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육아는 엄마의 흥미에서 시작된다
"엄마, 책 읽어줘!"
새로운 스토리를 읽어 달라는 7살 아들의 외침은 반갑다. 같은 책을 계속 반복해서 읽어달라는 5살 딸의 외침을 '아주 가끔'은 못 들은 척하고 싶다. 잠자리 독서, 잠을 자기 위한 독서인지, 잠을 자지 않기 위한 독서인지, 더 읽고 싶다는 아이들과 이제 그만 자야 한다는 나는 밤마다 실랑이를 벌인다.
5살 딸과 7살 아들은 성향도, 취향도, 성격도 다르지만 공통점은 '책에 언제나 진심'이라는 것. 각자 더 선호하는 책은 있지만 일명 책편식은 없다. 창작 동화부터 고전 동화, 과학 동화까지, 글밥 많은 책부터 그림만 있는 책까지 모든 책을 즐겨 읽는다. 혼자서 책을 한참 동안 보기도 하고, 책에 대한 집중력도 높다. 내가 읽어 주다가 두 장을 넘겨서 읽으면 페이지를 확인한 후 다시 읽어 달라고 한다. 자주 읽는 책은 내용을 거의 외워서 잘 못 읽으면 정정해주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책육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항상 쉽지만은 않다. 내 양볼에 유난히 살이 없는 이유가 책읽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내 아이들은 엄마와 책읽기를 유난히 좋아한다. 아빠와 책 읽기 찬스가 언제나 열려 있는데도 말이다.
책육아는 우연히 시작되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아들 임신 때 몇 권의 육아책을 보며 '책육아'라는 단어를 한번 더 새겼다. 막상 아들을 낳고 나니 아기를 재우는 법, 목욕시키는 법, 젖먹이는 법 등 배울 것이 너무 많았다. 책육아는 잊혔다.
아들이 2개월쯤 되었을 때, 둘이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심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 출판사에서 보내준 홍보용 동화책이 보였다. 펼쳐서 읽어 보았다. 아들이 입을 오물거리면서 손발을 버둥거리면서 책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기했다.
아들을 위해 처음 구입한 책은 한 페이지에 글밥이 3줄에서 5줄 정도 되는 스토리가 있는 책이었다. 5권 세트로 된 그 책을 수개월 동안 반복해서 읽어 주었는데 아들은 집중하면서 보았다. 10개월 즈음에는 5권 중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기도 했다.
생후 6개월 이전에는 시각이 발달되지 않아서 원색의 큰 그림의 책을 보여주고, 생후 12개월 이전까지는 스토리가 있는 그림책보다는 동물이나 물건이 담긴 사물 인지 그림책이 적당하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 아들에게 촉감책이나 플랩북도 보여주었지만 아들이 그 이야기책을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아들이 24개월이 되기 전까지 하루에 수십 번씩 책을 읽어 주었다. 한 권의 책을 20번, 30번 읽어 주기도 했다. 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었다.
딸은 아기 때부터 책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글밥이 없는 그림책을 보여 주어도 집중하지 않았다. 오빠가 읽고 있어도 무관심했다. 두 돌 즘에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오빠보다 더 많이 읽는 날도 있다. 얼마 전에 들인 -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글밥인 - 올림포스 그리스 로마 신화도 세 권, 네 권씩 연속으로 보기도 한다. 더 못 읽는 이유는 엄마의 입술이 바짝 마르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이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크고 있는 이유를 정리해 보았다.
1. 텔레비전이 없는 거실이 더 낫다
가족의 주요 활동 공간인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없고 책장만 있다. 2년 전 이사하면서 텔레비전을 설치하지 않았다. 거실에 텔레비전이 있을 때에도 켜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첫째가 4살이 되어 우리 집 텔레비전에서는 또봇 같은 영상이 안 나온다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이 없는 것은 확실한 효과가 있다(최근 아이패드의 벽을 또 한번 넘어야 했지만).
아이들 눈에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자신들의 방에 있는 장난감보다 거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이다. 책장 앞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수시로 책을 빼내서 읽는 것이 자연스레 습관이 되었다.
2. 엄마의 흥미가 아이의 관심을 부른다
책 읽는 것이 장난감으로 노는 것보다 흥미운 점이 있어야 아이들의 관심을 지속할 수 있다. 먼저 엄마가 아이들과 책 읽는 것에 흥미를 가져야 한다.
