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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석 May 25. 2018

손수레에 핀 사랑 꽃

“오늘도 나가시게요?”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옷을 입는 

아버지를 보고 엄마가 말했다.

“나가야지. 안 나가면 엉망일 텐데.”

“그 몸을 해 가지고, 어떻게 나가신단 말예요?”

엄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말렸다.

“두 팔도 아니고, 한 팔인데 뭐.”

아버지는 엄마 만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 나갈 준비를 했다.


이틀 전 일이다. 

아버지는 손수레에 쓰레기를 잔뜩 싣고, 

쓰레기 하치장으로 가려고 언덕에서 내려올 때였다. 

자전거를 탄 청년이 달려오더니, 

아버지가 끌고 내려오는 손수레 앞으로 

비틀거리며 지나갔다. 

아마도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 자전거를 피해 간다는 것이 그만, 

손수레의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해서 

가로등에 부딪쳐 왼쪽 팔을 다쳤다. 


뼈를 다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그러나 피가 놀라고 근육이 팽창해서 

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어제는 다친 지 하루 만이어서 그런지 

큰 진통이 없었는데, 오늘은 새벽녘까지 끙끙 앓아 

엄마는 몹시 걱정을 했다.

“가만 계셔 보세요. 용인이를 깨워 보죠.”

엄마는 용인이를 깨우려 용인이 방으로 가려 했다.


“나 둬. 더 자게. 어제 늦게까지 책 보는 것 같던데.”

아버지가 엄마를 말렸다.

“그래두요? 그럼 저랑 함께 가요.”

“이 사람 보게. 이젠 남의 밥그릇 빼앗으려 하나?”

아버지 말에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물러섰다.

용인이가 어제 늦게까지 책을 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아버지는 용인이가 

아버지 일을 돕는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지난 해 겨울이 막 접어들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감기 몸살이 나서 곤히 자는 

용인이를 두드려 깨웠다.

“용인아, 아빠가 아파서 그러는데, 함께 나가자.”

용인이는 귀찮다는 듯이 돌아 누우며, 

“아빠, 다른 일 하실 수 없어요. 

창피하단 말예요. 

남의 집 쓰레기나 쳐 주고, 

또 길바닥 청소나 하는 그런 아빠가 

저는 창피하단 말예요.”


아버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며 정신이 번쩍 났다. 

‘12살이면 다 알만한데, 알만한 녀석이…….’

아버지는 용인이가 가족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용인이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나갔다. 

그리고 마음을 굳게 다지면서 중얼거렸다. 

‘용인아,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하는 일에는 

꿈이 담겨 있는 법이란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 봐라!’ 


아버지는 서운했지만, 

열심히 일하는 보람이의 

기쁨을 안고 피식 웃으며 방을 나섰다.

“여보, 정말 괜찮겠어요?”

엄마가 걱정이 되어 따라 나오면서 

용인이 방 쪽에 대고,

“용인아, 용인아,”

하고 불렀다. 

용인이 방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어허, 놔 두라니까. 내 얼른 일하고 돌아오리다. 

다녀와서 아침을 같이 먹읍시다.”

아버지는 짙은 회색 빛 어둠과 하나가 되었다.

남들이 다 자는 이른 새벽. 

그러나 재활용품을 모아 두는 곳은 벌써 손수레를 끌고 

각자 맡은 구역으로 나가는 미화원들로 붐볐다.

“아니, 내 손수레?”

아버지는 깜짝 놀라 주위를 살피고 또 살폈다. 


동네 끝 쪽, 아파트 단지 뒤에 

쓰레기 하치장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가져다가 모아 두는 곳이 있다. 

여기가 재활용품을 모아 두는 곳이고, 

그 한쪽에는 손수레를 놓아  두는 곳이다. 

다른 미화원들도 그렇듯이, 

아버지도 한 자리를 잡아 

손수레를 늘 그 곳에 두었다. 

그런데 아버지 손수레가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것이다.


