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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 육아에세이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by 행복별바라기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 5세. 가족 중 ‘에너지’ 담당. 복부에서 나오는 듯한 파워풀한 에너지로 쉼 없이 말하고 달리고 관계를 주도한다. 취미는 오빠 따라하기와 책 읽기. 특기는 눈웃음과 말하기이다. 기기도 전에 걷기 연습을 했다. 킥보드도, 발란스 바이크도 일단 끌고 다니면서 연습하는 노력파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는 오빠이지만 오빠와 결혼할 수 없다는 현실을 5살이 되어 받아 들였다. 분홍색도 좋지만 파란색이 더 좋은, 샬랄라 치마도 예쁘지만 바지를 더 선호하는 보이시 취향이다. 여리 여리한 외모와는 다르게 용감하고 씩씩한 외유내강형이다.


아들 : 7세. 가족 중 ‘비주얼’ 담당. 어릴 때부터 훈훈한 비주얼로 이모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취미는 레고 조립과 책 읽기. 특기는 코믹 댄스와 관찰력. 전과 후가 다 뽀글뽀글한 동네 할머니가 파마한 것도 한 눈에 알아 본다. 꿈은 로봇과학자, 요즘 관심은 과학실험과 미래도시이다. 사람에게 호기심이 많지만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호기심 많은 인생 7년차에도 변함 없는 것은 엄마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달콤한 말로 엄마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이다.


아빠 : 47세, 먹는 것에 진심인 남자. 한때 딸은 아빠의 직업이 요리사인 줄 알았지만 진짜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취미는 요리와 독서이다. 주방 가전, 컴퓨터 등 기기에 관심이 많고 최고의 관심사는 재테크이다. 돈과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부자 아빠가 되어 아이들과 세계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집 – 회사 - 마트’를 무한 반복하는 가정적인 남자다. 뜻한 바가 있어 삭발 중.


엄마 : 49세. 먹는 것에 진심인데 혀가 까칠하다. 반찬 하나만으로도 한 끼를 먹지만 아무리 맛있는 요리도 연속해서 먹지는 않는다. 결혼 전 이상형은 긴 손가락을 가진 똑똑한 남자였다. 연하남은 관심 밖이었다. 어쩌다 연하남과 결혼했고, 남편이 똑똑해 보일 때 양손 엄치척을 보내며 격렬하게 반응한다. 과거 취미는 뮤지컬 관람과 독서, 현재 취미는 아이들과 놀고 동화책 읽기. 20여 년 워커홀릭으로 살다가 7년 째 키즈홀릭 중.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유화를 배우고 있었다.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오래 동안 상상 속에만 있던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다. 데생의 기초 과정을 거쳐 나라 요시토모의 <소녀>를 완성하고, 육심원의 <행복한 여자>를 그리기 시작할 때 남편을 만났다. 디자인을 전공한 남편, 한때 아그리파 좀 그리던 남자와 나누는 그림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그림을 그리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싶다는 나의 꿈에 크게 공감하는 남편과의 데이트는 즐거웠다. 결혼 후 그림은 더 이상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았다. 나의 두 번째 그림 <행복한 여자>는 눈과 입술이 그려지지 않은,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 딸은 그림을 볼 때마다 눈과 입술 그려 넣으라고 성화다. 그 때 붓 칠 몇 번만 더 했으면 좋았을 걸.


데이트 할 때는 닮은 점만 보였던 남편이 결혼해 보니 다른 점이 참 많았다. 나는 옷 외에 뭘 사 들이는 것을 싫어하고, 남편은 옷만 빼고 사 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은 기억력이 좋아서 세세한 것도 기억 하고, 나는 ‘내 머리 속에 지우개’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남편은 신제품을 빛의 속도로 취해야 하는 얼리어답터인 반면, 나는 스마트폰 액정이 깨어져도, 노트북 속도가 386 수준이라도 잘 쓴다. 남편은 요리하는 것에 부지런하고, 나는 청소하는 것에 부지런하다. 남편은 육류에 열광하고, 나는 해산물에 열광한다.

아이 둘을 보고 있자면 더 놀랍다. 아들은 특별히 가리는 것이 없는데 계란은 먹지 않는다. 딸은 가리는 것이 많은데 계란은 좋아한다. 아들은 팥이 들어간 모든 것을 좋아하는데 딸은 팥빙수, 찐빵, 호두빵을 먹을 때 팥은 빼고 먹는다. 아들은 떡과 식혜에 열광하고, 딸은 치즈와 소세지에 열광한다. 아들은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딸은 틈만 나면 밖에 나가려고 한다. 아들은 원칙주의이고, 딸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취향도 성격도 서로 다른 네 명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남편과 나는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3~4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마냥 즐겁기만 해도 부족한 그 시간을 치열하게 싸우며 보냈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 없이 남매가 된 아들과 딸은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격렬하게 겪고 있다.


다행히 우리 가족에게 통하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책으로 연결된다. 남편과 나는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책을 통해 유연함을 발휘한다. 같은 관심사의 책을 함께 읽고 감동과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책은 우리 부부에게 화합과 성장의 통로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나에게 안겨 책을 한 권 읽으면 안정을 찾는다. 둘이서 함께 책을 볼 때 가장 다정하고 평화롭다.

서로 다르기에 오해하는 순간이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순간으로 바뀔 때 우리 가족은 평온함과 고요함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 집은 커피 맛집이다. 나는 따아를 즐기고, 남편은 아아를 즐긴다. 언젠가 남편의 아아에 빨대를 꽂아서 함께 맛을 본 이후 우리는 ‘아아는 빨대로 마셔야 제 맛.’이라는 또 하나의 같은 취향을 만들었다. 좋아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던 나는 아이들 덕분에 초콜릿을 좋아하게 되었다. 게임회사에서 일 할 때도 재미가 없던 게임이 아들과 하는 닌텐도 게임은 재미있다. 남편과 맛집을 찾아 다닐 때는 ‘우린 꼭 닮은 부부구나.’라고 생각 하고, 두 아이가 동시에 깔깔거릴 때는 ‘꼭 닮은 남매구나.’라고 생각 한다.

남편은 기능이 떨어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잘 쓰는 나를 보며 전자 기기의 낡음에 대한 포용력을 한 뼘 정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고기를 양보하는 남편에게는 찐사랑을, 전복을 양보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함이 아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아들은 동생이 떼를 쓸 때 동생의 관심을 돌리는 방법을 터득했고, 동생이 먹다 남긴 찐빵과 호두빵 속의 팥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도 안다.


유독 나와 성향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딸에게 가끔 물어 본다.

“지안이는 어느 별에서 왔어?”

딸은 배시시 웃으며 모른다고 한다.

나는 금성에서, 남편은 화성에서, 딸은 토끼가 방아 찧는 달에서, 아들은 어린 왕자의 별에서 온 건 아닐까.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은 너무 당연하고 닮아 가는 것은 신기하다. 그 대단한 일을 오늘도 해 내며, 따로 또 같이 사는 재미를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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