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의 협상에서 지켜야 하는 4가지 원칙
새벽 4시 30분,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수많은 자기 계발 챌린지 중에서 미라클 모닝은 나와 안 친하다. 나에게 새벽 꿀잠은 곧 행복이다. 가끔 발길질에 광대 폭격을 맞기도 하지만 잠에, 보들보들한 아이들의 살결에 취하는 새벽이 참 좋다.
1시간 전쯤 잠이 깨어 새벽 꿀잠을 다시 청해보려 했지만 1시간 동안 뒤척이기만 했다. 어젯밤 잠들기 전, 딸의 울부짖음이 에코가 되어 잠을 달아나게 했다.
"내 생일이니까 유치원에 안 갈 거야."
생일이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5살, 생일 선물은 무지갯빛 화장품 가방, 케이크는 무지개 막대 사탕이 사방에 꽂혀 있는 민트 초코 아이스케이크, 무지개 풍선으로 거실을 꾸며 달라는 공간 연출 주문까지, 완벽했다. 거기까지 좋았다.
얼마 전에 아들만 데리고 키즈카페 다녀온 것이 미안해서 유치원에서 좀 일찍 하원하고 키즈카페도 가자고 제안했는데, 거기에서 반전이... 유치원을 아예 안 가겠다고 한다.
오빠가 아파서 못 가는 1주일도 혼자서 씩씩하게 유치원에 갔던 딸이니, 1년에 딱 한 번이니 흔쾌히 수락할 만도 하지만, 그러기에 엄마의 할 일은 쌓여 있고, 주말까지 꼭 끝내야 할 일도 있다. 엄마의 입은 시원하게 OK를 못하고, 눈빛은 흔들리고, 마음은 짠하다.
아이들은 엄마가 흔들리는 순간을 귀신 같이 알아 챈다. 엄마가 흔들리는 것을 안 순간, 폭풍 눈물과 함께 생일인데 왜 유치원을 가야 하냐며... 평소 같았으면 단호박으로 내뱉었을 단어들이 입 안에서 나가지도, 굴떡 삼키지도 못한다.
"유치원에... 가야지... 엄마 일하는 날이니까... 점심만 먹고 있어.... 급한 일만 끝내고 갈게..."
딸의 생일을 앞두고 갑자기 뭔 죄인 모드.
아침 7시 30,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진짜 아침이다.
어릴 때, 밤이고 새벽이고 수시로 일어나는 엄마를 보며 엄마의 수면 패턴이 특별한 줄 알았다. 한번 자면 엎어 가도 모를 내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이 뒤척여서, 세탁기 안에 들어 있는 빨랫감이 생각나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답장 못 한 메일이 생각나서... 그렇게 나의 밤과 새벽도 수시로 들락 날락이다.
새벽에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딸이 불렀다.
"캄캄한데 엄마가 없어서 깼어."
"그래, 다시 자자. 아직 새벽이야."
그렇게 생각이 덜 정리된 상태로 딸의 몽글몽글한 발을 만지며 잠들었다.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며 몇 초 사이에 결론을 내렸다. 아침에도 설득이 안되면 오늘은 딸과 함께 보내기로. 그리고 문득 어제 무지개 빛깔 풍선들을 사면서 함께 산 '공룡 막대풍선'이 생각났다. 늦잠꾸러기 딸의 아침을 깨우는 건 티라노사우르스가 좋겠다며, 먼저 일어난 아들과 사우르스 세 마리를 후후 불었다.
성공이었다. 사우르스들과 함께 열렬히 생일 축하를 받은 딸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점심 먹고 나서 빨리 데리러 오라고, 오늘 신나게 놀 거라며 기분 좋게 등원했다. 오늘은 생일이니까 영상을 봐도 된다는 오빠의 말에 발걸음은 두둥실 떠오른다. (우리 집에서는 '공식적으로' 주말에만 자신이 보고 싶은 영상을 15분씩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뛰어난 협상가이다. 매 순간 아이들과 밀당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정확하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잘 알고, 밀어야 할 때와 빠져야 할 때를 기가 막히게 안다. 아들이 세 살 때 즈음 일할 때도 보지 않았던 협상스킬 책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협상에 눈을 뜨게 해 준 것이 비즈니스가 아니라 두 아이들이라는 것이 웃기지만 육아 현실이다. 나는 협상의 이론을 바탕으로 성공의 경험을 쌓아 나가는 엄마가 되었다. 내가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협상할 때 지켜야 하는 원칙 4가지는 다음과 같다.
<아이들과 협상할 때 지키야 하는 4가지 원칙>
1.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한다.
2. 나의 주장은 부드럽게 일관한다.
3. 대안을 마련한다.
4. 우아하게 물러나야 할 때를 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교수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는 그의 책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협상에서는 절대 상대방을 이기려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의 기분이 나쁘거나 컨디션이 별로 일 때는 협상을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낫고,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기 전에는 기회를 만들기 어렵다고도 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유지하는 것과 더불어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의 기분이 나쁠 경우에는 기분을 좋게 만들거나 대화의 시간을 바꾸어야 한다. 아이들도 다를 바 없다. 오늘은 막대풍선 사우르스 3형제가 애썼다. 딸은 기분이 좋아서 엄마의 말에 귀가 열리고 한 발 물러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협상에서 자신의 주장은 부드럽게 일관되어야 하지만 협상이 잘 안 될 때 내밀 대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안에는 상대방의 이익이 좀 더 고려되어야 한다. 이 부분은 엄마들이 '진짜 고수'이다. 엄마들은 아이의 기분이 상하지 않으면서 갈등의 상황을 피하려고 애쓰다 보니 자연스레 협상의 고수가 되어 간다.
나는 2시에 데리러 간다고 했다가 시간을 좀 더 앞당겨 보겠다는 카드를 내밀었다. 미처 잊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아들이 '동영상 찬스'를 상기시켜준 것도 도움이 되었다.
협상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고의 협상가는 어떤 결론을 얻더라도 상대방과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우아하게 물러나야 할 때를 직감적으로 알아야 한다. 1번에서 3번까지 노력했으나 잘 안될 때 엄마는 쿨하게 물러나야 한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는 1번에서 3번까지 잘 된다면 무리 없이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
누구나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의견을 물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안다. 엄마가 진심으로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결국 엄마를 따르게 된다.
기분 좋게 등원한 딸을 생각하며 새벽의 죄인 모드에서 기분 좋은 모드로 전환한다. 어렵게 확보한 시간이니 열일을 시작하기로. 서프라이즈를 위한 무지개 풍선도 후후 불어야 한다.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