“정씨, 내 수레를 못 봤나?”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 있었는데요.”

“그래? 그럼 도깨비가 와서 

끌고 갔다는 말인가?”

“잘 생각해 보라구. 

어제 팔이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다른 데 두고 간 게 아냐?”

“무슨 소리야. 

정씨가 조금 전까지 있었다고 하잖아.”

“정말야?”

다른 미화원이 정씨에게 물었다.

“정말이라니까요.” 


“조금 전까지 자네 자리에 있는 걸 나도 봤는 걸.”

옆에 서 있던 다른 미화원들도 

정씨 편을 들어 주었다.

“거 참, 이상하다.”

아버지가 손수레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다른 미화원들은 

손수레를 끌고 각자의 구역으로 일하러 흩어졌다.

“할 수 없지.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고…….”


아버지는 사무실 쪽으로 뛰어갔다.

“이씨, 재활용품 나르는 리어카 좀 빌려 주지. 

그거라도 갖고 한 바퀴 돌아와야겠어.”

재활용품 관리를 하는 이씨는,

“빌려는 드리겠는데요, 

음식물 국물은 절대로 흘려서는 안 되는 거 아시죠?”

하고 토를 달았다.

“염려 말게. 우리 구역은 분류를 철저하게 해서 괜찮아.”


아버지는 빌린 리어카를 끌고, 부지런히 아버지 구역으로 갔다.

아버지 구역은 먹자골목이다. 

여기는 다른 구역과는 달리 음식 쓰레기가 많고 힘이 더 들었다. 

남들이 모두 맡기를 싫어하는데, 

아버지는 자원해서 맡아 벌써 5년이나 일을 했다.


“김씨 안 나왔나?”

첫 집인 해장국집 아들 쓰레기를 용인이가 비우자, 

뚱뚱한 해장국집 주인아주머니가 물었다.

“몸이 편찮으셔서요.”

“돌덩이 같은 양반도 아플 때가 다 있구먼.

가만……. 오라, 생긴 걸 보니 김씨 아들인 게로군.”

“네…….”

용인이는 부끄러워하며 겨우 대답했다.

“장하군, 장해. 아버지 일을 다 돕고. 

그래, 얼른 마치고 학교 가야지. 

이따 갈 때에 들려. 내 해장국 퍼 불 테니, 아버지 갖다 드려.”


주인아주머니는 참으로 대견하다는 듯 

용인이를 뜯어보았다.

“……”

주인아주머니 말에 용인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가슴에서 뜨거운 그 무엇인가가 솟아오르고 힘이 생겼다.

“고맙습니다!”

용인이는 힘 있게 말하고, 

옆집 쓰레기봉투를 번쩍 들어 손수레에 실었다.


이른 새벽인데도 먹자골목이어 그런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장사하는 가게들이 꾀 많았다.

설렁탕집 아저씨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다가 용인이와 마주쳤다.

“웬, 학생야?”

“편찮으셔서요. 아빠 대신에 나왔어요.”

바로 그 때였다.

“아니, 넌?”

그 아저씨가 깜짝 놀랐다.


“선생님!”

용인이도 깜짝 놀랐다. 

“그럼, 이 구역 그 분이 너희 아버님이시니?”

그 아저씨, 

아니 담임선생님이 조금은 주저하며 물었다.

“네, 선생님.”

대답은 했지만, 용인이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장하구나!”


담임선생님은 용인의 손을 꼭 잡고 말을 이었다.

“바로 네 아버님이셨구나. 훌륭하신 아버님을 두었어. 

새벽녘 문이 안 걸린 집은 문을 잠그게 하고, 

음식점 쓰레기를 줄이게 하고, 

또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게 하고……. 

이 골목에서는 너희 아버님 칭찬이 대단하단다. 

그 어르신네가 바로 용인이 아버님이라니……. 

정말 자랑스럽구나. 

용인아, 그런 학부형을 둔 내가 자랑스럽다!”

담임선생님의 칭찬에 용인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선생님 댁이 여기세요?”

