 소도시에서 할머니와 다님이 그리고 다님이 아버지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할머니는 무릎관절염이 심해, 날이 굿은 날은 잘 걷지 못했다. 큰아버지가 할머니를 조르고 졸라 큰아버지가 사는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갔다. 할머니가 치료하러 서울로 가자 다님이는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다님이에게 엄마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모습을 담은 빛바랜 사진뿐이다. 이 사진이 다님이에게 엄마의 전부이다. 엄마 사진을 보면 엄마 생각에 질질 짠다고 할머니는 엄마 사진을 모두 감췄다.
다님이는 처음부터 아버지와 할머니랑 함께 살았을까?
다님이가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엄마는 아버지 병 고칠 돈을 벌러 나갔다고도 하고, 할머니와 마음이 안 맞아 집을 나갔다고도 한다. 확실한 건 엄마가 살아있고, 안개 속에서 잘 안 보이는 이야기지만, 아버지와 가끔 연락이 오고 간다는 것이다.
다님이는 아버지에게 엄마 이야기를 물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할머니에게 물으면,
“불쌍한 내 새끼. 엄마가 보고 싶니?.”
“푸우 투우”
한숨을 쉬고, 꾹꾹 찍어눌러 숨어있던 눈물이 그렁그렁 샘솟았다.
친척들이 모여도 다님이 엄마에 대해 누구 한 사람 입도 뻥끗 안 했다. 다님이는 어설프게 그려지는 엄마 얼굴을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 모른다. 엄마가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못 했다. 다님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이면 할머니 눈에 눈물이 맺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님이는 엄마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님이가 제일 믿고 의지하는 할머니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혈압이 높은 데다가 당이 심한 아버지와 무릎관절염을 앓는 할머니. 그래도 다님이는 할머니, 아버지와 즐겁게 살았다. 마치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당뇨와 혈압에 좋다는 약초를 기르고 가꾸는데 재미를 붙여 열심히 돌보았다. 할머니는 무릎이 쑤셔 잠 못 자는 밤이 있지만, 다님이와 함께 살며 이렇게 행복한 때가 없었다고 좋아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은빛 시냇물.
얼음장 밑에 봄을 불러내 오고,
은빛 물고기 건지고,
겨울이면 마을 아이들 썰매장.
붕어, 피라미, 송사리, 끄리, 모래무지,
달리기 시합하는 시냇물.
마을 뒤, 황토에 뿌리 내린 밤나무 숲.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
바람이 밤 나뭇가지에 기대면,
“후둑, 후두둑.”
어둠을 깨는 밤 떨어지는 소리.
“아 아아.”
너무 너무 좋아서.
다님이도 모르게
이불 속에서 두 발이 쭉 펴진다.
알람이 깨우지 않아도,
할머니가 깨우지 않아도.
벼슬 붉은 수탉이 목을 쭉 빼고,
“꼬끼요, 꼬끼요.”
몇 번 목을 빼고 울어대면
아침 고요를 깨고 하루가 열린다.
정말이지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시골 풍경이다.
이른 아침이 되면 다님이도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때가 5시 30분경이다. 할머니 식구들이 하루를 문 여는 시간이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썰고, 끓이고, 지지고, 볶고, 아버지는 간밤에 닭들이 잘 있나 닭장을 살피고, 집도 잘 잤나 둘러보고 나서, 마당을 쓴다. 다님이는 눈을 비비며 먼저 닭장으로 뛰어가고.
“닭아, 잘 잤니? 달걀 두 개. 수고했다. 아이 따뜻해.”
암탉이 낳은 달걀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며,
“할머니, 달걀 두 개. 아직 따뜻해요.”
다님이는 달걀을 볼에 대고 행복에 젖어 소리친다.
“도도와 레레가 낳은 걸 거야.”
“어디, 어디. 와아 크다.”
아버지가 다님이 말에 장단을 맞춘다.
아버지는 벌써 둥지 안 알을 봐두고, 다님이에게 기쁨을 넘겨주려 놔둔 달걀이다. 닭장에 닭이 6마리인데 암탉 다섯 마리는 도도, 레레, 미미, 화화, 솔솔이다. 수컷 한 마리 이름은 시시다. 이름에 아무 뜻 없다. 잊어먹지 않게 음계를 따라 다님이가 붙여준 이름이다.
아버지는 아침을 먹으면 혈압과 당뇨병에 좋다고 심은 두충나무와 산뽕나무, 또 더덕밭으로 간다. 할머니는 집안일을 마치면 텃밭을 매고, 다님이는 학교에 가고.
서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골 아닌 시골 할머니 댁. 냇물이 맑고 논밭이 많은 아직도 시골티가 덕지덕지 붙은 수도권 마을이다.
다님이는 하루 가운데 어두움이 살며시 감싸 안는 밤을 아주 좋아한다.
두 팔과 두 발을 벌리고 큰 대 자로 누우면
창밖에 감나무 가지 위로 뜨는 달이 반갑고,
뒤창으로 쏟아지는 별들이 다님이를 반겨서 좋고,
“부븡 부브븡…….”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엄마 목소리 같아서 좋고,
할머니 품에 안길 수 있어 좋다.
할머니 살갗은 쭈글쭈글한데 살결은 비눗물보다 매끈하다.
“아이구, 내 새끼.”
어디서 힘이 나는지 할머니가 다님이를 꼭 끌어안으면,
“아 아아…….”
이 보다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자장자장
우리 새끼 잘도 잔다.
꼬꼬 닭아 우지 마라.
멍멍 개야 짖지 마라.
우리 새끼 잘도 잔다.”
할머니가 자장가를 다 부르기도 전에 다님이는 “쌔액 쌕” 잠나라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잠나라에서 꿈나라 차로 갈아타고.
“아버지, 돌 틈에 큰 게 있어요.”
다님이는 잠꼬대한다.
“아이구, 내 새끼. 고기 많이 잡거라.”
할머니는 잠자는 다님이 볼에 뽀뽀한다.
“내일은 냇가로 고기 잡으러 가야겠군.”
여름철에 물놀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물고기 잡는 게 아닐까? 다님이는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도 잘 끓이고 어죽도 잘 쑨다. 먹기도 잘하고.
2> 할머니 두 얼굴
요즘 부쩍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 잘 걷지 못하고, 밤만 되면 무릎이 쑤셔서 밤잠을 못 잔다. 큰아버지가 병원에 모시고 가려 해도,
“이런 거, 가지고 병원에 가면 의사가 욕해.”
하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고집쟁이이다. 병원에 안 간다고 고집부리다, 더 심해져 밤잠도 못 자고 앓아 누었다. 보다 못한 큰아버지가 서울서 내려와 반은 강제로 할머니를 모시고 큰집으로 갔다.
할머니가 없는 집은 텅 빈 것 같아 다님이는 허전했다. 방문이 열리면 꼭 할머니가 오는 것 같았다. 다님이는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그리웠다.
할머니는 집도, 마당도 툭 터져 넓은 곳에 살았다. 그러나 큰아버지 집 아파트는 새장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다. 할머니는 큰집에서의 하루가 한 달 아니 1년 같았다. 다님이가 있는 시골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할머니는 다님이에게 시시때때로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다님아, 시골집에 가고 싶다. 네가 좀 도와 줘. 여기는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나는 싫어.”
다님이가 할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면, 시골에 가고 싶다는 말 만했다. 또 다님이 더러 빨리 큰아버지 집에 오라고 졸랐다. 할머니가 시골집으로 얼른 내려왔으면 하는 다님이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즈음 할머니가 없는 빈자리에 엄마가 서서히 자리 잡아 엄마 생각이 싹텄다.
엄마가 집을 떠난 6살 때부터 다님이는 큰아버지 집에서 큰아버지와 큰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다 시골집에서 휴양 중인 아버지가 다님이를 너무 보고 싶어 해, 시골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서울로 간 할머니가 무릎관절염 치료가 금방 끝나 얼른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관절염이 오래되어 반년 가까이 치료해도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서울 생활이 길어지자 답답하고 걱정스런 마음이 할머니를 못 살게 했다.
큰엄마는 다님이가 사는 시골집을 오가며 집안일을 돌봐 주었다. 할머니는 할머니 친구도 볼 수 없고, 할 일도 없어 그저 TV 보는 것뿐이다. 그런데 TV도 젊은애들이 보는 것이 거의 다고, 할머니가 볼 수 있는 프로는 거의 없었다. 할머니는 사방이 벽인 방에 갇혀 심심하고 갑갑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할머니는 시골집에 내려가겠다고 졸랐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할머니 말에 꿈쩍도 안 했다.
시골집에 가고 싶다고 졸라도 안 되자 할머니는 투정을 부렸다. 큰아버지는 할머니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투정을 들어 주지 않았다. 낯선 서울에 갇혀있는 할머니. 할머니는 돈이 있어도 혼자 외출할 수 없었다. 버스도, 전철도 혼자 탈 줄 몰랐다. 그러니 할머니는 뭍과 떨어진 무인도에 갇힌 거나 다름없었다.
심심하다 지친 할머니는 말도 안 하고 소리죽여 울기만 했다. 큰집에서는 이런 할머니가 집에 가지 못해 심통 부린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큰아버지는 무릎관절염을 완전하게 고치면 그때 가면 된다고 큰아버지 나름대로 마음을 먹었다.
--------------------스마트 폰 문자 처리----------------------------------
“도레미도 잘 있지?”
“응.”
“이제 모두들 알 낳지?”
“그럼, 이제는 솔솔도 알을 솔솔 낳는 걸요.”
다님이는 솔솔이가 낳은 알을 사진 찍어 보냈다.
“곧 만나러 간다고 그래라.”
----------------------------------------------------------------
할머니는 마을 냇가며, 울타리 대신 심은 꽃들이며, 나무들 소식을 다님이에게 묻고 또 물었다.
“감나무, 밤나무는 감과 밤이 열리고, 과꽃도 예쁘게 피었겠구나.”
할머니 집 주변 어느 곳이든 할머니 손길이 안 간 곳이 없다. 할머니가 시집와서 줄곧 이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풀꽃과 돌멩이 하나하나에 할머니 손때뿐만 아니라 너무 많이 보아 눈 때까지 숨어있다.
한때는 할머니 잦은 전화로 스마트 폰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스마트 폰을 뚝 끊었다. 다님이는 갑갑했지만, 할머니를 위해 참았다. 조금 더 조금 더, 치료받아야 한다는 의사 말에 할머니는 속는 것 같아 몹시 속이 상했다. 할머니는 다님이에게 쉴 새 없이 하던 전화도, 문자도 하기 싫어졌다.
시골에서는 해, 달, 별, 물, 흙, 또 닭, 발에 채이는 돌멩이까지 모든 것이 할머니 친구였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높이 솟은 아파트에 가려 해님도, 달님도 잘 만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별은 매연이 버티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또 번쩍이는 상가 불빛이 무서워 얼굴조차 내밀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할머니는 맘 놓고 바깥에 나가지 못한다. 아파트를 나서면 차들이 쌩쌩 다니는 넓은 길, 자동차들이 모두 할머니에게 달려들 것 같아 길을 건널 수 없다. 파란불이 길을 건너기 전에 빨간 불로 바뀐다.
