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커다란 건물 앞에 써 붙여진 현수막을 보고,
아기바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건물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병원이라는 표시인 녹색 십자가가 붙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니….
이 건물도 병원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아기바람은 이 건물이 무엇 하는 곳인지 궁금해
건물 주위를 뱅뱅 맴돌다가,
마당 구석에 있는 정원을 보았다.
정원에서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간밤에 지나간 비바람에 넘어진
꽃대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고추잠자리는 할아버지 등에서 맴돌고….
“쟤는 왜 저러지?”
고추잠자리는 할아버지 등을
바위로 생각하고 앉아 쉬려는 것 같았다.
아기바람은 바삐 오가는 사람들 틈에 건물 안을
들락날락하는 한 소녀를 눈여겨보았다.
빨간 헤어밴드로 머리를 질끈 묶고,
감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늘씬한 소녀였다.
그런데 그 소녀는 아까부터
건물 여기를 기웃 저기를 기웃거리며 서성였다.
아기바람이 그 소녀를 찾아낸 것은
이 건물에는 어른들만이 오가는데,
10살 안팎의 소녀여서 얼른 눈에 띄어서였다.
‘무슨 볼일이 있어 온 걸까?’
아기바람은 갑갑해졌다.
“아이구 허리야.”
꽃대들을 일으켜 세우던 할아버지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어어?”
아기바람이 피식 웃었다.
머리카락이 하얘서 할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발그레한 동안(童顔)인 아저씨였다.
‘동안’이란 ‘나이 든 사람의 얼굴이
어린아이와 같은 얼굴’이란 뜻이다.
아저씨는 허리를 펴고 마당을
휘이 둘러보다가 소녀를 보았다.
‘쟤는 어쩐 일로 아까부터 서성거리지?’
아저씨도 소녀를 지켜보았던 모양이다.
“어이 학생.”
아저씨가 소녀를 불렀다.
“아저씨, 저요?”
소녀는 부르는 아저씨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 여기에 누굴 찾으러 왔나?”
“아뇨.”
“그럼?"
“…….”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어서 말해 봐.”
아저씨의 목소리는 인자한 아버지 목소리 같았다.
아저씨는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소녀의 손을 잡았다.
“…….”
소녀는 말이 없다.
“괜찮아. 어이 말해 봐.
무슨 볼일이 있어 온 거야?”
아저씨는 숙이고 있는
소녀의 고개를 손으로 들어올렸다.
소녀의 두 눈에 그렁그렁 맺혀 있던 눈물이,
고개를 들자 주르르 흘러내렸다.
“울고 있잖니?”
당황한 아저씨가 물었다.
“아저씨.”
소녀는 아저씨를 부르고는 흐느꼈다.
“그래 그래.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만,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라.”
아저씨는 소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다.
소녀는 티셔츠를 끌어 올려 눈물을 닦았다.
“여깄다. 이걸로 닦으렴.”
아저씨는 손수건을 꺼내 주었다.
하늘서 내려다보고 있는 흰 구름이
아저씨 주머니 속에 숨었던 것처럼 하얀 손수건을….
“어서 얘기 해 봐.”
눈물을 훔쳐 닦은 소녀가 입을 열자,
조그만 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저씨가 구청장님이면 좋겠다.”
“그건 왜?”
“아빠가 아픈데요, 동네 사람들이 구청장님을
만나 얘기해 보라고 했어요.”
“구청장을?”
“네. 우리 구청에서는 병원비가 없는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 준다면서요?”
“우리 구청이라고 했니?”
“네. 우리가 사는
동네에 있는 구청이니까요.”
“그래, 우리 구청에서는 기쁨만이 아니라,
아픔도 함께 나누려고 그렇게 하고 있단다.
헌데, 어머니는 어디 가시고 네가 왔니?”
아저씨가 묻자, 소녀는 눈에
또 그렁그렁 눈물이 매달렸다.
“알았다. 내 괜한 걸 물은 모양이구나.”
“괜찮아요. 아빠가 엄마인걸요.”
소녀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아버지, 많이 아프시니?”
아저씨는 소녀의 손을 힘 있게 잡으면서 물었다.
“네. 오래 전부터 앓았어요.”
소녀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또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저씨 미안해요.”
소녀는 아저씨의 손을 뿌리치고 가려했다.
“왜? 그냥 가게?”
“통장님이 오셨을 지도 몰라요.
통장님이 동회에다 말해
구청에 연락해 준다고 했거든요.”
“사는 동네 이름과
집 전화를 적어 줄 수 있니?”
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낸 아저씨가 물었다.
“…….”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소녀는
수첩과 볼펜을 받았다.
그러고는 사는 동네와 자기네 집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적어서 아저씨에게 주었다.
“아버지 걱정은 말고 어서 집으로 곧장 가거라.
내가 구청장님께 말씀 드려 볼게.”
“아저씨가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소녀는 아저씨에게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소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소녀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아저씨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소녀는 버스를 탈까하다가 걷는 게
더 빨리 갈 것 같아서 지름길로 걸었다.
소녀는 아버지를 더 빨리 보고,
기쁜 소식을 더 빨리 전하고 싶었다.
소녀는 뛰다가 숨이 차면 걷고 또 뛰었다.
‘돈이 없어서 병원으로 옮기지를 못했는데,
이번에는 꼭 병원으로 옮겨질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빠, 아빠!”
소녀는 문을 열자마자 아버지를 불렀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니?
네 아빠는 지금 막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셨다.”
옆방에 사는 길수 할머니가 말했다.
“병원에요?”
소녀는 믿어지지 않아서 되물었다.
“그래, 구청에서 연락이 왔어.
해서 동장님하고 통장님이 따라 가셨다.
네 정성이 하늘에 닿은 거야.”
소녀는 할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응급실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괜찮을 거예요!”
“그래, 괜찮을 거다.”
아버지는 소녀의 손을 꼭 잡았다.
“여태 하얀 손수건을 들고 있구나. 좀 있다,
그 손수건 주인이 손수건 찾으러 오신다고 했다.”
동장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녀는 경황이 없어 눈물을 닦고 받은
손수건을 돌려주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왔던 것이다.
“손수건 주인이요?”
“그래.”
동장은 통장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손에 들린 하얀 손수건을 보고 소녀도 빙그레 웃다가,
“동장님, 통장님. 고맙습니다.”
하고 말했다.
“고맙긴.”
“어, 저기 청장님이 오시는구나.”
그 소리에 고개를 들고
구청장을 본 소녀가 깜짝 놀랐다.
“아 아저씨!”
소녀는 손에 들고 있던
하얀 손수건을 꼭 쥐었다.
“아저씨, 아니 구청장님!”
아저씨, 구청장을 본 소녀는
또 두 눈 가득 눈물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