용인이가 물었다.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그럼, 선생님 아버님 댁이세요?”

“응.”

담임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어이, 장씨. 아버님께서 아직 안 나오신 모양이군.”

아버지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용인이를 못 보고, 

담임선생님부터 봤던 모양이다.

“오늘은 늦으셨네요.”

“아니, 이건 내 손수레! 어라, 넌. 

용인아,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아빠!”

리어카를 끌고 왔지만, 

담임선생님 앞에서 당당한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용인이는….

“임마, 학교 가야지. 학생의 일은 뭐니뭐니 해도 

공부하는 게 제일이야.”

아버지는 용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어제 밤, 신음 소리를 많이 내시던 대요.”

“이까짓 팔 아픈 거 하나쯤이야? 

새 발에 피지. 안 그런가, 장씨?”

“그 그렇죠?”


담임선생님은 어떨 결에 대답했다.

아버지가 담임선생님을 ‘장씨, 장씨’ 하는 바람에 

용인이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버지와 담임선생님을 번갈아 보았다.

아버지는 눈치를 못 챘지만, 

담임선생님은 얼른 눈치를 채고는,

“어르신네, 저어……. 

아니 용인아, 네가 날 아버님께 소개해 봐라.”


“아빠, 이 분이요…….”

“그래, 장씨가 어때서?”

“어때서가 아니구요, 

우리 담임선생님이시라구요.”

“뭐 뭐라? 어 어이구, 서 선생님. 

이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여태껏 태도와는 달리, 

아버지는 코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거, 용인이와 난 묘한 인연인데. 

난, 아버지가 몸살을 앓으셔서 대신 일하고, 

용인이는 아버님께서 팔을 다쳐서 대신 일하고……. 

대신 일 하는 사람끼리 뭉쳐야겠는데, 하하하…….”


“아빠, 미안해요.”

용인이가 오늘 있었던 일과 

지난 해 초겨울 아버지께 ‘창피해서 죽겠다’고 한 말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용인이 눈에는 방울방울 

지난날에 대한 반성의 눈물이 맺혔다.

“짜식, 미안하긴. 미안한 건 나다. 

네가 할 일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는 건대.”


“용인이는 자랑스런 아버님이 있어 좋겠다.”

담임선생님이 용인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생님두, 제가 뭘요…….”

“선생님 어르신네께서는 어떠세요? 

어르신네께서는 이 먹자골목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인데 말입니다.”

용인이가 뒷머리를 벅벅 긁자, 

아버지가 담임선생님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는 이 음식점을 아끼고 사랑하시죠. 

이 가게 덕에 제가 공부를 마치고, 

교편을 잡고 있는 거지요. 모든 게 다, 

아버지와 이 설렁탕집 덕분인 걸요.”

담임선생님이 자신 있게 말했다. 

선생님 말에 용인이는 

움츠렸던 어깨가 스르르 펴지는 것 같았다.


“이러다 늦겠다. 어서 가야겠다. 

넌, 어서 집으로 가구.”

“아빠나 집으로 가세요. 오늘은 제가 할 게요.”

“내 구역은 어떻게 알았니?”

“그 때 아빠랑 한번 돈 적이 있잖아요. 

이 먹자골목 쭉 가면 되잖아요.”

“용인아, 이따가 학교서 만나자.”

“네, 선생님.”


담임선생님은 손을 흔들며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

“용인아, 그럼 넌 손수레를 끌거라. 

난 밀면서 쓰레기봉투를 수거 할 게. 아참…

장씨! 아니 용인이 선생님.”

아버지가 큰 소리로 부르자 

담임선생님이 다시 나왔다.


“이 리어카 좀 봐줘요. 

우리 용인이도 잘 봐주고요. 선생님…”

“그럼요. 염려 놓으세요.”

아버지와 용인이는 손수레와 하나가 되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먹자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용인이에 대한 섭섭함이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으로, 용인이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바뀌는 그런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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