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쫓긴 종소리가 이리 저리 흩어졌다.
‘어서 순님이네 집엘 가서
저녁 지을 시간이 되었다고 일러 줘야지.’
종소리는 있는 힘을 다해
순님이네 집 앞에 있는 언덕을 넘었다.
종소리가 넘기에는 힘이 겨웠다.
“땡그렁, 땡그렁, 땡 때애앵…….”
종치는 털보아저씨 손에서 벗어난
종소리가 마구 피어오르자, 그제야 바람은 막았던
길을 스르르 비켜 주었다.
종소리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단숨에 달려가 순님이네 문을 흔들고는,
그 문이 열리기도 전에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머, 벌써 저녁이네!’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었다.
‘오늘 저녁엔 무슨 반찬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린담?’
순님이는 종소리를 맞으며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세간은 순님이 마음에 환하게 자리잡고 있다.
순님이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더듬더듬 쌀부대를 찾았다.
그러고는 쌀 두 컵을 퍼서
수돗가로 가 쌀을 씻었다.
“벌써, 저녁 짓는구먼. 이리 줘. 내가 씻어 줄게.”
문간방 아주머니가 플라스틱 바가지를 빼앗으려고 했다.
“괜찮아요, 아주머니.”
순님이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꼭 쥐었다.
“아이구, 저러다가 쌀 쏟지.”
장바구니를 들고 나온 주인집 아주머니가 말렸다.
문간방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나 시장에 가는데 뭐 시킬 것 없수?”
“콩나물 좀 사다 주세요.”
문간방 아주머니가 돈을 가지러 방으로 가며 말했다.
“순님인 뭐 없니?”
주인집 아주머니는 순님이 가까이 가서 나지막이 물었다.
“늘 신세만 져서 미안해요…….”
순님이는 말끝을 흐렸다.
“신세는 무슨 신세야.
우린 한 지붕 밑에 사는 한식구나 다름이 없잖아.
식구끼리 신세라는 말하긴가?”
“그럼요, 한식구구 말구요.
순님이는 아버지를 잘 모셔서
분명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문간방 아주머니가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콩나물 값을 주며 말했다.
“아주머니, 전 고등어 한 손 사다 주세요.
그리고 소주 한 병하구요.”
소주라는 말에 순님이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소주?”
“네, 아주머니…….”
놀란 토끼눈을 한 주인집 아주머니가 되묻자,
순님이가 말꼬리를 흐리며 얼굴을 더 붉혔다.
“또 아버지 잘 잡숫는 고등어군 그래.
순님아, 넌 먹고 싶은 것도 없니? 쯧쯧쯧…….”
얼른 기여든 문간방 아주머니가 한마디하고 혀를 찼다.
“아이구, 세상 참 불공평하지. 저렇게 착한 애가…….”
주인집 아주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대문을 나섰다.
“엄마가 돌아가셨다구 그랬지?”
“…….”
문간방 아주머니가 묻자,
순님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라는 말에 순님이 가슴은 콩콩 뛰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내가 이렇지만 않았더라면
엄마는 집을 나가지 않으셨을 텐데…….’
엄마 모습이 떠오르려 하다가 금방 사라졌다.
엄마 목소리며, 엄마 냄새는 알 수 있어도
엄마 모습은 볼 수가 없었던 순님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됐니?”
문간방 아주머니는 순님이 아픈 곳만 골라 물었다.
순님이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엄마 얼굴도 모르겠네?”
‘엄마 얼굴’이라는 말에 맺혔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공부는 했니?”
‘공부’라는 말에 순님이는 귀가 번쩍 뜨였다.
‘엄마가 계실 땐 학교에 다녔었는데…….’
“공부를 해야지.
저 아래 순님이 같은 애들을 위한 학교가 있어.”
문간방 아주머니가 순님이 손을 잡았다.
“공부하고 싶다면 내가 데리고 다닐게. 엄마 대신 말야.”
그 말에 순님이는 가슴이 설렜다.
‘아아, 얼마나 하고 싶은 공분가?’
순님이는 너무도 좋아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순님아, 눈물 닦아.
내 괜한 것을 물어 순님이 마음을 아프게 했지?
미안하다.
그럴수록 이를 악 물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알았지?”
문간방 아주머니는 순님이 손을 다시
한 번 꼭 쥐었다.
“그래 그래. 네 말을 들으니 내 기분이 참 좋구나.”
공부하겠다는 순님이 말을 들고
순님이 아버지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순님아, 이 술병 내려놓겠다. 나 이제부터 술 안 마실란다.”
참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아버지는 순님이 볼에 뽀뽀를 했다.
그 날 밤, 순님이는 아주 아주 좋은 꿈을 꾸었다.
창문에 성애가 순님이 꿈을 예쁘게 그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