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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석 May 30. 2018

털목도리

찬 공기는 밑으로 내려가고,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데, 

바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바람은, 특히나 겨울 바람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더욱 차갑다. 

그래서 그런지 득인이네가 사는 산동네는 

겨울도 다른 데보다 성큼 다가오고, 

아랫동네보다 훨씬 더 춥다. 


“윙 위잉 위이잉…….”

몰려다니며 심통을 부리던 바람은 으레 

산동네에 와서 맴돌다가는 주저앉아 버리기가 일쑤다. 

외등도 없는 밤, 그렇다고 캄캄하지는 않다. 

좁다란 골목에는 담도 없이 

속살을 그대로 내놓은 집들이 많다. 

그 집들은 등을 맞대거나, 

배를 마주하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 

집들마다 창에서 불빛이 번져 

골목골목의 어두움을 조금은 밀쳐 놓기 때문이다. 


낮 동안 그토록 크고, 

아름답고 또 대단하게 보였던 것들이 

어둠에 묻혀 발돋움하고 있다. 

찬바람이 코끝에 찡, 

귀 끝에 싹, 

또 발가락 끝에 쓱 후벼파고 들었다. 

그렇지만 어둠에 갇힌 밤경치를 보고 있는 

득인이에게는 감히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고장난 라디오나 전축, 텔레비전 고쳐 주는 

전파상 앞에 있는 스피커에서 직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니까 

어둠에 묻힌 불빛과 성탄절을 축하하는 휘황찬란한 

네온 빛이 더욱 또렷이 보였다. 

그러나 산동네 위에는 푸르스름한 별들이 

힘없이 떠 있다.


“득인아, 너 또 여기서 기다리고 있구나. 

추운데 감기 들면 어떡하려구?”

엄마는 득인이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참 좋죠? 반짝이는 불빛들이 사람 같아요.”

“그렇구나. 낮에 꼬물꼬물 거리는 사람과 비슷하구나.”

“…….”

“아빠는 오늘도 늦으시는 모양이다. 추운데 어이 가자.”

“춥긴요. 아빤 저보다 더 추우실 텐데요.”

“아빠는 어른이지 않니?”


“아빠는 예전처럼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게 아니라, 

밖에서 일 하잖아요.”

“아빠 일은…….”

엄마는 말끝을 흐렸다.

득인이는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집으로 갔다.

“득인아, 이것 받아라.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아니, 엄마!”

득인이는 깜짝 놀라 엄마를 껴안았다.

“돈이 어디서 났어요?”


득인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디서 났긴, 아빠가 벌어 오신 거지.”

예쁜 포장지를 푼 득인이 입이 환하게 벌어졌다. 

“목도리 아녜요?”

“그래, 색깔이 네 마음에 맞을지 모르겠구나.”

득인이는 너무 좋아 털목도리를 얼굴에 비볐다. 

‘원 애두, 털목도리를 갖고 저렇게 좋아하다니……. 

휴우, 어떡하다 이 지경이 되었담…….’


털목도리 하나에 좋아하는 득인이를 보며 

엄마는 가슴이 아팠다. 

득인이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털목도리를 포장지에 다시 쌌다. 

이튿날 아침은 몹시도 추웠다.

“호오 호…….” 

입김을 내뿜으니 하얀 입김이 

연기처럼 하얗게 터져 나왔다. 

유리창에는 성애가 하얗게 덮여 있다. 

크리스마스카드에서 보는 그런 모습이다. 

썰매를 타고 눈 덮인 들판을 달리는, 

꼭 그런 그림이었다. 


아버지는 아직 잠자고, 

엄마는 아침 준비 한창이다. 

득인이는 살며시 일어나 

털목도리 싼 것을 가지고 바깥으로 나갔다.

‘아, 눈이 오잖아.’

득인이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러나 그 기쁨을 금방 거두었다. 

아버지 일이 마음에 걸렸고, 

또 산동네를 오르내리는 

아버지와 엄마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미끄러지시면 어쩌나!’ 

득인이는 털목도리를 문간 쪽, 사람들 

눈에 잘 안 뜨이는 데다 두었다. 

그러고는 손바닥만한 마당을 어정거렸다. 

눈이 꽤 많이 올 것 같다.

아침이면 변소도 바쁘고, 수도간도 퍽 바쁘다. 

산 아랫동네는 아침 짓는 시간이겠지만, 

이 곳에서는 일 나가는 시간이다. 


아버지는 도시락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일어섰다.

“아빠, 저도 같이 가요.”

득인이가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같이 가긴?”

“요 아래까지만요. 아빠를 바래다 드리고 싶어요.”

득인이는 문간에 놓았던 

포장지에 싼 털목도리를 몰래 들고 따라나섰다.

문 밖으로 나서자 득인이는,

“아빠, 이거…….”

하고 아버지에게 목도리를 주었다. 

포장지를 푼 아버지가 놀라며 물었다.


“아니, 털목도리가 아니냐?”

“네, 아빠. 이리 주세요.”

득인이는 수그린 아버지 목에 털목도리를 감아 주었다.

“나보다는 네게 더 어울리겠는데…….”

“아녜요. 저보다는 아빠한테 더 잘 맞을 거예요. 

그럼 아빠, 안녕!”

득인이는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길모퉁이를 돌며 손을 들어 흔들었다. 


‘이건 제 엄마 파출부 나갈 때, 

추울 것 같아서 사 준건데…….’

아버지는 마음이 저렸다. 

아버지는 목도리를 풀어 포장지에 다시 싸서 

도시락 가방에 넣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아버지가 돌아왔다. 

“눈이 너무 많이 와 일할 수 없어서 돌아왔소. 

여보, 이건 당신 거요. 득인아, 넌 이거.”


아버지는 아침에 득인이가 준 것과 똑같은 

목도리를 두 개 더 내놓았다.

“그리고 이건 내 목도리다. 어때, 어울리지?”

아버지는 활짝 웃으며 기다란 목에 

득인이가 준 목도리를 감았다.

엄마와 득인도 활짝 웃었다.   

눈이 얼마나 오려는지 아직 펑펑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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