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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석 Jun 05. 2018

기쁜 울음

하늘과 땅 사이.

그 사이에는 여러 것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늘은 땅을, 땅은 하늘을 

서로 만나고 싶어하는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다. 

흰 눈이 펄펄. 

눈은 그 그리움을 시샘하려는지 

하늘과 땅 사이를 차곡차곡 메워, 

하늘은 땅을 내려다보지 못하게, 

땅은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게 담을 쌓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를 맘껏 헤집고 다니던 

아기바람은 눈이 쏟아져 꼼짝 못하고 갇혀 있었다. 

아무 일 없이 손발을 놓고 있자니, 

아기바람은 여간 갑갑하고 답답한 게 아니었다.

“윙 위잉…….”

아기바람은 틈만 보이면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얘야, 어디서 까불어!”

눈송이들은 곁을 주지 않았다.


‘얼른 병원에 가 봐야 하는데.’

아기바람은 안달이 나서 

마음이 바작바작 타 들어갔다.

아기바람은 병원을 한바퀴를 휘이 돌아보는 것이 

하루 일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이 태어나고 또 마지막 점을 찍기도 하는 병원. 

병원은 사람들을 웃다가 울게 하는, 

엉덩이에 털 나게 하는 그런 우스운 곳이다. 

그런 병원에 볼거리가 많아 아기바람은 병원을 좋아했다.

아기바람은 어제 병실에서 본 다님이 생각이 났다.


다님이는 10살밖에 안 된 4학년 소녀이다. 

그렇지만 다님이는 어엿한 가장이다. 

중풍을 앓고 있는 할머니와 

2학년인 동생 해님이를 돌보고 있는 소녀 가장이다. 

다님이는 엄마이고, 또 아버지이기도 하다. 

지난 겨울 밤,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다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집 안 살림을 하랴, 

할머니 간병을 하랴, 동생 보살피랴, 어린 

다님이는 몸이 서너 개가 되어도 모자랄 형편이었다.


다님이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실은 모두가 

다님이 할머니처럼 중풍을 앓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뿐이다. 

다님이 할머니가 입원 해 있는 병실에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서 겨우 몸을 움직이는 

할머니가 네 분이고, 

다님이 할머니처럼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해, 

대소변을 받아 내는 할머니가 두 분이다. 


“어머, 할머니. 예쁜 변을 보셨네!”

‘아니, 예쁜 똥도 있나?

아기바람은 킥킥 웃었다. 

다님이는 할머니 기저귀를 갈아 채울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는 일이 없다.

“똥아, 오줌아.  할머니 머리에 고인 피 

모두 데리고 나와라.” 

다님이가 할머니의 똥과 오줌에게 말했다.


다님이 할머니 옆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밥과 물 마시는 것을 아주 부담스러워 했다. 

밥을 먹으면 똥을 누어야 하고, 

물을 마시면 오줌을 자주 누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게 어떠냐구? 

똥과 오줌을 눌 때마다 

간병을 하는 식구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눈이 이렇게 쏟아지는데, 

다님이가 병원에 왔을까?’

아기바람은 눈으로 외투를 입은 

울타리 구석에서 눈을 피하며 

다님이 생각에 잠겼다.

“때앵 때애앵…….”

저녁 종소리가 울타리 너머로 

곤두박질 쳐왔다. 벌써 저녁나절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눈은 그칠 줄을 몰랐다.


종소리에 아기바람의 몸이 파르르 흔들렸다. 

“아아, 그렇지!”

아기바람은 얼른 종소리 끝자락에 매달렸다.

“종소리야, 나 병원에 가고 싶어.”

“난 고개 너머까지 가는데……. 

좋아, 그쪽으로 돌아갈 테니까 병원에서 내려.”

종소리는 아기바람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누가 아프니?”

“아니.”

“눈이 많이 오는데. 너 이따가 어떻게 올려구?”

종소리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자고 오지 뭐.”

눈은 벌써 땅에 있는 것들을 하얗게 덮어 놓았다.

‘이러다가 병원도 덮어 버리는 거 아냐?’

아기바람은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아니? 병원이 아니다. 

길을 덮어 버리면 길이 없어지고, 그러면 다님이가…….”

아기바람은 걱정이 되어 얼른 뛰어가고 싶었다. 

종소리는 이런 아기바람의 마음을 아는지 

눈을 이리저리 헤쳐가며 잘 달려갔다.

“병원이다. 어서 내려!”


종소리 말에 아기바람은 얼른 뛰어내렸다. 

지붕에 떨어진 아기바람은 

쭈르르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 안을 손바닥 보듯 잘 아는 아기바람은 

다님이 할머니가 있는 방을 얼른 찾았다.

“어머머! 할머니, 이제 다 나았다. 

설사가 아니고 된똥이네 된똥! 아이구, 예쁜 된똥.”

병실에는 다른 날처럼 다님이가 와 있었다.

“엉엉…….”

“응응…….”


다른 병실에서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하늘 나라로 가셨나?’

아기바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울음소리를 따라 갔다.

할아버지들이 있는 병실에 할머니와 같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한 손으로 

한 남자를 붙들고 엉엉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수은주가 벼랑에서 떨어지듯 곤두박질 친 

어느 겨울날 새벽이었다. 

병실에서 울고 있는 그 할아버지는 새벽녘에 

오줌이 마려워서 여느 때와 같이 일어나려 했다. 

‘어라!’

일어나려는 것은 마음뿐이었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여보!’

할아버지는 옆에서 곤하게 자는 할머니를 불렀다. 

그러나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 뿐,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바닥을 딛고 일어서려 하는데, 

손마저 할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다.

‘여보!’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부르며 

베개를 빼어 던지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안간힘을 쓰며 이리저리 뒤척였다.

“여보, 왜 그래요?”

할아버지 뒤척임에 잠자던 할머니가 깼다. 

“아니, 여보. 여보!”


할아버지 모습을 본 할머니는 깜짝 놀라 

아들들에게 급히 연락을 했다.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구급대원들의 부축으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갔다.

“아버지, 돌아가시지 마세요.”

아들 중에서 맨 먼저 병원으로 달려온 

큰아들이 울먹이면서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정신이 가물가물해 가는 아버지는 

아들 말소리가 들리는지 눈을 살포시 뜨고는,

“큰애구나. 걱정 마라. 사업 실패했다고 너무 낙심 말구. 

네가 성공하는 걸 봐야 눈을 감지.”

아버지는 정신이 혼란한 데도 

큰아들을 위하는 짙은 꿈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큰아들의 말을 듣고 혼신을 다해 말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뒤, 눈이 펄펄 흩날리는 날. 

큰아들이 기쁜 소식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아버지, 이제 저희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수출하게 되었어요.”

이런 큰아들의 말을 들고 

아버지는 갑자기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아버지, 울지 마세요. 기쁜 일이잖아요.”

큰아들이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애야!”

겨우 울음을 멈춘 아버지가 아들을 불렀다.

“네, 아버지.”


“나는 말이다. 병원에 누워 고통스러울 때도 기도했단다. 

내 고통을 멈추게 해 달라고 하기보다

네 사업이 어서 빨리 일어나게 해 달라고 말이다.”

“응 응 으으응…….”

아버지의 말에 큰아들도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도 다시 소리내어 울었다.

“응응…….”

“엉엉…….”


이 소리는 슬픈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아버지와 큰아들이 사랑으로 

엉겨붙은 기쁨 넘치는 울음소리였다.

“위잉 위이잉…….” 

할아버지 병실에서 나온 아기바람은 

다님이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소리 내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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