주로 아이들이 골라 오는 책을 읽어주는데, 책의 표지를 보면서 책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한다. "이 책 엄마도 좋아하는 책인데...", "이 책 엄마도 읽어 보고 싶었는데..." 이런 말들이다. 아들은 기억했다가 가끔 책을 가져오며 "엄마가 좋아하는 책 골랐어."라고 말한다.
같은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는다.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뒷부분에 나와 있는 추가 설명이나 퀴즈를 풀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생략하기도 한다. 아이가 그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루하지 않아야 다음에 또 그 책을 읽고 싶어 지게 된다.
3. 질문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육아전문가들은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아이가 모르는 것을 설명해주기 위한 질문과 아이가 아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적절히 섞는다. 아이가 모를 것 같은 질문을 하기도 하고, 답을 알 것 같은 질문을 일부러 하기도 한다. 확실한 정답을 말할 때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한껏 ‘뽐’이 들어 간다. 답을 맞추고 싶은데 기억나지 않으면 귓속말로 힌트를 달라고 하기도 한다. 답을 맞추기 위해 내 질문을 기다렸는데 하지 않으면 질문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나는 전체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 정도로 최소한의 질문을 하고, 질문을 확장해서 대화를 하고 싶어 할 때는 더 이어가기도 한다.
아이에게 좀 어려운 어휘나 문장은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시키면서 읽어주지는 않는다. 어차피 여러 번 읽으면서 맥락을 이해하게 되고,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언젠가는 물어본다.
4. 4세 이전에는 리듬을 잘 살려야 한다
동화책은 다양한 의성어가 등장하고, 표정이나 몸짓에 대한 설명이 자주 표현된다. 그 부분의 리듬을 잘 살리면 집중력을 높이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을 찌푸리며'와 같은 표현이 있으면 함께 표정을 지어 보고 흉내 내며 잘 했다고 박수 쳐주기도 한다. 노랫말이 나오면 '아무 노래 대잔치'를 벌였다. 아이들은 그런 것을 정말 재미있어 한다. 개그치인 엄마를 향해 깔깔대며 웃어주니 그저 감사하다. 이 부분은 아이들이 4살 때까지 높은 비중을 두었다.
책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표현이 우리 집 유행어가 되기도 한다. 며칠 전 고전동화에서 발견한 “경사 났네. 경사 났어.”라는 말은 며칠 째 유행어로 쓰이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볼 때는 각 신들의 포즈를 따라 하느라 책 읽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한다.
아들은 6살 때부터 리듬보다는 내용을 정확하게 읽어주기를 원한다. 같이 책을 읽을 때는 리듬을 살리려는 딸과 빨리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는 아들 사이에서 곤란할 때가 많다.
5. 책읽기가 항상 1순위이다
4살 이전에는 집안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책을 들고 오면 먼저 책을 읽었다. 식사 때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책 읽고 싶은 아이의 욕구를 가장 우선 시 했다. 지금은 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이것만 끝나면 바로 읽어 줄게."라고 말한 뒤, 약속을 지킨다. 밤에 잠자기 전에 책을 더 읽고 싶어 할 경우에는 내일 아침에 바로 읽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런 엄마의 태도가 쌓여 아이들에게 습관이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할 때 책을 읽어 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간식을 먹을 때나 내가 잠깐 짬이 나서 책 읽어 준다고 하면 놀다가도 달려 온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갑자기 딸이 춤을 추고 싶다고 했다. 보통 읽던 책을 다 읽고 나서 다른 것을 하는데 그 날은 그랬다. 책을 덮고 음악을 틀어 주었다. 아들과 딸은 옷이 땀에 다 젖도록 신나게 춤을 추었다. 보는 나도 신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읽어 달라고 꺼내 놓은 책들 대신 글감 적은 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책 읽는 것이 1순위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지키는 것이다.
6. 책읽는 시간은 엄마와 교감의 시간이다
아이들이 책을 생각하면 엄마와 보낸 즐거운 시간으로 떠오르기를 바란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아이들을 품에 안고, 아이들의 손과 발을 만진다. 책을 읽는 내내 엄마와 오감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한다. 나에게도 책을 읽는 것이 육아 노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들과의 교감이 중요하다. 이제는 무릎에 앉히기도 버거울만큼 커버린 7살 아들도 가끔 품에 안겨서 책을 읽으려 한다. 아들의 머리에 가려 책이 잘 안보이긴 하지만 그 시간 조차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한, 두 권 정도는 안고 읽는다.