밖에 나갔던 할머니가 집에 들어오려면 무어보다 먼저 아파트 문을 열어야 한다. 또 현관문도 열어야 한다. 아파트 문과 현관문을 열려면 숫자판을 눌러야 한다. 이것도 할머니에게는 큰 산이다. 깔딱고개를 오르고 올라야 할 큰 산이다.
가물가물하는 기억 속에 숫자를 떠올려 누른다. 그러나 숫자가 틀리거나 손가락이 무뎌 문을 잘못 열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아파트 문이나 현관문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면 식구가 와야 집에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큰엄마가 비밀번호를 종이에 적어준다. 그러나 할머니는 비밀번호 적은 종이쪽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먹기 일쑤이다. 서울하고도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 마음은 점점 콘크리트 회색빛으로 물들어갔다. 이런 할머니 속마음을 다님이 밖에 모른다.
할머니는 말이 없고부터 다님이는 큰집에 있다가 온다. 금요일 저녁이나 아니면 토요일에 큰집에 가서 하룻밤 또는 이틀 밤을 할머니와 함께 보내고 온다. 할머니는 다님이가 오는 날을 손꼽고 있다. 할머니는 날이 갈수록 외로움이 짙고 또 깊어가고 있다. 외로움이 짙어갈수록 쓸쓸한 할머니 마음을 갉아먹었다. 외로움이라는 병에 할머니 눈물 마를 날이 없다.
할머니에게서 한동안 전화도, 문자도 없던 어느 날이었다.
“때르릉 때르릉…….”
늦은 밤 전화는 무섭고 불안하다.
다님이는 섬뜩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다님아, 할머니 거기 안 가셨니?”
큰엄마는 몹시 급한 모양이다.
“네? 할머니가요?”
“그래. 너를 보내고 집에 왔는데 안 계시구나. 이런 일이 없었는데.”
큰엄마가 할머니 걱정을 남겨두고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 할머니가……?”
다님이는 가슴이 마구 뛰어 어떻게 할지 몰랐다. 앉아 있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밤이 깊어 큰집에 가 볼 수도 없고, 아버지는 세상 모르게 주무셨다. 다님이 혼자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서 마루로 왔다 갔다 하며 애꿎은 마음만 들볶았다. 너무 걱정되고 궁금해 큰집에 전화를 걸었다. 스마트 폰도, 전화도 계속 통화 중이다. 전화 연결이 안 되어 더 답답했다.
다음 날 아침 다님이는 일찍 학교에 가며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 학교에서 끝나는 대로 할머니한테 갈게요.”
다님이는 아버지에게 말한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학교가 아닌 큰집에 가려 했다. 아버지가 놀랄까 봐 하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무슨 일이 있니?”
“아뇨.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요.”
“원, 녀석도? 할머니가 그렇게 좋니?”
학교에는 전화로 선생님에게 사정을 말하고 곧바로 큰집에 갔다.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큰집은 할머니가 없어져 모두 정신이 없었다.
‘내가 할머니라면 어디로 갔을까?’
다님이는 할머니가 되어 할머니가 갈 만한 곳을 곰곰이 짚어 보았다. 제일 먼저 생각난 곳은 할머니와 자주 갔던 아파트 옆 공원이다. 다님이는 공원으로 달려갔다. 공원에는 패랭이, 오이풀, 비비추 등 잘 가꾼 야생화 꽃밭이 있다. 할머니는 집 생각이 나면 이곳에 와서 꽃과 놀다 간다고 했다.
다님이는 거의 뛰다시피 공원으로 갔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할머니는 공원 어디에도 없었다. 텅 빈 공원이 다님이에게 다가왔다.
야생화 꽃밭 옆에 할머니와 앉던 벤치에 웬 할아버지가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다님이는 할아버지 가까이 가서 여쭈었다.
“할아버지, 키가 좀 작고 오른쪽 다리를 저는 할머니 못 보셨나요?”
답답한 마음에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궁금해 묻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글쎄다. 여태껏 앉아 있었는데 그런 할머니는 못 봤다.”
“아, 네. 고맙습니다.”
발길을 돌려 놀이터에도 가 보았다. 조그만 공원인데 놀이터가 있고, 그 가장자리에 운동기구와 놀이기구가 있다. 할머니가 앉던 그네 자리도 텅 비어 있었다. 다님이는 그네에 앉았다. 발로 조금 굴러 보았다. 흔들흔들 그네 줄을 따라 몸이 흔들거렸다. 다님이 마음처럼.
“다님이는 할미가 그렇게 좋아?”
“그럼.”
“왜, 좋아?”
“우리 할머니니까.”
“다른 아이들은 할머니를 싫어한다는데?”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래. 그러니까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지.”
“아이구, 우리 똥강아지 어른이 하는 말을 다 하네.”
“그럼. 나 이제 어른이야.”
“진짜 너 혼자 생각해 낸 말이야.”
“아니, 선생님이 그러셨어.”
다님이는 공원에서 할머니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놀이터에는 청소를 깨끗하게 해 종이 한 장 없다. 할머니와 함께 앉아 있던 그네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소가 눈에 들어왔다.
“자아, 누가 더 무거울까?”
“그야 물론 밥 대장인 나지”
다님이가 시소에 갑자기 앉자 할머니 앉은 쪽이 털썩 올라갔다.
“호호호…….”
다님이는 좋아라, 함박웃음을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앉았던 시소에서 일어서는데,
“어머!”
시소 밑에 꼬깃꼬깃 접힌 종이가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종이쪽지를 주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종이를 펴보았다.
“아니!”
큰집 현관 비밀번호를 적은 할머니 글씨였다.
“할머니, 할머니!”
다님이는 손나팔을 만들어 할머니를 불렀다.
어제 큰집에 갔을 때, 할머니는 별로 말이 없었다. 게다가 추적추적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 슬픈 일만 생각났다.
다른 때 같으면 할머니는 다님이 가까이 앉아,
“다님아, 제발 나 좀 시골집에 데려가라. 난, 너랑 시골집에서 살고 싶어. 나, 무르팍 다 났단 말이야.”
하고 시골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줄줄이 꿰어 말했을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다님이에게 온갖 사탕발림 이야기를 하며, 시골집에 함께 가자고 알랑방귀도 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일요일 그러니까 어제 저녁은 다님이가 있는데도 할머니는 말없이 창밖에 비 떨어지는 것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넋 놓고 밖을 내다보는 할머니 모습이 다님이 가슴을 찡하게 했다. 할머니 마음을 실은 쓸쓸하고 외로운 비가 다님이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다님이가 말을 해도 할머니는 힘없이 고개로만 대답했다. 할머니 눈에 눈물이 살짝 비쳤다. 할머니는 허리춤에서 얼른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는 척하며 눈물을 닦았다. 다님이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가 보다. 어린 다님이 마음은 상처가 난 손가락이 소금물에 닿듯 쓰렸다.
“할머니, 집에 갈게.”
“응.”
할머니 대답에는 다님이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할머니, 나, 간다구.”
할머니 대답이 시원치 않아 다님이는 다시 간다고 말했다.
“알았어.”
“할머니 오늘 이상하다. 간다고 해도 잡지 않네.”
“내가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거잖아?”
할머니는 시큰둥하게 안 하던 말로 대답했다.
할머니는 요즘 들어 아주 많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밥을 잡수시고도 또 잡수시고, 구석에서 자주 울고, 먹을 것을 방구석 구석구석에 감춰 둔다고 했다. 또 다님이를 예전보다 더 많이 찾는다고 했다.
다님이는 큰집을 나와 집으로 갔다. 늘 그렇듯 큰엄마가 전철역까지 데려다주었다. 큰엄마는 다님이가 어렸을 때부터 다님이를 보살펴 주어 다님이에게는 엄마 같았다. 다님이가 사는 곳은 전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세 정류장이다.
내리던 비가 멎고 하늘에 흰 구름이 앞서 거니 뒤서거니 두둥실 떠갔다.
“다님아.”
다님이 손을 꼭 잡고 큰엄마가 불렀다.
“힘들어도 다음 주엔 토요일 말고 금요일에 왔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네가 가고부터, 네가 오는 날을 손가락이 닳도록 꼽는단다. 그리고 말이다…….”
큰엄마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 멈칫했다.
“큰엄마 뭐요?”
“……(엄마 소식은 없니?)”
큰엄마는 이 말을 묻고 싶었는데 입 안에서 스르르 녹아 없어졌을 것이다.
“빵!”
자동차 클락션 소리에 큰엄마와 다님이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할머니 생각을 하느라 신호등을 보지 못한 것이다.
“금요일 수업 끝나는 대로 갈게요.”
“어린 네가 고생이 많구나. 다음에 밑반찬 좀 해 줄게.”
다님이는 큰엄마의 “그리고 말이다”가 머릿속에서 가슴으로 옮겨가 집으로 가는 다님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3> 사라진 할머니
공원 시소 밑에서 꼬깃꼬깃 접은 할머니가 쓴 큰엄마 집 비밀번호.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워 들고 다님이는 기뻤다. 공원 놀이터에서 할머니를 부르며 찾았다. 할머니가 공원에 꼭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를 부르면 곧 대답할 줄로 알았는데 대답이 없다.
‘혹시……?’
다님이는 나쁜 생각이 고개를 들어 그 생각을 쫓아버렸다.
‘비는 잘 피하셨겠지?’
간밤에 가랑비가 조금 내렸는데 걱정이 되었다. 비를 피하는 생각에 꼬리를 물고 번쩍 번개처럼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큰 바위 큰아버지 집 뒤에 풀꽃이 피고 지는 둘레길. 그 길 언덕에 평상처럼 넓고 큰 바위가 있다. 할머니는 이 바위에 오르면 앞이 탁 트여 마음이 시원하다고 했다. 또 전철역에서 다님이 오는 게 보일 것 같아 좋다고 했다.
“다님아, 저 전철에 너하고 나하고 둘이 타고 시골집에 가는 거다.”
전철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할머니는 전철에 탄 것 마냥 손을 흔들며 겅중겅중 뛰며 좋아했던 곳이다.
다님이는 걸음을 재촉해 둘레길로 갔다. 할머니와 앉았던 바위가 보였다. 다님이는 뛰다시피 한걸음에 달려갔다.
“어어?”
바위 위에 할머니는 없었다. 둥그런 바위만 둘레길을 지켰다. 평상처럼 넓은 바위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위만 보이자 다님이는 맥이 풀렸다. 할머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헉헉대며 단숨에 올라왔는데 말이다.
둘레길을 내려가려다 혹시나 하고, 큰 바위 둘레를 돌며 틈을 살폈다.
‘어머!’
바위 밑 옆모서리에 움푹 파인 곳에 옷자락 끝이 보였다.
“할머니!”
다님이는 큰 소리로 불렀다. 분명 할머니였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다. 다님이는 바위 밑 틈으로 고개를 들여 밀고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폐인 곳에 할머니가 웅크리고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다님이는 할머니를 흔들며 불렀다.
다님이 가슴은 쿵쿵 마구 뛰었다.
할머니는 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하고, 숨을 안 쉬는 것 같기도 했다.
‘돌아가셨나?’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다님이는 울먹이며 할머니를 불렀다. 다님이 손끝에서 할머니 얕은 숨을 쉬는 게 옮겨왔다.
다님이는 할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는 숨을 몰아쉬더니 감았던 눈을 살포시 떴다.
“누구요?”
“할머니 나, 다님이야.”
“다님이?”
“그래.”
“우리 똥강아지구나.”
“응. 할머니. 살았구나.”
다님이는 너무 좋아 왈칵 울음이 솟았다.
“내가 왜 죽어? 똥강아지가 여기 있는데.”
다님이는 너무 좋아 ‘할머니 만세’를 불렀다.
“할머니 왜 여기까지 왔어?”
“우리 똥강아지가 오나 안 오나 보려고 왔지.”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비틀거렸다. 다님이는 산책하는 사람에게 손전화를 빌려 큰집에 연락했다.
할머니를 찾아 큰집으로 모시고 온 날, 다님이 아버지를 빼고 큰집에 작은아버지와 숙모, 고모, 집안 어른들은 다 모였다. 할머니에 대한 걱정 모임이 가족회의로 발전했다.
“어머니가 좀 이상해지셔서 너희들을 부른 거다.”
큰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상하다뇨? 무릎이 더 심해졌나요?”
고모가 큰 소리로 물었다. 고모는 어머니(할머니)가 관절 때문에 고생해도 바쁜 핑계로 와 보지도 않으면서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나서기 좋아하는 할머니 외동딸이다.
“작은 소리로 말해라. 옆방에 계신 어머니가 듣겠다.”
큰아버지가 고모에게 주의 주었다.
큰엄마와 큰아버지는 할머니를 모시면서 그간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치매가 맞아요.”
큰엄마의 이야기를 듣더니 고모가 말했다.
“그럴 리가?”
큰아버지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고모에게 들으니 다시금 깜짝 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 추석 때 잃어버리지도 않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온 집안이 난리 난 적이 있었잖아요.”
고모가 추석 때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집 나간 일도 그렇고, 바람 못 들어오게 벽에 바람구멍을 막는다고 국그릇을 엎어 난장판을 만들었다면요?”
작은아버지가 큰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다.
“집안 비밀번호도 자꾸 잊으신다면요? 만약에…. 아직 모르지만 만약에 어머니가 치매라면…?”
큰아버지는 어머니가 치매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두 말 할 것 없이 요양병원으로 모셔야죠.”
작은아버지는 큰아버지의 말을 끊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요양병원?”
큰아버지는 동생의 말에 서글픔이 앞섰다.
‘낳아 준 엄마를…….’
큰아버지는 동생의 말이 못마땅했다.
“세 아들 눈이 시퍼렇게 살았는데 요양병원이라뇨?”
고모는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큰아버지는 고모 말에 꺼져가는 불씨가 살아났다. 고모는 남에게 흉이고, 어떻고 간에 요양병원에 모시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닌가? 요양병원에 모시면 안 된다는 뜻을 실린 고모 말에 작은아버지가 말했다.
“요즘, 요양병원도 시설이 좋대.”
“자식들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요양병원이라뇨?”
고모가 토라지며 성을 냈다.
큰아버지는 고모 말에 속이 시원했다. 고모는 할머니 자식들이 있는데 집에서 모셔야 한다고 했다. 작은아버지는 가족 전체를 위해서 요양병원에서 모셔야 한다고 했다. 고모와 작은아버지의 말싸움은 그칠 줄 몰랐다. 큰아버지는 둘 싸움에 한마디 했다.
“동생, 내 말 좀 들어봐. 요양병원은 옛날 말로 고려장이야. 의사가 치료는 하지만 돌아가시기만 기다리는 것이니 고려장과 다를 게 뭐 있어?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라도 어머니 내가 모실 거야.”
큰아버지는 폭탄 같은 말을 했다.
“큰오빠 말이 맞아.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모신다는 것은 말도 안 돼. 고모는 할머니를 모셔야 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으면서 말로만 떠들었다. 고모가 큰아버지 편을 들어 말하자 작은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어머니를 누가 보살피고, 누가 어머니 곁에 있느냐 말이다. 너도 명절 때만 겨우 고개를 내밀잖아.”
“그래도 안 돼요. 우리 엄만데, 어떻게 요양병원에 모셔요?”
고모는 훌쩍이며 말했다.
“다른 소리 말고, 네가 지금부터 엄마를 사흘만 모셔 봐라. 그다음에 얘기하자.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큰형수가 얼마나 고생이 많은 줄 알겠니?”
동생 말에 큰아버지는 큰엄마 생각을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발작을 일으키면 큰아버지도 힘 드는데, 하루 종일 할머니 곁에서 치다꺼리하는 큰엄마가 몹시 안 돼 보일 때도 있었다. 큰엄마 생각을 하며 큰아버지는 잠자코 있었다.
“형님, 아무 말 마시고 요양병원으로 모셔요. 병원으로 모시면 할머니 또래 친구들도 사귀고 더 좋을 거예요.”
작은아버지는 요양병원에 모셔야 한다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큰엄마와 작은엄마, 또 고모부는 어느 쪽 이야기에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를 집에 모시면 식구 모두 어렵게 될 테고, 그렇다고 병원에 보내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바로 이 같은 일이 “한 치 걸러 두 치”라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정말이지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했다.
“형님, 집에서 모시면 형님은 물론 형수님 모두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돼요. 오늘 어머니 하루 집 나가셨다고 온 집안이 난리 났잖아요. 집에서 모시면 이런 난리를 수없이 겪어야 할 텐데. 그 감당을 어떻게 하려구요? 형님 친구분도 치매 앓는 아버님을 모셔 잘 알잖아요.”
작은아버지는 예를 들어가며 물러서지 않았다.
집에서 모시자 요양병원에서 모시자 두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고모와 큰아버지는 집에서 모시자고 하고, 작은아버지 혼자 요양병원에서 모시자고 했다. 그러나 큰아버지 빼놓고 마음은 모두 요양병원에서 모셨으면 하는 것 같았다.
“얼마 안 있으면 무릎관절 치료가 끝나니까 시골집으로 가면 괜찮을 거야.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보고 결정하면 어떨까?”
가족회의에서 다혈질인 작은아버지가 열을 띠자 큰아버지가 말을 바꿔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다혈질은 감정의 변화가 빨라 흥분하기 쉽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다.
작은아버지는 아직도 “씩 씨익”거리며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역시 나를 생각해 주는 건 딸과 큰애(큰아버지)구나. 그런데 딸은 제 남편이 있어서….’
할머니는 밖에서 아들과 딸 또 며느리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들었다.
‘내가 어서 없어져야 한다. 내가 너무 오래 사는 것 아냐?’
할머니는 천근이나 되는 마음을 안고 식구들이 모여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식구들은 의논하다가 할머니 등장에 깜짝 놀랐다.
둘레길 평상바위에서 내려온 할머니는 할머니 방에서 한숨 자고 두런거리는 소리를 따라왔던 것이다.
“너희 말 잘 들었다. 나를 끔찍이 아끼는 너희가 있어 든든하구나. 내 생각도 큰애보다 작은애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집안 풍파가 없을 거다.”
할머니는 식구들이 가족회의 하는 것을 모두 들었던 것이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그게 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하늘에서 정해준 순서가 아니니?”
큰아버지가 고개를 숙여 할머니에게 잘못을 빌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고모 또 숙모는 어쩔 줄 몰랐다.
“요즘 요양병원도 시설이 좋다더라. 빨리 알아보고 나를 어서 그리로 보내거라.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서두르거라. 돈이 들어서 그렇지 나도 그게 좋다. 그곳에는 친구들도 많을 테고.”
할머니 마음은 서운했지만, 서운한 마음을 깊이 꽁꽁 감추고 말했다.
“어머니.”
“엄마.”
큰아버지와 고모가 울음을 터뜨렸다. 뒤를 이어 작은아버지도 숙모님도 모두 울어 울음바다가 되었다.
“왜 우는 거냐?”
할머니가 평소 때와 달리 요양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해 식구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어쩌다 말끝에 요양병원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을 가둬놓고 밥도 제대로 안 주는 곳이라고, 나쁘게 말하던 할머니였다. 할머니 생각을 슬쩍 이웃 할머니 말을 빌려 말하는 일도 없지 않아 있다.
“왜들 울고 그러냐? 나보고 빨리 죽으라고, 내 앞에서 찔찔 짜는 게냐?”
“어머니, 그게 아니에요.”
“내일 요양병원에 가 보자.”
할머니는 큰 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까지 치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걱정하던 가족은 제정신으로 말하는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이 찝찝했다.
‘할머니 요양병원 말고 시골집에 가자.’
다님이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 눈과 마주쳤다.
“다님아, 우리 밖에 나가자. 큰애야. 병원에서 무릎도 거의 다 나았다고 했지?”
“네.”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잡아끌었다.
“할머니, 기운 없잖아.”
“어머니 그 몸으로 어디 가시게요?”
“내 몸이 어때서? 봐라. 잘 걸을 수 있잖니?”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보이기까지 했다. 진짜 할머니를 누가 치매 환자라고 할까? 할머니는 밖에 나가자고 보챘다.
“다님이랑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고 싶구나.”
큰아버지가 눈짓을 하자, 다님이는 할머니와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우리 꽃동네에 가자.”
“우리 꽃동네?”
“그래.”
다님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공원에 있는 야생화가 핀 꽃밭으로 갔다. 갖가지 꽃이 어우러진 꽃밭을 할머니 꽃동네라고 했다. 다님이는 아침에 할머니를 찾으러 올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달랐다.
“다님아.”
대답 대신 다님이는 할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이상하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꽃동네에 분꽃, 과꽃이 없잖아. 맨드라미도 없고.”
할머니 집 꽃밭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패랭이꽃도 있고, 오이풀꽃, 비비추도 있으니까.”
할머니는 꽃동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일어설 줄을 몰랐다. 꽃동네 건너편 연못에 물오리가 새끼들을 이끌고 물살을 가르며 나들이 간다. 다님이는 물끄러미 물오리를 바라보았다. 제 어미라고 졸졸 따라다니는 새끼오리들이 귀여웠다.
“엄마 생각나니?”
할머니가 다정하게 물었다.
“아니.”
다님이는 생각이 나지만 아니라고 했다.
“괜찮아. 할미가 밉지?”
“안 미워.”
다님이 말에 할머니는 잠자코 연못에 오리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시골집에 가고 싶지?”
“다리가 나아야지.”
“거의 나아가잖아.”
“요양병원 가기 싫고 시골집에 간다고 해.”
할머니는 힘없이 말했다.
“넌, 몰라서 그래.”
“내가 뭘 몰라. 나랑 시골집에 가면 되는 거지.”
‘요양병원에 가면 식구들 머리에서 내가 지워지는데, 시골집에 가면 지워지지 않지.’
할머니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쉽게 말하면 할머니는 어느 누구에게도 할머니 때문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이제 집에 가자.”
다님이는 할머니와 큰집으로 갔다. 할머니는 이제 무릎관절염보다 치매 때문에 자식들이 걱정하는 것이 더 걱정이다. 치매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를 동네에 사는 할머니 친구를 통해 익히 잘 알았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이 좋아서 좋다고 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에 피해 줄까 봐 요양병원이 좋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식구들은 요양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할머니 정신이 말짱할 때 요양병원에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큰아버지는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수의 의견에 따라 그리고 큰엄마가 고생할 것 같아 모시는 걸로 결정했다. 한 어머니에 한 핏줄을 태어난 자식들도 하는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시작은 어머니를 위한 마음인데 그 방법은 아주 딴판이었다.