7. 침체기에도 '흥미'의 끈을 놓지 않는다
딸은 책을 좋아하기 시작한 후 침체기가 없었는데 아들은 3살즘에 잠시 있었던 기억이 있다. 24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다양한 장난감과 영상을 접하면서 신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집에서 책 읽기에 대한 흥미가 예전 같지 않았다. 책을 한 권도 읽어 달라고 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관심을 가질만한 책을 거실과 놀이방에 흩어 놓았다. 책으로 집짓기 놀이를 하기도 하면서 책과 멀어지지 않도록 했다. 어느 날, 책을 다시 잡더니 침체기 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이의 침체기에 억지로, 의무감으로, 공부처럼 책을 읽게 했더라면 아이들이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도 바쁜 일상에 치여 책과 멀어질 때가 간혹 있다. 한번 멀어지면 책 읽는 리듬이 깨어지기도 한다. 그럴 땐 침대나 책상, 주방 등 곳곳에 책을 갖다 놓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책을 펼치게 된다.
8. 책을 물려받으면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된다
딸은 아직도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그리고 아직 안 읽은 책들이 많아서 흥미가 지속되고 있지만 아들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에 흥미가 떨어질 때가 있다. 새로운 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단행본이나 전집을 구입한다. 책을 자주 구입하는 편은 아니다. 구입할 때는 아이와 의논해서 원하는 책을 구입하고 있다. 빌린 책 중에도 사 달라고 하는 것은 꼭 사주고 있다.
누군가 책을 주겠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하고, 감사하게 받는다. 내 아이들이 책편식이 없는 주된 이유가 ‘물려 받은 책’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집집마다 엄마 취향과 아이 취향에 다르기에 책을 다양한 곳에서 물려받으면 다양한 책들이 모인다. 책을 챙겨서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공이 적게 드는 것이 아니다. 그 무거운 책들을 챙겨 줄 때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이다. 물려받은 책 중에서 내 아이들이 흥미롭게 보지 않은 책은 거의 없다.
9. 책 정리는 엄마의 몫이다
아이들이 갖고 논 장난감은 스스로 정리하도록 하고 있다. 내가 좀 돕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책은 내가 전적으로 정리해 주고 있다. 책을 책장에서 꺼낼 때 정리에 대한 부담을 아이가 갖지 않았으면 해서이다. 가끔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정리 할 때가 있는데 굳이 말리지는 않는다. 다시 빼서 제자리에 꽂느라 내 손이 한번 더 가야 하지만 책 정리에 대한 그 마음은 참 대견하다. 그러다 책정리를 잘 하는 아이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책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 책장을 수시로 재정리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 엄마의 수고가 모여 아이들의 책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지속된다면 애쓰는 보람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정리하고 보니 책육아가 복잡해 보이기도 한다. 7년간 쌓인 이론과 경험을 정리한 것이라 그럴 수도 있다. 이 글을 출산 전인 엄마나 4세 이전의 엄마가 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책 읽는 습관을 들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간혹 내 아이들의 책 읽는 습관을 부러워도 하기에 더 그렇다.
해가 바뀔 때마다 주변의 육아 선배들에게 물어 본다. 노산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친구는 물론, 친한 동생과 후배들도 육아에 있어서는 대선배님들이시다. 올해도 물어봤다. 이제 7살이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내년에 초등학생이 될 예정이니 공부에 대한 부담도 생겼다.
초, 중, 고, 대학생의 자녀를 둔, 전업맘과 워킹맘의 다양한 형태로, 전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하는 말은 똑같다. 함께 놀아 주고, 책을 많이 읽어 주라는 것이다. 모든 공부는 책읽기로 다 통한다고 한다.
얼마 전 초, 중, 고등학생들의 문해력이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났다. 시험 문제의 문장을 이해 못해서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문해력은 기초적인 읽기 및 쓰기 이상으로 글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해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영상이고, 문해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라고 한다. 독서 습관이 단 시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읽고, 말하고, 쓰는 데 흥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집에 책이 많지 않았다. 동화책 몇 권과 30권 정도의 위인전집이 다였다. 나는 늘, 심심한 아이였던 까닭에 다락방에서 위인전을 보다가 낮잠에 빠지는 것이 일상 다반사였다. 꿈에서 책의 주인공을 만나기도 하고, 내가 그들의 삶을 살기도 했다. 나에게 첫 자기 계발서는 위인전이었고, 나의 외로움은 책의 세계로 가는 통로가 되었다.
내 아이들은 외롭지 않게 책의 세계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나에게 책은 친구이자 멘토이자 꿈이었다. 내 아이들에게도 그랬으면 한다.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서 답을 생각할 기회조차 놓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직접 가르칠 수는 것은 매우 한정적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오늘도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