요양병원은 큰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노인 척추와 관절질환을 겸하는 병원이었다. 다님이가 사는 시골집과 큰집 중간쯤에 있었다. 큰집보다 가까워 좋았다.
“병원에 가는 거야?”
요양병원 가는 날. 1차로 진료받으러 가지만, 입원에 대비해 할머니 짐 보따리를 갖고 갔다. 할머니는 혹시나 시골집에 가는 게 아닌가 하고 마음이 들떠 있었다.
‘어른들은 할머니를 몰라도 너무 몰라. 치매가 기억을 잊어버린 병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것이 병이라면 다님이가 딱이 아닌가. 다님가 할머니랑 함께하면 치매라는 병이 금방 나을 텐데.’
다님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어른들이 못마땅했다. 다님이는 할머니를 치매를 낫게 할 자신이 있다. 할머니는 다님이와 있으면 잊어버린 생각을 되찾아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다님이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큰엄마, 작은엄마, 고모가 할머니를 모시고 요양병원에 갔다. 물론 다님이도 갔다. 아마도 다님이 아버지를 빼놓고 온 가족이 한데 모인 것이 오늘이 두 번째가 아닌가 한다.
“여기 병원이도 아니냐? 무릎은 다 낫다고 했는데.”
할머니는 요양병원은 병원과 좀 다른 곳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요양병원에 가신다고 그랬잖아요.”
“참, 그렇지. 그런데 여기가 요양병원이니?”
“네.”
큰아버지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진료실로 갔다. 진료실에는 덩치가 크고 검은 뿔테 안경을 낀 믿음직스러운 의사가 할머니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의사 선생님은 작은아버지처럼 앞머리가 벗겨지고 자상하게 생긴 분이다.
“윤병문이라고 합니다.”
할머니를 진찰하는 윤 박사는 요양병원 원장이었다. 윤 박사는 할머니와 같은 환자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진료한 명의라고 했다. 명의는 아름 난 유명한 의사이다. 윤 박사는 그간 할머니의 상태를 큰아버지, 고모, 다님이, 또 할머니에게 자세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메모했다. 특히 할머니와 다님이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러 시간 동안 가족과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윤 박사가 말했다.
“어떤 쇼크 때문에 치매가 갑자기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될 때 빨리 잘 오셨습니다. 어르신은 감정의 변화가 심해 아주 빠르게 나빠진 것입니다. 어머니는 요즘 흔히 말하는 ‘예쁜 치매’입니다.”
“예쁜 치매라뇨?”
큰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환자가 우악스럽게 나대지 않고,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환자를 말한답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병원보다는 어르신은 댁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눈에 또 손에 익어 좋고, 어르신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손녀가 있어 좋고요, 여기서 간단한 약물치료를 받고 편히 계시면 더는 심해지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무릎 통증은 먼저 병원에서 진료기록서에 따라 진료받으면 되고, 치매와 함께 상태를 보고 곧 퇴원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발작이나 이상한 행동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병원에서 최대한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완쾌될 수 있을까요?”
성질 급한 작은아버지가 물었다.
“완쾌요? 이 상태에서 더 심해지지 않으면 완쾌지요. 이대로 간다면 시골집에서 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다님이 좀 불러 주세요.”
다님이는 원장실에 들어갔다.
“박사님 안녕하세요.”
“다님이라고 했지? 똑똑하게 생겼구나.”
“할머니에게 네 말 잘 들었다. 할머니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라며? 이제부터는 네가 할머니 약이 되어야 한다.”
다님이는 깜짝 놀라 물었다.
“제가 약이라고요?”
“그래. 이제부터 네가 할머니 약이다. 할머니 말 잘 듣고 할머니랑 재미있게 잘 놀면 그게 할머니 약이다.”
“놀아요, 제가요?”
할머니 이상한 병은 약도 별 약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노는 것도 약이 된다니? 신나게 노는 공부는 없나?
“할머니랑 잘 놀면 그게 약이지. 이 세상 어른들 병은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설켜 그 가닥을 찾지 못해 생기는 게 대부분이지.”
“그럼 할머니 병이 저 땜에 생긴 거예요?”
“너는 어린이잖니? 어린이는 잘 모르겠지만 어른은 어른 마음과 마음이 부딪쳐 병이 되곤 하지. 할머니는 너보다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있지 않니?”
다님이는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귀담아들었다. 알 것도 같은데 꼭 집어 알지는 못했다.
“할머니의 좋은 약은 말이다. 네가 할머니랑 즐겁게 지내는 거다. 그게 할머니 병을 고치는 아주 좋은 약이야.”
병실로 내려온 할머니는 환자가 누운 침대를 보자, 코를 막으며 다님이 옷자락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러자 큰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안심시켜 주었다.
“어머니, 여기 계시면 곧 나아서 시골집에 가실 거예요.”
“다님아, 큰애비 말이 정말이니? 요즘 다님이 빼놓고, 내게 모두 거짓말만 하는 것 같다. 관절염도 금방 난다고 하더니… 이 모양이고, 다님아 진짜니?”
할머니는 다님이에게 물었다.
“할머니, 큰아빠 말이 정말이야. 여기서 입원하면 할머니 병이 나아 시골집에 가서 살 수 있어. 아까 원장님도 그랬잖아.”
“시골집에? 몇 밤 자면 가게 되는데?”
할머니는 열 손가락을 부채처럼 쫙 펴고 다님이에게 물었다.
‘할머니…….’
다님이랑 시골집에 가고 싶어 하는 할머니를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빨리 말해 줘. 몇 밤 자면 집에 가는 거야?”
할머니 말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모두 나한테 거짓말한 거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할머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다님이가 할머니 말에 대답했다.
“할머니 거짓말 아냐?”
“그럼 왜 말을 못 해.”
“집에 가는 건 할머니한테 달린 거니까, 우리가 대답 못하는 거야.”
“나한테 달렸다고?”
“할머니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요양보호사님 말을 잘 들어야 해. 그래야 집에 빨리 갈 수 있어.”
다님이 말에 할머니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젠 병원에 가두는 모양이구나.’
할머니는 빨리 집에 갈 수 있다는 다님이 말을 믿으면서도 왠지 그렇지 않은 생각이 꿈틀 고개를 내밀었다. 마을 노인정에서 요양병원은 밥도 안 주고, 약만 먹여 잠만 재우고, 가족 면회도 시켜주지 않고, 친구도 못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생생히 머리에 남아있다.
‘아니야, 난 그래도 다님이 말을 들어야 해. 아까 원장한테도 직접 말을 들었잖아. 그런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 병원 냄새는 어떻게 하지?’
다님이 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한 달 넘게 입원했었다. 그때 할머니는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소독 냄새가 싫어 혼이 났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 병원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꾹 참기로 했다. 하루빨리 다님이와 시골집 가서 살기 위해.
누구나 그렇겠지만 할머니에게 다님이는 세상에 모든 걸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손녀이다. 아버지 직업이 목수여서 일을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녀 한 달에 한 두어 번 정도 집에 왔다. 엄마도 집안 형편으로 일해야 했다.
할머니는 집에 갈 욕심으로 참고 또 참아가며 요양병원 생활을 잘 따라 했다. 병실도 깨끗하게 하고, 몸이 성치 못한 환자들을 부축하기도 하고, 휠체어도 밀어주고 화장실도 가게 했다. 그러나 밤이면 할머니는,
“다님아.”
낮 동안은 순하디순한 할머니이다. 그러나 해가 지면 할머니 답지않게 큰 소리로 다님이를 부르며 문 쪽으로 달려가곤 했다.
“할머니 또 왜 이러세요? 여기 다님이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다님이가 분명 병실 안으로 들어왔는데. 누가 우리 다님이 감췄어. 빨리 찾아 내.”
할머니는 소리소리 질러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이런 할머니를 요양보호사들이 가까스로 말렸다. 난동 피운 할머니를 요양보호사가 달려들어 침대에 누였다. 언제 또 설쳐댈 줄 몰라 경비원이 할머니 양팔과 다리를 묶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이 급히 왔다.
“할머니, 다님이가 얌전하게 있으라고 했잖아요.”
“우리 다님이 언제 온 데?”
할머니는 젊은 의사 선생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님이 말에 벌떡 일어나려 했다.
“다님이가 이번에는 토요일에 온다고 했어요.”
“토요일? 몇 밤 자면 오는 거야?”
“네 밤 주무시면 와요.”
젊은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 손을 꼽아 주었다.
할머니는 그저 다님이가 보고 싶었다. 앉아도, 서도, 누워도, 잠을 자도, 오직 다님이 생각뿐이다.
할머니는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를 귀찮게 하더니 잠이 들었다.
“다님아, 다님아.”
할머니는 다님이 꿈을 꾸나 보다.
할머니는 생활환경이 바뀌어 그런지 병세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다님이를 계속 부르며 찾았다. 할머니가 다님이를 찾는 모습은 눈 뜨고 볼 수가 없이 애절했다.
4> 요양병원
“나 좀 풀어 줘. 사람을 왜 묶었어?”
“할머니, 어제 저녁 생각 안 나세요?”
“내가 뭘 어쨌다고?”
“아니에요.”
간호사는 어제 사건을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혈압 등 간단한 검사를 하고 할머니를 풀어 주었다. 원장 선생님이 할머니에게 나쁜 얘기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문득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할머니를 원장실로 데려갔다.
원장이 할머니를 살펴보다가 어제 일을 물었다.
“할머니, 어제는 왜 야단을 치셨어요?”
“난 모르는 일인데.”
“진짜 모르세요?”
“시골집에 자꾸 가고 싶잖아.”
병원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할머니 말을 들어 주고 할머니 편을 들어주자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어리광 투로 발작 아닌 발작을 할 때도 더러 있었다. 할머니는 원장님을 만나면 모범환자가 된다. 이런 할머니를 보고 요양보호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할머니 멀쩡한 데, 누가 치매 환자라고 하겠어?”
“저 할머니가 치매 환자라고요?”
세탁물을 가져가는 보호사가 물었다.
“그렇다우. 낮에는 조용한데, 날만 어두워지면 자기 손녀 데려오라고 어떻게 떼를 쓰는지 정신이 없어요.”
401호 요양보호사가 대답했다.
“치매 환자가 그 정도면 양반이죠.”
“몰라서 그러세요. 양반이긴, 움직이는 폭탄이에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408호 요양보호사가 끼어들었다.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할머니 좀 잡아 주세요.”
401호 요양보호사도, 408호 요양보호사도 할머니를 쫓아갔다. 할머니는 눈 깜짝할 사이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할머니는 1층에서 경비원에게 잡혔다.
“날 왜 잡아?”
408호 요양보호사가 할머니를 붙잡자 소리쳤다. 뒤따라 401호 요양보호사가 달려왔다.
“고맙습니다. 오늘 또 고생할 뻔했습니다.”
“네가 뭔데? 내가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훼방 놓는 거야?”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에게 거칠게 해댔다.
408호 요양보호사와 401호 요양보호사는 할머니를 이끌고 병실로 갔다.
408호 요양보호사는 할머니를 피하고 싶고 가슴이 뛰었다.
“할머니, 이제부터는 안 풀어 줄 거야. 나랑 약속 안 지켰잖아.”
할머니는 401호 요양보호사 말에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401호 요양보호사가 다시 다짐했다.
할머니는 눈을 껌벅이며 잠자코 있었다. 401호 요양보호사가 다님이를 꺼내며 들먹였다.
“할머니, 한 번만 더 말 안 들으면 다님이 한테 이를 거야.”
다님이 말을 꺼내자 할머니는 입을 열었다.
“부탁이야. 제발 다님이 한테 말하지 마.”
제 정신이 돌아왔는지, 할머니는 다님이란 말에 눈빛이 흐리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좀 괜찮아졌어요? 아까 너무 고생하시는 걸 보고 퇴근해서…….”
할머니를 1충에서 잡아 온 408호 요양보호사가 401호에게 말했다.
“가끔 소란을 떠내요. 여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408호 요양보호사가 401호 요양보호사에게 인사를 했다.
“408호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낯이 익지 않다 했는데 새로 오셨군요.”
“네.”
“어제는 정말 고마웠어요.”
401호 요양보호사가 408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저도 저런 어머니가 계셔서요.”
“저런, 저런.”
“안 보이던 환자 같은데 입원한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죠?”
“네.”
“손녀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할머니 손에서 자랐대나 봐요.”
“그렇구나.”
“손녀를 어떻게나 좋아하는지. 손녀가 오면 정신이 말짱해지는 것 같은데…….”
“그럼, 여기보다 집에서 손녀랑 같이 있게 해주지, 왜 입원시켰죠?”
“잘은 모르지만 무릎 관절 치료도 더 받으며, 더 살펴보는 모양이에요.”
408호 요양보호사는 401호 요양보호사가 하는 말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들었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첫 번째 면회 갔다. 할머니는 반가워 가만히 있지 못했다.
“다님아.”
할머니는 다님이를 보자마자 병실이 답답한지 밖에 나가자고 다님이 손을 잡아끌었다.
“할머니, 말을 잘 안 들었어?”
침대맡에 밧줄이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할머니는 다님이가 묻는 말에 아무 말도 못했다.
“할머니, 요양보호사 아주머니 말을 잘 들어야 해. 그래야 할머니 집에 간다고 했잖아.”
“깜깜하면 우리 똥강아지가 보고 싶단 말이야.”
할머니는 응석을 부렸다.
“그래도 집에 가고 싶으면 참아야지.”
“불쌍한 내 새끼 보고 싶은데.”
“할머닌, 내가 왜 불쌍해?”
401호 요양보호사는 할머니와 다님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서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할머니와 손녀의 애틋한 마음이 요양보호사 마음에도 찐하게 전해져서 일까?
“저어……. 할머니 모시고 나갔다 와도 되죠?”
다님이는 요양보호사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401호 박수영 할머니 환자, 큰 문제가 안 되면 손녀딸의 말을 들어줘요.>
병원장의 특별 지시가 있었다.
요양보호사는 할머니 떼를 써서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원장님 지시가 마음에 걸려 허락했다.
“좋아. 내가 다님이 말을 믿어 보지.”
401호 요양보호사는 무거운 마음으로 승낙했다.
“할머니, 나가자.”
“정말?”
“할머니, 요양보호사 말을 잘 들어야 해.”
“알았어.”
다님이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현관문을 나섰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요즘엔 내 안에 내가 한 세 명쯤 되는 것 같다.”
“할머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많다는 얘기야.”
할머니는 그냥 해 본 말이 아니다. 정말 할머니 안에 할머니가 여럿 있다. 어떤 때는 다님이 엄마, 또 돌아가신 할아버지, 또 다님이, 할머니 자신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여러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할머니는 분명 하나인데,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바깥으로 나온 다님이는 할머니와 같이 요양병원 연못가 벤치에 앉았다.
“할머니, 뭐 물어도 토라지지 않을 거야?”
다님이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 말이 튀어나왔다.
“어멈 얘기구나.”
할머니는 다님이 생각하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어떻게 잘 알지?”
“지금은 내가 다님이, 너거든.”
“할머니가 나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어. 또 네가 여기서 나한테 물어볼 게 그것밖에 더 있니?”
다님이는 할 말을 잃었다.
“할미 정신이 흐려지기 전에 어서 물어. 다님아, 내가 왜 너를 좋아하는 줄 아니?”
“할머니 똥강아지니까.”
“그것도 그거지만 너는 엄마를 쏙 빼어 닮았어.”
할머니는 엄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냈다. 할머니가 엄마 이야기를 꺼내다니, 다님이도 마음 놓고 엄마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정말 엄마를 닮았단 말이야?”
“그럼.”
요즘 들어 할머니는 엄마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나이 들면 마음이 바뀐다는데 할머니 마음이 변하나? 엄마 말만 꺼내면 싫은 기색을 보였던 할머니가 엄마 얘기를 자주 꺼내고 눈물을 보이니 말이다. 다님이는 할머니의 눈물 때문에 엄마 말을 되도록 꺼내지 않았다. 할머니가 편찮으셔 가족들이 할머니께로 모이는데 아버지도, 엄마도, 함께 했으면 했다.
다님이는 할머니와 요양병원에서 있다가 집으로 가던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다님이는 할머니가 병세가 좋아져 곧 퇴원할 수 있다는 희망의 발걸음으로 집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삐리릭, 삐리릭.”
스마트폰이 다님이를 불렀다. 번호 뜬 것을 보니 큰엄마였다.
“덜컹.”
스마트폰 큰엄마 벨 소리에 다님이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다님이는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받았다.
“다님아, 집에 다 갔니?”
“아뇨.”
“글쎄 네가 집에 가고 나서, 할머니가 없어지셨단다.”
“네에?”
다님이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혹시 할머니 네가 모시고 간 건 아니지?”
“아니에요.”
다님이는 전철에서 내려 되짚어 요양병원으로 갔다. 전철이 이렇게 느리게 가는지 미처 몰랐다. 오늘따라 전철이 역에서도 한참 정차하고 출발도 늦게 했다. 제시간에 제 속도로 가는데 다님이 생각에는 시간도, 전철 속도도 엄청 느렸다.
‘할머니, 제발……. 다님이랑 재미있게 살아야죠.’
요양병원에는 시골집에 있는 아버지를 빼놓고 모두 와 있었다. 다님이가 집에 가고 병실에서 보이지 않아 병원 안을 샅샅이 찾았는데 할머니가 없다는 것이다.
“손녀를 만나고 기분이 좋으셨는데.”
401호 요양보호사가 걱정했다.
“병원 안을 제가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다님이가 말했다.
“병원 건물 안에는 없을 거야.”
“그래도 제가 한 번 더 찾아볼게요.”
다님이는 큰엄마와 큰아버지랑 5층 꼭대기서부터 살피며 내려왔다.
“다님아, 병원 건물 안에는 안 계셔. 너랑 함께 있던 동산이나 연못 근처에 가서 찾아봐라.”
408호 요양보호사는 병원 건물 밖을 찾아보라 하고, 다님이 큰아버지와 큰엄마가 가까이 오자 자리를 피했다. 날이 어둑어둑 해서 다님이는 관리실에서 플래시를 얻어 바깥으로 나갔다.
연못가에도, 동산에도 할머니는 없었다.
‘나를 따라가려고 정문으로 간 게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다님이는 부리나케 정문 수위실로 달려갔다.
“아저씨, 정문으로 할머니 한 분 나가는 것 보셨나요?”
“내가 한 시간 전에 교대했는데 없었다.”
“환자 옷을 입은 할머니인데요”
“이 시간에 환자가 보호자 없이 밖에 나가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경비아저씨는 딱 잘라 말했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와 소녀가 수위실로 왔다. 아주머니는 소녀 손을 잡고 수위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환자를 면회 온 아주머니 같았다.
“다님아, 다님아!”
어둠 속에서 어떤 할머니가 다님이를 부르며, 슬리퍼를 끌고 수위실로 달려왔다.
“다님아, 다님아. 나야 나. 할미야.”
“엄마, 이 할머니 좀 봐.”
소녀는 뒤 따라 온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여기야, 할머니, 다님이 여기 있어.”
다님이는 할머니를 부르며 할머니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 똥강아지?”
소녀 쪽으로 가던 할머니는 귀에 익은 다님이 소리가 나는 대로 갔다.
“다님아, 날 두고 가지 마.”
할머니는 소녀가 다님인 줄로 알았다.
다님이가 집에 가느라 할머니와 헤어졌다. 심심한 할머니는 살며시 병실을 빠져나왔다. 할머니는 다님이와 앉아 있던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정말 다 나아 집에 갈 수 있을까?’
할머니는 다님이가 곁에 없어 쓸쓸했다. 여태껏 일을 미루어 보아 집에 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할머니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된 것이 새로 온 408호 요양보호사이다. 안경과 마스크를 썼지만 분명 다님이 엄마 같았다. 눈이 침침해 확실치는 않지만, 전체 모습이 틀림없었다. 할머니가 408호 아줌마와 가까이 하려면, 408호 요양보호소 아주머니는 피했다. 분명 며느리 같은데 왜 나를 피할까? 그때의 일 응어리가 아직 덜 풀렸나?
할머니는 다님이와 같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반짝, 반짝> 다님이를 찾는 불빛이 벤치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할머니는 벤치 밑으로 기어 들어가 바짝 엎드려 몸을 숨겼다. 불빛이 의자 밑에 웅크린 할머니를 스쳐 지나갔다.
불빛은 할머니와 헤어져 수위실이 있는 정문으로 갔다. 어둠 속 불빛이 다님이를 수위실로 안내했다. 할머니도 불빛을 따라 수위실로 갔다.
“저기 할머니예요.”
다님이는 할머니에게 뛰어갔다.
“어딜 가려고 나온 거야?”
“우리 똥강아지 찾으러.”
다님이가 할머니 곁에 있는 것밖에는 좋은 방법이 없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할머니를 잘 돌보라고만 했다.
“큰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제가 여기 있을래요. 원장님도 그게 좋다고 했잖아요.”
“어린 네가! 학교는 어떡하고?”
“안 그러면 할머니 또 없어진단 말이야.”
다님이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퇴원 때까지는 그게 좋겠다.”
고모가 얼른 말했다.
고모는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 병문안을 한 번도 오지 않고 말은 제일 많았다.
“얘는, 어머니 누워 계신데 신경 좀 써라.”
큰아버지가 고모를 나무랐다.
고모는 씨근덕대며 변명했다.
“큰오빠는? 고3 엄마라는 걸 모르시나?”
고모는 실쭉했다.
“어른들이 많은데 나 몰라라 하고, 어린 것이 간호하게 해?”
“큰아버지, 저 어린애 아녀요. 할머니는 저랑 있겠다고 하잖아요. 또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하고요.”
“그래 다님이는 어린애가 아니야. 내 맘을 잘 아는 사람은 다님이 밖에 없어. 너희보다 훨씬 어른이다.”
할머니가 한몫 끼었다.
“할머니는, 내가 할머니 약이잖아?”
다님이 말에 모두 웃었다.
“참, 그렇지?”
멋처럼 큰엄마가 편안하게 웃었다.
“다님이랑 있으면 할아범처럼 편안하다. 나 때문에 다님이가 고생하지만, 내가 빨리 나을 수 있다고 하잖아. 다님이 애미를 봐서라도.”
“어머니, 제수(다님이 엄마) 씨는 어머니 땜에 집을 나간 게 아니에요?”
‘할머니 때문에 엄마가?’
큰아버지 말에 엄마 이야기가 할머니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다님이는 어렴풋이 알았다.
“큰아버지, 제가 있어야 할머니가 또 소리치는 것도, 없어질 거예요. 또 빨리 퇴원하고요.”
“그래. 다님이가 없으면 난동을 부리고 소리 지를지도 몰라.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이야.”
할머니는 다님이를 보며 식구들에게 은근히 겁을 주었다.
6> 손거울
다님이가 할머니 머리맡에 있어 그런지 할머니는 가는 코를 골며 잘 잤다. 다님이도 할머니 침대에 엎드려 조는 것을 408호 요양보호사가 보조 침대에 눕혔다.
그때였다.
할머니가 번쩍 눈을 떴다.
“애미야!”
잠이 깬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를 애미라고 부르자, 408호 요양보호사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라며 꽁지가 빠지게 할머니 곁을 떠났다.
“다님아, 저 여자야!”
“할머니, 어떤 여자?”
다님이는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여기 있던 여자 말이야.”
“할머닌, 무슨 사람이 있었다고 그래. 할머니랑 나, 둘 뿐인데.”
단잠에서 깬 다님이는 할머니가 또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말하는 줄로 알았다.
다른 환자를 보살피던 401호 요양보호사가 급하게 오며,
“여기. 또 누가 있었다고 그러세요? 저는 저쪽 끝 환자를 보살폈는데요.”
“우리 요양보호사 말고.”
정신이 멀쩡한 할머니는 또 치매라서 그런 거라고 할까 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누구와 이야기하던 할머니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것이 속상해 말을 하다가 입을 닫을 때가 종종 있다. 오로지 할머니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다님이 뿐이었다. 그런데 다님이 까지도…….
얼마 지나서 408호 요양보호사가 401호실을 기웃거렸다.
“할머니, 잠들었어요. 408호는 할머니와 잘 아는 사이인가요?”
401호 요양보호사가 물었다. 요양병원에서는 병실 요양보호사 끼리는 서로 병실 호수로 부르기도 했다.
“아는 사이이긴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집에도 저런 어머니가 있어서요. 미안하지만 제가 401호에 드나드는 걸 모른 척해 주세요. 다님이는 괜찮지만, 할머니와 그 가족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해주세요.”
408호 요양보호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이상한 말을 했다.
“그럼요, 그럼요. 무슨 사정이 있나 본데, 그러지요.”
401호 요양보호사는 쿨하게 대답했다.
“저어… 다른 게 아니라 다님이 가족 중에 좀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408호는 401호 바로 건너편 방 옆 방이어 요양보호사들이 서로 왔다 갔다 했다.
다음 날 아침 다님이는 일찍 일어나 할머니 침상 주변을 정리했다. 할머니는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다.
“참, 별일이야? 손녀가 있으니까 투정도 안 부리고 잘 주무시네.”
401호 요양보호사가 신기하듯 말했다.
“그러잖아도 조용하다 했죠.”
408호 요양보호사가 끼어들었다.
“다님아, 이분께 감사드려라. 할머니와 같은 병을 앓는 어머니가 있다고 가끔 오셔서 돌봐 주신단다. 어젯밤 늦게 너를 보조 침대에 눕힌 것도 408호란다.”
“고맙습니다. 저는 할머니 손녀 다님이에요.”
다님이는 공손히 머리 숙여 인사했다.
“다님이?”
401호는 다님이를 불러놓고 다음 말을 얼른 꺼내지 못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이름 참 곱구나.”
401호가 말했다.
“달님이란 말이래요.”
‘다님이?’
401호는 속으로 다님이를 돼내어 보았다.
“엄마가 달을 많이 좋아하셨대요.”
다님이 말에 408호는 머리를 푹 숙였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큰아버지가 들어왔다.
“큰아버지.”
다님이는 큰아버지 품에 안겼다.
408호는 머리를 숙이고 급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아주 대단한 조카 손녀를 두셨네요.”
옆 환자 할머니가 말했다.
“네, 대단한 손녀지요. 이 애가 어른 두 몫을 하는 애랍니다.”
병실에 이야기하는 소리가 나자 할머니가 눈을 떴다.
할머니는 병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애미 어디 갔어?”
“어머니 또 왜 그러셔요? 누구 애미가 왔다구요?”
할머니가 갑자기 엄마를 찾는데 누구 엄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큰엄마도, 작은엄마도, 다님이 엄마도 모두 애미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할머니, 누구 엄마 찾는 거야?”
‘앗차! 이거 또 나를 치매로 보는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할머니는 잠자코 웃기만 했다.
“내가 누구야? 다님이 알지?”
할머니가 정신이 나간 줄 알고, 다님이가 할머니에게 장난삼아 물었다.
“어젯밤 이 할미랑 잤잖아.”
“이상하다. 말짱하신데.”
큰아버지와 가족들은 요즘 할머니가 뜬금없이 애미를 찾는 일이 있어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큰애(큰아버지)는 회사 가고, 다님이는 학교 가거라. 나 이제 여기 혼자 있어도 된다.”
식구들이 이상하다 싶어 가만히 있는데 다님이가 말을 했다.
“할머니는?”
“난, 여기 있지.”
“집에 안 가고?”
“몹쓸 병 빨리 고쳐야지.”
어제까지 집에 가겠다고 하던 할머니가 병원에 있겠다니 모두 놀랐다.
“다님이도요?”
고모가 물었다.
다임이란 말에 할머니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다님이는 학교 가야지.”
할머니는 슬쩍 다님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나도 얼른 나아 곧 집에 갈 텐데 뭘.”
“다님아, 어젯밤에 무슨 말 했니?”
큰아버지는 다님이가 할머니에게 단단히 부탁한 줄로 물었다.
“아무 일 없었는데요.”
“다님이는 멋처럼 보조 의자에서 곤히 잤는데요.”
401호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할머니가 큰아버지를 보며
“어제 다님이 엄마가 다녀갔어.”
할머니는 생뚱맞은 말을 했다. 생뚱은 앞뒤가 맞지 않고 매우 엉뚱함
“언니가?”
“제수씨가요?”
다님이와 큰아버지는 놀라서 동시에 물었다.
‘엄마가?’
다님이는 입속에서 말을 꺼내지 못하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내가 이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할머니는 자신 있게 말했다.
“어머니, 정말이에요?”
“내가 너희들한테 왜 괜한 이야기를 하겠니?”
할머니는 큰아버지 말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큰아버지는 기쁘면서도 온전한 정신으로 말하는가가 의심스러웠다.
다님이는 엄마라는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큰아버지는 스마트폰을 걸고, 뭐라고 하더니 병실 밖으로 나갔다. 원장을 만나러 갔던 것이다.
“원장님, 저희 어머님이 이상하네요.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요.”
원장은 입안 가득 웃음을 물고 말했다.
“환자 가운데는 과거의 일을 현재처럼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치매가 심한 게 아니라 갑자기 어떤 큰 충격을 받으셔 더 그렇습니다. 그 여파로 어제와 오늘이 뒤섞여 증상이 갑자기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충격을 없애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게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다님이가 할머니 곁에 있다고 하죠. 아주 좋은 치료입니다. 할머니가 다님이에게 무슨 말이든 많이 하게 하십시오. 다님이를 신뢰하고 좋은 관계를 갖게 하세요. 약물 투여를 조금 더하고, 빠른 시일 안에 다님이와 함께 살게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수씨 땜에 큰 충격을 받아서 그럴 거야.’
할머니는 무릎 관절 고친다고 큰아버지네 새장 같은 아파트에서 산 것이 치매에 원인인데 큰아버지는 다님이 엄마 때문에 그런 줄로 알았다. 물론 다님이 엄마에 대한 앙금도 없지는 않지만.
그날 할머니 말대로 401호 요양보호사에게 단단히 부탁하고 다님이만 남고 모두 집으로 갔다. 물론 이것은 의사 지시에 따른 것이다. 식구들이 있을 때는 웃고 떠들어 몰랐다. 특히나 그 웃음과 이야기가 할머니에 관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식구들이 모두 병실 문을 나서자, 할머니가 아닌 다님이도 병실이 텅 빈 것이 외로움이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우리가 모두 가면 할머니가 이런 마음으로 계시겠지.’
다님이는 병실을 둘러보았다. 할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넌, 안 가니?”
할머니는 다님이가 곁에 있어 좋으면서도 물었다.
“할머니 코오하면 가려구.”
“할미가 잠 안 자면 안 가는 거야?”
“그럼.”
“다님이는 아버지도 잘 보살펴 드려야지.”
할머니 얼굴에 엷은 미소가 흘렀다.
“아빠 이젠 많이 나았어. 요리를 얼마나 잘하는데.”
다님이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말을 골라 했다.
“밥 먹고 제가 마실 물도 떠다 먹을 줄 모르던 애가 부엌에서 반찬을 만들어? 고얀 놈 제어미는 부려 먹고 제 딸은 상전 노릇하게 하네.”
“아빠는 물도 안 떠먹었어?”
“그럼, 네 할비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고 못 드나들게 했지.”
“할머니, 내가 그렇게 좋아.”
“좋지.”
“왜 좋아?”
할머니는 생각하느라 눈을 꿈뻑이다 말했다.
“네가 하는 짓이, 꼭 네 아범 같은 게 많지.”
“그게 뭔데?”
“이를테면 추운 겨울날에도 찬물을 마시고, 옷소매를 올려 입어 할아버지한테 혼 많이 났지.”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어떻게 혼을 내?”
“말로만 혼냈지.”
“할머니 눈 감아 봐.”
“왜? 갑자기 눈을 감으라는 거야?”
“글쎄 감아 봐.”
“할머니한테 꼭 줄 게 있어.”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할머니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할머니 나를 주는 거야.”
“아니, 우리 다님이가 또 있어?”
“내가 나라고 하면, 다님이가 아닌가, 뭐?”
“맞아, 네가 다님이라면 다님이지 않고.”
다님이는 품속에서 무엇을 꺼냈다. 아기 손바닥만한 동그란 밤색 뿔테 거울이었다. 테가 반질반질하고 빛이 나, 오래된 거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할머니 눈 뜨고 다님이 받아.”
할머니는 눈을 번쩍 뜨고 거울을 보고 놀랐다.
“아니? 이거 어디서 났지?”
할머니 눈이 동그래졌다.
“어디서 나긴?”
할머니는 거울을 요리조리 뜯어 보다가 거울을 보고 찡그려도 보고, 하하하 웃어 보이기도 했다.
“그만 보고, 내 말 좀 들어 봐.”
“이거 어디서 났어?”
“왜?”
“글쎄.”
다님이는 거울에 자기 얼굴을 담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엄마 보고 싶으면 보라고 준 거야.”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거울을 빼앗아 들고 가슴에 꼭 안고 중얼거렸다.
“어멈아, 어멈아.”
“할머니, 왜 그래?”
“내가 왜?”
“할머니, 그 거울이 좋아?”
“그럼…….”
할머니는 무슨 말을 꺼내려다 꺼내지 않았다.
이 손거울은 할머니의 어머니가 준 것이었다. 이걸 할머니가 간직하다가 시집온 다님이 엄마에게 준 것이다. 다님이 엄마가 돈을 벌러 가겠다고 할 때 다님이 엄마가, 정표로 다님이 아버지에게 건네준 것이다.
“할머니, 나와 같은 이 거울 주려고.”
“아냐, 네가 갖고 있어.”
할머니는 거울이 갖고 싶은데 관심이 없는 척했다.
“할머니, 이 거울에 대해 아는 것 같은데, 아는 사람이 갖고 있어야지.”
“내가 알긴 뭘 안다고 그래.”
“하여튼 내게 중요한 나와 같은 것이거든. 엄마 생각나면 보라고 아빠가 준 거야.”
“아빠가?”
“내가 이걸 줄 테니 내가 없어도 절대로 투정 부리지 않기.”
“글쎄?”
할머니는 말꼬리를 흐렸다.
“거울아, 거울아. 우리 할머니 정신 줄을 놓지 않게 도와주라.”
할머니에게 거울을 주어 그런지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투정 부리는 일은 없었다. 소리치지도 않았다. 단지 말을 안 하고 소리 죽여 가끔 울기는 했다.
할머니는 다님이가 안쓰러워 잠든 척했다. 다님이는 할머니가 잠들자 얼굴에 뽀뽀를 하고 요양병원을 나왔다.
‘할머니가 찾는 엄마라고 하는 이는 누구일까? 엄마가 진짜 병원에 있단 말인가?’
할머니가 갑자기 엄마를 찾는 이상해진 할머니와 엄마에 대해 수수께끼를 갖고 전철을 탔다. 병실에 있지 말고, 학교에 가라고 떠미는 듯한 할머니 말이 좋으면서도 서운했다.
‘내가 할머니 곁에 없으면 안 된다고 하더니. 이제는 학교에 가라고 등을 떠밀어?’
어떤 때는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2박 3일, 요양병원의 배려로 할머니 침대 곁에 보조 의자를 놓고 쪽잠을 자며 할머니를 돌봤다. 아니, 요양병원 원장 말대로 할머니와 같이 재미있게 놀았다. 논다는 것이 할머니 이야기를 받아주는 것이 다다.
할머니 이야기란 할머니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이야기와 할아버지 이야기, 알지 못하는 생경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 주는 것이다.
치매 상태가 덜 하자 원장으로부터 퇴원을 약속받았다.
여느 병원도 그렇지만 요양병원도 아침나절에는 바쁘다.
주변 청소도 하고,
환자 점검도 하고,
의사들이 회진도 돌고,
아침도 먹고,
환자도 요양보호사도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할머니도 여기 생활에 길들어 잘 따라 했다. 모두 바쁘게 움직일 때 할머니는 병실 주변을 왔다 갔다 해도 요양보호사가 가만두었다. 밥 먹고 운동이 필요했으니까.
할머니는 아침을 먹고 복도에 나가 서성이다가 말리는 사람이 없어 걷다 보니 4층 끝에 있는 휴게실까지 갔다.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커피 마시는 아주머니 환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저 젊은 여인도 나랑 똑같은 병인가?’
할머니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이 요양병원이 치매 전문병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매 병동 말고도, 당뇨와 고혈압, 관절 환자도 있었다.
‘이 두 눈으로 분명 다님이 애미를 보았는데. 모두가 모르다니?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진짜 치매 걸린 것인가?’
할머니도 할머니 자신을 알 수가 없었다.
7> 그리운 엄마
다님이가 어렸을 때 다님이 아버지는 집 짓는 목수였다.
집을 지을 뿐만 아니라, 연립주택을 지어 팔기도 했다. 그런데 아파트 붐이 일어 아버지가 지은 집이 팔리지 않아 폭삭 망했다. 아버지는 물론 엄마도 뒷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님이 엄마도 아버지도 다님이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다님이 아버지가 옥살이를 해야 될 판이다. 그전에도 다님이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와 달리 집 짓는 일을 따라 옮겨 다녀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다가 힘든 일을 해서 그런지 아버지는 밥보다는 술과 더 가까웠다. 혈압은 높은데 병원은 물론, 약 한 톨 먹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아버지는 당뇨까지 있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뇌졸중이 온 것이다. 아버지가 자리에 눕자 엄마는 돈을 번다고 집을 비우고부터 아버지는 병이 더 심했다.
다님이네는 서울 큰아버지 집에서 큰집 식구와 살았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서울보다 공기가 좋은 할머니 댁에 내려가 살기로 했다. 할머니 댁은 경기도지만 서울 전철이 다녀 교통이 좋았다. 할머니는 부자는 아니지만 논과 밭이 많았다.
“어머니, 당분간 다님이 좀 봐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
“돈이 있어야 아범 병을 고치는데, 제가 나가서 돈을 벌어 아범 병을 빨리 고치게요.”
“그런 걱정은 말거라. 집 앞 텃밭만 팔리면 모두 해결된다.”
아버지는 아프고, 약값, 병원비, 생활비 엄두를 못 내어, 다님이네는 시골 할머니 댁으로 옮긴 것이다. 이사를 하고 다님이 엄마는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간 것이다. 물론 다님이 아버지와 의논을 했다.
돈을 벌어 오겠다고 쪽지를 써 놓고 새벽같이 없어진 것이다. 할머니는 엄마가 더 참지 않고 집을 나간 게 서운했다. 엄마가 나간 뒤, 몇 달 뒤부터 아버지에게 돈을 조금씩 보내왔다. 그러나 엄마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아버지는 혈압과 당뇨에 좋다는 나무를 심어 시골 생활에 취미를 붙여 휴양하며 살았다. 당 수치도 혈압도 많이 내렸다. 할머니와 아버지 또 다님이 세 식구는 재미있게 잘 살았다. 그런데 할머니 무릎관절염이 심해 큰집에서 치료받다가, 할머니는 치매를 앓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쉬엄쉬엄 약초를 키우고, 다님이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일손을 도우며 엄마가 보내 주는 돈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살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관절염 치료를 받으러 간 큰집은 할머니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큰집에서 큰엄마와 큰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잘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잘해 주어도 시골집 약수물을 바가지로 떠먹으면 막혔던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그런 맛이 단 하나도 없다.
다님이는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또 의사 말을 듣고 생각했다.
‘잘은 모르지만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할 병이 아니야. 시골집에서 나랑, 아버지랑 재미있게 살면 낫는 병이야. 원장 선생님도 그랬는데.’
다님이는 어떻게 하든 할머니를 시골집에 내려오게 하고 싶었다. 할머니도 그런 다님이 마음을 아는지 다님이 말을 잘 들어주었다. 다님이 말을 잘 듣게 된 까닭 가운데 하나는 408호 요양보호사가 아닌가 한다.
할머니는 예전과 달리 다님이 말을 더 잘 듣고, 다님이가 없을 때는 408호 요양보호사 말을 잘 들었다.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가 다님이 엄마 같다고 계속 말했다.
“애미(408호 요양보호사) 좀 불러다 줘.”
할머니는 401호 요양보호사에게 조용히 부탁했다. 401호는 408호 요양보호사를 애미라고 부르는 것은 치매 끼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애미야, 너 다님이 애미 맞지?’
“어르신, 어르신 무슨 말씀이에요?”
408호는 펄쩍 뛰며 아니라고 했다.
“애미야,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으니 용서하렴.”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에게 용서를 빌었다.
“아주머니, 제게 무슨 잘못을 하셨다고 이러셔요?”
“너, 다님이 애미 맞지? 귀신을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에게 말했다.
408호 요양보호사가 할머니 며느리라는 것을 401호 요양보호사도, 또 환자들도, 믿지 않았다.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할머니가 허튼소리 한다고 생각했다.
“408호, 저 할머니 말이 진짜야?”
하고 408호에게 물으면,
“아니에요?”
하고 딱 잘라 대답했다.
할머니는 408호 병실 근처에서 어정거리는 시간이 많아졌었다. 408호 요양보호사가 일 때문에 401호에 자주 못 오면 할머니가 408호 병실로 갔다. 408호 환자들은 중증 환자여서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였다.
다님이가 요양병원에 오는 시간이 되면 마당과 수위실이 환히 보이는 창가에서 수위실 쪽을 뚫어져라 보았다. 다님이는 그것을 알고 할머니가 안 보여도 요양병원 입구를 들어서며 손을 흔들었다.
“똥강아지 온다, 우리 다님이가 온다.”
다님이가 보이면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
젊은 의사는 병원장 지시에 따라 할머니가 다님이와 함께라면 요양병원 구내를 돌아다녀도 좋다고 허락했다. 할머니는 바깥바람 쐬는 것을 좋아했다. 병원 로비를 지나 경비원에게 허락을 맡고 산책길로 들어서면 할머니는 숨을 깊게 들여 마시고 내뱉었다.
“휴우우, 아 좋다!”
“할머니, 밖이 그렇게도 좋아?”
“네가 이 마음을 알겠니?”
<병원 문!>
“저 문은 사람을 들어오게 하고, 나가게 하는 문이 아니야. 저 문은 벽보다 더 높아 넘을 수 없는 벽이야.”
“그런 게 어딨어? 문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지.”
“네가 몰라서 그래. 우리 가운데 저 문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마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걸?”
할머니는 빨리 퇴원해 집에 가고 싶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다님이는 할머니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다가 맨드라미가 흐드러지게 핀 정원 벤치에 앉았다. 산책길 가장자리로 코스모스가 바람에 휘날렸다.
“너 다님이 맞지?”
다님이는 대답 대신 할머니 얼굴을 빤히 보았다.
“내가 다님이 아니면 누구야?”
할머니 눈 가장자리가 촉촉한 물기가 있어 아기 사슴 눈 같았다.
“제 엄마도 몰라보는 애가 정말 내 손녀 맞아?”
“할. 머. 니!”
다님이는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뜻으로 힘주어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한 번 만나 보라니까?”
408호 요양보호사를 만나 보라는 말이었다. 도대체 할머니는 왜 408호 요양보호사를 엄마리고 하는 걸까? 다님이는 마스크에 얼굴이 갇힌 408호 요양보호사를 그리며 한번 만나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님이는 토요일에 하룻밤, 또는 이틀 밤을 할머니와 잤다. 일요일에는 거의 하루 종일 할머니와 병실에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말하는 408호 요양보호사는 보지 못했다. 요양보호사들이 머릿수건을 하고 마스크를 써 서로 누가 누군지 잘 알 수가 없다. 또 같은 유니폼을 입어서 몇 번을 보아도, 얼굴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여섯 살 때 헤어져 지금 아홉 살.
엄마는 다님이를 알아보겠지만 다님이가 어린 시절의 엄마를 기억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맨얼굴도 아닌 마스크와 머릿수건을 쓰고 유니폼을 입었으니 어떻게 알아보겠는가.
‘할머니 말이 진짜일까?’
다님이는 408호 요양보호사를 만나 보기로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환자 면회 온 가족들로 조금은 느슨하고 병원 안이 시끌시끌했다. 다님이는 이 틈을 타서 408호 요양보호사를 지켜보리라 마음먹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오전에는 408호 요양보호사가 보였는데 점심시간 후에는 보이지 않았다.
“408호 요양보호사 어디 가셨나요?”
“왜, 할머니가 찾으시니?”
“아니에요. 할머닌 주무세요.”
“408호 오후 교대야.”
다님이는 잠자는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잡아끌며 안아주었다. 할머니는 자지 않았다.
“이제는 똥강아지 필요 없으니 집에 가. 할미 혼자 잘 있을 수 있어.”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할머니 왜 408호 요양보호사를 엄마라고 하는 거야?”
할머니는 다님이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도 엄마면 좋겠다.”
“아니 누가 엄마면 좋겠다는 거냐?”
큰아버지와 큰엄마가 병실로 들어오다 다님이 말을 듣고 큰엄마가 물었다.
“408호 요양보호사요.”
“어머니(할머니)가 너한테도 그러시니?”
큰아버지는 이상하다는 듯이 다님이에게 물었다.
“네, 어떤 때는 저 보다도 408호를 더 찾으셔요.”
“다님이는 이제 집에 가 봐라. 아버지도 보살펴 드려야지. 어린 녀석이…….”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말을 못 잇고 눈물을 글썽였다.
“어서 가 봐라. 여긴 큰아버지와 내가 있을 테니.”
다님이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할머니도 큰아버지도 집에 가라고 해서 혼자 우두커니 있을 아버지 생각에 병원을 나섰다.
‘할머니가 괜찮을까? 큰아빠와 큰엄마도 집에 곧 갈 텐데.’
8> 만남
환자를 면회 온 가족들이 하나, 둘 집에 가고 요양보호사들이 저녁 먹을 준비를 할 때였다.
“다님아, 애미야.”
할머니는 다님이와 408호 요양보호사를 큰 소리로 부르며 침대를 두드리고 난리를 폈다. 갑자기 뭐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저지해도 소용이 없자 요양병원에서는 곧바로 큰아버지와 다님이에게 연락했다. 병원에서 연락을 받은 다님이는 아버지 저녁을 차려 주고 쏜살같이 요양병원으로 갔다. 다님이가 병실에 들어서자 할머니는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다님아.”
“할머니가 나 보고 집에 가라고 했잖아.”
다님이는 할머니와 약속한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응. 그랬지.”
할머니는 누구를 찾는지 두리번거리다가 다님이 엄마를 찾았다.
“그런데 네 엄마는 어디 갔니?”
“할머니, 408호 요양보호사지 엄마 아냐.”
다님이가 말하자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기만 했다.
모두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 가만히 있었다. 모두 조용하게 있자 할머니가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제 엄마를 눈앞에 보고도 모르다니.”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는지 할머니 눈에 힘이 풀렸다. 분명 다님이 엄마가 있지만, 더 이상 우길 수가 없었다. 자꾸 우기면 치매가 더 심해진다고 병원에 더 붙들어 놓을지도 모른다는 나름대로 할머니 생각에서였다.
곧이어 큰아버지와 큰엄마도 왔다.
“넌 가서 쉬라니까 왜 왔니?”
다님이를 보고 큰아버지가 말했다.
“가만있어 봐.”
할머니가 큰아버지 말을 끊고 말했다.
“큰애미야, 408호 막내 애미 아니니?”
“그럴 리가요?”
“막내 애미도 할 수 있잖니?”
“시험 보고 된다는데 그럴 만한 시간이 있었을까요.”
“그건 그렇구나.”
“아닐 거예요.”
“큰엄마가 408호 요양보호사를 한번 만나 보세요. 할머니도 그냥 하는 말 같지는 않아요.”
할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마스크를 하고 머리에 수건을 써 이마를 가렸다고 해도 할머니가 아무렴 제 며느리를 몰라볼까? 그래서 자꾸 식구들에게 408호 요양보호사를 만나 보라고 했던 것이다. 할머니 성질대로 했으면 벌써 끝이 났을 텐데 치매 끼가 와서 우기는 거라고 할까봐 할머니는 나름대로 408호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것이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할머니는 할머니 자신을 몰랐다. 할머니는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 같은데 식구나 주위 사람들은 정신이 돌아왔다고 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니, 할머니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소리치고 나대는 것은 할머니 자신도 어느 정도 알았다.
다님이가 큰엄마에게 말했다. 요즘 들어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408호 요양보호사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 할머니가 왜 그러시는지 알아봐야겠다.”
큰아버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할머니는 408호 요양보호사를 시시때때로 찾았다. 그러나 408호는 할머니와 마주치질 않았다.
그 다음 토요일 할머니와 산책했다. 할머니는 다님이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는 손잡고 거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할머니 건강에도 좋아 병원에서 권장했다.
“다님이는 나 보다 아버지를 더 돌봐야 하는데.”
할머니는 굳게 잡은 다님이 손을 풀고 쭈글쭈글한 손으로 다님이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치매가 오고부터는 부쩍 아빠와 엄마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할머니 땜에 그렇잖아.”
다님이는 할머니에게 톡 쏘아 말했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구나. 이 할미가 밉지?”
할머니는 가벼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할머니가 밉긴 왜 미워?”
“엄마 내쫓았다고.”
“할머니가 내쫓은 게 아니라며?”
할머니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나오자 다님이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엄마가 있어 보고 싶어도 맘대로 보지 못하는 엄마. 할머니 마음은 다님이보다 더 섧게 울었다.
“우리 똥강아지 말이 맞아. 엄마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내쫓은 게 아냐. 아버지 병 고치려고 돈 벌려 나간 거야. 그러니 크게 보면 내가 내쫓은 거나 다름없지.”
“할머니 잘못 아냐. 할머니 말을 안 들은 엄마가 잘못이지.”
다님이는 할머니가 듣기 좋은 말을 했다.
“할머닌, 408호 요양보호사가 엄마 같아?”
“응. 408호는 네 엄마가 맞아.”
“정말?”
할머니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하도 아니라고 하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
다님이 어린 눈에도 할머니가 애처러워 보였다.
“할머니 정신 줄을 꼭 잡고 말해.”
“꼭 잡지 않구? 정신 줄을 잡는데, 힘을 주는 게 똥강아지와 408호야.”
“나랑, 408호?”
다님이는 408호 요양보호사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다님이는 어쩌면 408호가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엄마라고 하는 요양보호사로만 알았지 얼굴도, 목소리도 제대로 보고 듣지 못했다. 그렇게 많이 부딪쳤으면서도 말이다. 할머니가 정신 줄 이야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408호 요양보호사가 엄마라는 이야기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할머니 건강상태가 좋아져 퇴원을 얼마 앞둔 어느 날이다.
요양병원이 또 온통 뒤집혔다.
할머니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큰아버지 댁에는 물론 시골집에도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는데도 할머니는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요양병원 요양보호사와 의사, 경비원들이 샅샅이 찾았으나 할머니 흔적이 없었다.
408호 요양보호사를 찾았으나, 교대 근무로 퇴근했다. 408호 요양보호사가 혼자 퇴근해 주차장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는 경비원도 나타났다. 할머니가 없어진 것에 실마리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는 401호나 408호 요양보호사와 함께 병실 밖에서 운동할 때가 있다. 그때 주차장에 들려 408호 요양보호사는 흰색 경차 뒷문을 열어보고는 했다. 408호 요양보호사 차인가 보다. 차 뒷문이 고장인지 잠가도 열릴 때가 많았다.
“또 안 잠겼네.”
408호 요양보호사는 혼자 말을 하며 문을 열었다가, 힘을 주어 닫고는 했다. 할머니는 이런 광경을 가끔 보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할머니는 저녁을 먹고 비 오는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불현듯 시골집에 있는 둘째 아들(다님이 아버지) 생각이 났다.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몸은 많이 나았다는데.’
할머니 마음에 둘째 아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얼른 달려가 보고 싶은 불씨를 당겼다.
‘여태껏 애미가 되어같고 나만 생각했어. 애미가 되어 가지고 참. 이런 애미가 세상에 어디 있어?’
둘째 아들을 생각하자 할머니는 마음이 괜히 급해졌다. 둘째 아들이 있는 시골집으로 빨리 가고 싶었다. 할머니는 4층 끝 휴게실을 생각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건물 끝으로 가서 층계를 따라 내려갔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복도 벽에 빨간 글씨로 써 붙였다.
할머니는 빨간 글씨를 보고도 그대로 내려갔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이쪽은 지대가 조금 높아 지하실이 아니라 반지하 1층이었다. 식당 조리실이 있는지 고소한 음식 냄새가 솔솔 코끝을 간지럽혔다. 복도 끝 문이 있어 1층 문을 살며시 밀어 보았다. 문이 쓰윽 소리 없이 열렸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주차장이었다.
“앗!”
눈앞 주차장에 408호 요양보호사 자동차가 보였다.
‘저 차를 타면 집에 갈 수도 있을 지도 몰라.’
할머니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집 생각이 떠오르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할머니는 둘째 아들과 집 생각에 사로잡혀 밖으로 나갔다. 살금살금 408호 요양보호사 차가 있는 데로 갔다. 차 가까이 간 할머니는 요양보호사가 하듯 뒷문을 열어보았다. 문이 열렸다. 그때 문소리가 나고 어느 누가 자동차 쪽으로 왔다. 할머니는 순간적으로 후다닥 뒷자리에 타고 문을 닫았다. 차 뒷자리에는 올망졸망한 짐과 쇼팽 백이 많았다. 할머니는 몸을 엎드려 쇼핑백과 짐을 끌어 몸을 덮었다.
이 차를 타면 어쩌면 둘째가 있는 시골집에 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할머니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부릉, 부릉.”
자동차 앞문이 열리고 시동 거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 가슴은 더 세게 고동쳤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요양병원을 뒤로 물리치고 달렸다. 처음에는 길이 판판해 몰랐는데 얼마 쯤 가니 울퉁불퉁해 자동차가 덜컹덜컹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숙이고 있기가 힘들었다. 할머니는 고개가 아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휴우, 살았다.”
할머니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 내쉬며 말했다.
“끼익!”
그때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자동차가 쏠려 할머니 궁둥이가 들썩이며 소리쳤다.
“아이쿠나!”
“누, 누, 누구세요?”
408호 요양보호사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순간.
“어머니!.”
408호 요양보호사는 자동차 급브레이크를 밟고, 저도 모르게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애미야,”
할머니도 408호 요양보호사를 불렀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408호 목소리에는 어느새 눈물이 담겼다.
“용서는? 이젠 집에 같이 가자.”
할머니는 의자 사이로 몸을 빼 할머니를 끌어안았다.
“엉 어엉 엉…….”
할머니와 408호는 부둥켜안고 큰 소리로 울었다.
“애미야.”
“어머니!”
할머니와 다님이 엄마는 자동차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한참 울었다.
“애미야, 이거.”
할머니는 품속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이거 네가 갖고 있으라니까 왜 다님이를 주었니?”
“다님이가 어려서 아범을 준 거예요.”
“다님이가 날 주더라. 이걸 보며 정신줄 놓지 말고 꼭 갖고 있으라고.”
“어머니!”
“우리 이제 헤어지지 말고 우리 꼭 붙어살자.”
“어머니, 엉 어엉…….”
“네가 다달이 애비 약값 보내 주는 것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정말 고맙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큰 소동이 일어난 것도 모르고 부둥켜안고 기쁨의 울음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